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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체는 욕망의 징후도 기호의 전달자도 아니다
[갈무리의 눈] 포스트휴먼 시대 객체들을 다룬 '객체들의 민주주의' 눈길
 
이수영

객체들의 민주주의에서 사물인터넷, 돌, 학교, 초신성, 동성혼인법, 아메바는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모두 평등하다. 이 민주주의에서는 인간이든 비인간이든 존재하는 모든 것은 행위자, 객체, 기계, 회집체, 물질, 존재자, 실체 등으로 불린다. 

 

인간과 비인간, 사회와 자연의 이분법을 해체한 브루노 라투르의 민주주의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행위자(actor)라고 불린다. 이름 그대로 행위 하지않는 객체들은 무국적자 비존재이다, 그러나 브라이언트의 평평한 민주주의에서는 행위 하지 않고 휴면하는 객체들, 주민등록 없는 투명객체들도 모두 한 표다. 이 목소리 없는 이방의 서발턴(subaltern) 객체들은 주민등록을 하거나 귀화하여 국적을 취득할 수도 있는 예비국민이이라는 동일성 위에 있지 않다. 접두사 un을 떼서 ‘친숙하게(heimlich)’ 만들 수 있는 ‘친숙하지 않은 것’(unheimlich)이 아니다. 이들은 언제나 뒤로 물러서 있는, 앎으로 소진되지 않는 ‘기묘한 낯선 존재’(티모시 모턴)이다. 이방의 것을 귀화시키지 않고 이방의 것인 채로 인정하는 객체들의 민주주의다.

 

그러나 이 이방의 것은 멀리 저쪽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객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자의 내부 즉 내 안에도 있는 것이다. 기묘한 낯선 존재자로서의 타자는 우리 자신의 타자화이기도 하다. 스피노자의 말처럼 우리는 우리의 신체가 그리고 저쪽에 있는 저 신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결코 알지 못한다.

 

▲ 포스트휴먼 시대의 객체들의 다중우주를 다룬 레비 브라이언트의 『객체들의 민주주의』     © 갈무리. 2021.

도래할 모든 실재, 즉 자기타자화로서의 이 구성적 존재자인 객체는 그렇다고 뭐든지 될 수 있고 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존재는 아니다. 모든 객체가 다른 모든 객체와 관계할 수 없으며 게다가 객체는 다른 어떤 객체에 직접 접근할 수 없다. 나의 눈은 적외선을 볼 수 없다. 즉 사피엔스라는 객체의 눈은 적외선이라는 객체와 관계할 수 없다. 적외선을 볼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역능은 그 객체의 고유한 포맷이다. 객체는 다른 객체와 회집하여 차이를 생산해 내며 변화하면서, 동시에 여전히 자기 자신으로 남아야하기 때문이다. 변화하면서도 지속하는 것이 존재자이다.  

 

고래로 우리는 어떻게 한 존재자가 변화 운동하면서도 그 자신인 채로 남아 있을 수 있는지 궁금해 해왔다. 도토리가 참나무가 되지만 도토리는 도토리이고 참나무는 참나무인 이 기이한 형상-질료 논쟁인 도토리 논쟁은 아직 계속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들뢰즈와 가타리가 오디프스를 분열시켰듯이 브라이언트도 그레이엄 하먼처럼 객체를 분열시킨다. 객체는 ‘잠재적 고유존재’와 ‘국소적 표현의 층위’로 분열된다. ‘잠재적 고유존재’는 물러서 있는, 즉 잠재적인 것으로 포맷되어 있는 것이고 ‘국소적 표현’은 여러 성질과 특성들로 변화 운동하는 것이다. 잠재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 모두 개별 객체에 속한다. 하먼은 브라이언트가 도토리 안에 미리 참나무를 넣어 놨다고 비판하지만 브라이언트 자신은 그런 적 없으며 도토리 안에는 도토리의 잠재적인 것과 성질들이 들어 있을 뿐, 참나무라는 잠재는 들어 있지 않고 다만 도토리가 맺는 다른 객체들인 땅, 바람, 비, 햇볕 등의 객체들과 교란하는 회집체 속에서 순전히 창조적인 과정으로 발생하는 것이 참나무라고 설명한다. 

 

이 창조적인 과정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객체들은 다른 것들로 환원되지 않고 물러서 있어야 한다. 즉 토끼는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나 쿼크 모두를 늘어놓은 것과 같지 않고, 또한 파랗고 딱딱하며 동그란 성질들의 집합으로 나의 머그잔이 환원되지 않고, 다른 천체들과의 중력관계로 저기 저 둥근 달은 환원되지 않는다. 물러선 객체는 다른 객체와의 관계에서 받은 자극을 자신의 포맷된 역량에 의해 번역하여 받아들이며 차이를 발생시킨다. 자신의 성질, 부분, 관계로 환원되거나, 번역 없이 외부에 동일화된다면 존재자들은 결국 이것이나 저것이나 껍질을 까보면 같은 재료로 반죽된 단 하나의 전체일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브라이언트의 평평한 존재론은 유일한 세계(the universe)가 아닌 다중우주(pluriverse)이다. 

 

객체들의 인터스텔라에서 라투르가 관계(inter)에 집중했던 반면 하먼의 ‘객체지향존재론’과 브라이언트의 ‘존재자론’은 객체(stella)에 집중한다. 관계에서 존재자로의 전환, 즉 존재론으로의 전환은 객체들의 자율성을 보장한다. 객체들은 관계의 결과물이 아니라 관계를 구축하는 능동적 생성 메커니즘 이다. 

 

브라이언트는 객체를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은 ‘놀라움’일 것이라고 말한다. ‘결코 완전히 제어될 수 없는 우연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는’ 브라이언트의 분열된 객체들은 자본세 기후위기, 4차혁명, 전지구적 전염병 대유행 시대에 더 이상 인간이 식민할 수 없는 객체들의 자율성에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 객체는 인간의 해석대상도 욕망의 징후도 기호의 전달자도 아니다. 객체로서의 인간은 다른 자율적인 객체들과 연루되어 있다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 글쓴이는 미술작가, 진실연대자 회원입니다.


기사입력: 2021/05/18 [20:06]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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