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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스위지, 자본주의 역사에 맞짱뜬 거인
미국 상류층 출신, '뉴딜정책'참여, 미국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이론 심화
 
홍기빈

▲폴 스위지     ©한겨레
폴 스위지(Paul Malor Sweezy, 1910-2004)가 지난 2월 27일 영면하였다. 향년 93세. 그가 경제학자로서, 진보적 사회사상가로서 또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20세기의 미국과 세계에 미친 영향은 대공황, 파시즘, 2차 대전, 냉전과 탈냉전을 거친 그의 긴 인생 여정만큼이나 길게 드리워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 몽드(Le Monde)나 가디언(Guardian) 정도를 빼면 이 괄목할 만한 인물의 서거를 추모하는 글이 아직 별로 나오고 있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의 지식인들 특히 80년대에 한국의 사회 현실에 대해 이론적인 고민을 시도했던 이들이라면 의식하건 못하건 스위지에게 지고 있는 정신적 빚이 상당하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그가 했던 바와 그가 하지 못했던 바를 잠깐 생각해 보는 일이 현재 한국 사회의 허리 역할을 맞고 있는 30대 40대에게 의미가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상류층 출신, 영국 유학 후 '마르크스주의의 괴수'로 귀환

스위지는 뉴욕 내셔널 뱅크(National Bank of New York: Citibank의 전신이다)의 고위 임원을 아버지로 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뉴 잉글랜드의 상류층 기숙학교 Exeter Academy를 거쳐 하바드 대학에 들어간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준수한 용모(대학 동창 폴 사뮤엘슨에 의하면 젊은 시절의 스위지는 대단한 미남이었다고 한다)와 최고의 학력을 갖추었던 이 전도 유망한 미국 청년이 이후 미국 마르크스주의의 “괴수”로서 험난한 삶을 살게 된 계기는 1931년의 영국 유학에 있었다.

당시의 파괴적인 경제 대공황은 이미 영국 지식인들 사이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계속 예언했던 바의 “자본주의의 최후”로 각인되고 있었고, 특히 스위지가 유학했던 런던 정치 경제 대학(London School of Economics)에서는 오스카 랑게(Oskar Lange)나 해롤드 라스키(Harold Laski)같은 열정적인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자신의 표현대로 “열정적이지만 무지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어 미국으로 돌아온 스위지는 “마르크스주의를 미국의 지적 담론에서 존경받는 전통으로 확립하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그렇게 시작한 하바드에서의 경제학 박사과정에서 스위지는 보수주의자 조셉 슘페터(Joseph Schumpeter) 교수와의 치열한 논쟁 속에서 나름대로의 마르크스주의 경제 이론을 내화해간다.

졸업 후 하바드 경제학과의 조교수로 일하면서 스위지는 대공황의 늪에서 허덕이는 미국 경제의 회복을 위해 적극적인 개입을 계속한다. 그리하여 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이라는 미국 '뉴딜정책'을 케인즈주의적 관점에서 합리화하는 데에 결정적 공헌을 했던 문서 [미국 민주주의를 위한 경제적 강령(Economic Program for American Democracy)]에 저자로서 또 서명인으로서 참가하기도 한다. 또 이후 루스벨트 정부가 미국 경제의 계획을 위해 조직했던 여러 조사위원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특히 미국에서의 소유의 집중과 독점을 다루었던 유명한 보고서 [미국 경제의 구조(1939)]에 첨부된 그의 논문 “미국의 이익 집단(Interest Group in America)”은 주요한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오늘날까지도 미시경제학이나 경제원론 책에서 과점시장 설명이론으로 가끔 나오는 “굴절 수요 곡선” 이론은 바로 폴 스위지가 그 당시의 작업 속에서 이루어낸 성과의 일부이다.

