1. 행정수도에 대해서 찬성할까? 서울이 작아져야 한다는 데 대해서 찬성하지만, 신도시 건설은 반대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독일형 수도이전이 대체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전형이다. 통독 이후 본에서 베를린으로 옮기면서 독일은 건물 한 동을 지었을 뿐이다. 지겹다고 '본'이라고 부르는 도시지만, 살기에는 제일 좋은 데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곳이 수도 기능이 이전된 이후의 본이다. 영국의 리즈, 독일의 본... 다 작은 도시지만, 정말 살기 좋은 곳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정말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프랑스의 그르노블이나 리옹 같은 곳도 살기에는 좋다.
2. 헌재의 결정에 대해서는 찬성할까? 얘기가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 정부안 대로의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것이 내 생각이지만, 관습헌법에 관한 얘기는 할 말이 없어지게 만든다.
기업도시에 대해서 헌법소원을 준비하는 중이다. 50%든 70%든 기업에게 토지수용권을 주면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걸어서 헌법소원을 하겠다고 조심스럽게 준비하는 중이다.
그렇지만 지금 헌재의 결정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3.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행정수도든 하여간 건설자본에 대해서 원래는 한나라당이 최대한 복무하고, 대체적으로 우리나라의 엘리트는 건설자본에 대해서 우호적이다.
자신이 개혁적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건설자본이라는 리트머스를 통과시켜 보면 금방 나온다.
건설자본과 부동산이익에 대해서 우호적이라는 생각이 들면, 70년대 이후 한국 사회를 규정짓는 대표적인 비리 산업에 대해서 별로 비판적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건축 자체가 나쁜 것일까?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지만, 건설자본이 만들어내는 세상에 대한 철학에 대해서는 여러모로 생각해보아야 한다. 초록정치가 개혁적인 것은 이 건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세계관에 대해서 반대할 수 있는 유일한 철학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생태주의는 진보적이다. 어쨌든 집과 도로라도 지어서 경제를 일으켜야 한다는 데 대해서 체계적으로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 초록정치의 시대적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왜 나는 노무현 정부가 개혁적이거나 세상을 바꾼다는 데에서 동의하지 못하는 것일까? 개혁의 의제에는 경제와 분배, 그리고 형평성의 문제도 존재하지만, 생태적 의제도 분명히 풀어야 할 의제이기 때문이다. 환경과 생태는 분명히 다른 용어이다. 환경적으로는 노무현 정부가 '환경친화형'이라는 얘기를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생태적 측면 특히 국토생태의 수용능력이라는 관점에서는 분명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국토생태라는 개념이나 도시생태라는 개념은 우리나라에서 연구된 적도 거의 없고, 정책적 목표로 제대로 수용된 적이 없다.
4. 건설자본의 반란 헌재 결정은 현재의 토지자본이 새로운 토지자본에 대한 반란이라고 이해하는 편이다. 여기에 토지자본에 근거한 보수적 세력이 헌법이라는 장치를 두고 일으킨 반란같은 것으로 이해한다.
우리나라의 헌법은 대단히 진보적인 헌법이다. 일제로부터 독립을 하던 시기에 분명히 독립운동을 했던 진보진영이 헌법 제정 과정에서 지분을 가지고 있었고, 다시는 식민지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긴급한 사회적 필요가 헌법에 다분히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지금 헌법을 만든다고 하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진보적인 헌법을 가지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안정적으로 변하면서 더 많은 진보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보수화가 이루어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박정희 시절을 시대의 잣대로 본다면 사회는 분명히 나아졌지만, 오히려 해방 시절과 비교한다면 지금의 우리 사회는 훨씬 더 보수화되어 있다. 나라를 해방시킬 것이냐 그렇지 않을 것이냐라는 절체절명의 문제의식보다는 내년도 성장률이 몇 프로냐라는 것이 국가 최대의 의제로 설정된다는 것 자체가 보수화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노무현 정부가 충청도를 비롯한 지방 건설자본의 세를 모으는 과정을 가지고 있다면, 한나라당은 중앙 건설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결국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건설자본과 토지자본 사이의 내분에 불과하다고 이해한다.
5. 초록정치의 의제는 무엇일까?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힘을 분산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하고 또 지나치게 많은 부당이익을 올리고 있는 건설자본의 집중된 힘 역시 견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헌재 결정이 개혁의 후퇴인가라고 질문하면, 도대체 개혁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 다시 답을 할 수밖에 없다. 난 지금의 정부가 개혁적이라는데 동의하기가 어렵다.
경제가 무엇일까라고 사회적 의제 1번으로 떠오른 상태이다. 나는 경제는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의 문제가 조금씩 풀리면 경제는 체질부터 강해지고 좋아지게 되어 있다. 경쟁이 최고의 선이라고 생각하는 하이에크의 이론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한국 자본주의는 특정계층과 특정부류가 지나치게 많은 부당이익을 올릴 수 있도록 했고, 그것 때문에 한국 자본주의의 병폐가 기인한다고 믿는 편이다.
상식적인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 경제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소하는 길이라고 믿는다면, 인위적 경기부양이 가지고 있는 계급적 속성에 대해서 분명히 지적을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헌재의 결정은 두 가지 숙제를 남겨놓았다. 건설자본과 또 다른 건설자본 사이의 싸움 속에서 건설자본이 아닌 합리적인 측면에서의 분권과 상식을 얘기할 수 있는 힘이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이 속에서 경제에 대한 사회적인 대안은 무엇일까라는 점이다.
헌재의 결정을 나는 환영할까 아니면 반대할까? 아마도 반대하는 쪽에 가까울 것 같다. 그러나 찬성이나 반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더 많은 숙제들이 발생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솔직한 심경인 것 같다. / 논설위원
* 필자는 경제학박사로 초록정치연대(
www.greens.or.kr) 정책실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