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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아직도 꾸어야할 긴꿈이 있소?
소설 속에 갇힌 소설가, ‘시대와의 불화’ 빚고있는 이문열 황제를 위하여
 
임흥재
 삼복더위와 심난한 일상을 피할 겸 이 여름의 한동안을 귀를 닫고 살았다. 모처럼 독서삼매경의 경지를 흉내 낸 덕에 한껏 고무되어 세상으로 돌아왔건만 세상의 풍문들은 순식간에 필자의 환상을 깨어버린다. 저 잘난 소설가 이문열이 세인들을 까무러치게 한 모양이다. 그가 꽤나 잘 팔리는 소설을 쓰는 작자作者이다 보니 세상 사람들을 까무러치게 만드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인 동시에 사뭇 권장 장려해야할 일이다. 다만 그것이 작가로서의 오랜 수고로 빚어낸 필공의 소산으로서 행해져야 한다는 전제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의 경악스런 사건은 작품이 아닌 그의 혀에서 비롯된 것이니 그것이 문제다.   


▲지난 2001년 11월 13일 이천 부악문원 앞에서 인물과 사상 독자모임이 '이문열 홍위병 발언'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 대자보

그의 세 치 혀로 빚어낸 소리를 우리의 말로 해독해보면, “한일합방은 엄연히 국제법상 합법이다”라는 말이다. 바로 앞의 소리를 해독해보면 “프랑스는 4년 8개월이고, 우리는 36년간이다. 프랑스는 전시점령이다. 괴뢰정부가 있었지만 바깥에 자유프랑스 정부가 존재했다. 결국 전시부역한 사람의 문제다...” 필자가 곧 살펴보게 될 무녀리Moonyeol Lee (세계에 소개된 작가이다 보니 영어식 표현을 소리 나는 대로 썼을 뿐이다.)의 대표작인 <황제를 위하여>라는 장편의 끄트머리에는 필자가 그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 나온다. 기왕 친절봉사 한 김에 그대로 옮겨보자.


“개는 잘 짖는다고 좋은 개가 아니요, 사람은 말을 잘 한다고 현자賢者가 아니다”

- ‘황제를 위하여’ 중 에필로그에서 발췌(삼성출판사 간/제3세대 한국문학 24권 340쪽)


암 그렇고 말고, 너무나 지당하신 말씀이다. 합법 운운하였으니 법이론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법을 전공하지 않은 까닭으로 잘은 몰라도, 위협과 협박, 즉 강박 등 의사강요에 의한 법률행위는 합법적인 법률행위로 보지 않는 것이 모든 법치국가의 통설이다. 시퍼런 칼을 들이대는 건장한 강간범에게 힘 빠진 가랑이를 끝까지 오므리지 못했다하여 성폭행이 합법이란 말과 무녀리의 논리가 무슨 차이가 있나. 그는 이성과 상식을 강간하고 있는 폭행범이다.


십분 양보하여 그의 궤변을 참아내며, 그의 주장대로 그 당시 그 합법을 가장 잘 준수한 황국신민의 면면이 누구인지, 구체적인 준법사례로는 어떤 것이 있었는지 제대로 조사하여 후일의 귀감과 사표로 삼고자 한다는데 왜 그가 그토록 거품 물며 더러운 침을 튀기는지 우리 선량한 백성들은 알지 못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자유프랑스 정부는 아는 작자가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은 설마 모른다는 것인가. 이승만 독재부터 유신을 비롯한 군부독재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욕의 현대사에서도 단 한번도 빠지지 않고 우리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것이 임시정부의 법통과 그 계승이다. 한 때 고시공부까지 하셨다는 인사가 그것도 모르나. 그러니 번번이 낙방한 것은 단지 운수 사나운 때문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황제가 되고 싶은 무녀리


소설가 이문열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80년대 초 중반에 필자는 그의 작품에 관한 여러 장의 메모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럴 만한 까닭을 굳이 밝힐 필요는 없는 이유로, 그 메모들을 어느 시점에 버린 까닭을 말할 필요는 없다. 이미 독자들은 이해하고 있을 것임으로 말이다. 그 버린 메모들이 오늘은 절실하다. 필자의 고매한 인격으로 그와 똑같이 세 치 혀로 그를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금은 아예 쳐다도 보지 않는 그의 작품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그의 망언을 듣는 것보다 더욱 힘겨운 고통이다. 그러니 예전의 희미한 기억에 의존하여 그의 망상을 꾸짖을 수밖에 없다.


