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의 우리말글사랑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한자이름 李澤魯, 한글이름 ‘이대로’로 바꾸다
[한글 살리고 빛내기26] 한글사랑은 말보다 실천, 우리글로 이름쓰자
 
리대로   기사입력  2021/06/04 [13:55]

우리겨레는 5000여년 긴 역사를 가진 겨레로서 그 옛날부터 우리말이 있었으나 우리 글자가 없어서 2000여 년 전 삼국시대부터 중국 한자를 빌려서 말글살이를 했다. 그래서 사람 이름도 金庾信(김유신)처럼 한자로 짓고 썼다. 그러다가 575년 전 조선 초기에 우리 글자인 훈민정음(한글)이 태어나서 우리 말글로 말글살이를 시작했지만 조선 말기까지 중국식으로 한자이름을 짓고 썼다. 그렇지만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뒤에 주시경선생이 국문이라고 부르던 우리 글자를 한글’, ‘조선어라고 부르던 우리말을 한말이라고 우리말로 새 이름을 짓고 쓰면서 제 스스로의 이름과 아들딸 이름도 우리말로 바꾸어 짓고 쓴 일이 있다.

 

그 일이 우리 말글로 이름을 짓고 쓴 새싹이었다. 그러나 일본이 우리겨레를 없애려고 우리말을 못 쓰게 하면서 일본식으로 창씨개명까지 강행하는 바람에 우리식 이름과 우리말이 사라질 번했으나 1945년 광복 뒤에 주시경 선생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 말글로 이름을 짓는 사람이 생겼다. 그리고 1967년에 서울대 국어운동학생회에서 우리 말글로 이름을 짓자고 고운이름 뽑기행사를 하면서 우리말로 이름을 짓고 한글로 적는 새바람이 일어났다. 나는 그때 제 이름을 우리말로 짓고 쓰는 것이 한글을 살리고 빛내는 첫 걸음이라고 보고 1968년에 내 아버지가 지어준 이택로(李澤魯)라는 한자이름을 내 스스로 이대로라고 한글이름으로 바꾸었다.

 

그렇게 한글이름으로 바꿀 때에 나는 첫째 부르고 기억하지 좋아야 하고, 둘째 세상 모든 사람이 한자를 좋아하더라도 나는 나대로 한글을 사랑하고 쓰겠다는 뜻을 담고, 셋째 나는 맞아들이니 아우들 이름과 어울리게 집안 돌림자인 자를 살려서 짓자.”, ‘이대로라고 짓고 나와 함께 농촌운동을 하는 뜻벗(동지)들에게 새 이름을 설명하면서 이 한글이름에 나는 죽을 때까지 한글운동과 농촌부흥운동, 두 길을 걷겠다는 내 인생철학과 목표도 담겼다.”고 말했더니 그 벗들이 군자(君子)는 대로행(大路行)”이라는 옛말이 떠올라 참 좋다고 칭찬했다. 그리고 나를 더 믿어주고 내가 하는 국어운동을 지지해주어서 더욱 힘이 났다.

 

 

▲ 1968년 친구가 내게 보낸 엽서에 ’이대로‘라는 내 한글이름을 쓰면서 “대로 각하”라 불렀다.     © 리대로


그렇게 대학 농촌운동 모임인 농어촌연구부 뜻벗들이 내 한글이름을 칭찬하고 지지해주어서 3학년 때 내가 우리 농촌운동 모임의 회지 학농편집장을 맡았을 때에 전에는 한자혼용으로 만들던 것을 내 직권으로 한글전용으로 만들겠다고 하니 선후배 모두 찬성했다. 그때 우리 모임 선후배들은 호적 없는 형제라면서 아주 가깝게 지냈기에 나는 농촌운동 동기들부터 내 편으로 만들고 신임을 얻었고 그것이 큰 힘이 되었다. 그때 친구들은 내가 한글사랑이 나라사랑이라고 외치니 무슨 정치라도 할 사람처럼 보았는지 내게 편지를 할 때에 대로 각하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때 나는 무슨 일을 할 때에 가까운 사람부터 나를 믿고 따르게 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깊게 깨달았다. 사실 내가 한글운동을 시작한 동기와 바탕은 가난하고 무식한 농민이 잘 살려면 쉬운 말글살이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고 대학 2학년 때 농촌문제 토론회에서 그런 주장을 해 상도 탄 일이 있어 벗들이 나를 더욱 신임했었다.

