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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갑이 정대화보다 인성이 나빠 돈받았나?
한국 엘리트들의 시민 바보 만들기
 
김현   기사입력  2004/02/08 [08:33]

 오마이 뉴스에서 우리 정대화 교수의 약력을 보니 이렇게 써 있었다.

“정대화 기자는 오마이뉴스 고정칼럼니스트 입니다. 상지대 교양학부 교수로 한국정당정치 연구소 부소장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현재 2004년 총선 물갈이국민연대 공동집행위원장으로 활동 중입니다. 국민의 눈높이에 부합하는 상식적인 정치를 만들고 가꾸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 정도 되면, 한국에서 엘리트 중의 엘리트라고 할수 있겠다. 그러니 오마이뉴스나 경향신문이라는 일간지에 별 시덥지도 않지만 글을 쓸수 있는 권위를 자동적으로 부여받지 않겠는가?

나는 요즘 한국의 정치 엘리트들과 지식 엘리트들의 글과 행동을 보면서, 기가 막혀 입이 딱 벌어진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이건 완전히 시민들 앞에 두고 누가 더 ‘시민들 바보 만들기’를 잘하나 참피온 뽑는 대회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시민들 바보 만들기 대회'에 며칠전 총선시민연대라는 시민단체 연합체 성격의 엘리트들까지 가세했으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려고 이 모양인지.

정대화 교수는 오마이 뉴스의 1월 30일 자 칼럼 <물갈이에도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 유쾌한 물갈이를 위한 해명>과 경향신문 2월 5일자 칼럼 <물갈이 쌍두마차>를 통해서, 이번 총선에서의 ‘물갈이론’을 역설하고 있다.

“물갈이를 어항에 비유하면 썩은 물을 버리고 새 물을 넣는 두 동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썩은 물을 버리는 동작은 낙선운동에, 새 물을 넣는 동작은 당선운동에 해당한다. 물갈이를 제대로 하려면 당선운동과 낙선운동이 함께 일어나야 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옳은 것이고 경험적으로도 타당성이 입증되었다.” ------ 정대화의 경향신문 시론 <물갈이 쌍두마차> 중에서

“물갈이는 즐겁고 신나는 것이다. 물갈이는 시민운동가의 것도 아니고 전문가의 것도 아니다. 물갈이는 부정의 몸짓이 아니라 긍정의 몸짓이다. 물갈이는 과거에 대한 회고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 희망의 손짓이다. 물갈이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국민들의 것이다.” ------ 정대화의 오마이뉴스 칼럼 <물갈이에도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중에서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그러나 곰곰히 생각좀 해보자. 정말 아름다운 말인지. 나는 이런 글을 일러, 좋은 단어만 가지고 와서 사람들 현혹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물갈이’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내가 문제 삼고 싶은 것은 ‘물갈이’ 자체를 정치개혁의 목표로 보는 시각이며, 그것을 실질적으로 시민운동을 통해서 나타내고 있다는게 문제다. 앞서 총선시민연대에 대한 글에도 이미 썼지만, 이 "물갈이론"은 정치를 정치엘리트들의 개개인들의 행위로만 놓아두고 판단하는 것이라서 "정치개혁"이 아니라, "정치 죽이기"라는게 내 생각이다. 정치가 많은 사람들의 행위의 그물망이라는 것은 우리 정대화 교수같은 분에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언론이 시민에게 보여주는 정치인들의 정치행위, 정치인들끼리의 관계, 정치인들과 시민들과의 관계, 정치인들과 언론에 등장하는 지식인들과의 관계등이 모두 ‘정치’에 속하는 것이지, 정치를 달랑 정치인들만 하는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너무나 가소롭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정대화 교수의 정치를 개개인의 자질문제로 판단하는 시각은, 부패한 넘은 쥑일 넘이므로, 이런 넘들만 없애버리면 만사 오케이라는 시각이다. 그래서 우리 정대화 교수는 막무가네로 물갈이가 ‘와따’라 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현재처럼 정당 구조의 문화나 시스템을 그대로 놓아두고, 어느 누구로 ‘물갈이’를 한들 ‘부패’에서 자유로울수 있겠는가? 김근태의원이, 한화갑의원이 우리 정대화 교수보다 ‘인성’이 더러워서 ‘정치자금’을 받았겠는가? 엘리트 위주의 권위주의 정당구조를 그대로 놓아두고, 설령 정치 엘리트들을 부정부패를 그토록 혐오하는 아주 깨끗한(?) 우리 정대화 교수가 국회의원이 된다고 ‘부패’ 안 저지르란 법 없는것 아니겠는가?
재밌는것은 우리 정대화 교수도 자신이 열변을 토하는 ‘물갈이’의 한계를 잘 알면서 그런 희안한 소리를 한다는 점이다. 다음과 같은 그의 주장을 보자.

