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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으뜸지킴이 백기완님을 기리며
[백기완 선생 1주기 기림글] 백기완 닮은 제2, 제3 불쌈꾼이 되자
 
리대로   기사입력  2021/12/20 [01:33]

우리 겨레는 우리말을 가지고 5000년 역사를 살아온 겨레지만 우리 글자가 없어서 2000여 년 전부터 중국 한자를 얻어 쓰는 바람에 우리 문화는 중국 곁가지로서 중국 말글에 기대어 살았다. 그러다가 1443년 세종이 우리 글자를 만들었으나 제대로 살려서 쓰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1910년에는 일본제국에 나라를 빼앗겨서 일본말이 나라말이 되었고 일본제국이 우리말을 못 쓰게 해서 우리말이 사라질 번했다. 그래서 우리말 속에는 중국과 일본 한자말이 많고 옛날부터 우리 한아비들이 쓰던 우리 터박이말이 많이 사라졌다, 그런데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 된 뒤에 조선어학회를 중심으로 일제가 못 쓰게 한 우리 겨레말을 도로 찾아서 쓰자고 했으나 일본 식민지 교육으로 일본 한자말을 한자로 쓰는 말글살이에 길든 이들이 학자, 정치인, 공무원, 언론인으로서 그걸 가로막았다.

 

거기다가 1990년대 김영삼 정권이 우리 말글을 살리고 빛낼 생각은 안 하고 한자조기교육과 영어조기교육을 하겠다면서 영어바람을 일으키니 우리 말글살이가 더욱 어지럽게 되었다. 본래 그 나라말은 그 나라 넋이고 정신으로서 그 나라 말글살이가 흔들리고 어지러우면 그 나라도 흔들리고 어지럽게 되는데 겨레 넋이 빠진 김영삼 정부가 남의 나라 말글을 제 말글보다 더 섬기니 나라가 흔들리고 기울어 나라살림이 어렵게 되어서 1997년에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회사와 공장은 국제투기꾼들에게 헐값에 넘어가고 많은 기업이 망해서 사람들이 일터를 잃고 노숙자가 생겼다.

 

그런 나라꼴을 보면서 나는 이오덕 선생과 함께 우리말을 살려서 다시 나라를 일으키자고 1998년에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공동대표 이오덕 김경희 이대로)을 만들고 우리말을 살리고 바르게 쓰려고 애쓰는 이을 우리말 지킴이로 뽑고 우리말을 못살게 구는 이를 우리말 훼방꾼으로 뽑아 발표했다. 첫 회 때 우리말 으뜸 지킴이로 공문서와 감사 문장을 쉬운 우리말로 쓰려고 애쓰는 한승헌 감사원장을 뽑고, 우리말 으뜸 헤살꾼으로 일본처럼 일본 한자말을 한자로 쓰자는 김종필 총리를 뽑았다. 그리고 2002년 한글날에는 백기완 선생을 우리말 으뜸 지킴이로 뽑았다. 백기완 선생을 뽑은 것은 1980년대부터 대학생들을 상대로 강연을 하면서 신입생이라는 말은 새내기, ‘써클이라는 말은 동아리라고 하자고 외치며 우리말을 남달리 사랑하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백 선생을 우리말 으뜸 지킴이로 뽑으니 많은 사람들이 백 선생은 민주투사, 통일운동 꾼으로만 알다가 놀라워하고 어리둥절해 했다. 그러나 일찍부터 백 선생은 남달리 우리말을 사랑하고 살려 쓰려고 애쓴 분이다. 우리말을 지키고 살리는 일이 민주주의와 남북통일, 자주독립국이 되는 데 매우 중요한 밑바탕이라는 것을 깨달아서 실천한 분이다. 내가 백기완 선생이 그런 분이라는 것을 안 것은 1994년 김영삼 정권 때에 조선일보가 일본처럼 한자혼용을 해야 한다고 날 뛰어서 그걸 막으려고 강연회를 열었는데 그 때 연사로 모시려고 찾아뵈었을 때였다. 그때 일본처럼 한자를 섞어서 쓰자는 서울대 국문과 이희승, 이숭녕 교수의 제자들과 중국 한문과 유학을 신봉하는 성균관 무리들이 김종필, 김영삼 들 친일 일제 세대를 등에 업고 친일 신문인 조선일보와 한 패가 되어 한글을 못살게 굴었다.

