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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혐오를 혐오한다
[정문순 칼럼] 난민은 우리의 거울, 난민혐오는 일그러진 우리의 자화상
 
정문순   기사입력  2019/12/23 [15:21]

12월 18일 열린 경남이주민센터 경남민변 주최 이주민 심포지움 "난민, 두려워하지 말고 환영하세요"에서 발표한 글입니다.-글쓴이 주.

  

혐오표현의 정의

 

한국 사회에서 혐오표현또는 혐오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주로 2010년 전후로 평가되고 있다. 물론 혐오표현이라는 말이 없었던 시대라고 해서 표적대상에 대한 혐오표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회에 널리 퍼져 있었지만 그 이전에는 우리 사회의 감수성이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는 데 이르지 않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혐오표현이 비로소 사회문제로 떠올랐다면 그것에는 어떤 계기가 있었을 것이다. 추정한다면, 시대가 흐르고 세상이 바뀌면서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이 높아졌거나 사회적 약자의 인권이 이전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아지거나 하는 등의 변화가 작용했다고 본다.

  

다른 나라나 세계적인 흐름에서 보자면, 혐오표현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개념이 규정되었고 최근까지도 규정되고 있다. 아마 시대의 추세에 따라 계속 바뀔 것이다. 유엔과, 유럽을 포함한 서구권에서는 일찍이 혐오표현에 대한 개념 규정이 이루어졌고 대책을 마련한 곳이 많다. 서구 사회가 혐오표현에 예민한 것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대규모의 인종학살을 경험한 역사적 전례가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된다.

  

국제사회가 마련해 놓은 혐오표현의 정의 중 즐겨 인용되는 것이 있다. 1997년 유럽평의회 각료회의 권고 제20호에서 인종적 증오, 제노포비아, 반유대주의를 확산, 선동, 추진, 정당화하는 모든 방식의 표현, 또는 소수자, 이주민, 이주 배경의 사람들에 대한 공격적인 민족주의, 종족 중심주의, 차별, 적대에 의해 표현되는 불관용을 포함한 모든 불관용에 기반한 다른 방식의 증오라고 혐오표현을 규정한 것이 그렇다.

 

반대유대주의를 똑 떼어 특별히 언급하는 것에서 보듯 유럽은 혐오표현의 정의에 대해 서구인의 경험을 중심으로 하고 있기는 하다. 한편 2015년 유네스코는 혐오표현에 대해 특정한 사회적, 인구학적 집단으로써 특징되는 표적에 기반을 둔 위해적 선동 특히 차별, 적대, 또는 폭력을 옹호하는 표현이라고 규정했다. 개별국가 차원의 사례를 들면, 호주인권위원회는 개인적 특성을 이유로 공공 차원에서 행해지는 공격, 모욕, 위협, 욕설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한편 국내에서 이루어진 혐오표현의 정의를 살피자면, “어떤 개인 집단에 대하여 그들이 사회적 소수자로서의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들을 차별혐오하거나 차별, 적의, 폭력을 선동하는 행동”(국가인권위원회), “특정 속성으로 묶을 수 있는 집단을 표적해 이뤄지는 표현으로, 역사적으로 차별을 받아온 집단에 대한 부정적 편견에 기반한 적대적인 표현”(이승현, ‘혐오표현, 법적으로 규제해야 할까, 인권20193월호, 국가인권위원회) 등의 규정이 시도되었다.

 

혐오표현의 개념 규정들을 종합해 보면, 두 가지 속성을 추릴 수 있다. 우선 집단성이다. 혐오표현의 표적 대상은 개인이나 집단을 가리지 않을 수 있지만, 이때의 개인이라고 하더라도 낱낱의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집단적 속성에 기초하고 특정 집단의 공통된 정체성을 보유한 개인이다.

 

또다른 속성은 표적 대상이 정치적 소수자라는 것. 당연하게도 정치적 다수를 이루는 집단이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당연성이 우리나라처럼 소수자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종종 무시된다. 예를 들어 여성혐오라는 용어에 대해 동의하지 않거나 공격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남성혐오같은 용어는 논리적으로 성립하기 힘들다. 외국인 차별에 대비하여 만들어진 한국인 ()차별용어도 언어도단에 가깝다. 국제 사회에서는 최근에 사이버 상에서 혐오표현이 급증함에 따라 이에 대한 개념 규정이나 대책이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소수 집단에 대한 공격이나 차별이 혐오표현의 기본 속성이라고 한다면 혐오표현은 그 역사가 길고도 유구할 것이다. 우리의 경우 혐오는 이미 사회적으로 만연했지만 혐오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전에는 차별’, ‘편견같은 순화된표현이 대체로 쓰였다고 한다. 사회구성원들이 약자에 대한 혐오 실태의 심각성을 지금보다 훨씬 더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딴에는 사회적 약자를 생각해서 만든 용어가 오히려 차별이나 편견에 기초한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었다.

 

가령 지금은 일반화된 다문화가정의 경우, 2005년 정부가 이 말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기 이전만 해도 이주민 지원 단체 일각에서 코시안’(코리안+아시안이 이룬 가정)이라는 희한한조어를 만들어 쓰는 움직임이 있었다. 2002년 월드컵 경기 당시 한 이주민 지원 단체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국가대표 팀의 상징인 붉은티셔츠를 입고 한국 팀을 응원하는 행사를 언론에 보도자료로 배포한 적이 있다. 이주민들이 개인적 차원에서 얼마든지 한국 팀을 응원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주민들이 한국을 좋아하는 모습을 조직화하고 그것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는 누군가의 태도는 이주민에 대한 한국인의 혐오나 차별 정서를 수용하거나 전제한 것과 무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씁쓸하다.