이렇게 실천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순탄하던 스위지의 이력은 하지만 2차대전 후 미국의 정치 사회가 반동적인 냉전으로 휘말리면서 커다란 변동을 겪게 된다. 이미 스위지는 자신이 정치적 사상적 신념 때문에 몸담고 있던 하바드에서 조만간 축출될 것을 감지하고 조교수직을 사임한다. 그리고 미국의 반동화에 맞서 47년 대통령 선거에 진보당(Progressive Party)의 월레스(H.Wallace) 후보의 선거 운동에 참여하지만, 결과는 아주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매카시 광풍 속 사회주의 잡지 <Monthly Review> 창간

당시 미국 사회를 휩쓸던 광기어린 반동적 열풍과 빨갱이 사냥은 실로 상식을 초월할 정도의 것이었다고 한다. 루스벨트가 죽은 후 미국 사회는 그가 대표하던 진보적인 뉴딜 노선의 개혁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월스트리트의 자본 세력과 강경 군사 세력의 주도하에 보수적인 사회 질서로 회귀할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압도적인 반공주의의 열풍에 질린 진보당과 월레스는 그 갈림길에서 진보적인 방향으로의 대안을 명확하게 하지 못하고 말을 얼버무리게 되는데, 스위지는 이것이 진정한 패인이라고 생각하였다.

▲먼슬리 리뷰 표지 사진.    
©먼슬리 리뷰
미국 사회가 나아갈 진보적 방향의 대안으로서의 사회주의의 대안을 또렷하게 내걸지 못하는 한 미국의 양심적 세력은 항상 수동적인 비판 세력 이상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맥카시즘의 광풍이 한창 몰아치던 1949년, “독립적 사회주의 잡지”를 표방하는 저널 Monthly Review를 동료 리오 휴버맨과 함께 창간한다.

지금도 유유히 몇 십년 째 계속 나오고 있는 이 잡지는 냉전으로 얼어붙은 세계에서 사회주의적 가치야말로 당시 인류가 처한 곤경을 풀어나가는 방향이라고 믿는 유수한 세계의 지식인들 - 아인슈타인, 버트란드 러셀, 사르뜨르, 말콤 엑스 등등 - 이 그러한 신념을 천명하는 일종의 신앙 고백의 장으로도 기능했지만,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불평등과 착취의 현장을 날카롭게 분석하는 짧은 글들로 넘쳐나는 곳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50년대 미국 상황에서 이 간이 부은 대담한 반란자들과 함께 이름을 올리려는 이들은 그만한 댓가를 종종 치러야 했다. 폴 스위지 자신을 포함하여. 스위지는 55년 뉴햄프셔 법원으로부터 자신이 어느 대학에서 했던 강연의 내용을 보고하라는 명령을 받고 이를 단호히 거부하며, 그 댓가로 투옥을 포함하여 몇 년간 다양한 고초를 치른다.

<독점 자본> 출간, 미국식 자본주의 한계와 제3세계 연대 모색

하지만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던 미국의 냉전적 사회 구조도 60년대 들어오면서 심각한 위기에 휩쓸리고 진보적인 사회 변혁을 향한 역사의 조류가 다시 밀려오게 된다. 그러한 사회 변동의 결과물인 동시에 그 변동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운동의 기폭제로서 기능했던 책이 바로 스위지가 동료 폴 바란(Paul Baran)과 함께 저술한 책 [독점 자본(Monopoly Capital)]이다.

이 [독점 자본]은 경제이론의 역사에서도 또 사회 운동의 역사에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이정표임이다. 경제학설사적으로 이 저서는 신고전파의 시장 경쟁 이론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인 케인즈 학파에 맞서서 독점 자본의 “미시적” 기초 위에서 자본주의의 만성적 불황을 설명하는, 칼레츠키(Michal Kalecki)와 슈타인들(Josef Steindl)에서 이어져오는 “독점 자본” 학파 전통의 한 매듭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논지는 아주 간략하게 요약할 수 있다.

사회 전체가 도달 가능한 생산력(잠재적 경제 잉여) 은 그 소수 독점 자본의 이윤과 독점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제약당하고, 공장 가동률은 도처에서 50%에도 못 미치고 있다. 실업과 저소득으로 인해 대중의 빈곤은 늘어만 간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비생산적이기 짝이 없는 광고 따위의 불필요한 서비스 산업만 팽창해간다. 게다가 군수 자본은 끝도 없이 팽창하면서 전 세계를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이 모든 비합리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독점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변혁해야만 한다.

60년대의 미국 젊은이들이 목도했던 미국의 현실이 바로 그러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베트남 전쟁의 엄청난 군사적 물량 공세가 그러했고, 사회 전체에 넘쳐나는 광고와 소비주의가 그러했다. 분명히 60년대까지 선진국의 고용이나 소득 수준은 일정 수준 이상이었지만, 여기에 대해 바란과 스위지는 더욱 무서운 설명을 제시한다.

