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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만에 한글신문을 만들게 하다
[한글 살리고 빛내기51] 한겨레신문에 이어 중앙일보가 한글로 신문을 내다
 
리대로   기사입력  2022/03/18 [02:16]

1945년 일본 식민지에서 벗어나 미국 군정이 되었을 때부터 배움 책은 한글로 만들었다. 그러나 신문은 일본신문처럼 한자를 섞어서 썼다. 일찍이 1896년 한글로 독립신문을 만든 일이 있으나 이어서 나오지 못했다. 그러다가 1988년 민중들이 돈을 모아 한글로 만드는 신문이 나왔다. 한겨레신문이다. 참으로 반갑고 고마운 일이었다. 나는 돈이 많지 않아서 몇 십 만원을 내고 창간 주주가 되었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딸 셋을 몇 만 원씩 내고 주주로 등록을 했다. 다음에 애들이 커서 어른이 되면 주주로서 한겨레신문을 사랑하고 보게 하려는 뜻이었다. 그때 한글을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주주로 참여했다. 공병우 박사는 몇 백 만원을 냈다. 그때 한겨레신문이 한글로 만든 것은 우리 역사에 매우 큰일이었고 한글 혁명이었다.

 

▲ 1896년에 나온 독립신문(왼쪽)에 이어 1988년에 한글로 한겨레신문(오른쪽)이 나왔다.     © 리대로

 

한겨레신문이 한글로 나왔을 때 얼마나 기쁘고 고마웠는지 모른다. 내가 한글전용운동을 하게 된 까닭도 배움 책은 한글로 만들고 한글로 가르치는데 신문은 한자를 섞어서 쓰는 것을 보고 잘못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겨레신은 한글로 나왔지만 다른 신문들은 모두 일본신문처럼 한자 세로쓰기로 신문을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신문을 한글로 만들게 하는 것은 중요한 한글운동이었기에 1988년부터 미국에서 돌아온 공병우박사와 함께 47신문의 날이면 해마다 신문사에 한글로 신문을 만들라고 건의문을 보내고 또 여기 저기 신문에 투고를 했다.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들 누리통신에도 글을 올렸다. 공병우 박사는 의사인 서재필 박사가 미국에서 돌아와 정부 요직을 맡으라고 해도 마다하고 한글로 독립신문내는 일을 한 것은 매우 잘한 일로 생각하며 서재필 박사를 우러러보고 있었다.

 

신문사 사장님과 편집국장님에게 보내는 건의문

 

오늘도 좋은 신문을 만들기 위해 애쓰실 줄 압니다. 며칠 있으면 뜻깊은 신문의 날입니다.

이 땅에 신문이 태어난 지 100년이 넘었고, 그 동안 신문이 나라와 겨레를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한 줄 압니다. 그런데 신문이 잘못하는 일도 있다는 소리가 들려서 아쉽습니다. 특히 시대가 많이 바뀌고 있는데 신문이 변하지 않고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신문들이 왜정시대 모습인 한자 섞어 세로짜기를 고집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발전을 위해 세상을 이끌고 일반 국민들보다 앞서야 할 신문이 뒤따라가고 있으니 안타깝습니다. 하루 빨리 한글 가로 짜기로 신문을 만들어 주시길 바라며 그 까닭을 몇 가지 말씀드립니다.

 

1. 신문은 어느 특정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이 쉽게 읽고 편히 볼 수 있어야한다고 봅니다. 한자는 읽기가 힘들고 세로로 짠 글은 읽기가 불편합니다.

 

2. 지금 학생들의 교과서는 물론 거의 모든 출판물이 한글 가로짜기를 하고 있습니다. 신문도 한겨레신문, 스포츠신문들이 한글 가로짜기로 해서 많은 국민이 잘 읽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간 신문들이 한자 섞은 세로짜기를 하고 있습니다. 마치 세월이 지나 불편한 차림이면서도 자신들만 좋으면 된다고 갓 쓰고 짚신 신고 다니는 꼴입니다.

