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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낙선운동의 명백한 한계
낙선운동, 헌 부대에 새술을 담자고?
 
정문순   기사입력  2004/02/17 [17:38]

시민단체 낙선운동의 명백한 한계

총선시민연대의 낙선 대상자 명단이 2차례에 걸쳐 발표되었다. 이름이 올려진 당사자들이 분을 터뜨리거나 이 단체에 비방과 중상을 서슴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시 불어 닥칠 낙선 운동의 위력을 짐작하게 한다.

4년 전 ‘유권자 혁명’으로까지 불린 낙선운동이 이번에도 태풍을 일으키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기는 하나 어쨌든 최종 선택은 유권자의 몫이라면 각자 나름대로의 낙선감을 골라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총선연대의 명단을 살펴보니 내 손으로 써넣고 싶은 인사가 운 좋게 빠진 경우가 많아 한 마디 해야겠다.

운좋게 빠진 인사 많아

총선 연대가 낙선자 명단을 작성할 때 부정과 비리 등 변명의 여지가 없는 탈법 행위를 가장 큰 잣대로 삼은 것은 당연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도덕적 지탄을 받을 수는 있더라도 법에는 걸리지 않는 경우 그 기준의 애매모호함 때문인지 용케 빠져나간 정치인도 드물지 않다. 그러나 총선연대의 낙선 기준에 도덕성과 반유권자적 행위라는 항목이 분명히 있는 만큼 그들을 걸러낼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부산 경남 지역에는 비교적 지지층이 약한, 더 정확히는 한나라당 공천을 따낼 승산이 불투명한 인사들이 열린우리당으로 몰려가는 일이 유행병처럼 번진 적이 있다. 이미 공천이 확정된 공민배 전 창원시장과 현재 공천 경쟁 중인 이만기씨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정치적 소신이 이유라면 정당을 열 번 옮겨도 이해해줄 수 있다. 그러나 ‘전라도 정권’을 심판하자고 지난 5년 내내 민심을 교란해온 정당의 공천을 따려고 혈안이 되었던 이들이, 그 정권에서 갈려나온 당이 이 지역에서 흥행이 된다 싶으니 지역 정치 극복을 외치며 그쪽으로 몰려가는 작태라니. 한나라당이 지역 정서를 불 지르는 데 거들었던 어제의 행적을 반성하지 않고는 어림도 없는데, 이 이름들이 빠진 것을 보면 총선연대가 지역 사정을 잘 모르기 때문일까.

그러나 이런 식으로 따지고 보면 정치인 개개인만 탓할 일은 아님을 알게 된다. 지명도만 있으면 과거 행적이나 소신은 제쳐두고 아무나 끌어들이는 데 여념 없는 열린우리당 수뇌부가 먼저 도마에 올라야 할 것이다. 특히 지난 해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 가망이 없자 유력 후보에게 색깔 공세를 가하기도 했던 정동영 의장을 비롯하여 김근태, 김부겸 등 당 지도부들은 이라크 추가 파병 동의안을 통과시키고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찬성을 당론으로 만든 것만으로도 낙선 명단에 올라야 할 것이다. 가능성도 희박한 몇 푼의 돈을 건지자고 제 나라의 꽃다운 젊은 목숨을 살상 현장에 내몰고, 안 그래도 몰락 중인 농민의 삶을 아예 벼랑으로 밀치려는 것은 명백히 반유권자적 행위다. 그들뿐인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수뇌부들이 강제한 두 법안을 당론이라고 머리를 조아리는 두 정당의 대다수 금배지들의 무소신은 어떠한가. 한편 이 두 악법 통과에 적극적이지 않다 하여 ‘정통 야당’에게 점수를 줄 일은 아니다.

열린우리당이 분가해 나간 후 애꿎은 호남 민심을 부채질하는 데 분주한 민주당은 지역주의 선동에 관한 한 한나라당 뺨치는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조순형 대표 등의 당 수뇌부는 물론 추태에 동참하는 민주당 다수 의원들도 총선 연대의 기준대로 하자면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 힘들 것이다. 결국 보수 정당들에서 낙선 대상자를 솎아 내는 것보다는 낙선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될 사람을 찾는 게 훨씬 더 쉬우리라.

얼굴 몇 바꿔 변화기대 금물

그렇게 되면 기성 정치권을 모조리 부정하는 셈이 되는데 온건 개혁적인 성향이 강한 시민단체들은 그것까지 바랄 생각은 없다. 기껏 못난이들 중에 자질이 최악인 정치인들을 퇴출시키자고 할뿐이다. 그러면 묻는다. 무엇이 그리 겁나서 몸을 사리느냐고. 정치판을 갈아 엎어버리면 큰일이 나느냐고. 왜 진보정당을 대안으로 보지 못하느냐고. 정치 개혁이 지지부진하면 정치권 전체에 레드카드를 내밀겠다고 말한 것은 바로 시민단체들이었다. 정개특위에서 보수정당들이 지역구를 늘리는 대신 비례대표 의석수를 깎음으로써 진보정당과 여성들의 진출을 막는 데 일치단결하는 것만 봐도 이들에게 심판을 내릴 때도 됐지 않은가.

정치인 얼굴 몇 명 바꾸는 것으로 정치가 달라질 수 없다는 것은 16대 국회가 증명해준다.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이 아무리 큰 성과를 거두더라도 진정한 ‘유권자 혁명’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 편집위원

* 필자는 문학평론가입니다.
* 본문은 '언론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이 힘을 모아 만든 신문' 경남도민일보 http://www.dominilbo.co.kr/ 2월 17일자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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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2/17 [17:3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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