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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그 논쟁의 경과 : 김규항과 최보은을 중심으로
 
편집부   기사입력  2002/06/12 [04:17]

본문은 지난 4월부터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페미니즘 논쟁'의 원문들을 모아놓은 것이며 일종의 자료집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료들을 모아놓은 것은 페미니즘 논쟁의 본질, 쟁점이 되는 사안, 그리고 필자들의 주장과 반론을 한데 모음으로써 현재 벌어지고 있는 '페미니즘 논쟁'에 이해를 돕고자 한 것입니다. 기사가 게재된 매체 중 일부는 회원제이거나 검색에 불편이 있어 이곳에 옮기게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글 게재 순서]
1. [김규항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그 페미니즘 (씨네21, 2002. 4. 24)
2. 김규항씨에게, mustard(한겨레 토론마당 발췌)
3. 김규항씨에게 - '그 페미니스트' 중 하나로부터, 이프(IF) 편집위원 이숙인
4. [신현준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그 페미니즘'과 '그 사회주의'(1) (씨네21, 2002. 5. 8)
5. [김규항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그놈들과 그년들 (씨네21, 2002. 5. 25)
6. [신현준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그 페미니즘'과 '그 사회주의'(2) (씨네21, 2002. 5. 29)
7. [특별기고]‘그 페미니스트’ 최보은의 김규항에 대한 반론-마지막까지 쓰고 싶지 않았던 글 (씨네21, 2002. 5. 27)



총괄 : 페미니즘 논쟁, 제2라운드 (김은형, '한겨레21' 2002. 5. 29)

{IMAGE1_LEFT}최근 영화전문지 <씨네21>의 인터넷 게시판을 달군 페미니즘 논쟁이 지상논쟁으로 옮겨가 불붙었다. 발단은 <씨네21> 4월23일치에 고정칼럼 필자인 김규항씨가 쓴 ‘그 페미니즘’. 김씨는 이 글에서 90년대 이후 한국의 이른바 주류 페미니즘이 “모든 사회적 억압의 출발점인 계급문제에 대해 무관심”하며 ‘그 페미니즘’을 구성하는 ‘중산층 인텔리 여성’들은 “성적 억압의 좀더 분명한 피해자인 하층계급 여성의 고통을 이해하지 않고 단지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사회적 억압인 성적 억압을 ‘남성 일반과의 문제’로 만드는 데 열중한다”고 비난했다. 게재 뒤 온라인상의 논쟁이 뜨거워지자 김씨는 같은 지면의 ‘그놈들과 그년들’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다시 확인하며 자신이 언급한 페미니즘 계간지 <이프>의 논조와 최근 최보은씨의 박근혜씨 지지선언이 ‘자유주의적 도발’이 아닌 ‘급진주의의 극단적 통속화’라고 못을 박았다.

“왜 여성운동에게만 매운가”

이에 대해 당사자인 <프리미어> 편집장 최보은씨와 <이프> 편집위원 이숙인씨가 반박의 포문을 열어 논쟁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김규항씨의 글에서 ‘도발 전문 페미니스트’라는 다소 무례한 공격을 받은 최보은씨는 5월27일 <씨네21>의 ‘마지막까지 쓰고 싶지 않았던 글’에서 ‘무늬만 중산층 여성’인 자신의 여성으로서의 고된 삶과 두 번째 결혼 실패담을 ‘커밍아웃’하면서 김씨가 제기한 ‘중산층 인텔리 부르주아 여성’론이 근거가 없다고 공박했다. 최씨는 ‘(주류 페미니즘은) 여성해방을 인간해방과 별개로 진행한다’는 김씨의 주장이 구체적인 ‘팩트’에 바탕을 두지 않았다고 비판하면서 최근 여성계에서 논란이 되는 박근혜 연대론에 대한 입장을 부연했다. 그는 “지자체 선거와 대선을 쌍으로 맞은 정치의 계절에 여성정치가 아예 의제가 되지 못하는 현실을 주시하다가,(…) ‘박근혜를 여성의 눈으로 보자’, ‘여성이 여성을 찍자’는 얘기를 한 거’라면서 자신의 주장이 페미니스트들에게 누가 된다면 “바로 그분들에게서 야단맞고 싶다”는 심경을 밝혔다.

<이프>의 이숙인씨도 월간 <말> 6월호에서 김규항씨의 글에 대한 반론을 기고했다. 그는 “페미니스트들이 남성이라는 대자적 존재를 1차 공격대상으로 삼는 것은 사실이며, 때론 계급의 이익을 공동체 이익보다 우선시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는 어떤 사회운동에게도 있는 딜레마”라면서 김씨의 눈이 “왜 여성운동에서만 유독 맵고 독하게 작용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이씨는 ‘주류 페미니스트’들의 계급적 한계에 일정 부분 동의하면서도 과연 “김규항씨가 일컫는 진보주의 남성들의 속성은 과연 어떠한지를 돌아보라”고 권한다. 그는 진보운동 현장에 있다가 권력의 우산 아래로 몰려든 일군의 남성과 이른바 진보적 문화판에서 가는 곳마다 패거리로 엮이는 연줄과 서열문화를 예로 들어 김씨의 글에 페미니즘 대신 진보주의자 남성을 대입했을 경우 드러나는 그의 글의 ‘억지’와 ‘궤변’을 반박했다. 또한 이씨는 “개인적으로 박근혜씨를 지지하지 않지만 그녀에 대한 여성계 내부의 논의가 무르익을 때는 되었다”고 박근혜 연대론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노력하는 인종차별주의자? )

<말>에는 남성의 목소리로 김규항씨의 ‘마초성’을 비판한 흥미로운 글도 실렸다. ‘남성깨기’라는 칼럼에서 권혁범씨는 김씨의 ‘노력하는 마초’라는 자기 규정은 ‘인종평등을 위해 노력하는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권씨는 “여성주의에게 감당할 수 없는 절대적 보편성을 요구하는 것은 이미 그것에 대한 무지 혹은 근원적 거부를 전제하는 것”이라면서 “왜 그런 요구를 다른 운동과 이념에게는 못하고 여성주의에게 했을까?”라고 김씨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김규항씨가 자신의 세트 안으로 넘어온 이 공을 어떻게 쳐낼지 궁금하다.



1. [김규항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그 페미니즘 (씨네21, 2002. 4. 24)

페미니스트들에겐 유감스런 얘기겠지만, 내 주변의 진보주의자 남성들은 하나같이 주류 페미니즘(정확하게, 90년대 이후 한국의 주류 페미니즘)을 마땅치 않아 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정치적으로 진보적일 뿐 여성이 처한 성적 억압엔 무감각한 형편없는 남근주의자들인 건 아니다. 그들은 적어도 ‘여성100인위원회’의 활동을 원칙적으로 지지하고 <밥꽃양>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을 분명한 사회적 억압의 하나로 파악하는 남성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른바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과 싸운다는 페미니즘을 하나같이 마땅치 않아 한다.
나 역시 그들 가운데 하나다. ‘노력하는 마초’인 나는 주류 페미니즘을 몹시 마땅치 않아 한다. 내가 그 페미니즘을 마땅치 않아 하는 이유는 그들의 ‘사회의식’이 분명한 사회적 억압의 하나에서 출발하면서도, 모든 건강한 사회의식이 갖는 인간해방운동의 보편성을 거스르기 때문이다. 사회의식이란, 단지 제 사회적 억압을 사회에 호소하는 게 아니라(만일 그런 게 사회의식이라면 ‘서초구민들’이나 ‘의사들’의 빌어먹을 호소도 사회의식일 테니), 제 사회적 억압을 통해 다른 이의 사회적 억압을 깨닫고, 제 억압을 모든 사회적 억압의 지평에서 조망하고 겸손히 연대하는 보편적 인간해방운동의 상태를 말한다.