<황제를 위하여>, 그의 필명을 드날리게 한 작품 중의 하나다. 평자들의 찬사대로 그 화려한 의고전체의 문체와 고전과 한학에 대한 박학한 이해를 맘껏 뽐내며 빚어낸 작품이다. 황제가 있다. 정감록에서 예언한 그 주인공이다. 신문물과 기술의 발전으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그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이 황제인 줄 착각하는 미치광이의 기행을 ‘능란한 이야기꾼의 솜씨’로 직조해낸 픽션의 걸작이다. 픽션이란 허구다. 곧 문학, 특히 소설의 본질은 허구다. 당대의 문제적 개인과 전형이 드러나는 것에 주목하는 문학사회학의 관점을 극도로 경계한 그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장편 내내 황제는 세상의 모습과는 동떨어져 자신만의 이상세계를 그리며 꿈을 꾼다. 이문열의 빗나간 정신과 허위의 세계관이 반영되지 않았더라면 한국판 ‘돈키호테’ 쯤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이 소설에서 황제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세상을 인정하지 않는다. 고집스레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 신하도 백성도 없는 황제질을 한다. 우리 같은 정상인의 눈으로는, 한마디로, 미친놈인 것이다. 그 광인은 숱한 기행(미친짓) 끝에 자신의 역할과 운명이 다하였음을 느낀 순간에도 황당한 우주론을 지껄이며 미친짓을 합리화 한다.


“재미있는 놀이를 하던 아이도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법, 요동백이여, 너무 상심하지 말라. 그대와 함께한 지난 60년의 꿈은 한결같이 신산辛酸스런 것이었으나 그 마지막은 영화롭기 그지없었으니, 짐은 크고 큰 도의 문을 그 꿈속에서 지났노라.....  비유하여 우리의 삶을 전장으로 여긴다면, 짐과 그대가 이룬 것은 그 커다란 승리였으리라. 한바탕 꿈이라도 누구든 꾸어보고 싶은 꿈이었으리라. 이제 날은 다 되었고 짐은 이 땅에서 빌린 껍질을 훌훌 털고 떠나려니와, 우공이여, 흐트러진 짐의 꿈자리를 그대에게 맡기노라”(위 책 338쪽)


“이 몸은 그 미망에서 깨어나고자 하오. 한조각의 하늘과 한줌의 흙에 내 나라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차고 꽉 차 있어도 있는 데가 없는 우宇를 하늘로 삼고 길이길이 있어도 처음과 끝이 없는 주宙를 땅을 삼는 나라를 찾으려 하오” (위 책 328쪽)


이 황당한 우주관이 미치광이의 도피처인 것이다. 이문열과 황제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반박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고 작자 스스로 부인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품 전반에 미치광이 황제에 동화된 혹은 그 자신인 작자를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그들은 모두 과대망상증 환자며 편집광이란 말인가. 그보다는 차라리 황제를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는 쪽이, 그래서 앞으로의 변화는 그의 크고 깊은 깨달음으로 보는 것이 몇 배나 온당하리라”(위 책 329쪽)


“... 황제가 정말로 한 광인에 지나지 않았는지, 또는 시대와 맞지 않았을 뿐 비범한 인물이었는지는 처음 나 자신도 알 길이 없었다....  내가 이 글을 쓰기 위하여 어떤 대학 교수의 증언을 들은 후부터 황제에게 접근하는 내 태도는 지금처럼 바뀌었다”(위 책 339쪽)


이문열의 산문집 <시대와의 불화>를 보면, ‘국민들의 무관심보다 더욱 해로운 것이 정치과잉’이라는 경계의 글이 나온다. 이 작자의 노선은 그의 표현대로 그 과잉이 가져다 줄 ‘비극적 소모’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과 경계였다. 그런 그가 홍위병 운운하면서부터 작자 스스로 과잉을 보이고 있으니 어찌된 일인가. 같은 책을 보면 또 ‘빛나는 작가’의 추락을 경계하는 대목도 나온다. 문단의 중진이 정치인의 스피치라이터가 되고 찬조연설자로 내려앉는 그 세태가 배알이 꼴리는 것이다. 그런 그가 치욕스럽게도 정치집단의 처마 밑에서 잠시 동안이나마 판관 노릇을 하였으니 무슨 까닭일까.