선진국의 노동자들은 제 3세계를 착취한 잉여로 사육되고 무마되고 있는 것이라고. 그래서 제 3 세계에서의 빈곤과 참상은 늘어만 가는 반면 선진국 노동자들은 혁명성을 상실한 대중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라고. 60년대에 줄을 잇던 탈식민 지역의 민족 해방 운동은 이러한 주장과 정확히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결국 제 3세계의 인민들과 미국의 양심적인 세력은 힘을 하나로 뭉쳐 독점자본에 맞선 공동 전선을 펼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 세계적인 고통과 파국(당시의 미소 핵 경쟁을 상기하라)은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좌측 먼슬리 리뷰의 공동 편집자 해리 맥도프와 폴 스위지.     ©먼슬리 리뷰
이후 미국과 세계 전체에 큰 영향을 남긴 60년대 신좌파 운동의 가장 강력한 지적 원천의 하나가 이 [독점 자본]이었음은 이의를 제기할 이가 없다. 스위지와 Monthly Review의 영향이 직접 닿아 있는 것으로 두어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미국 급진파 정치경제학 연합(Union of Radical Political Economics) 등 사회적 급진적 정치경제학의 태동이다. 성적, 인종적 차별로 시작하여 미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각종 모순과 부조리한 사회 제도들을 자본의 축적과 권력 집단의 기득권과 끊임없이 연결지으면서 좀 더 정의롭고 인간적인 정치 경제 체제를 요구하는 흐름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지구화의 소용돌이로 온 지구가 시끄러운 오늘날까지 이 급진적인 정치 경제학자들이 더 정의로운 세계를 요구하는 운동과 담론에 기여한 영향은 막대하다.

둘째, 종속 이론이나 세계 체제론과 같은 주변부 정치 경제학의 태동이다. 선구적 이론가였던 프랑크(Andre Gunder Frank)를 필두로 하여 종속 이론 진영의 이론가들이 Monthly Review 진영과 맺었던 긴밀한 관계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냉전의 그늘 아래에서 미국 사회의 끄뜨머리까지 떠밀렸던 스위지는 이제 학문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그 누구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로 되살아나게 되었다. 한 때 무슨 빨갱이 삐라 같이 불온 선전물 취급을 당하던 Monthly Review(50년대에 우편으로 배달할 때에는 꼭 안보이는 봉투로 싸야했다고 한다)는 이제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지적 담론장에서 가장 중요한 저널의 하나로 자리잡았으며, 모든 대학 도서관에서 마땅히 구독해야 할 서적이 되었다. 스위지는 그를 박해하고 매장시킬 뻔 했던 미국 사회의 틀을 넘어 유럽은 물론 제 3세계 지식인들 사이에서 깊게 존경받는 존재가 되었다. 81년 인도의 네루(Nehru) 대학은 그에게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수여한다.

매체에 가려지고 대체되는 독립적 지식인의 삶

하지만 역사란 지독한 아이러니의 장난꾸러기인지도 모른다. 감히 그 흐름의 길을 설명하고 예측하는 ‘건방진’ 인간이 나타나면 그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몸을 틀어버리고는 어리둥절해 있는 그를 심술궂게 비웃는 못된 버릇을 가지고 있다.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미국 자본주의가 전 지구를 뒤덮고 있는 21세기의 세계에서 스위지라는 존재의 의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스위지의 일생은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평가될 필요가 있다. 첫째, 경제학자로서 둘째, 사회사상가 및 운동가로서 셋째, “독립적” 지식인의 한 전형으로서. 이 세 가지 측면 모두에서 그가 잠든 2004년의 시점에서 볼 때 스위지는 철저하게 실패한 것 같다.

첫째, 자본주의의 성격과 발전 방향은 그가 예측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80년대 이후의 인수 합병 붐과 함께 터져나온 세계적 금융 자본주의는 [독점 자본]의 분석과 주장의 상당 부분을 정면으로 논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점은 그가 91년 12월호 Monthly Review에 기고했던 “[독점 자본]: 25년 후의 회고(Monopoly Capital: After 25 Years)”에서 인정하고 있는 바이다. 둘째, 그와 종속이론가들이 사회사상 및 운동의 내용으로서 내걸었던 주장과 예측 즉 주변부 지역에서의 혁명 운동의 고조와 자본에 맞선 지구적 연대는 거의 정반대의 상황으로 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아마도 가장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그의 “패배”는 세 번째 측면에 있다.