주류 페미니즘은 다른 이의 사회적 억압에 정말이지 무관심하다. 이를테면 주류 페미니즘은 모든 사회적 억압의 출발점인 계급문제에 대해 정말이지 무관심하다. 그들은 아마도 여성이라는 계급이 일반적인 의미의 계급보다 더 근본적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과연 그런가. 페미니즘을 둘러싼 해묵고 아둔한 논쟁이기도 하지만, 여성의 억압이 근본적으로 계급에서 오는가 성에서 오는가는, ‘중산층 혹은 상류계급 여성이 하층계급 남성에게서 억압받을 가능성’을 살펴보거나 ‘중산층 혹은 상류계급 여성의 억압과 하층계급 여성의 억압을 비교’해봄으로써 간단히 알 수 있다.

주류 페미니즘이 그런 저급한 사회의식에 머무는 실제 이유는 그 페미니즘의 주인공들이 작가, 언론인, 교수(강사) 따위 ‘중산층 인텔리 여성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적 억압의 보다 분명한 피해자인 하층계급 여성의 고통을 이해할 만한 처지에 있지 않으며, 그 고통을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단지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사회적 억압인 성적 억압을 ‘남성 일반과의 문제’로 만드는 데 열중한다. 건강한 싸움보다 나른한 카타르시스에 익숙한 그들은 그들이 증오해마지않는 남근주의를 넘어서기는커녕 흉내내며(이를테면, 한 대중적인 페미니스트 잡지는 가수 박진영을 ‘먹고 싶은 남자’라 지칭한다), 심지어 투항한다(이를테면, 한 도발 전문 페미니스트는 정치적 남성인 생리적 여성을 대통령으로 밀자고 주장한다).

나는 성적 억압의 실체인 가부장제가 전적으로 자본주의에 의한 것이라 주장하는 덜떨어진 맑시스트가 아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자본주의가 가부장제를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가부장제의 기본 단위인 가족은,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기본 단위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족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좋은 여성’의 실제 임무는 오늘 노동력(남편)을 뒷바라지하고 다음 세대의 노동력(자식)을 양육하는 것이다. 자본은 남성에겐 노동의 일부라도 지불하지만 그들을 노동할 수 있게 뒷바라지하거나 양육하는 여성에겐 한푼도 지불하지 않는다. 자본의 입장에서 ‘좋은 여성’이란 얼마나 유익한가.

봉건사회의 관습인 듯한 가부장제가 근대사회(자본주의사회)에서 끈질기게 집행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 집행은 제도교육, 미디어, 도덕 따위 이런저런 자본의 선전장치를 통해 마치 공기를 마시듯 뱃속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가부장제와 싸운다는 주류 페미니즘은 실은 그 선전장치의 성실한 일부다. 유한하기 짝이 없는 그들은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사회적 억압을 일반화하여 카타르시스하는 데 열중함으로써, 모든 여성이 제 억압을 통해 보편적 인간해방운동에 이르는 정당하고 필연적인 기회와 가능성을 성실하게 차단한다. 그 페미니즘은 그저 남근주의의 이면이다.



2. 김규항씨에게, mustard(한겨레 토론마당 발췌)

씨네21 최근호 김규항씨 글을 잘 읽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인터넷 한겨레에서는 김선주 논설의원의 글과 김규항씨의 글을 묶어 김선주 vs. 김규항이라는 제목으로 <오늘의 메일>에 올렸습니다. 이로 인해, 네티즌들에게 있어서는, 이 두 시각이 한겨레패밀리라는 집단에서 보이는 두가지 상반된 의견이구나, 라고 생각하게 할 여지가 생겼습니다.

김규항씨의 글은 이만한 대접을 받아야할만큼 제대로 된 글이 아닙니다. 그가 쓰는 대부분의 글은 명료하게 씌여져 있지 않으면서 진보적인 척 대중을 자극할 뿐입니다. 김규항씨가 이제까지 쓴 글에 전부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으나, 이 글에서는 이번 글 <그 페미니즘>에 대해서만 말하겠습니다.

제일 먼저 제가 궁금한 것은 그가 쓰고 있는 주류 페미니즘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주류 페미니즘이라는 것이 있는가? 주류가 있다는 것은 비주류가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비주류 페미니즘은 있는가? 제가 보기에 주류 페미니즘이란 여자가 자신의 권익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못마땅한 사람들이, 말하기 쉽게 뭉쳐 부른 단어입니다. 대한민국에 페미니즘은 주류가 없고 비주류가 없습니다. 페미니즘 자체가 비주류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마치 어떤 큰 권한이나 가지고 있는 양 착각을 하게 만드는 단어가 주류 페미니즘입니다. 그는 '주류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로 한국 여성주의 운동을 값싸게 팔고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제가 이해하지 못할 점은 페미니즘운동이 '억압을 모든 사회적 억압의 지평에서 조망하고 겸손히 연대하는 보편적 인간해방운동'이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입니다. '지평', '조망', '겸손', '연대', '보편', '인간', '해방'. 좋은 단어는 많이 적어놓았으나, 이 문장이 뭘 가리키는 지는 흐릿합니다. 쉽게 말해 "자기만 차별대우 받네, 하고 이야기해서 이득을 챙길것이 아니라 남들이 어떤 차별대우를 받는지를 보고 같이 고칠 생각을 해야된다"는 뜻일 것입니다.

김씨는 여기서 서초구민들과 의사들의 '빌어먹을 호소'를 한국 페미니즘 운동과 비교했습니다. 서초구민들이나 의사의 주장과 한국 페미니즘 운동이 다른 점은 무엇인가. 지금 한국 페미니즘 운동은 여자에게 동등한 인간대우를 하지 않아서 남자도 힘들고 여자도 힘드니 고쳐보자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김규항씨가 어렵게 이야기하는 '보편적 인간해방운동'입니다. 이것은 자기 수입이 줄어들까봐 항의하는 님비주의와 전혀 다릅니다.

김규항씨는 또 이른바 "'주류 페미니즘'이 다른 이의 사회적 억압에 무관심하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기도 '해묵고 아둔한 논쟁'이라고 말하면서 "여성의 억압이 근본적으로 계급에서 성에서 오는가"라는 질문을 꺼내, "계급에서 온다"라고 답합니다.