그러면서 그는 사르트르가 드골과 만났을 때, 그것은 ‘접견’이 아니라 ‘회동’이었다고 너스레를 떤다. 만난 장소도 대통령궁이 아니라 제 3의 장소였다는 사족을 잊지 않는다. 아무렴 어떤가. 국가의 장래와 문화의 발전을 위한 허심탄회한 대화와 심도 깊은 의견의 교환이 있으면 그만이지, 이 작자는 스스로 사대부임을, 영화로운 과거 유산의 적장자임을 골수에 새기며 한평생을 산 피해망상증 환자다. 비록 애비의 월북으로 쫑난 인생을 살았으나, 그래도 자신은 영남 거유巨儒의 후예인 것이다. 퇴락한 가문 재령 이씨의 귀신에 씌어 살던 그가 정치의 썩은 물을 마시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황제가 되고 싶은 것이다. 


다시 황제를 위하여로 돌아가면, 미치광이는 죽으면서 우공에게 ‘흐트러진 자신의 꿈자리를 맡기면’서 다음과 같은 당부를 한다.


“태자에게는 아직도 꾸어야 할 긴 꿈이 남았으니, 그가 돌아오거든 전하라. 이 애비의 길이 몽몽하나 이어서 가고, 황태손으로도 잇게 하라고,”


바로 이문열은 스스로 태자가 되고 황제가 되고자 꿈을 꾸고 있는 모양이다. 자신이 공천한 한나라당의 가신들로는 성에 차지 않는 성싶다. 오늘의 주제가 된 망언도 바로 자신의 가신들에게 내린 경고이며 당부가 아니었던가 말이다. '황제를 위하여'의 끝을 옮겨보자.


“..... 그래서 그는 우리시대의 언어와 우리시대의 논리를 가진 아들이 돌아와 자기가 못다한 일을 완성하기를 바랐을 겁니다. 어쩌면 단순히 지우는 이상 그 어떤 신념체계도 도전할 수 없는 새로운 신념체계의 수립을 기대한지도 모르지요......”


“설령 그렇게 생각한 사람이 그 하나에 그칠지라도 나의 소재들은 최소한의 리얼리티를 확보한 셈이 되므로, 그리하여 - 나는 집으로 돌아오기 바쁘게 이 장황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황제를 위하여, 그 승리와 영광을 위하여.”


오늘 작자는 스스로 ‘새로운 신념체계의 수립’을 시작한 것이다. 한 미치광이의 신념체계를 말이다.


무녀리의 ‘시크릿 윈도우’


곧 개봉될 영화 중에 연기파 배우 조니 뎁 주연의 ‘시크릿 윈도우’라는 헐리우드 영화가 있다. 소설가인 주인공이 자신의 소설 속에 갇혀, 현실에서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내고 아내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을 끝내는 잔혹하게 살해하는 다중인격자를 그린 스릴러물이다. 영화의 구성이나 긴장감은 떨어진다. 워낙에 개성이 강한 조니 텝의 열연으로 그나마 참고 볼 수 있는 영화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필자의 경우다. 현지 평단의 평가도 엇갈려서 호평과 악평이 상반되어 보도 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아무튼 그 영화의 주인공 역시 미치광이 소설가다. 이문열의 망언을, 한 지인의 귀뜸을 통해 알고 나서 보게 된 ‘시크릿 윈도우’라니, 아마도 신의 배려인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소설가는 ‘슈터’라는 이름을 가진 가공의 인물을 현실에서 만들어 내고 그를 통해, 자신의 편집증적인 광분의 살인을 자행한다. 별거 중인 아내에 대한 집착과 분노, 그녀의 애인을 향한 적개심과 복수심,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살인에 우연하게 들러리를 서게 된 흥신소 직원과 동네 주민을 소설가는 손도끼와 드라이버를 가지고 잔혹하게 죽인다. 아내가 살고 있는 집조차 불태워버린다. 동네의 주민들은 그 모든 범행의 진실을 알고 있다. 다만 소설가만이 그것은 슈터의 짓이라 믿는다. 자신은 그 슈터의 만행에 대한 피해자일 뿐이다. 영어의 슈터Shooter는 총쏘는 사람이다. 킬러의 다른 말이라 해석해도 무방하다. 엔딩 장면의 소설가가 보여주는 눈빛은 섬뜩하다.


