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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은 한글지킴이 모이고 뭉치게 한 날
[한글 살리고 빛내기40] 정부가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려 해서 반대하다
 
리대로   기사입력  2021/09/16 [01:18]

한글날은 1446년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해례본을 반포한 날을 기념하여 1926년 일제 강점기에 조선어학회 회원들과 애국지사들이 만든 기념일이다. 이 날은 일본정부가 아닌 우리 겨레가 만든 날로서 한글을 살리고 빛내어 나라를 되찾겠다고 다짐하는 날이었고 우리 겨레를 일으켜 세우자고 뭉치는 날이었다. 한글을 살리고 잘 써먹으면 우리겨레가 힘센 겨레가 될 수 있는데 제대로 쓰지 않다가 나라가 기울어 일본에 나라까지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처음 1926년에 가갸날이라는 이름으로 출범했다가 1928년에 한글날로 이름을 바꾸었고 이날에 한글학자와 애국지사들이 모여서 한글을 살리고 지키자고 다짐하고 한글맞춤법과 표준말을 정하고, 우리말 말광을 만들었다. 그래서 광복 뒤에 우리 말글로 교과서도 만들고 공문서도 쓸 수 있었다.

 

한글날이 있었기에 한글 지킴이들이 모이고 뭉쳐서 그 큰일들을 해냈다. 그리고 미국 군정 때인 1946년 한글날부터 공휴일로 정했다. 1946년 한글날에는 덕수궁에서 기념식을 하고 시민 2만여 명이 모여 축하 시가행진도 했다. 1948년 대한민국을 세우고도 계속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기념했다. 그런데 노태우 정부 때 기업들이 공휴일을 줄여달라고 하니 정부는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뺀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바로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이름으로 노태우 대통령에게 한글날은 공휴일에서 빼면 안 된다고 건의하고 정부에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한글이 살고 빛나야 겨레가 빛나는데 아직도 제 말글로 이름도 짓지 않고 쓰지 않으며 신문도 한글로 만들지 않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글날을 더 성대하게 기념해야 하는데 그 반대이니 간신히 살아나려는 한글 새싹이 죽어버릴 수 있어서다.

 

▲ 1990년 5월 한글회관에서 국어운동학생동문회(회장 이대로)가 연 한글날 지키기 토론회모습     © 리대로

 

그래서 나는 정부에 이 문제를 가지고 공개토론을 하자고 제안했으나 정부가 응하지 않아서 한글단체 사람들끼리 한글회관에서 공개토론을 하고 정부에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회장 안호상) 이름으로 그 반대 건의를 했다. 그리고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회장 안호상)은 한글회관에서 그 대책회의를 했는데 한갑수 선생이 청와대는 국어운동학생회 말이라면 꼼짝도 못합니다. 그 젊은이들을 내세워 반대운동을 합시다.”라고 말했다. 한갑수 선생은 박정희 정부가 국어운동학생회 건의를 듣고 한글전용정책을 시행하기로 한 것을 생각하고 한 말이었으나 그 때 노태우 정부는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김종필, 김영삼 갈은 정치인과 손잡은 정권이라 박정희 정부와 질이 완전히 다른데 그걸 잘 모르고 한 말이었다. 그래도 방법이 없어서 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회장인 내가 나서서 후배 학생들을 이끌고 반대운동하기로 했다.

 

나는 먼저 전국 30여 대학 국어운동학생회 대표들을 이끌고 문화부장관을 만나서 절대로 한글날은 공휴일에서 빼면 안 된다고 담판하려고 문화부에 갔는데 버스 두 대에서 전투 경찰들이 내리더니 우리들을 외워 쌌다. 그리고 이어령 장관은 차를 타고 빠져나간 뒤에 최진용 어문과 과장과 직원들이 우리들을 직원 식당으로 안내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최 과장에게 이어령 문체부장관은 국무회의 때에 장관직을 걸고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지 못하게 꼭 막아야 한다.”고 말했고 최 과장은 장관에게 꼭 전하겠다면서 문체부는 온 힘을 다해서 막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그 뒤 각 부처 장관실에 한글날을 절대로 공휴일에서 빼면 나라가 망한다고 반대 건의문을 보냈다. 그런데 각 부처는 총무처 소관이라며 총무처로 넘겼고 총무처는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기로 논의한 일이 없다고 회신을 보내왔다.