김규항씨는 첫째, "여성의 억압이 근본적으로 계급에서 오는가 성에서 오는가는, ‘중산층 혹은 상류계급 여성이 하층계급 남성에게서 억압받을 가능성’"을 보면 이 질문에 답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럼 간단한 예로 중학교 선생님을 하는 여성이 하층계급 남성에게 강간당했다고 합시다. 이 여성은 법정에서 자기가 강간을 즐기지 않았음을, 적극적으로 반항했음을 형사앞에서 증명하고 법정에서 증언해야 합니다. 지금 이 여성이 받는 억압은 구조적으로는 남성중심적인 법제체계 때문에 옵니다. 그러나 결국 이 구조는 하층계급 남성이든, 상층계급 남성이든 할 것 없이 모든 남성으로부터 여성이 언제든지 억압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그 다음으로 김규항씨는, 중산층 혹은 상류계급 여성의 억압과 하층계급 여성의 억압을 비교’해보면 위 질문에 대한 해답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비겁한 예입니다. 여성은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부유하면 부유한 대로 억압받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나름나름으로 달리 억압받으면서 또 공통적으로 억압받습니다. 나름나름으로 억압받는 것이 다르다고 공통적인 억압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대한민국에 사는 여성은 그가 국회의원이거나, 가난한 여직원이거나 평등하게 불평등합니다. 그들은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2등시민입니다. 간단한 예로 한국에서는 어떤 여성이거나 태어나는 즉시 아버지의 권한에 복속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딸이 남편의 권위아래 들어가기까지, 딸의 순결이나 평판은 아버지의 책임이자 권한입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이름 아래 기록되고 (호주제) 아버지의 성을 물려받습니다. 그들은 더 많이 노력해도 사회제도를 통해 더 많이 좌절합니다. 이에 대한 증거는 대한민국 여성 대졸자 비율이 세계 어느 곳과 비교해도 높은 편인데도, 여성 취업률은 세계 최하수준이라는 점으로 가름하겠습니다.

흑인운동을 보건데, 흑인운동이 처음부터 '지평', '조망', '겸손', '연대', '보편', '인간', '해방'을 찾으며 나아갔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일단 나에게도 버젓한 직장을 달라, 나에게도 경제권을 달라, 나에게 투표권(정치권)을 달라, 내가 더 교육받을 수 있게끔 학교에 쿼터를 만들어달라고 말하면서 전진했습니다. 그들이 백인 하층노동자들과 연대를 꿈꾸면서, 전세계 인간이 '계급'으로부터 해방될 날을 위해서 운동을 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의 주장은 쉽게 말하면 무엇인가. "가난한 여자들도 있는데, 잘사는 여자들이 뭐 그리 불만이 많으냐. 니들이 가난한 여자들에게 관심있냐?"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김씨의 주장은 가난한 여성들을 인질로 여성운동을 공격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기서 김씨는 여자들을 '하층계급 여성'(가난한 여자)과 '상류계급 여성'(부유한 여성)으로 나눔으로 분열을 조장합니다.

김규항씨는 또 한가지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김씨는 "그 페미니즘의 주인공들이 작가, 언론인, 교수(강사) 따위 ‘중산층 인텔리 여성들'"이고 이들이 '건강한 싸움보다 나른한 카타르시스에 익숙'하다고 합니다. 김씨는 자기 말마따나 '마초'라서 모르는 모양인데, 한국사회에서 잘먹고 잘살려면 여성운동 근처도 가지 않는 게 현명합니다. 그런 근처에 가면 내 앞으로 올 떡도 안떨어집니다. 시집가기도 힘들고 직장에서도 껄끄럽습니다. 어디다 글을 쓰지도 말고 무슨 말을 하지도 말고, 가만히 있다가 여성운동가들이 뭔가 성과를 내놓으면 그 성과에 감사하는 것이 가장 편한 길입니다. 여성운동은 '나른한 카타르시스'를 주는 일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하는 고단한 일입니다. 아무 대답이 없는 벽에 계속 계란을 던지는 일입니다.

김씨가 말하는 남근주의가 정확히 어떤 개념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는 "가수 박진영을 먹고싶은 남자라 지칭"하는 것이 남근주의라니 그런가 봅니다. 한 페미니스트 잡지에서 그런 기사를 실었다 하는데 기사를 읽지 않아 그 기사가 어떤 것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성의 자연스런 성욕을 남근주의라고 하는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봐주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또한 한 최보은 편집장의 박근혜씨 관련 주장을 '도발 전문 페미니스트'의 '투항'이라고 말합니다. 여자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자는 의도로 꺼낸 주제가 '투항'인가. 진짜 투항은 아무런 주제도 꺼내지 말고, 남자들이 독점하는 정치판을 구경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판단할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김규항씨는 가부장제에 사는 여성이 얼마나 불쌍한가를 얼핏 보여주면서, 자신이 이른바 '주류 페미니즘'을 싫어하는 마초이되 여성이 불평등한 대접을 받는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비춥니다. 뺨때리고 엿먹이는 짓입니다.

한마디로 이 글은 진보를 가장한 지적 허세부리는 글입니다. 김규항씨의 글은 틀린 문장과 어설픈 구성을 가진, 자극적인 한두 문장을 이용해 대중을 선동하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이런 글이 다시 한겨레 지면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글을 맺습니다



3. 김규항씨에게 - '그 페미니스트' 중 하나로부터, 이프(IF) 편집위원 이숙인

안녕하세요? 김규항씨
글로 이렇게 처음 인사드립니다.

저 같은 부류의 여자를 참 싫어하시는군요. 아니 정말 미워하고 지독히도 경멸하시는군요. 아랫분이 '비판이 왜 안되느냐'고 하셨는데 비판이란 뜻이 분명 비난하고는 다른 것이겠죠? 비판을 통한 발전과 대화의 시도가 아닌 평소 김규항씨의 글에선 좀체 찾아볼 수 없었던 극단적인 어휘 및 논조가 다소 놀라웠습니다. . . 좀 과장해서 말하면 깊은 심적 자상으로 인해 아직도 지혈이 잘 되지 않고있는 상태라고나 할까요 ^^! ( 아, 극단이 아니라 명쾌였다구요? 그럼 실례했구요. . .)

아무려나, '내 주변의 진보적 남성들은 . . . 하나같이 그 페미니즘을 마땅치 않아한다' '나른한 카타르시스' '저급한 사회의식' '선전 장치의 성실한 일부' '그저 남근주의의 이면' 여기까지 이르러 이 모든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게 되면 그 주류 페미니스트들은 사실 혀 깨물고 죽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어쩌죠? 전 사실 김규항씨가 예로 들은 페미니즘 잡지의 필진이자 동인처럼 활동을 하는 사람인데 제가 페미니스트 내에서 그동안 주류였는지, 그 잡지가 '대중적인' 잡지였는지 이번에 비로소 알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저 혀 깨물고 죽을까요, 말까요?

음. . . , 제가 분명히 중산층 인텔리인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대학을 나왔고 말씀하신 대로 작가라는 문단 말석의 직함을 지니고 있고 그런데 딱 한번 어느 문단 모임에 간 이후 그 어떤 문단 모임에도 얼굴을 내민 적이 없고 오라는 데도 없는. . . 그동안 글을 좀 제대로 써보려고 했는데 월급을 타야 생활이 해결되는 싱글 맘의 처지라 늘 시간에 쫓기고 일에 쫓겨야 했죠. 책이나 원고 수입은 미미하기 짝이 없구요. 김규항씨 주변에 계신 진보주의 남성들처럼 인세도 척척 들어오는 게 없고 그 대중적 페미니즘 잡지에 쓴 글의 대부분은 잡지 처지를 고려해 고료 받지 않고 쓰는 입장이었구요. 경기도의 월세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요즘은 실업수당으로 4개월의 유예 기간을 얻었으나 그 기간 중 다급히 일을 구해야 아들과 함께 어찌어찌 살아갈 수 있는 형편입니다. 아무리 목에 거미줄을 치는 한이 있어도 마음에 없는 '제도적 매춘 - 조건보고 하는 재혼'은 하지 않으려 밤잠을 줄이며 아르바이트를 하다 심한 천식이 발병, 치료를 받는 형편이 되기도 했죠. 아직도 전 천식 환자입니다.