 

일본 식민지 교육으로 일본 넋이 가득 찬 정치인과 학자와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게 한 재벌들이 조선일보와 한패가 되어 간신히 살아나는 우리 말글을 못살게 구니 우리 말글은 연산군 때 다음으로 큰 위기를 맞았다. 그래서 한글학회에서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회장 안호상) 간부들이 그 대책회의를 할 때에 나는 좋은 말로 정부에 건의나 해서는 안 된다. 백기완 선생과 김동길 교수를 모시고 강력하게 맞서자.”고 제안했고, 내가 두 분 모시는 일을 맡았다. 그래서 나는 1980년대 백기완 선생이 만든 새내기, 동아리같은 우리말을 퍼트린 국어운동대학생회 후배와 함께 강연을 부탁하러 동일문제연구소로 찾아가 백 선생을 처음 만났다.

 

▲ 1994년 조선일보가 한자바람을 일으킬 때 조선일보 노조가 반발한 글을 실은 조선노보(왼쪽)와 1980년대 연세대 국어운동학생회 회장으로 “새내기, 동아리”란 말을 퍼트린 김슬옹박사.     © 리대로

 

 

그날 백 선생은 한글학회에서 내게 강연을 부탁하다니 뜻밖이다.”라면서도 조선일보와 김영삼 정부가 한패가 되어 우리 말글을 못살게 구는 것은 반민족 행위이니 막아야 한다며 나는 박정희 정부 때 다이빙이라는 미국말을 속꽂이’, ‘터널맞뚜레라고 쓰자면서 산동네에 있는 판잣집을 하꼬방이라고 하지 말고 달동네라고 하자고 했다가 경찰에 끌려가 빨갱이라며 얻어맞은 일이 있다. 일본말과 미국말을 쓰지 말자고 한다고 그랬다. 나는 국어학자는 아니지만 그런 자들은 찍어 내는 쌍 도끼다. 가서 한마디 하마!”라고 말씀하셨고 동숭동 한술재단 대강당에 김동길 교수와 함께 모시고 조선일보를 규탄하는 강연회를 열었더니 조선일보는 겁을 먹고 바로 그 못된 짓을 그만 둔 일이 있다.

 

그리고 나는 가끔 통일문제연구소로 백 선생을 찾아뵙고 우리 말글을 어떻게 지키고 살릴지 의논을 드리고 말씀을 들었다. 그때마다 백 선생은 잘못된 것은 보고만 있지 말고 바로 나서서 바로잡아야 한다며 내게 용기를 주었다. 백 선생은 반민주, 반민중 세력과 맞서서 싸우는 투사이면서 우리말을 남달리 사랑하고 실천하는 분이다. 일제가 못 쓰게 해서 사라진 우리말을 찾아서 쓰고 또 없는 우리말은 새로 만들어 썼다. 우리겨레는 오랫동안 중국 한문 속에 살아서인지 우리 터박이말을 천대하는 언어사대주의가 뿌리박혔다. ‘알몸이란 우리말보다 나체란 한자말을 더 좋게 보고 누드라는 영어를 고급스런 말로 본다. 그리고 일본 한자말과 미국말에 길들어서인지 오히려 외국말보다 우리 터박이말을 더 낯설어 한다.

 

그런데 백 선생은 이런 잘못을 보고만 있지 말고 그걸 쓸어버리고 우리 터박이말을 살려서 쓰고, 없으면 새로 만들어 써야 자주 통일과 독립국이 된다고 생각하고 그 언어사대주의를 때려 부수는 불쌈꾼(혁명가)이다. 2009사랑도 미움도 명예도 남김없이라는 책과 2015년 낸 자서전 버선발 이야기는 수백 쪽에 이르지만 한자말과 미국말이 한마디도 없었다. “새뜸(뉴스),불쌈꾼(혁명가)”처럼 사라진 우리말을 찾아서 쓰거나 없는 우리말은 새로 만들어 썼기에 일반인들이 읽기 어렵기도 했지만 우리말을 살리고 빛내려는 그 노력과 실천은 대단한 일이고 그 의미가 매우 컸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바른 길이면 홀로라도 가는 모습이 살아있는 우리가 배울 점이고 따를 일이다.

