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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형은 '수구 잔민당' 대표로 전락하나!
민주개혁평화세력 통합은 외면, 한민공조로 방향틀다니
 
서태영   기사입력  2004/03/05 [15:23]

조순형 민주당 대표는 쓴소리 잘 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입 바른 소리를 잘해 '원조 대쪽', '딸깍발이 선비', '미스터 쓴소리'로 통했다. 5선이라는 다선에 칠순을 앞둔 정치인치고는 존경을 받는 희귀종 정치인에 속했다.  

그의 이름 앞에는 유석 조병옥 박사의 막내아들이라는 그렇게 나쁘지 않는 부친의 후광이 따라다닌다. 그는 부친의 명성이 자신의 정치인생에 장애로 작용하지 않는 비교적 운좋은 정치인에 속했다. 어느 정신 머리 없는 언론이 붙여주고 기자들이 즐겨 복제하는 꾸밈말이지만, 부친 조병옥씨의 제주 양민학살자라는 전력을 교묘하게 감추어주는 눈가림 말이 앞섰다. 

그는 의정활동에 열심이었다. 시민단체가 뽑은 국정감사 우수의원에  4년 연속 뽑혔으며 백봉신사상 또한 4년 연속 수상했다. 그 자신 타의 모범이 되는 바른 말 정치인으로 훌륭한 의정활동을 했기 때문에, 부친의 과오에 대해 딴지를 걸 빈틈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국민의 정부 때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사직동팀 해체와 여야영수회담 반대, 소장파 정풍운동을 지지함으로써 많은 국민들로부터 지지와 성원을 받았다. 

▲ 조순형과 함께 대구에서 희망의 정치를? 조순형 대표가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대구에서 출마하겠다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서태영

민주당이 분당함으로써 민주당은 보유의석은 많으나 장래가 불투명한  2당이 되었다. 그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민주호 선장으로 나서, 안정과 화합을 구호로 내세워 당대표에 당선된다. 2003년 11월 28일 5선 정치인 조순형은 추미애 의원을 꺽고 민주당 대표에 당선됨으로써 오랜 비주류 정치인생에 딱지를 떼낸다. 그것이 곧 민주당의 입지와 그의 정치인생을  목조이게 하는  선택으로 작용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대표 취임후 그는 민주개혁평화세력 대통합이라는 여론을 팽개쳤다. 한민공조로 민주호를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었다. 조대표가 공들여 몸을 만든 민주당의 현주소가 '수구 잔민당'이라는 사실 앞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민주당의 미래는 조대표의 묵살 아래 묶였다. 추미애, 정범구, 설훈, 장성민은 설자리가 여의치 않은 장식품으로 전락했다. 민주당에는 정통민주세력과 잔민세력이라는 두개의 얼굴이 공존한다. 조순형 대표의 혈색은 후자로 변해가고 있다. 추락하는 것에는 제동장치가 없다. 민주당이 존립할 수 있는 근거인 당내 민주소장파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그는 잔민당이라는 또 다른 민주당을 창당했다. 

그 결과 한민공조 체제를 성사시켜 민주멘더링-방탄국회 공조로 선거법처리를 무산시킨 그는 잔민당의 대표이다. 민주당의 '꼼수'에 선거법 처리는 실패했고 정치개혁 법안은 누더기가 되었다. 제 호흡을 잃은 조순형 대표는 반노사령관 악역에 신이 들린듯 한나라당도 조심스러워하는 탄핵을 쪼아될 만큼 궁핍한 지도력을 과시하고 나섰다. (노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지지발언이 탄핵감이라면 조순형 대표는 사형감이다!)

균형감각을 상실한 그는  '盧항복하라' 며 7일까지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가 없을 경우 탄핵 발의를 강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의 쓸쓸한 퇴장을 지켜보는 마음 아쉽다. 반노정국 몇 달 만에 '미스터 쓴소리'는 '미스터 군소리'로 나락질한다. 조순형 대표마저 차악의 정치판에, 요새 유행하는 말로 '올인'했나!

▲  2.28기념탑에 참배하러 가는 조순형 대표와 추미애 의원. 애처롭다, 추미애!  ©서태영

민주당 창당 4주년 기념식에서 공천과 관련 당 대표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며 민주당의 취약 지역인 대구 출마를 선언하고 난 뒤 그가 보여준  모습 또한 지역차별정치 극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조대표가 대구 어느 지역구로 나올지 모르지만, 그의 선택을 높게 평가하던 사람들도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당초 "낡은 정치유산 극복을 위한 올바른 정치적 선택을 위하여"  조순형 대표의 대구 출마를 환영했던 대구지역 교수들의 지지 선언도 김이 팍 샜다. 