“2000년 총선에서 낙선운동은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정치개혁으로 발전하는 데는 실패했다. 물론 그 책임은 부패한 정치권에 있다. 그러나 시민운동의 입장에서도 낙선운동의 성과를 정치개혁으로 이어가지 못한 한계는 있는 것이다. 특히 부패인사에 주목한 만큼 깨끗한 인사에 주목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낙선운동의 이러한 교훈에서 당선운동의 근거가 마련되었다.” .” ------ 정대화의 경향신문 시론 <물갈이 쌍두마차> 중에서

우리 정대화 교수는 아무래도 정신을 잠시 전당포에 맡긴 것 같다. 2000년 총선에서 낙선운동이 큰 성과를 거뒀다는 것은 그만큼 ‘물갈이’가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그 ‘물갈이’는 "정치개혁으로 발전하는 데는 실패했”단다. 그리고 그 책임이 “부패한 정치권”에 있다나 뭐라나? 아니 부패한 정치인들을 “낙선운동”을 통해서 “물갈이”를 했는데, 또 “부패한 정치권”에 책임 있다니? 이것이 말이여 막걸이여?

또한 우리 정대화 교수는 말장난을 아주 심각하게 하는 재주를 갖었다. “물갈이”는 우리 정대화 교수의 주장처럼 “썩은 물을 버리고 새 물을 넣는” 행위가 아니다. 단지 "썩은 물"은 그대로 놓아두고 “고기”를 바꾸는 것이 “물갈이론“의 요체인데, 무슨 이런 장난질인가? 아마도 우리 정대화 교수는 정치인들을 "물갈이"하자고 할때의 "물"이라는 단어와, 어항속의 "물"이라는 단어가 같은 것에 잠시 착각을 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오염된 물 속에 싱싱한 “고기”를 바꿔 넣으면 곧바로 기형적인 “고기”가 되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현재의 한국 정치판의 정치엘리트들도 처음에는 깨끗한 “고기”였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과거 목숨을 걸고 민주화 운동을 했던 도덕성 높은 정치 엘리트들이 부정부패에 관여하는 기형적인 “고기”로 변한 것을 보더라도, 우리 정대화 교수의 말처럼 “골라먹는 재미가”있는, 깨끗한 사람 바꾸는 “물갈이”로는 정치개혁은 말장난에 불과한 거다.

정치 개혁의 요체는 어항속의 “물”을 바꾸는 것이다. 즉 사람보다 정당의 “시스템”이나 “구조”에 포인트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물”을 바꾸는 행위는 “시스템 혹은 구조 변화”에 속하는 것이고, 그것의 핵심은 시민들의 정당에 대한 의식변환을 통한 정당 내부의 민주주의에 있다고 할수 있다. 정당 구조의 민주화의 핵심은 정당 내의 정치 엘리트와 당원들 간의 수평적인 관계를 만드는 것인데, 이는 결국 소액 당비를 내는 시민들의 참여을 통한 생활정치만이 이런 수평적인 관계를 보장해 주는 것이고, 이런 관계가 되었을때 현재 그토록 우리 정대화 교수가 비분강개하는 “부정부패”의 근원은 사라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정대화 교수가 책임있는 이 사회 엘리트라면, 시민들에게 비록 지향하는 이념은 다를지언정 당내 참여 민주주의가 성실히 실현되고 있는 개혁당이나 민주노동당에 정당 참여를 시민들에게 독려해야 하는것이 옳은 것이며 ‘정치개혁’을 바라는 지식인이나 시민운동가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겠는가? 이런 정당문화 개혁으로 자연스럽게 참여 민주주의 혹은 탈권위주의라는 “물”속에서 살아 남지 못한 사람들은 “물갈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대화 교수는 이런 주장은 하지 않고, 사람바꾸는 “물갈이”가 “어항속”의 “물”을 바꾸는 것이라고 뺑기 치고 선, 다음과 같이 말한다.