전 잠시 교직에 있었는데, 어느 지방에서 말입니다. 열심히 젊은 교사들과 세미나도 하고 전교조 후원회도 조직해서 뛰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곳의 교사들이 이러더군요. 어떤 사안을 두고 한번 힘을 합쳐 정면 돌파를 해보자던 국면 앞에서 대부분 남자였던 그들이 아주 심각하고 진지한 얼굴로 ' 참, 선생님이 남자 선배이면 금방 일이 잘 풀릴 텐데. . .' 하나 둘 빠져 나가던 그 모임의 지방 출신 후배 교사들에서 저는 늘 따귀를 맞는 기분이 들었었지요. '선생님이 남자 선생님이셨으면 우리가 쉽게 뭉쳐 학교가 한번 뒤집어졌을 거예요. . .' 어떤 학생회 간부아이의 말도 생생합니다.

제가 다닌 대학의 강사님 한 분은 시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이불 호청까지 새하얗게 삶고 두드려 바쳐야 했답니다. 미국에선 가사 일을 함께 잘 분담하던 남편 교수는 한국에 오자마자 그 일로 크게 다투다 커텐을 다 찢고 부인의 목을 졸라 강의 때 혈흔이 남아있었구요. 병원에 가서 심리 치료를 받았던 강사님은 그쯤으로 이혼까지 하겠냐며 아이들과 집안 일에 치여 논문 하나 발표 못하고 살아가셨죠. 남편 교수님은 같은 학교 같은 과 출신이었는데 ( 미국 대학에서 남으라던 사람은 도리어 부인 쪽이었는데 ) 금새 이 곳 유수한 대학에 자리를 잡았구요. . . 그 여자 강사님은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여기저기 지방으로 보따리 장사하다 유명을 달리 했죠. 큰 철강 코일이 고속도로에서 티코를 덮쳤으니까요. . .

노동, 환경, 인종, 여성의 문제는 때로 하나의 커뮤니티를 뛰넘는 사안이 분명 됩니다. 그렇다고 제가 계급 문제, 통일 문제, 이념 문제에 등한하게 살아왔나, 아니 그처럼 상식에도 못 미치는 주장을 하여왔나 곰곰 돌아보면 그렇게 저급한 사회의식으로 살아왔단 생각은 분명 들지 않습니다. 교육 운동에 가까운 활동을 나름대로 하다 학교에서 자발적 해직을 당했고, 늘 재활용 옷함을 뒤져 옷을 걸쳐입으며 선후배들과 한살림 회원 가입도 했고 가까운 곳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 교회에서 작은 일을 하고자 신청을 한 상태입니다. 이쯤이면 너무 장황한 고해성사였나요?

김규항씨, 저는 원칙대로 선생을 하다하다 죽어도 변하지 않는 학교를 보고 마지막에 완전히 꼭지가 돌았던 경험을 했습니다. 그때 전 이런 심정이 되었었지요, ' 더이상 아무 것도 가르칠 수 없다' '학교란 학교는 모두 폭파시켜 버려야 한다. . .' 저는 결코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 정치적 남성 여후보를 지지하자는 어떤 이의 심정이 제겐 아프게 다가옵니다.

제 경우, 누군들 친오빠를 쫓기게 하고 친구를 미치게 하고 많은 젊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그 독재자의 딸을 뽑고 싶겠습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오죽하면 그이가 그랬겠느냐 하는 것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지 않냐는 것입니다, 제 말은. . . 너무 변하지 않으니까요. 정치고 교육이고 환경이고 이 땅에 믿을 '놈'들이 너무 없어서 우리 꼭지가 돈 '년'들 속이 늘 너무나 터지기 일보직전이니까 말입니다.

후, 그런데 이 사안은 저 역시 계속 주장하기가 좀 그렇습니다. 저는 그 여성 후보를 뽑아주자는 글을 읽고 한동안 여성주의고 뭐고 다 때려쳤으면 하는 심정이 욱, 하고 들었던 사람이었음을 솔직히 고백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 . 이렇듯 님이 언급한 '그 페미니즘'의 스펙트럼도 제법 여러가지랍니다. 그러나 그간 '그 페미니즘'쪽에 논쟁과 토론의 장이 부재하고 제대로 된 논의의 심도가 매우 미흡하고 약했던 점은 충분히 인정합니다.

정정할 게 하나 있습니다. '먹고 싶은 남자'가 아니라 '맛있는 남자'입니다 ㅎㅎㅎ . . . 머 그 대단히 대중적인 잡지의 모토가 이렇습니다. 웃자, 놀자, 뒤집자. 그러니까 처음에 그 기획의 의도는 남자들이 잘 보는 주류 잡지나, 그렇고 그런 신문들에서 여성을 대상화한 표현을 자주 쓰니까 우리가 하면 어떠냐? 듣고 보니 늬들 기분이 어떻대? 하며 시작한 선정적이고 도발적인 어휘 선택이었죠.
이거 점잖은 진짜 주류 페미니스트들 겁나게 싫어합니다. 그런데 친구 하나가 어느 엄숙한 여성진영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저희 잡지를 보고 그동안 몰랐던 성적 스펙트럼의 다양함과 여성의 성 결정권, 능동적 자기 방어와 의사 표현 등을 익혔다며 고마워 한 일도 있습니다. 비틀고 꼬집는 은유와, 남근주의의 답습을 구별하시지 못한다면 그동안 김규항씨에 대한 저의 일방적인 흠모가 다시 한번 부끄러워 질 뿐입니다.

그 잡지에는 물론 호사가에, 명망가도 있고 잘 나가는 여성 작가들도 글을 가끔 쓰고 (정말 잘 나가는 여성 작가들은 그 페미니즘 잡지에 절대 글 안씁니다, 왜인지는 잘 미루어 짐작하시기 바랍니다) 멋진 커리어 우먼도, 나중에 검증해 보니 때로 부도덕하고 개념없는 여류 명사도 출연합니다. 무엇보다 일단 지면을 얻기 어려운 여자들이 긴 글을 쓸 수 있는, 또 사회를 위해 뭔가 하는 여자들이 화제의 중심에 놓일 수 있는, 정말 얼마 안 되는 매체랍니다. 제겐 그것도 이프가 하는 참 중요한 역할이라고 여겨집니다.

글을 청탁할 때는 거의 필자가 쓰고 싶은 대로 주제만 맞게, 마음껏 그동안 눈치보며 못하던 말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세요, 이렇게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잡지에서 우리가 중히 여기는 것은 생생한 여자들의 날것 그대로 웃음과 울음과 외침과 신음입니다. 도발만도, 상스러움만도, 욕설만도, 더욱이 일방적인 남성 혐오도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글이 자꾸 그렇게만 읽힙니다. 군데군데 눈물도 땀도 피냄새도 있는데 나른한 카타르시스, 아니 오르가즘? 이라니. . . 좀 어이가 없었습니다. 혹시 이프에서 하는 안티미스코리아는 아시는지요. 올해 이 대회에 나오려고 어느 장애우 부부는 일년 동안 설레는 마음으로 이 아름다운 오월을 기다렸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분들인데 이번 무대에서 지루박을 출 겁니다. . . 김규항씨, 이것도 결국 '나른한 카타르시스'일까요, 그분들에게? 그걸 준비하는 이프 식구들 지금 뼈가 노골노골합니다. 해서 남는 것도 거의 없습니다, 매년.