스위지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독립적인 지식인”이라는 실천 형태는 현재 세계의 시류 속에서는 실로 우스꽝스러울 정도의 퇴물이 되고 말았다. 이념이 대립하던 “극단의 시대” 20세기가 저물어버린 지금 세계는 어쩌면 “광고의 시대”라고 불러 마땅할 것이며, 이 시대에 최후의 승자로서 군림하게 된 것은 아마도 “매체”일 것이다.

이제는 그 매체의 힘을 입어 대중적인 명성을 얻고자하는 아주 저급한 차원의 “인정 투쟁”이 세계 어디에서나 거의 유일한 지식인들의 존재 형태가 되고 말았다.

그 메시지가 무엇인지는 차후의 문제이다. 누구 말마따나 그야말로 “매체가 메시지”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TV 드라마의 카메오 출현 제의에 열심히 줄을 서기도 하고, 패셔너블한 영화 감독이 알쏭달쏭한 기법의 카메라를 들이대면 아주 기쁘게 자기 얼굴을 피사체로 바치기도 한다.

이 경박한 광고의 시대 매체의 시대 이미지의 시대에, 이제 그 어떤 지식인이 스위지와 같은 존재 형태를 기꺼이 받아들일까. 

역사와 시대의 거인, 끊임없이 발굴해야

사회 전체에 의해 반 사회 분자로 찍히고, 직장에서 쫓겨나고, 친구들에 버림받고 걸핏하면 법원에 불려다니면서 기약도 없이 아득하기만 한 그 “미래”라는 것 만을 붙들고 냉전으로 얼어붙은 미국 사회와 “맞장”을 뜰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초기의 Monthly Review를 보면 그 초라한 모습에 실로 눈물이 앞을 가린다. 원고 청탁을 하면 다들 이리저리 도망가버리고, 배달할 때에는 무슨 불온 문서마냥 안보이는 봉투에 꼭꼭 싸서 보내야 했던 그 Monthly Review. 그 상황에서 들리지도 않을 가녀린 목소리를 내기 위해 매달 거르지 않고 그 힘든 격무를 해나가는 식의 “독립적” 지식인의 존재 형태가 이제 가능할까. 누구나 그것이 고상한 모습임은 인정할 것이다. 하지만 지식인의 실천 형태의 한 “전형”으로서의 그의 인생은 이제 거의 꿈나라 동화처럼 비현실적으로 되고 말았다. 스위지가 그렇게 지키려했던 지식인의 “독립성”이라는 것도 이제 누구도 요구하지도 또 기대하지도 않으며, 부담스럽기조차 한 것으로 여겨지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스위지의 이 “세 가지 패배”를 종합해보면 현재 세계의 하나의 뚜렷한 흐름이 나온다. 그것은 사회에 대한 비판적 담론의 장에서 언젠가부터 “자본”과 자본에 종속된 정치 경제 체제에 대한 근본적 비판은 원천적으로 사라지고 말았다는 현실이다. 그 대신 “참신함” “개혁성” “도덕성” “진보” “정의”와 같은 알쏭달쏭하지만 누구나 옳다고 할 수 밖에 도리가 없는 김빠진 동어 반복이 비판적 담론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모두 다 착하고 모두 다 지적이다. 하지만 오늘도 수 많은 사람들이 숨막히는 경제적 군사적 정치적 폭력 앞에 거꾸러지고 있는데도, 미친듯이 질주하는 이 지구화의 세계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시원하게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 위에서 지구적 자본과 전쟁 세력은 “본업은 이제부터”라고 팔을 걷어 부치고 있다.

그는 정말로 패배한 것일까? 아직 알 수 없다. 스위지를 코너에 몰아붙인 존재는 이런저런 제도권 학자 무리도 또 현실의 정치 세력도 아닌, 바로 몇 십년의 주기로 방향을 틀어가는 역사라는 강물이다.

야곱은 신의 천사와 밤새 씨름을 한 끝에 “신과 맞붙은 자”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리고 그의 자손들의 이야기는 몇 천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진행형이다. 역사라는 불가사의한 강물과 단신으로 “맞짱”을 붙었던 스위지와 같은 거인의 평가도 앞으로 전개될 세계 자본주의의 역사적 진행 속에서 끊임없이 논의될 것임은 분명하다. / 논설위원


기사입력: 2004/03/08 [17:49]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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