 

▲ 1990년 무더운 여름 정부가 공휴일 축소 논의한다고 할 때 상황을 내가 한겨레신문에 쓴 글.     © 리대로

 

그리고 몇 달 조용하다가 여름 휴가철에 공휴일 축소 회의를 하려고 해서 노동단체에서 그걸 막으려고 종합청사에 갔다는 말을 듣고 나는 국무총리실에 급히 전화로 절대로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면 안 된다. 나도 국어운동대학생회 학생들을 데리고 바로 종합청사로 가겠다.”고 말했더니 국무위원들에게 그렇게 전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조금 뒤 그런 논의를 안 하기로 했다고 해서 문화부 장관실에도 확인했더니 안하기로 했다고 했다. 나는 바로 그 이야기를 한겨레신문에 투고를 했다. 그런데 그 여름이 가고 가을에 소문도 없이 국무회의를 하고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버렸다. 나는 국어운동학생회 후배들과 탑골 공원에서 한글독립선언을 하고 명동까지 그 잘못을 알리는 시가행진을 한 뒤에 한글날 공휴일 살리기 거리서명운동도 했다.

 

▲ 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는 후배들과 한글날 공휴일 반대 거리서명과 우리말 사람운동에 나섰다     © 리대로

 

우리 젊은 한글 지킴이들이 21년 동안 한글날마다 덕수궁 세종대왕동상 앞에 모이고 뭉쳐서 한글사랑을 외쳤는데 1991년부터는 그러지 못했다. 후배 학생들은 학교에 가야 되고 졸업생들은 직장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다음 주 일요일에 잠실 올림픽 공원에 모여 한글날 공휴일 되찾기 운동에 나서기로 다짐하고 한글날 국경일 제정과 우리말 살리기 운동에 나선다. 그때 정부가 공휴일이 많아 나라 경제가 어렵다면서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경제단체와 정치인들이 한글날을 희생시켰다. 그렇지만 그때 문화부장관이라도 장관직을 걸고 강력하게 반대했더라면 한글날은 살렸을 터인데 안 그래서 다시 되찾느라고 한글단체와 시민들이 15년이나 고생을 하고 국력이 낭비되었다.

 

거기다가 일본 식민지 교육세대인 김영삼, 김대중이 정권을 잡으려고 김종필과 야합한 뒤 한자와 영어 조기교육을 꾀하고, 한글전전용법을 폐기하고 한자혼용법까지 만들려 해서 연산군 때 다음으로 한글이 위기를 맞았다. 나는 그때 그들과 싸우는 싸움판 선봉에 서서 싸우면서도 한글날 국경일 제정과 우리말 살리기 운동에 나섰고 한자와 싸움은 이겨냈다. 그러나 중국 한자 섬기기가 미국말 섬기기로 바뀌어 영어가 우리 말글살이를 몹시 어지럽히고 있다.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지도자를 잘못만나면 나라가 기울고 국민이 괴롭다. 그러나 세종대왕 닮은 지도자가 나올 것이다. 나는 깨어있는 국민들과 끝까지 한글을 살리고 빛내어 언어사대주의를 몰아내고 우리 말글 독립 꿈을 꼭 이룰 것을 다짐한다. 그래야 우리 겨레가 살기 때문이다.

  

▲ 한글날이 공휴일에서 빠진 뒤 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는 덕수궁이 아닌 올림픽공원에서 모였다     © 리대로

 

 


<대자보> 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국어인공지능학회 회장

한글이름짓기연구소 소장
세종대왕나신곳찾기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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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9/16 [01:1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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