영화의 제목이 비밀의 창인 것은, 엔딩 장면의 보안관의 말처럼, “당신이 한 짓을 알고 있다. 다만 그 증거들이 부족할 뿐이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소설가가 살고 있는 산장의 한쪽 벽면에 놓인 문갑을 치우면 보이지 않았던 창이 나온다. 그 창밖으로는 작고 아름다운 정원이 보인다. 비밀의 창과 비밀의 정원이라고 아내는 말했었다. 그처럼 누군가 보이지 않는 창을 통해 감추어진 진실을 보아 알고 있을 것이었다. 아니 알고 있다. 슈터가 자신인 소설가도 알고 있고 죽은 아내도 분명 알고 있다.


▲'이문열 홍위병 발언' 항의집회에서 한 어린이가 이문열씨의 작품들을 영정 안에 넣은 사진틀을 들고있다.     © 대자보
소설가는 자신의 집착과 욕념을 해소하기 위해 가공의 인물을 현실의 사람처럼 만들어내는 미치광이다. 이문열은 너무 많은 소설을 썼다. 이제 소설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갈수록 필력은 떨어지고 정신은 몽매하기만 하다. 세상은 자신의 생각과 바람과는 반대로만 돌아간다. 그립고 그리운 기왓장의 고대광실을 다시 지을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동안의 은둔과 노장 흉내를 접고 저자거리에서 변설과 혹세무민에 각혈을 토하며 소리도 질렀다. 그런데도 정방향을 잡은 역사와 세태는 좀처럼 뒤돌아 자신을 보아주지 않는다.


이러다가는 저 빛나던 문인으로서의 자신의 성취도, 오로지한 가짜선비의 의관도 다 벗겨지고 허물어질 것만 같다. 강박관념은 하루하루 자신의 정신을 좀 먹고 이성의 판단은 흐릿해져만 간다. 풀쩍 고꾸라지는 자신의 모습에서 절로 다리는 풀려버린다. 스스로도 어찌 할 수 없는 지경에 봉착하였다. 늙고 (정신은)병들어 약해진 현실의 나를 세우는 길은 오직 새로운 나를 만들어내는 길뿐이다. 천만다행으로 자신은 글쟁이가 아니던가. 2대 미친 황제가 태어나는 순간이다. 그 황제는 새로운 신념체계의 수립을 위해, 영화에서처럼, 작품의 결말을 고쳐야 한다.


<그리하여 - 나는 집으로 돌아오기 바쁘게 이 장황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불행한 소설가를 위하여, 그 몰락과 변명을 위하여, 비밀의 창 비밀의 정원을 위하여- 마침내 狂하다.>


사족> 시사성의 측면에서 시간이 경과한 듯하여 쓸까 망설이던 차에 MBC의 100분 토론을 보았다. 소설가만 다중인격자일 필요는 없는 것인지 거기에는 서울대 경제학과의 교수 이영훈인가 하는 분이 소설가를 닮아가고 있었다. 그 분 덕에 뒤늦게나마 이 글을 쓰기로 작심했다. 소설가의 새로운 친구인 그 분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노회찬 의원의 한 방에 나가떨어져, ‘우종창’인 이름을 ‘와장창’으로 개명해야 될 처지인 월간조선의 편집위원에게도 안스런 우려를 보낸다. 다들 제 정신으로 돌아오시길....  

[참고기사] 이문열돕기운동-'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바로잡아주기(대자보 67호, 200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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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9/03 [08:24]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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