 

2009년 한겨레신문사에서 새 책 출판기념회를 할 때에 행사 진행자가 영상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멘트가 나오면 박수를 칩니다.”라고 멘트란 영어를 쓰니 백 선생은 대뜸 ! 영어 안 쓸 수 없나! 한겨레 사장 오라우! 자꾸 영어로 씨부렁대면 나, 사진 안 찍어!”라고 호통 치셨다. 이렇게 잘못을 보면 그 자리에서 바로 잡으려고 하는 분이다. 그날 한겨레신문사에서 대담을 할 때에 백 선생은 민주화투쟁을 하면서 아쉽고 한스런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87년 두 김씨가 서로 대통령을 하겠다고 싸워서 천년 만에 찾아온 민중승리 기회를 놓친 것이다. 동학농민 운동 때 민중승리가 실패한 것과, 광복 뒤 남북이 갈린 것과 함께 민중승리 기회를 놓친 큰 아쉬움이다.”라고 말했다.

 

▲ 2007년 중국 소흥 노신 고향에 중국 강택민 주석이 ‘민족혼’이라고 쓴 글과 함께 세운 노신 동상(왼쪽)모습이 백 선생과 닮았다. 2009년 한겨레신문사 출판기념회 때 찍그림(오른쪽),     © 리대로

 

그날 나는 백 선생은 이 시대의 최고 멋쟁이요 글쟁이란 생각과 함께 내가 중국 소흥 월수외대에 가서 한국어를 가르칠 때 좋아한 중국의 유명한 글쟁이요 사상가인 노신이 떠올랐다. 노신은 한자가 멸망하지 않으면 중국은 반드시 멸망한다.”며 중국 말글살이 중요성을 강조한 사람으로 중국인들이 우러러보는 반일 투사요 문학인이다. 노신은 없던 길도 많은 사람이 함께 가면 길이 된다며 옳은 길을 함께 가자고 했다. 그래서 노신의 고향 소흥에 가면 노신 동상과 함께 중국 주석 강택민이 민족혼이라고 쓴 빗돌이 서 있다. 나는 그 노신 동상을 보면서 백기완 선생과 노신, 두 분의 삶과 생김새까지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고 통일이 되면 황해도 백 선생 고향에 한글로 한겨레 넋이라는 글과 함께 백 선생 동상을 세우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사람들은 백기완 선생을 거리 민주 민중투사, 통일과 노동운동가로만 알고 있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백 선생이 우리 겨레와 우리말을 끔찍하게 사랑하고 실천하는 것은 더 위대한 것이다. 그 마음과 넋살(정신)이 백 선생이 쓴 노래글()과 글묶()갈마(역사), 새름(정서), 든메(사랑), 하제(희망), 달구름(세월), 때결(시간), 얼짬(잠깐), 글묶()” 같은 낯선 말들로 녹아있다. 이 말들은 그가 옛날 어려서 들은 말도 있지만 새로 만든 토박이말도 있다. 나도 칠십 평생을 우리말과 겨레 넋을 지키고 살려서 우리 말꽃을 피워 문화강국을 만들겠다고 발버둥친 사람으로서 이런 백 선생이 우러러보이고 고맙다. 언젠가 백 선생은 ! 이대로 선생! 나와 가끔 만날 수 없겠나!”라고 말씀하셨는데 가깝게 모시지 못한 것이 아쉽고 안타까웠다.

 

그런데 나와 함께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고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것을 막는 일을 한 이수호 선생이 백기완 선생 옆에 있어서 든든하고 고마웠다. 우리는 우리말보다 외국말을 더 좋아하는 못된 버릇이 있어서인지 우리말로 이름도 지을 줄도 모르고 새 말을 만들 줄도 모른다. 이 건 못난 일이다. 일찍이 전남도청은 백 선생이 만든 새뜸이라는 말을 살려서 전남 새뜸이라고 전라남도 소식지 이름으로 썼으며 많은 이들이 화이팅이란 외국말 대신 우리말로 아리아리 꽝이나 아자 아자라고 쓰자니 따라서 쓰고 있다. 나도 백기완 선생처럼 1990년대 하이텔 천리안 같은 피시통신에서 한글을 사랑하는 뜻벗(동지)들과 네티즌이란 말을 누리꾼이라고 바꾸어 쓰자고 했고, 요즘 사진찍그림’, 동영상은 움직그림이라고 바꾸어 쓰고 있다. 이 일은 백 선생이 외롭게 가는 길을 함께 가고 따르는 일이다.

