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은 대자보 신정모라의 기사에 대해 독자이신 ‘나무뿌리’의 반론입니다. 대자보는 독자 여러분들의 목소리를 소중히 여기며, 본문에 대한 다양한 입장과 기고를 환영합니다-편집자 주.
성매매를 남성들의 불량 의식의 소산으로 치부하는 신정모라님을 심정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과거 성매매의 과정에 있어 많은 경우, 종사 여성에 대해 강제성을 띠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고, 이는 명백한 여성 착취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성매매 과정의 성격이 상당히 변모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단순히 남성들에게 중차대한 결함이 있는 것처럼 몰아세우는 것은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무슨 사안이든 감정적인 분석과 대응은 사태를 해결하기 보다는 진부한 말싸움만 양산하는 것으로 끝나는 법. 보다 이성적인 성찰과 대안제시가 필요할 것이다. 흔히 성매매를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고 말한다. 여기서의 성매매는 사실상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라고 보는 것이 보다 명확한 개념이다. 그러나 여권의 신장, 자본주의의 발달과 더불어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는 성격이 변모했다. 여성은 왜 성매매를 하게 되는가? 미군 기지촌 여성의 예를 들어보자. 이들은 어느 개인이강제로 이곳에 몰아넣은 것은 아니다. 사회가 그들을 기지촌으로 몰아넣었다. 가난하고 못 배운 여성들은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기지촌에 자리 잡았다. 그 과정에서 포주들이 여성들을 계속 붙잡아두기 위해 빚을 만드는 사례는 일단 접어두고, 애초 여성들이 성매매를 직업으로 택하게 된 것만 보자. 결국 사회의 가난함이 이들이 성매매를 하도록 강제했던 것이다. 또 노골적으로 군사독재정부는 이들에게 외화벌이의 애국자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전국 각지에 있는 집창촌에 종사한 여성들의 첫 번째 이유도 결국 가난함에서의 탈출이었다. 이는 이곳에 종사했던 여성들이 이런 길을 택하게 된 것이 상당수 불가피했다는 점을 말하고 싶음이다. 그러나 여성들의 이런 선택의 불가피성은 사실 오늘날에 이르러 대폭 줄어들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절대적 빈곤으로부터의 탈출보다는 성매매 업종의 고수익률(수익/노동)이라는 유인에 이끌려 성매매를 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졌음을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이는 성매매의 유형이 집창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이버공간 등 다양한 경로로 확산되었고, 여기에는 자발적 성매매 여성 증가도 한 몫하고 있음을 말하고픔이다. 물론 최근까지도 여성들을 강제로 감금하다 적발되는 사례들처럼, 여성들에 대한 착취는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여기서 감금이라는 것은 인권적인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에게 인권적인 문제만 해결되면 성매매를 용인하겠느냐고 물으면 절대 아니오, 라고 답할 것이다. 즉 성매매의 존폐논쟁에서'종사 여성에 대한 비인격적 대우'라는 논거는 어느 측에도 제대로 된 논거일 수 없다. 이쯤 되면 반문할 것이다. 그렇게 성매매를 택한 여성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성을 돈으로 사려하는 남성들에게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냐. 여성에게 성매매에 대한 자유로운 선택권이 없는 상황에서라면 모를까, 자발적 성매매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어느 한 측에만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고 본다. 인터넷 채팅을 통해 30대 남녀가 돈과 성을 교환했다면, 이것이 남성만의 잘못인가. 거의 모든 페미니스트들은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묻고 싶다. 양측에 자발성이 전제된 상태에서 돈을 주고 성을 사려고 하는 행위와 돈을 받고 성을 팔려는 행위에 부당성의 차이가 어떻게 발생하는가. 여기서 논리가 군색해진 어떤 이들은 다시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여성이 돈을 받고 성을 팔려는 행위는 남성우월의 사회로부터 그렇게 교육받았기 때문이다”라고 말이다. 오늘날에는 웬만한 페미니스트들도 가부장제 철폐를 외칠 때 남성들 역시 가부장제의 피해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성매매를 한 남성에 대해서는 역시 그들도 피해자라고 하지 않는다. 철저히 가해자로 몰아세운다. 왜? ‘남성들은 성매매를 통해 쾌락을 얻으니까’라고 말한다. 남성들은 자발성보다 앞선 적극성을 가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똑같이 돌려줄 수 있다. 여성들은 성매매를 통해 금전적 효용을 얻는다. 여기까지 읽고서 필자를 극단적인 남성우월주의자로 판단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더 이상 읽지 말기를 바란다. 남의 말을 끝까지 경청할지 모르는 무식한 양반에게는 정주고 싶은 맘 없다. 그러함에도 혹 헷갈려할 이들을 위해 정리를 한 번 하자. 필자는 단연 성매매를 반대한다. 그러나 성매매에 있어 여성들에게도 자발성이 확보된 상황에서는(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필자의 말은 하등의 가치도 없다) 그 비난의 화살을 남성에게만 돌릴 수 없다. 오히려 그 비난은 남성이 왜곡되고 이중적인 성의식을 갖도록 만든 사회의 매커니즘에게로, 그리고 여성이 스스로 성행위를 통해 이윤을 추구하도록 만든 자본주의 체제에게로 돌려야 마땅하다. 우선 사회의 매커니즘이라면, 필자는 한국 사회에 잔존하는 유교문화의 잔재와 군대문화를 꼽고 싶다. 전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소멸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군대문화는 군대라는 제도가 존재하는 한엔 없어질 수가 없다. 군대 내부에서 정화운동을 벌인다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느 정도는 유효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군대라는 비인간적인 제도의 철폐가 남성들을 왜곡된 성으로부터도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돈이면 뭐든 할 수 있는 세상이다. 자본주의 세상은 이런 명제를 아주 체계화한 세상이다. 이 체제하에서 어떤 여성들이 '내가 돈 받고 내 몸 파는 데 지들이 왜 지랄이야?'라고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금전적 인센티브가 있으면 공급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남성의 성적 욕구가 적극성을 띠는 것이 나름대로 본능적일 수 있다는 가정 하에서는 성매매의 공급이 생길 수밖에 없다. 대다수의 경제학자들이 성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웬만한 것들을 모두 상품화하는 그들에게도 성의 상품화는 금기시된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또 한편으로 성을 수요공급곡선의 상품으로 대입시켜놓고, 이에 대한 정책을 판단할 때, 다른 일반 재화에 대한 정책효과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즉 성매매 금지 특별법이 시행될 경우, 암시장이 성립하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 이런 암시장이 생길 수 있는 루트는 인터넷을 비롯해 다양하며, 이때의 부작용은 정규시장이 있는 것보다 더 참담하다. 결론은 성이 상품적 속성을 띠고 있는 현실에서 성매매 금지 특별법은 단기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결국엔 음성적인 성매매를 부추기는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뿐이라는 것이다. 결국 해결방안은 성이 아예 상품적 속성을 띠지 않도록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성매매 금지 특별법 하나로 한국 사회의 왜곡된 성문화를 고칠 수 있다는 기대를 버리고, 군대문화 정화, 청소년 성교육, 직장문화 정화 등 다양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다수 페미니스트들이 남성들의 불량의식이라고 몰아세우는 방법으로가 아니라, 남성이든 여성이든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 독자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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