음, 그러고 보니 김규항씨, 그동안 이프를 한권이라도 제대로 읽어보시긴 한 겁니까? 책 보기조차 싫으시다면 우선 저랑이라도 좀 만나서 사귀어 보실래여? 사람 서로 이해하고 아는 덴 사귀는 것 만큼 좋은 게 없잖아요, 흐흐 ^^!

김규항씨, 사실 저희의 꿈은 아주 소박합니다. 여자들이 하나라도 읽어서 통쾌하게 웃을 수 있고, 멍석 깔아서 실컷 놀라하고, 가부장제만이 아닌 지역, 계급, 인종, 장애를 넘어 사회 전반의 진보(에구구 이런 단어 제가 감히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서두) 를 앞당길 수 있고, 그 방식을 전복과 도발과 놀이로 펼쳐보자는 단순한 꿈입니다. 너무 단순해서 무식했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서두. . . 이것만 봐도 저희가 얼마나 못 배우고 서럽고 짧은 비주류인지 짐작 가시지 않습니까? 우리도 가방끈이란 게 있다면 그것 좀 기- 인 기자들 많이 써서 논객들 제발 많이 키우고 싶습니다.

아카데믹한 이론은 여성과 사회나 페미니즘 연구에서, 운동과 현장 활동은 각종 단체에서, 뉴스와 정론은 우먼 타임즈나 여성 신문에서, 그밖에도 언니네와 같은 훌륭한 웹진이라든지 또하나의 문화 같은 격조있는 출판사에서 이런저런 역할을 성실히, 때로 눈물콧물 피땀 흘리며 하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페미니즘에도 권력과 주류가 있다면 그 페미니즘이라 싸잡아 매도하신 과녁은 분명 틀렸음을 말씀드립니다. 차라리 톡 까놓고 최보은과 이프가 난 너무너무 싫어, 그렇게 밝히시고 김규항씨가 분명 잘 알게 되시면 존경과 감동에 전율하실 나머지 페미니스트 진영에는 정중히 사과하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아무리 삐급이라도 스스로 좌파를 모독하지 않는 일입니다. 전 박근혜도 무지 싫어하고 남자들 따라 똑같이 카운터 펀치 날리는 몇 가지 이프 경향도 무지 싫어하지만 그냥 이프에서 열심히 원고 쓰고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도 돕고 살아가야겠습니다. ( 5년 전 저 이혼하고, 잘 나가는 주류 친구들 다 저랑 절연했을 때, 이프 식구들만은 유일하게 저를 따뜻히 먹여주고 술 사주고 재워줬거든요. 그런 거 배신 못하는 것도 조폭 논리라면 할말 없지만서두 )

그리고 진짜 사실 이프에 제가 계속 남아있을 이유는 말임다, 음, 이제사 밝히는 건데. . . 지가 살면서 주류가 되어본 게 이번이 첨이걸랑요. . .진짜루. . . 후후후

그럼 이만
긴 글 읽어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이프 편집위원 이숙인 드림

<참고> 이 글은 이프의 공식 의견이 아님을, 어디까지나 저 개인의 의견 표명임을 명확히 밝힙니다.



4. [신현준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그 페미니즘'과 '그 사회주의'(1) (씨네21, 2002. 5. 8)

두 주 전 김규항이 이 지면에 '그 페미니즘'이라고 표현한 페미니즘은 나도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는 나의 취향에 영 맞지 않아서 다른 세계의 일 같고 그래서 별 '관심'이 없다. 8년째 육아와 가사를 분담해 오고 있는 나같은 사람에게조차 설득력이 없다면, 그 페미니즘은 무언가 공허한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래서 '욱'할 때면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여자들이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한 칭얼거림 아냐?"라고 비아냥거릴 때도 있다. 나보다 잘 먹고 잘 살 것 같은 사람들이 하는 운동을 내가 지지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제까지는 이런 생각을 공공연하게 피력하지는 않았다. 이유는?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일'을 겪어보지 않고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즉, 내가 가진 것들 가운데 '한국 여자 가운데 최고의 지위에 오른 사람이라도 도저히 갖지 못한 것'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상의 대화에서는 소신을 피력하더라도 공적 지면에서는 자제한다는 '이중성'이 그 페미니즘에 대한 나의 알량한 '애티튜드'였다.

두번째 이유는 페미니즘 비판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가 달라질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신현준'이 하는 페미니즘 비판은 특정한 코드로 말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필자의 정체성은 '386 세대 운동권 출신 아저씨'라는 딱지를 달게 될 것이고 그 세대 특유의 남성 쇼비니즘의 폐해가 도처에서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므로 하나 마나일 게 뻔하기 때문이다. 나의 의도와 무관한 효과를 드러낼 주장을 하고 싶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나 같은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 '페미니즘 비판'을 한다면 의도와는 무관하게 그 효과는 선정주의적일 수밖에 없다. 만약 이런저런 비판이 올 것을 예상하지 않고 글을 쓴다면 순진하거나 아둔한 사람일 것이다. 게시판을 시끄럽게 달구고 사람들의 입소문이 나게 하는 것은 선정주의의 ABC에 속하고 편집부는 만면에 미소를 띄우고 덩실덩실 춤추고 싶을 것이다. 국가보안법만 적절히 피해갈 수 있다면, 그 내용이 사회주의 아니라 사회주의 할애비라도 상관없다.

[씨네 21]은 상업적 잡지다. 이건 [씨네 21]이 '돈에 환장해서 별 짓 다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시장의 냉정한 평가에 따라 작동한다'는 의미다. 상업적 잡지라는 형식은 '아무 거나 써도 된다'는 이 지면의 불문율마저 이런저런 방식으로 제약한다. '사회주의'와 '진보'나 '좌파'를 논할 수 있고, 심지어 그것을 선동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의 최종적 의미는 필자 개인이 옹호하는 사상에 의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배급망을 통해 글을 접하는 다양한 독자들이 그것을 어떻게 수용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대중매체의 속성은 이런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이 지면에 피력된 견해가 독자에게 투명하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언젠가 한번 써먹은 말이지만 소비자본주의의 명제는 "나는 구매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는 [씨네 21]의 독자의 철학일 것이다. '문화적으로 세련되면 정치적으로도 올바를 수 있다'는 환상 비슷한 것 말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구매할 상품을 공급하는 '그 사회주의'의 철학은 "나는 주장한다. 고로 나는 팔린다"일까. 그렇든 아니든 이런 말은 '동업자 정신 위반'이자, 결국은 '제 얼굴에 침 뱉기'일까. 좀 더 생각해 보고 계속 써야겠다. (다음 번에 계속됩니다).



5. [김규항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그놈들과 그년들 (씨네21, 2002. 5. 25)

좌파 남성과 페미니스트 여성 사이의 긴장은 종종 숙명적인 것처럼 여겨진다. 좌파 남성들은 페미니스트 여성들을 ‘부르주아’라 밥맛 없어 하고 페미니스트 여성들은 좌파 남성들을 ‘가부장 좌파’라 밥맛 없어 한다. 좌파남성 가운데 (여성해방 없는 인간해방을 좇는) '가부장 좌파'가 실재하고 페미니스트 여성 가운데 (인간해방 없는 여성해방을 좇는) ‘부르주아’가 실재한다. 그러나 모든 좌파남성이 ‘가부장 좌파’거나 모든 페미니스트 여성이 ‘부르주아’는 아니다.