 

▲ 전에 한자혼용으로 만들던 동아리 회지(왼쪽)“學農”을 내가 편집장을 맡고 표지와 속을 한글전용으로 만들고(오론쪽) 그 책에 ‘이대로’라는 한글이름으로 쓴 내 글(그땐 등사기로 책을 냄)     © 리대로


이렇게 내가 내 이름도 한글로 바꾸고 내가 참여하는 농촌운동 동아리 회지를 한글로 만든 것은 입으로만 한글을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실천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고, 우리말을 한글로 써도 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뜻이었다. 또 그 당시는 대학 교재가 거의 한자혼용이었고, 교수들이 시험을 볼 때에 답안지를 한자로 써야 학점을 잘 주었지만 나는 한글로만 써서 점수가 좋지 않게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사람은 대한민국 말글을 사랑하고 써야 한다고 생각했고 우리 말글로 말글살이를 해야 우리나라와 겨레가 빛난다고 봐서 철저하게 한글전용을 실천했다. 그래서 모임 방명록에 다른 이들은 모두 이름을 한자로 써도 나는 이름을 이대로라고 한글로 떳떳하게 썼다.

 

사실 그렇게 내 이름을 한글로 쓸 때에 한자를 좋아하는 이들은 비웃기도 했지만 부르고 외우기 쉬운 한글이름이어서 덕을 볼 때가 많았고 한글이름이 내게 일생동안 한글운동을 하게 만들었다. 한글단체 어른들도 내 얼굴은 몰라도 내 이름은 알고 찾는 일이 많았다. 1989년 노태우 정부가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뺀다고 해서 한글학회 허웅 회장, 공병우 한글문화원장 들이 참여한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회장 안호상)은 한글학회에 모여서 그 대책회의를 했는데 뚜렷한 묘안이 없어 서로 얼굴을 보고 있을 때에 한갑수 선생님이 걱정할 거 없습니다. 청와대는 국어운동대학생회 말이라면 꼼짝을 못합니다. 학생회 이대로라는 애 불러서 앞장을 세우면 됩니다.”라고 말하셨다.

 

그 때 나도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회장으로서 그 자리에 막내로 참석을 했는데 한갑수 선생은 내 이름만 기억하고 옛날 박정희 대통령이 국어운동학생회 건의를 듣고 한글전용 정책을 시행한 일이 떠올라서 한 말이었다. 그때 회의에서 우선 한글단체 이름으로 정부에 건의문을 보내고 내가 전국 국어운동학생회 후배들을 이끌고 문체부에 항의방문을 하고 탑골공원에서 대학생들과 한글날 지키기 기자회견을 했었다. 이렇게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이름이 남다른 한글이름이라서 한글단체 어른들은 무슨 일이 있으면 나를 찾고 앞세웠다. 그 때에 이름이 그 사람 삶을 이끌 수 있으며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깨달았고 이름 때문에 힘들기도 했지만 한글을 살리고 빛내는데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우리나라 사람은 새 이름을 짓거나 새 낱말을 만드는 방법과 기술이 아직 없고 개혁과 변화에 둔해서 아직 한글과 한글이름이 제대로 빛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다른 분들도 호적 이름은 지금 쓰는 한자이름을 그대로 쓰더라도 글이름(필명)이나 또이름(아호)이라도 제 인생철학과 꿈을 담아 스스로 우리 말글로 지어서 자주 쓰고 불러볼 것을 권한다. 이름을 멋있게 잘 짓고 스스로 좋다고 생각하고 즐겨 쓰면 그 이름대로 멋있는 삶이 될 것이고 꿈이 이루어진다는 걸 내가 경험했기에 하는 말이다.

  

▲ 나는 모든 사람이 한자로 이름을 써도 한글로 서명(왼쪽)을 하고 우리 말글로 이름을 짓고 쓰자(오른쪽)고 외치는데 옛날에는 한글이름을 비웃기도 했지만 요즘은 좋다고 하는 이가 많다.     © 리대로


<대자보> 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국어인공지능학회 회장

한글이름짓기연구소 소장
세종대왕나신곳찾기모임 대표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21/06/04 [13:55]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