 

3. 우리말과 한글이 살고 빛나는 것은 겨레의 꿈입니다. 이 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리말과 한글을 깔보고 죽이려 해선 안 됩니다. 일제에서 나라를 되찾고 우리말과 우리글인 한글을 마음 놓고 쓸 수 있게 된지 47년이 되었고, 많은 분들이 열심히 갈고 닦으며 즐겨 써서 나라의 말글로서 제 모습을 갖춰가고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와 겨레의 이익을 위해 더 힘써야 할 일간 신문들이 우리말과 한글을 깔보고 발전을 방해한다는 소리가 큽니다. 참으로 서글픈 일입니다.

 

신문이 우리말 한글로 가로 써야할 까닭이 많이 있습니다만 줄이겠습니다. 한자 섞어 쓰기를 고집하는 까닭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자 섞어 쓰기 때문에 주는 피해가 엄청납니다. 신문이 한자를 쓰는 건 온 국민이 공해에 시달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부득이 써야할 한자나 외국어는 한글과 함께 ( ) 안에 써주는 친절을 베풀어 주십시오. 한자나 영어를 섞어 써야 똑똑해 보이고 좋은 글, 좋은 신문인 시대는 지났습니다. 사람 됨됨이와 신문 내용이 좋아야 합니다. 하루 빨리 한글로 가로 써서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진 못난이, 한글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고, 사회의 목탁으로서 소임을 다해주길 바랍니다.

 

199443

한말글사랑겨레모임 대표 리대로

 

나는 이처럼 1991년까지는 전국국어운대학생동문회(으뜸빛 리대로)이름으로 그리고 이어서 1995년까지는 한말글문화협회(대표 리대로)이름으로 해마다 47신문날에 신문사들에 건의문을 보냈다. 그러나 조선일보에는 1994년 초에 한자혼용하자는 무리들과 함께 한글전용을 반대하고 나서는 것을 보고 오히려 일본신문처럼 더 한자를 많이 쓰라고 건의문을 보냈다. 그렇게 1995신문날에도 신문사들에 한글로 신문을 만들라고 건의문을 보냈는데 바로 중앙일보(사장 홍석현) 조일현 편집부 차장이 내게 전화를 했다. 중앙일보 사장과 간부들이 내가 보낸 건의문에 관심을 보이니 와서 자문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참으로 기쁘고 고마웠다. 다른 신문사는 모른 체 하는데 중앙일보가 반응을 보인 것이다.

 

▲ 1992년 4월 1일 한말글사랑겨레모임(대표 이대로) 이름으로 신문사 편집국장들에게 보낸 건의문(왼쪽)과 1993년 내가 한겨레신문에 투고한 글(오른쪽)     © 리대로

 

그래서 중앙일보 간부들을 만나보니 한글전용으로 바꾸면 독자가 떨어질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모험은 한겨레신문이 다 했고, 잘 될 터이니 아무 걱정을 말라. 한겨레신문도 잘 되고 있고 북한은 광복 뒤부터 수십 년 째 한글전용을 하고 있다. 한글로 바꾸면 조선일보와 동아보다도 독자가 늘어 1등 신문이 될 것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진짜 1995년 한글날부터 제호도 한글로 바꾸고 가로쓰기로 신문을 냈다. 홍석현 사장이 결단을 내린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때 미국에서 내는 한국일보는 오래 전부터 한글전용이었고, 미주 중앙일보도 한글전용으로 내고 있었으나 국내 신문은 한자혼용이었다. 독자들이 한자혼용에 길든 일본 식민지 세대이기 때문에 주저했지만 잘한 결단이었고 용기였다.