“4월혁명과 광주항쟁은 군인들의 총구 앞에 무너졌고 6월항쟁은 양김과 지역주의 앞에 무너졌다. 환호하던 낙선운동은 지역주의 위에 기생하는 부패정치 앞에서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것이 오늘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는 저 파렴치하고 몰지각하고 몰상식한 정치모리배꾼들의 음습한 협잡정치로 나타나고 있다.” ------ 정대화의 오마이뉴스 칼럼 <물갈이에도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중에서

아, 얼마나 비장한가? 나는 우리 정대화 교수의 이와 같은 비장함에 가슴이 참 아팠다. 얼마나 우리 정대화 교수가 정치인들을 혐오했으면 “우리(정대화 교수) 눈앞에 펼쳐져 있는 저 파렴치하고 몰지각하고 몰상식한 정치 모리배꾼들의 음습한 협잡정치”라고 하겠는가? “물갈이”이라는 자신의 주장을 하기 위해서 꼭 저렇게 “마귀” 로 만드는 수법을 써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거 과거 군사독재시절이나 현재의 수구 언론들이, 정치 권력는 더러운 것이라면서 침 발라서 어느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은 우리 정대화 교수가 알려나? 이것도 다 낡은 정치관인 것이다.

또한 그토록 우리 정대화 교수가 “지역주의”에 분노한다면,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처럼 권력잡기 위해서 ‘지역주의’를 이용하는 정당 자체를 부정하면서 이런 정당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해야 말이 맞는 것이지, “물갈이”만 외치면 우리 정대화 교수의 속만 너무나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 아니겠는가? 말이야 바른 말이지, 개미들 등쳐 먹는 시건방진 젊은 신진 정치 지망생들로 몇 백번 정치인들을 바꿔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어차피 시민들 배신하며 상처줄텐데.

마지막으로 우리 정대화 교수에게 한마디 하고자 하는데, 한국 사회의 문제는 “정치”분야 보다는 바로 우리 정대화 교수가 몸담고 있는 “지식계”가 더 추하며 경쟁력이 떨어진다. 이것은 정치 평론가이며 시민운동가인 우리 정대화 교수도 동의하리라 믿는다. 나는 우리 정대화 교수가 시민들을 ‘무식하게’ 만드는 선동을 한다고 해서, 내게 또 그런 권력이 있다고 해서, 우리 정대화 교수를 ‘물갈이’ 대상 지식인으로 올릴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면, 우리 정대화 교수같은 분이 정당가입을 하지 않고 중립을 가장하여 여영구영 해설자 노릇을 하는 ‘기회주의적 처신’의 문화나, 교수라는 직함으로는 깨끗한 시민단체에서 정치인들 훈계하면서 ‘무식한’ 시민들에게 낙선 시킬 정치인과 당선시킬 정치인을 콕 찍어주는 것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오야붕’ 문화, 그리고 우리 정대화 교수처럼 경향신문이나 오마이뉴스같은 곳에서 칼럼을 쓰는 것은 좋지만 나와 같은 네티즌들의 비판은 “짖어라!” 하면서 그냥 눈 감으면서 ‘특권’을 누리려만 할뿐 직접 나서서 토론은 죽어도 하지 않으려는 문화를 고치지 않고서는, 우리 정대화 교수같은 분을 백번 ‘물갈이’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말이다.

나는 정대화 교수가 시민위에 군림해서 모든 문제를 ‘정치엘리트’ 개개인들의 윤리적인 문제로 치환하여 이념과 정책이 빠진 선거로 만들거나, 정치 엘리트들에는 “정치 모리배꾼”등 있는 욕 없는 욕 다 써가면서 마귀로 만드는 방법을 쓰면서, 우리 정대화 교수같은 지식 엘리트들의 "정치 독점"속에 시민들의 정당 참여를 방해하는 선동은 그만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 걱정마시라. 물론 우리 정대화 교수가 내 글에 직접 반론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 정대화 교수처럼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는 저 파렴치하고 몰지각하고 몰상식한 지식엘리트들의 음습한 협잡 글쟁이”라고 할 의향도 없다. 다만 앞으로 우리 정대화 교수의 애국심을 독점하지 마시고 시민들에게도 나눠주시고, “정치”는 우리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너무나 소중한 것이기에, 땀과 눈물을 모아서 발언하라는 것이다.

시대의 변화 흐름을 인식하지 못하면, 이렇게 정대화 교수처럼 자기 목을 대고 칼춤 추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란다. 우리 정대화 교수나 나같은 일개 시민들이 ‘정치개혁’에 관하여 혹은 ‘시민운동’에 대해서 논쟁하는 것을 우리 정대화 교수가 아무런 쪽팔림을 갖지 않게 되는 의식변환을 갖는게 바로 이시대의 흐름이다. 자, 그럼 우리 정대화 교수의 자존심이 있는지 한번 기대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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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2/08 [08:3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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