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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장례식 용어와 이름도 한글로 씁시다
[사는 이야기] 일본식 “謹弔 賻儀 追慕”라고 한자로 쓰는 이들이 많다
 
리대로   기사입력  2021/12/07 [22:29]

내 어머니가 며칠 전에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일제 강점기 태어나 1945년 일본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16살 어린 나이에 우리 아버지와 혼인을 했고, 아버지는 바로 일본군으로 끌려갔다. 그때 혼인을 하면 정신대와 위안부로 끌어가지 않기에 아버지가 군대에 끌려갈 줄 알면서도 어린 나이에 혼인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우리 아버지는 일본군이 되어 만주 흑룡강 가에서 소련군과 싸우다가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하게 되어 소련군 포로가 되었는데 조선 사람이라고 하니 그냥 풀어주며 알아서 가라고 해 천리 길을 걸어서 오다가 연변 동포들 도움으로 광복 한 달이 넘어 집에 올 수 있어 194718살에 나를 낳았다.

 

아버지께서 만주 벌판에서 가족이 있는 남쪽별을 바라보며 걷고 또 걷고 풀벌레 잡아먹으며 살아온 이야기, 어머니께서 아버지가 해방이 되고 한 달이 넘어도 오시지 않을 때 돌아가신 줄 알았다는 이야기와 함께 왜놈들이 곡식과 놋그릇까지 전쟁 물자로 다 공출하면서 사람들까지 전쟁터로 끌고 갔다. 다행히 네 아버지가 일본 관동군에 끌려갔다가 살아 돌아와 너를 낳을 수 있었다.”며 일제가 못된 짓을 많이 해 우리겨레가 고생을 많이 했던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그리고 나라가 잘되어야 그런 고통을 받지 않는다고 하시며 우리 6남매를 키우고 모두 대학까지 가르치느라고 엄청나게 고생을 하셨는데 힘들다는 말씀을 한 번도 안 하셨다. 참으로 고맙고 그 은혜가 하늘같은 데 제대로 모시지 못했던 것이 죄송스럽다.

 

▲ 며칠 전 93살에 돌아가신 어머니 빈소(왼쪽)와 1947년 18살에 나를 낳아 안고 계신 어머니.     © 리대로

 

 

이제 일제 강점기 세대인 내 아버지는 5년 전에 돌아가셨고 어머니까지 돌아가시니 우리 집은 대한민국 세대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어머니 돌아가시고 장례식장 모습을 보니 일제 강점기 풍경이 많이 남아있었다. 장례식장 조위금 봉투가 賻儀라고 한자로 써 있고, 맏상제 가슴에 다는 띠도 한자로 喪主라고 쓰여 있고, 조화나 조기에는 謹弔追慕라고 한자로 쓰고 있었다. 그래도 꽃에 단 띠에 보내는 사람 이름은 한글로 썼는데 추모 글은 삼가 故人冥福을 빕니다.”라고 한자혼용으로 되어있고 삼성전자 회사만 이름을 한자로 쓰고 추모 글도 한자로 謹弔라고 쓰고 있었다. 영정과 상주 팔에 검은 띠를 하는 것도 일본식인데 이렇게 한자를 쓰는 것도 일본식이다.

 

그러나 한글단체와 교회에서 보낸 화환 글씨는 한글로 써 있었다. 이렇게 한글로 쓴 것은 꽃집에 그렇게 부탁하기 때문이고 부탁하지 않으면 한자로 쓰는 것이 버릇으로 보였다. 한글학회 꽃을 한자 혼용으로 써 보냈다가 뒤늦게 다시 와서 한글로 바꾸는 것을 보니 그랬다. 꽃집이나 꽃판매협회에서 모두 한글로 쓰기로 정하고 혹시 한자나 외국글자로 부탁하는 사람만 그렇게 한자로 쓰면 좋겠다. 얼마 전에 전두환씨 빈소에 대기업들이 보낸 화환에도 삼성 이재용 부회장만 한자로 이름을 썼던데 우리 빈소에 온 삼성전자 화환만 한자였다 한글이 태어나고 574년이 지났고, 오늘날은 우리말을 한글로 쓰는 대한민국 시대이다. 이제 모두 한글로 쓰면 좋겠다.

 

▲ 한글단체 화환 꽃에 단 띠에 쓴 글씨는 한글인데 삼성전자 화환에 쓴 이름과 글은 한자였다.     © 리대로

 

어머니는 일제 강점기 농촌에서 태어나 어려운 일제시대와 6.25 난리를 겪고 넉넉지 못한 살림에 우리 6남매를 키우고 대학까지 보내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다. 한정된 돈으로 좀 더 많은 반찬거리를 사서 자식들 배불리 먹이려고 용산시장과 경동시장을 애용하셨다. 어머니는 늙어서 힘들어도 집에서 혼자 사시겠다고 해서 6남매가 하루씩 돌아가며 돌봤다. 나는 맏아들로서 모시지 못해서 죄송스러운데 돌아가시기 보름 전에 요양사가 어떤 자식이 가장 좋으냐고 물으니 큰아들이라고 하셨다니 가슴 아프다. 제 할 일을 똑바로 하라고 하신 말씀으로 안다. 내가 한글로 더 좋은 나라 만들어 일제 때처럼 고통을 받지 않게 살아야 한다고 나서는 것을 지지하신 어머니셨다. 나도 어머니처럼 꿋꿋하고 힘차게 살 것을 다짐하고 어머니 명복을 빈다.


<대자보> 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국어인공지능학회 회장

한글이름짓기연구소 소장
세종대왕나신곳찾기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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