<그 페미니즘>을 쓰면서 “독자의 2할은 잃겠군” 했다. 좌파 남성과 페미니스트 여성 사이의 긴장이 숙명적인 것처럼 여겨지는 상태에서, ‘좌파 남성 최초의 페미니즘 비판’은 자칫 '페미니즘 일반에 대한 가부장 좌파의 테러'로 오독 되기 십상일 것이기 때문이다. 쌓이는 이메일들과 이런저런 풍문들은 그런 내 예상을 크게 비껴가지 않았다. 오독은 대개 ‘90년대 이후 한국 주류 페미니즘’이라는 말에서 비롯했다. 딱하게도, ‘주류’라는 말을 ‘진정한’이나 ‘중요한’ 쯤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았다. 나는 그 말을 말 그대로 ‘큰 영향력’의 뜻으로 썼고 거기에 ‘90년대 이후 한국’이라는 시공간적 한정을 붙였다.

오독에 대해 말하는 나는 여전히 ‘90년대 이후 한국 주류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대체할 말을 알지 못한다. ‘그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의 특정한 유파라기보다는 90년대 이후 한국 페미니즘에 나타난 모종의 강력하고 전반적인 경향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 페미니즘’은 90년대 이후 일군의 중산층 인텔리 여성들에 의해 수입된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여성해방을 인간해방과 별개로 진행한다’는 맹랑한 강령에, (한국식 한풀이에서 마초 흉내에 이르는) 이런저런 통속적 정서들을 결합한 그런 것이다. 이를테면 내가 언급했던 <이프>나 최보은씨의 에피소드는 흔히 말하는 ‘자유주의적 도발’이 아닌 ‘급진주의의 극단적 통속화’라 할 만하다.

씁쓸한 건, 오독이 텍스트에서 뿐 아니라 한국 페미니즘의 두리뭉실한 상태에서도 일어난다는 사실 때문이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즘의 일부(지만 주류라 비쳐지는) 천박한 경향에 분명한 경멸을 표함으로써 페미니즘의 건전한 부분과 떼내어 보이려는 내 시도를 ‘남 얘기를 내 얘기로’ 알아먹었다. 되새기는 바, 한국에서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한 건 90년대 이후지만 한국 여성운동/페미니즘의 역사는 이미 한 세기에 가까운 면면한 것이다. 그들은 출발부터 여성해방과 인간해방을 함께 고민하는 건전한 전통을 가져왔으며, 여성평우회, 여성단체연합, 여성노동자회, 여성민우회 등을 조직한 80년대에는 ‘여성의 문제’를 양보하다시피 하면서까지 사회진보에 몰두했다.

90년대 들어 그들은 ‘변화한 사회 상황에 발맞추어 좀더 여성의 문제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여성운동의 그런 노선변화를 ‘우경화’라 비판할 수 있는가는 좀더 진지하게 고민해볼 문제지만(다른 건 접고라도 80년대에 그들이 보인 양보는 매우 특별한 것이기에), 그런 노선변화가 결국 여성해방과 인간해방을 함께 고민하는 한국 여성운동의 건전한 전통과 90년대 이후 등장한 맹랑한 페미니즘이 갖는 차이를 두리뭉실하게 만들어온 건 사실이다. 바야흐로 한국 여성운동/페미니즘의 면면한 역사는 ‘내가 누구인지 나도 모르는’ 몽환적 상태에 접어들고 있다.

좌파 남성과 페미니스트 여성 사이의 ‘숙명적인 긴장’ 역시 오늘 한국 페미니즘의 그런 상태에서 비롯된다. 여성에 대한 억압이 존재하고 인간에 대한 억압이 분명히 존재하는 세상에서 그런 긴장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다. ‘나만의 해방’을 믿는 모든 운동은 어떤 절실한 사정을 담더라도 그저 피억압자의 추악한 복수극에 불과하다. 좌파 남성들이 그들 가운데 실재하는 ‘가부장 좌파들’을 솎아내고 페미니스트 여성들이 그들 가운데 실재하는 ‘부르주아들’을 솎아낼 때, 비로소 ‘숙명적인 긴장’은 ‘숙명적인 우애’로 바뀔 것이다. 그놈들과 그년들을 솎아내지 않고는, 좌파에게도 페미니스트에게도 미래는 없다.(끝)



6. [신현준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그 페미니즘'과 '그 사회주의'(2) (씨네21, 2002. 5. 29)

오늘날 사회주의와 페미니즘은 문화적으로 ‘쿨’할까. 이 질문은 최근 이 지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에 대한 나의 시각이다. 즉, 어떤 사상이 문화적으로 멋지고 세련되었을까라는 것이 나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이다. 달리 말해 사회주의든, 페미니즘이든, 혹은 다른 ‘주의’나 ‘이즘’이든 거대 담론에 대한 일반인(나를 포함한)의 반응이 ‘실제로 그렇다’고 판단한다. 험악하고 살벌한 논쟁에 빠져서 이전투구하고 싶지 않은 심정은 부차적일 뿐이다.
먼저 사회주의. 오늘날 사회주의자는 ‘쿨’한 존재일까. 그런 시기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냉전시대 반공 이데올로기의 최후 보루인 한반도 남쪽에서 사회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지혜와 용기를 동시에 요구하는 것이었다. 흔하지는 않았지만 두개의 자질을 겸비한 인물들이 존재했고 오늘날 이렇게 상업적 주간지의 고급 종이 위에서 사회주의를 운운할 수 있게 된 데는 그들의 공이 크다.
하지만 ‘구(舊)사회주의자들’이 멋진 존재였던 것은 그들이 ‘과학적 이론으로 무장’하고 ‘불굴의 의지를 가진 투사’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렇게 ‘무장’했던 ‘투사’들 중에는 지금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사람까지 포함되니 그건 개뿔도 뭣도 아니다. 이들을 멋진 존재로 만든 것은, 인간에 대한 배려, 세상에 대한 관심, 평등에 대한 갈망 같은 윤리적 지향이었다. 신영복이나 홍세화 같은 유명인은 물론이고 전우익 같은 무명인의 글이 짙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는 이런 에토스(ethos), 즉 윤리적 이유가 우선적이다. 지배적 도덕과 규범을 거스르면서도 부도덕하지는 않고, 원칙이 확고하면서도 꽉 막힌 ‘꼰대’ 같지는 않은 윤리를 통해 이들은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아 있다. 이들이 누구누구를 ‘솎아내자’고 말한 적이 없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그 뒤에 등장하여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인물들은 무언가 한면이 부족해 보인다. 한편으로는 지혜가 아닌 지식과 이론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유형이 탄생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식과 이론은 쓸모없는 것이며 ‘악으로 깡으로’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유형도 탄생했다. 그 중간 어딘가에 위치한 경우도 있지만 두 유형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그 사회주의’는 둘 중 후자의 유형에 속한다. 1990년대 말에 등장한 그 사회주의자들 역시 날로 지리멸렬해지는 우리네 비루한 삶에 윤리적 지침을 제공했다.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고독하게 싸우는 그들의 에토스는 따지고 보면 그리 새로울 것은 없었다. 그렇지만 새로운 대안이 혼미한 상태에서 잊혀져가는 기억들을 환기시켜주는 효과를 가졌던 것은 틀림없다. 특히나 (사회주의를) 청산하거나 (사회주의로부터) 전향하는 사람들이 속출하면서 그 사회주의는 더욱 멋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사회주의는 이제 ‘씹기’와 ‘까대기’와 ‘악다구니’만 남은 앙상한 모습을 취하고 있는 것만 같다. 날이 갈수록 구사회주의자의 멋진 윤리를 찾아보기는 힘들어지고, 그렇다고 시대의 변화에 맞춘 새로운 윤리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이런 의심조차 든다. 그동안 그 사회주의에 대해 보낸 관심과 애정의 실체는 혹시 10대 대중가요 팬이 대중스타에게 열광하는 것이나 비슷한 것 아니었을까라는 의심…, 만약 그렇다면 그 사회주의 역시 지극히 ‘1990년대적’인 현상이다. 물론 이건 미래의 역사가 판명해줄 문제다.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당신의 주장은 무엇이냐고? 상업잡지에 잡문이나 쓰는 주제라서 똑 부러지게 말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 미안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건 미래에 대한 대안을 과거에서 찾을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그 사회주의’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다.
신현준/ 전(前) 사회이론가 http://homey.wo.to

