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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철의 연쇄살인행각보다 더 잔인한 사형제도
교수형을 참수형이라고 생각하면 사형제도는 ‘잔인과 끔찍’ 그 자체
 
이승훈   기사입력  2004/07/28 [08:23]
20여년, 30여년 전의 기억으로 떠나는 시내 버스를 타보면  버스 내부 벽면과  앞 유리창에 '금연'이라는 푯말이 붙어있다. 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들에게 경고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금연이라는 푯말이 부착된 버스를 볼 수 없다.
 
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웠던 골초인 양아치에게 요즘은 버스 안에서 담배를 왜 안피우느냐고 물으면 "옆 사람을 생각해서 담배를 안피운다"는 이성적인 대답을 하지 않고  "쪽팔리잖아" 라고 대답한다.  이처럼 한 집단, 한 사회 안에서 '쪽팔린다'  즉,  '부자연스럽고 부끄럽다'는 이유로 어떤 특정한 행위나 생각를 막고 다른 특정한 행위와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 바로 문화다. 
 
사형제도 존폐의 문제는 이같은 문화와 관련된 문제를 떠나서 이해할 수 없다. 유영철씨 사건이 터져 나온 이 때, 사형제도 폐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확고해 보인다. 한 개인의 사형제도에 대한 입장과 행동방식은 쉽사리 바뀌어지지 않는데,  이는 단기적으로는 논리적인 사유가 입장과 행동방식을 결정하기 이전에 직관적 감성이 입장과 행동방식을 먼저 결정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오래 전에 사형제도를 폐지한 나라의 국민들은 사형제도 존치국의 사형제도를 보면서 굳이 사형제도를 쓸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품으면서 사형제도를 잔인하며 야만스럽다고 느낀다. 사형에 대해 "잔인하고 야만스럽다"는 직관적 감성이 발휘되는 것은  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행위에 대해 "쪽팔린다"는 직관적인 감성을 표출하는 것과 같은 '문화의 매커니즘'이다. 
 
문제는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의 사형제도 존치론자들은 사형제도 폐지론자들의 이같은 직관적 감성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존치론자들은 사형제도에서 잔인하며 야만스럽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기에 사형제도 폐지의 필요성을 잘 못느낀다. 이를 느끼지 못한다면 모두가 자기 주장만 하게 된다. 
 
유영철의 연쇄 살인행각보다 사형제도를 유지하자는 주장이 더 잔인하고 야만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폐지론자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유영철의 살인행각보다 사형제도를 유지하자는 주장이 더 잔인하고 야만적이라고.  그래서 국제 앰네스티에서는 사형제도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는 것이다. "The death penalty is the ultimate cruel, inhuman and degrading punishment." 
 
앰네스티의 사형에 대한 정의는 다분히 감성적이고 직관적이다.  잔인하고 야만스럽다고 느끼는 감성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서 참형(斬刑) 을 떠올려보면 어럴까 싶다. 요즘 세상에서는 참수형을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사실은 발전적인 사회라면 흉악범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것 혹은 필요이상의 형벌의 불합리성에 대해  공감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형제도의 잔인성을 폭로한 영화 '데드맨 워킹'의 포스터     © PolyGram Filmed Entertainment Presents
흉악범죄를 예방하여 사회를 보호하고 범죄인에게는 응분의 댓가를 치르게 하기 위해 범죄인의 팔다리를 찢어 떼어내고 참수를 해서 잘라낸 범죄인의 머리를 번화가 한 복판에 높이 걸어둔다고 할때,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의 사형제도 존치론자들조차도 요즘 세상에 굳이 참형제도를 쓸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품으면서 참형제도를 잔인하며 야만스럽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흉악범죄를 예방하여 사회를 보호하고 범죄인에게 응분의 댓가를 주는 데에 참수를 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보는 문화,  흉악범죄를 예방하여 사회를 보호하고 범죄인에게 응분의 댓가를 주는 데에 위해 교수형을 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보는 문화,  흉악범죄를 예방하여 사회를 보호하고 범죄인에게 응분의 댓가를 주는 데에 종신형(무기형이 아닌)이 적당하다고 보는 문화.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사형제도를 존치시키는 문화와 사형제도를 폐지한 문화들 사이에서 각 문화는 서로 우열을 주장할 수 없는 것이라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선택의 문제에서  최소한 지금 우리 나라 사회에서는 참수형제도의 문화와 교수형제도의 문화 가운데에서의 선택결과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참수형은 잔인하고 야만스러우며 필요이상의 가혹한 형벌이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이 얼마나 많겠나 이말이다.
 
한편, 집단 내의 한 개인이 이성적인 사유를 거치지 않고 바로 '쪽팔린다'는 감성을 거쳐서 행동방식을 직관적으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유가 개인의 입장과 행동방식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유가 장기간에 걸쳐 축적되면서 그 사회의 분위기를 만들고 그 분위기 속에서 '쪽팔린다'는 직관적 감성이 탄생하는 것이다.
 
한 사회에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유의 궁극에 있는 세계관이 도그마적인 것이 아니라 진화를 인정하는 다원적인 것이라면 그 사회의 문화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유의 축적에 의해 바뀔 수 있다.  우리 사회가 다원적인 사회라면 참수형을 하지 않는 사형제도도 참수형을 수단으로 하는 사형제도 만큼이나 잔인하고 야만적이라고 느끼는 문화로 바뀔 가능성은   충분하다. 
 
사형제도 폐지와  (참혹하지 않은 방법으로 처형하는)사형제도 존치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논리적인 사유,  한 사회의 문화를 바꾸는 축적된 논리적 사유를 통한 사형제도 존폐론은 이제 시작되는 문제다. / 편집위원
자유... 백수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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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7/28 [08:2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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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수광부 2004/07/28 [11:33] 수정 | 삭제
  • "직관적 감성이 지배한 사형제도 존치론, 이성적 판단으로 전환해야" 라고 부제를 달아주셨는데 부제에 어폐가 있습니다. 편집회의 게시판에 글 참조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