아직도 어디에 출마할까를 정하지 못하고 오늘은 수성구로 내일은 중남구로 떠도는 늦깍이 정치유랑 생활을 어이할까나. 그는 민주당 구당파의 사령탑이 되어 대구로 오기 전에 서울에서 정치인생을 정리해야 할 운명에 처할지도 모른다. 그는 낡은 정치를 바꾸는데 실패하고 자신의 팔자를 바꾸는데 성공했다. 고희가 낼 모래인 조순형 대표는 정통 민주세력의 당대표가 아닌 '잔민당' 대표로 뒷걸음질쳐 가고 있다.  

민주개혁평화세력의 기대를 저버리고 민주당을 잔민당에 올인시킨 그는 부친의 과오와 함께 유권자의 냉엄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의 1년도 안되는 주류정치인생은 비주류일때 만도 못한 것으로 결말이 나 가고 있다. 

비극적이게도 대표 취임의 성과라고는 유석 조병옥과 부담스럽게 상봉해야 할 정치 말년의 운명. 부친의 연고를 찾아 대구를 선택했지만, 정작 그는 대구를 사수한 조병옥 내무장관의 아들에서 제주양민을 학살한 조병옥 경무부장의 아들로 후퇴했다. 늙어서 갑자기 꽃피는 주류정치인생을 경계할지어다. 그는 비주류정치생활이 딱 들어맞는 정치인이었는지 모른다.

* 제주 4.3 양민학살자라는 유석 조병옥 박사의 또 다른 얼굴

'5.5 최고수뇌회의' 참석차 제주비행장에 도착한 딘 소장 일행을 제주주둔 지휘관들이 마중하고 있다. 왼쪽 두 번째로부터 군정장관 딘 소장, 통역관, 유해진 제주도지사, 맨스필드 제주군정장관, 안재홍 민정장관, 송호성 총사령관, 조병옥 경무부장, 김익렬 9연대장, 최천 제주경찰감찰청장© 제주의 소리    

  전교조의 <인물로 보는 4.3>에 유석 조병옥씨는 양민학살자로 나와 있다. 당시 9연대장이었던  김익렬 선생은 생전에 남긴 유고에서, "당시 제주도감찰청장이나 제주도 군정장관, 경무부장 조병옥 씨나 미 군정장관 딘 장군 중에서 한사람이라도 사건을 옳게 파악하고 초기에 현명하게 처리하였더라면 극소수의 인명피해로 단시일 내에 해결될 수 있었던 사건"이라며 "경무부장 조병옥씨 이하 경찰은 사건 해결보다는 죄상이 노출되어 자기 모가지가 달아날까 봐 진상을 은폐하기에 급급하였다고"라고 조병옥의 실정을 강하게 비판하였다.(제주4.3학습자료)

부친 조병옥씨의 학살 관련 행적은 다음과 같다

47.03.14 조병옥 경무부장 내도
47.03.15 전남경찰청 소속 122명, 전북경찰청 소속 100명 등 응원경찰대 222명이 추가로 내도. 조병옥, 파업주모자 검거명령
48.02.10 조병옥 경무부장, '2·7 폭동'으로 전국적으로 39명이 사망했으며 8,479명이 검거했다고 발표
48.04.06조병옥 경무부장, 서울에서 기자회견 통해 제주도사태의 인명피해 상황 밝히고 응원경찰대 급파했다고 발표. 조병옥, 서청본부에 반공정신이 투철한 서청단원 500명을 제주에 파견해 줄 것을 요청
48.05.08 조병옥 경무부장, '제주도사건의 치안수습대책'발표. 당면대책으로 ①경찰전문학교 정예부대 제주 파견 ②유능 형사대 파견을, 영구대책으로 ①제주경찰학교 강화 ②경찰인사 재편 ③경찰정원 증원, 2개 경찰서 신설계획을 천명
48.05.18 조병옥 경무부장, 제주도폭동 진압차 정예부대 파견했다면서 '그 동안 귀순 회오반성을 기다리던 소극적인 대책을 떠나 이번에는 실력으로써 적극적으로 폭도들을 진압섬멸할 방침'이라는 담화를 발표
 48.06.23 조병옥 경무부장, '제주도 치안 수습에 대하여'란 담화를 통해 각게의 경찰 과오 지적을 반박하면서 "근본 원인은 소련의 야심인 조선의 소령 연방화에 있다"고 강변
50.07.17 조병옥, 내무장관에 임명. 이후 예비검속자 학살시작. 예비검속자 학살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50년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될 때까지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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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3/05 [15:2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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