 

▲ 한자 제호에 한자혼용 세로쓰기로 내던 중앙일보(왼쪽)가 한글제호 가로쓰기(오른쪽)로 바꿨다     © 리대로


그때 나는 월간 중안 사보에 신문사 간부들과 한글로 제호를 바꾸고 가로쓰기로 내게 된 대담을 한 일이 있다. 그때도 간부들은 한글로 바꾸고 구독자가 줄까봐 걱정을 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글전용을 한 것은 한글역사에 길이 빛날 일이라고 칭찬하면서 앞으로 독자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보다 더 늘어나서 1등 신문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런데 진짜 독자들 반응이 좋았다. 구독자가 바로 동아일보를 넘어 조선일보를 넘보고 있었다. 내가 점쟁이는 아닌데 내가 내다본 그대로 되었다. 한겨레신문이 한글전용을 했던 때보다 놀라울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진짜 신문혁명이었다.

 

▲ 1995년 10월 중앙일보 사보에 신문사 간부들과 내가 나눈 한글전용 가로쓰기 특집 대담기사.     © 리대로

 

그러니 한자혼용 세로로 쓰던 다른 신문들이 놀라서 바로 한글 가로 쓰기로 신문을 냈다. 한자혼용을 주장하던 조선일보까지도 그랬다. 경향신문은 제호까지 한글로 바꾸었는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제호는 안 바꾸었다. 한겨레신문이 한글로 바꾼 것이 계기가 되었지만 중앙일보가 한글로 바꾼 것은 엄청나게 큰일이었다. 그런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아직도 제호를 한자로 쓰면서 가끔 꼭 필요하지도 않은 한자를 섞어서 쓰고 있다. 이씨는 ’, 김씨는 ’, 미국은 ’, 중국은 이라고 쓰고 어린이조선은 한자를 병기하고 있다. 한자검정시험으로 돈을 버는 한자 장사꾼들을 돕는 장삿속에서 그 짓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전북일보, 전남일보, 강원일보 들과 서울대, 고려대, 성균관대 신문들이 제호를 한자로 쓰고 있다. 시대흐름과 우리가 나갈 길을 모르는 못난이들이다.

 

▲ 이제 경향신문(왼쪽)은 제호도 한글로 바꾸었지만 조선일보(오른쪽)는 아직도 제호가 한자다.     © 리대로

 

그런데 나와 함께 해마다 신문날이면 신문을 한글로 내라고 성명서도 내고 신문사에 건의문을 보내던 공병우 박사가 199537일에 돌아가셔서 그해 한글날에 중앙일보가 한글로 바꾼 것을 보시지 못해서 안타까웠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도 중앙일보에 한글전용으로 내라고 하셨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다른 한글단체도 신문이 한글로 나오길 바라고 있었지만 공병우 박사와 내가 6년 동안 해마다 신문날에 끈질기게 노력한 것에 반응을 보인 중앙일보(사장 홍석현)가 고맙고 보람을 느낀다. 이 일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끈질기게 바른 길을 가면 좋은 열매를 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일이다. 지난날 신문이 우리말과 한글을 못살게 군 잘못을 뉘우치고 일본 한자말을 버리고 쉬운 우리말을 한글로 적는 말글살이에 앞장서주기 바란다.

 

▲ 1990년 4월 7일 ‘신문날’에 한글문화원(원장 공병우)과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으뜸빛 리대로)가 함께 낸 성명서. 나와 공병우 박사는 해마다 신문사에 건의문을 보내고 신문에 투고했다.     © 리대로

 

 


<대자보> 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국어인공지능학회 회장

한글이름짓기연구소 소장
세종대왕나신곳찾기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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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03/18 [02:1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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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대로 2023/11/13 [09:54] 수정 | 삭제
  • 들꽃 주중식 선생님, 고맙습니다. 건겅하시고 안녕하시길 바라고 빕니다.
  • 들꽃 주중식 2022/03/18 [08:21] 수정 | 삭제
  • 이대로 선생님과 공병우 박사님이 우리 말 글 역사를 바꾸어 주신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한글로 쓰도록 물줄기를 바르게 틀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