 

▲ 백기완 선생과 같이 활동하는 이수호 선생과 함께 한 찍그림(왼쪽), 살아있는 이들이 백기완 선생의 삶과 정신을 이어받아 백 선생이 이루지 못한 민족통일과 민주 민중 꿈을 이룹시다.     © 리대로

 

그렇다! 백 선생은 외롭게 옳은 길을 힘들게 걸었다. 이제라도 백 선생이 가던 길을 함께 가자. 백 선생은 옳지 못한 것, 반민주 세력을 보면 사자처럼 무섭게 대들고 싸우지만 노래를 좋아하고 눈물도 많은 따뜻한 분이다. 2009년 한겨레신문사에서 새 책을 낸 출판기념회를 할 때에 진행자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으니 젊은이들을 보면 껴안아주고 싶다. 젊은이여 낭만을 가져라. 꿈을 가져라. 권력과 돈의 노예가 되지 말고 사람답게 살자.”라고 힘주어 말했다, 백 선생이 사랑한 젊은이들과 민중, 간절히 바라던 통일과 자주독립 넋살(정신)을 살아있는 우리가 이어받아 그 꿈을 이루어야 한다. 백 선생이 외롭게 가던 길, 우리말을 살려서 자주통일 밑거름으로 삼으려던 그 길을 함께 가서 큰 길이 되게 하자.

 

백 선생은 민주투사라면서 大道無門 敬天愛人같은 한문 붓글씨나 즐겨 쓰면서 일본처럼 한자를 섞어서 쓰고 미국말을 공용어로 하자던 권력에 눈이 먼 대통령들보다 한 차원 높은 참된 나라사랑 꾼이고 실천가였다. 그리고 백 선생은 민중이 촛불 혁명으로 권력을 잡게 해주니 중소벤처기업부라고 벤처란 미국말을 정부 부처이름에 넣고 그린 뉴딜정책이라고 외국말을 정책 명칭에 넣어서 마치 신라 경덕왕이 중국 당나라 지배를 받는다고 중국식 직제 이름과 땅이름까지 중국식으로 마구 끌어 들여서 언어 사대주의를 뿌리내리게 한 부끄러운 역사를 되풀이하는 얼빠진 정치인보다 더 훌륭한 지도자였고, 새해가 되면 중국 한문 사자성어를 지껄이는 교수들보다 더 참된 선비요 스승이었다.

 

이런 참된 선비, 스승과 함께 살았던 것은 우리 자랑이고 기쁨이었고, 우리 겨레 보람이었다. 이제 얼빠진 권력과 저만 잘 살리는 돈의 노예들에 시달리는 민중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고 안아주던 믿음직스런 백기완 선생은 이 땅에 안 계시다. 백 선생을 따르던 살아있는 뜻벗(동지)들이 우리말과 넋을 살려서 자주통일과 자주문화강국을 이루려던 백 선생 꿈을 이어받아 이루자, 우리 모두 제2, 3 백기완 선생이 되어 권력과 돈의 노예들인 반민족, 반자주통일 세력을 깨부수는 불쌈꾼이 되자. 그래야 민중이 큰소리치며 함께 잘사는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고 우리나라와 겨레가 살고 빛난다. 그리고 노벨상을 타는 사람도 많이 나오고 우리 자주문화가 꽃펴서 인류 문화발전에도 이바지 할 수 있다.

 

 

▲ ‘새뜸’이란 말을 살려서 쓴 전라남도 소식지(왼쪽) “전남 새뜸”과 한자말과 영어를 섞어서 쓰지 않고 백기완 선생의 삶과 정신을 담아 쓴 글묶(오른쪽)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리대로

 

 


<대자보> 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국어인공지능학회 회장

한글이름짓기연구소 소장
세종대왕나신곳찾기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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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12/20 [01:3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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