P.S.
1. 지면 관계상 ‘그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는 미루겠습니다.
2. 이 글을 ‘사회주의 비판=자본주의 찬양’으로 오독하는 것을 금합니다.
3. ‘윤리’와 쿨’ 등의 단어는 세간의 용법과 다소 상이하다는 점을 밝혀둡니다.



7. [특별기고]‘그 페미니스트’ 최보은의 김규항에 대한 반론-마지막까지 쓰고 싶지 않았던 글 (씨네21, 2002. 5. 27)

마흔세살이 되어, 나는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과도한 욕망을 접는다. 나를 설명하고자 하는 욕망이, 나를 꼰대로, 파쇼로, 간이 탱탱 부은 인간 푸아그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계몽과 선동의 값싼 유혹을 포기하는 대신, 그저 자신을 돌아본다.

97년 12월 <씨네21>에 사표를 썼다. 기층민중인 두 번째 남편과 이혼하기 위해서였다. 배운 남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래서 아마도 덜 이기적일 것이라는 착각으로, 가문도 학벌도 재산도 경제적 능력도 없는 그와 결혼할 때, 나는 돈 안드는 두가지를 부탁했었다. 인간으로 대해줄 것과 몸에 손대지 말 것. 결과적으로, 그건 그에게는 너무 힘든 요구였다. 첫 애가 아직 생후 한달이 안 됐을 때, 그토록 두려워 했던 일이 일어났다. 먹고 살기 위해 나는 밤을 새고 번역을 해야 했고, 그는 저녁이면 내가 주는 용돈을 들고 볼링장에 나가 ‘퍼펙트’를 기록했다. 경제적 가장으로서 신문사를 다니면서 밤에 번역 아르바이트를 했던 나는, 돈을 전부로 여기는 속물 여편네로 보이지 않기 위해, 돈 못버는 농촌총각이어서 마흔 다 된 나이에 중고 신부를 맞은 남편의 열등감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몹시도 속 넓고 우아한 척하고 살았다. 그날 밤, 시댁에서 잠깐 데려온 아이가 몹시도 울었고 나는 지쳐 있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무슨 군인처럼 50분 번역 10분 휴식의 강행군 중인 나 대신, 마루에 이불 깔고 누운 그가 아이를 달래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우는 아이를 안고 달래다가 “대체 어떻게 해 달라구!” 울부짖으면서 아이를 침대에다 팽개쳤다. 그리고 뛰쳐들어온 남편의 욕설과 주먹세례와 함께 “에미 될 자격이 없는 년”이라는 선고를 받았다. 그때, 너도 낮밤 없이 돈 벌면서 노는 아내 위해 밥상 차리고 아이까지 봐야 했으면, 아마 침대에다 아이 수백번은 팽개쳤을 거야, 하고 말해주었어야 하는데, 미처 그 생각을 못하고 내 부족한 모성본능을 반성하기에만 바빴었다. 나는 내 속에 주입된 남성적 시각과 그런 식으로 늘 ‘숙명적인 긴장’ 관계 속에서 살았다. 솎아내야 할 버릇이다.

폭력은 일년에 두어번쯤 되풀이되었다. 그때마다 시댁 식구들을 비롯한 주변에서는 그의 ‘욱’하는 성질을 상기시키며, 그러니까 내가 좀 더 조심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시어머니는 둘째인 남편 출산 전 임신 8개월 때 시아버지의 발길질로 유산을 한 적이 있다고도 하셨다. 그래도 참았으니 이렇게 노년에 부부지간에 의지하며 외롭지 않게 사는 것 아니냐고 하셨다. 그 맹랑한 논리에 설득 당해서가 아니라, “그저 딸들에게 아빠 노릇만 해준다면” 하는 체념으로, 두 번째 이혼은 생각하기도 싫은 내 비겁과 상처를 덮어버렸다. 좀 더 잘 살아보기 위해 월급 백만원도 안되는 신문사를 때려치우고 프리랜서 번역가 일만 1년 반 하다가, 영어만 봐도 먹은 게 올라오는 증상이 심해질 무렵, 나를 아끼는 여자선배와 여자동료의 부름으로 회사에 재입사를 결정했다. 남편은, 집에서도 돈 벌 수 있는데 나돌아다니고 싶어 취직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아주 ‘마땅치 않아’ 했다. 시댁동네 여자들, 새벽에 일어나 소똥 치우고 여물 주면서도 불평불만 없이 사는데, 컴퓨터 앞에 앉아 있기만 하면 되는 일 하면서 뭐가 그리 힘들다고 엄살이냐고 했다. 아마 내가 ‘나른하게’ 보였을 것이다.

한창 몸과 마음이 힘들어서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몽환적인 상태’에 빠져 있을 때, 친구의 성화로, 유능하다는 정신분석의와 마지못해 전화 통화를 한 적이 있다. 그는 내가 빨리 나와서 쎄라피를 받고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운명이 딸들에게 대물림된다고 했다. 소름이 끼쳤다. 내가 갖지 못했던 아버지를 딸들에게 주기 위해 참고 사는데, 그렇게 참고 사는 모습이 결국 참고 사는 운명을 딸들에게 대물림하게 되는 거구나, 깨달았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이들 버릇없이 키운다고 코뼈에 금가도록 맞은 김에, 정신병원을 찾는 대신, 이혼을 결심했다. 예상했던 일이 일어났다. 그는 내가 “아이들을 팽개치고 직장을 다니는, 아이를 키울 자격이 없는 여자”이기 때문에 두 딸을 줄 수없다고 했다. 그 날로 직장을 때려치우고 네돌, 세돌도 안 지난 두 딸을 끼고, 사흘동안 드러누웠다. 봤지? 나 직장도 그만 뒀지? 그러니 제발 이혼만 해달라고 빌었다. 그래도 못해주겠다고 했다.

결국, “절대로 양육비를 요구하지 않겠다” “재혼할 경우 아이들을 돌려준다”는 각서를 쓰고 아이들 데리고 이혼하는 데, 그로부터 3년이 걸렸다. 2001년 2월 마침내 도장을 찍고 아이들을 데리고 왔을 때, 나는 주변의 아는 여성들로부터 대대적인 축하를 받았다. 여자들끼리 모여 앉아 남편들 싸잡아 씹는 ‘한국식 한풀이’도 했다. 정신적 대모인 김선주 한겨레 논설위원은, 친구인 조선희는 자기들도 돈 쥐뿔도 없으면서 마이너스 카드를 긁어서 내 셋집 얻을 돈을 대거 보탰다. ‘마초 흉내’를 낸 거다. 나는 그 ‘마초 흉내’를 통해 생물학적 여성들의 ‘숙명적 우애’ 관계를 실감했다. 혹시나, 이 기층민중남성과의 결혼실패담이, 부르조아 중산층 인텔리 여성의 ‘급진주의의 극단적 통속화’라고 비난 받는 빌미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부르조아! 말이라도, 배가 부르다. 두 번 이혼하면서 우아한척 잘난척 하느라고 알몸만 챙겨갖고 나온, 직장에서 떨려나면 당장 딸 둘과 밥 굶어야 하는, 무늬만 중산층 부르조아의 신분증 제시를 이럴 때 요구받는구나.

김규항이 나를 뭐라고 딱지붙이건 상관 없지만, 앞으로는 최소한 ‘팩트’에 근거한 비판을 해주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김규항이 나를 ‘주류’라고 부르는 근거가 되었던, 몇 됫박이나 되는지 몰라도 그런 ‘큰 영향력’이 내게 있었다면, 서구 급진 페미니즘 이론을 수입해가며 배운년 티내고 잘난척 해서가 아니라, 우아 안 떨고 내 치부를 까발리며 ‘매맞는 아내’로 커밍아웃한 데 대한 격려와 정서적 연대의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나도 지식수입상 ‘밥맛 없어’한다. 그냥 얘기해도 충분히 알아들을 내용을 꼬부랑 이름 들이대면서 잘난척 하는 짓, 정말 밥맛 없어한다. 그러니 내 글을 몽땅 뒤져서 내가 수입한 서구 페미니즘 이론을 한 줄이라도 찾아내주기 바란다. 나는 열씨미 밥벌이 하면서 남는 시간 틈틈이, 내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서 다른 여성들과 나눌 교훈을 찾는, 자생적 페미니스트다. 그래서 장바닥의 쌈닭 여편네처럼 말이 조금 거칠고, 말이 거칠다 보니 ‘도발적’이라거나 ‘엽기적’이라는 평도 가끔 듣는다. 혹시 그런 어법이 내 주장을 ‘급진적’이라고 착각하게 만든 이유가 됐는지도 모르겠다.

김규항은 내가 쓴 여성주의적 글들을 탈탈 털어서, ‘여성해방을 인간해방과 별개로 진행한다’는 강령을 내세운 ‘급진적’인 주장이 무엇인지 제시해주기 바란다. 있다면 아마도, 가장 최근 내가 <말>지에서 주장한 ‘박근혜 연대론’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건 90년대 이후가 아니라 2천년대 초반에 비주류인 여성운동 내부에서도 ‘비주류 단독자’인 자생적 페미니스트의 자생적 급진주의라고 말해야 맞다. 지자체 선거와 대선을 쌍으로 맞은 정치의 계절에 ‘여풍’은 솎아낼래야 솎아낼 수도 없게 씨가 마른, 여성정치가 아예 의제가 되지 못하는 현실을 주시하다가, 평생 지배 이데올로기의 방사능을 쐬고 산 나머지 토막시체가 된 내 여성성을 성찰하다가, 나름대로 눈이 번쩍 뜨이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 “박근혜를 여성의 눈으로 보자” “여성이 여성을 찍자”는 얘기를 한 거였는데, 수입했다는 걸 보니 서구에서도 이미 그런 얘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ㅋㅋㅋ. 하긴 여기나 거기나 여성의 삶이 기본적으로는 마찬가지일 테지.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냅두더라도, 그게 그렇게 급진적 주장이라면 근거를 들어 비판하면 될 일이다. 아니, 이미 사방에서 벌떼와 같이 들고 일어나 온몸이 벌집이 된 상태라서, 굳이 ‘나비’처럼 우아하게 지켜보던 마초들까지 '벌'처럼 쏴주겠다고 나설 필요는 없을 것같다. 내 발언이 여성민우회에서, <이프>에서, 지역단위 여성단체에서, 오로지 여성주의의 신념 하나로 차비도 안되는 돈받고 배 곯아가며 몇 년씩 때로는 일이십년씩 버텨온 페미니스트들에게 누가 된다면, 그것은 전략전술 개념없이 머릿속에 생각 떠오를 때마다 하고 싶은 말을 하는 탓일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그분들로부터 야단 맞고 싶다. <말>지 인터뷰에서, 이미 나는 ‘배우겠다’고 말했다. 평생을 여성단체에서 헌신하고 지금은 여성민우회의 공동대표가 된 윤정숙씨를 <한겨레21> 대담 때문에 만나게 됐을 때, 그가 웃는 얼굴로 나를 기꺼이 껴안아주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여성계의 반응으로 미루어, 맞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게다가 <이프>. 좋은 직장 마다하고 6, 70만원 월급에 만족하며 비주류매체의 팔자를 기꺼이 감당해온 그들이 왜 나하고 나란히 ‘그년들’ 월드컵 스타팅 멤버로 뽑혔는지 모르겠지만, 한번에 한년씩만 상대하는 게 어떠냐고 ‘그 새끼’에게 물어보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다. 기왕 가르는 김에 그들과 나도 확실히 갈라보라고. 말이 나온 김에, ‘그년들’이 실명이면 ‘그놈들’도 실명이어야 하고, ‘그년들’의 어감상 ‘그 새끼들’이 더 맞는 단어 짝이라는 걸 굳이 가르쳐주어야 아나 싶다. 사실, 이 글은 그가 맥락에도 안맞게 현란하게 늘어놓은 단어들의 바른 용법을 가르쳐주기 위한 용도로도 쓰여졌다.

휴, 이게 다 <씨네21>이 잘 팔리는 탓이다. 내가 창졸지간에 주류 페미니스트가 된 것도, 김규항이 'B급 좌파'가 된 것도. 그가 스스로 자신을 세상만사의 전지전능한 판관으로 임명하고 차제에 페미니즘의 로컬 심판 노릇까지 하겠다고 나서든말든, ‘최보은 죽이기’가 ‘좌파남성 최초의 페미니즘 비판’의 유효한 전략이라고 계산하든 말든, 내 마음은 그저 배 지나간 낙동강이다, 말발 서지도 않는 물건, 일개 사단으로 지나가라구 해라, 이러면서 유유히 흘러간다. 김규항의 두 글은 읽고 화도 나지 않았다. 따라서 이 글도 정말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가만히 있으면 바보 된다고 남들이 하도 그래서, 밥벌이도 바빠 죽겠는 월말에 이러고 앉아 있다. <씨네21>은 참 공평하다. 김규항의 그 두 글이 두쪽 분량이라고, 나한테도 두쪽 지면을 내주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경우가 병주고 약주는 경우가 아닌가 모르겠다. 물론 주최쪽의 고의는 아니었겠지만.

최보은/ 영화월간지 <프리미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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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6/12 [04:1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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