  

이주민은 한국 사회의 소수집단 중 가장 늦게 합류한 부류이다. 이주민이 비전문 외국인력의 유형으로 이 땅에 처음 유입된 것은 1991년이다. 그러나 가장 늦게 생긴 이 소수집단은 가장 일찍 혐오표현에 노출된 집단이기도 하다. 이주민은 한국 사회에 기반을 갖고 있지 않거나 기반이 약한, 소수자 중의 소수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주민 중에서도 가장 약자인 난민은 차별과 혐오의 집중적인 피해자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에서 난민 문제가 대두된 것은 불과 1년 전이다. 제주도의 예멘 난민 유입 이전만 해도 한국인들에게 난민은 외신보도에나 가끔 등장하는 존재였다. 한국인 대부분은 평생 만난 적도 없고 그 존재도 낯설기 짝이 없는 난민은, 예멘의 제주 유입으로 하루아침에 초대받지 않은 위험한 이방인으로 규정되었다. 예멘 난민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소동은 여기서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학계에서는 제주 예멘 난민 유입 이후 난민 혐오세력이 급성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근거 없는 가짜뉴스가 유포되거나 이주민이나 난민 기사에 악의적이고 인종차별적인 댓글로 혐오를 확산하는 현상이 만연했다.(2018 인종차별 보고대회) 1인 미디어가 증가하면서 인종차별적인 동영상이 제작되어 SNS를 통해 파급력이 커지기도 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난민 혐오단체가 생긴 것도 이즈음이었다. 난민 혐오단체 회원들은 지난해 8월 경남이주민센터가 함안에서 외국인 유학생이 출입국 단속 공무원한테 집단폭행을 당하는 영상을 언론에 폭로했을 때, 한동안 경남이주민센터에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집중적인 항의전화를 걸어왔다. 그래도 그때만 해도 이들은 전화 또는 인터넷 상이라는 간접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데 그쳤지만 지난 4월에는 양상이 달라졌다. 난민 혐오단체는 서울의 국회의사당 앞에서 보편적 출생등록제도 법안을 대표발의한 원혜영 의원을 규탄하고, 미등록이주아동까지 포함하는 이주아동 지원조례를 추진한 경기도의회 앞에서 규탄 시위를 벌이고 나서, 창원으로 방향을 틀어 421일 일요일 오후 경남이주민센터 입구에서 난민 추방과 난민법 폐지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그 사람들 때문에 평소 같으면 드나드는 이주민들로 한창 붐비던 경남이주민센터는 한산했고, 이상한 단체가 시위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이주민들이 오지 않았으며 소식을 모르고 왔던 일부 이주민들은 무서워서 밖에 나가지 못했다. 경남이주민센터는 난민 반대 단체가 얼굴을 드러내고 눈앞에서 위협적인 시위를 벌인 사실에 대해 무척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판단하고 그들의 집회 발언이나 인터넷 공간에서 모욕적이고 허위사실에 근거한 말을 퍼뜨린 사람들에게 법적인 제재를 가하고자 했다. 그랬더니 고소를 관두지 않으면 그냥 두지 않겠다는 협박전화가 걸려왔고, 여성 이주민 직원은 신원미상자의 전화 폭언에 노출되기도 했다.

 

혐오스피치의 특징

 

혐오스피치 발화에는 일정한 특징이 있으며, 워먼 코우바처럼 그 특징을 몇 가지로 유형화한 학자도 나오고 있다. 경남이주민센터 앞에서 혐오스피치 집회를 하거나 인터넷에서 난민 혐오를 조장하는 사람들의 발언에서도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이 특징을 통해 혐오발언자의 목적이나 의도, 심리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첫째는 윤리적 낙인찍기다. 자신이 공격을 가하는 대상을 윤리적으로 매도하는 데 집중하는 것은 흔하고 보편적인 방식이다. 난민이나 이주민을 혐오하는 사람들 또한 이들에 대해 윤리적으로 심대한 결함이 있는 사람들로 치부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공격하기 좋은 방식은 없다고 생각한다.

 

가족이 가란다고 혼자 살고자 온 이 사람들”(421난민대책 국민행동집회 발언[이하 421일 집회 발언이라고 함])

 

불법체류자 중 쫓겨날까봐 한 번 해보자는 식으로 난민 신청하는 게 33%나 된다는 것” (상동)

 

둘째는, 난민이나 이주민을 공격하는 사람들은 당연한 말이지만 난민 개념이나 난민법에 대한 심각한 무지나 곡해를 드러내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국량만한 크기의 거울을 갖고 있다. 그 거울을 통해 비쳐지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다. 난민법에 대한 무시나 무지가 난민 혐오를 낳고 그것은 난민법이 심각하게 문제 있으니 교정하거나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저는 전쟁국에서 오는 난민만 받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인종, 종교, 정치적으로 박해만 받으면 다 난민 할 수 있답니다. 인도 정치인, 태국 명문대생이 난민 인정 받았고 중국에서도 난민으로 들어온답니다. 심지어 우리나라 병역거부자가 프랑스에서 난민인정을 받았다네요.” (421일 집회 발언)

 

난민 신청만 하면 혜택 받고 지원 받고 취업하면 정식으로 취업비자. 이민을 누가 오겠습니까. 무사증 난민법만 악용하면 이리 이 땅에 머무는 게 쉬운 것을요. (상동)

  

셋째, 난민은 부당한 이익을 얻으려고 한국인에게 불이익을 가하고, 한국인과의 갈등을 부추기는 존재임을 부각한다. 청년실업에다 저성장이 고착한 시대에 특히 한국인들의 불안을 자극하기 쉬운 것은 경제적인 것이다. 일자리, 임금, 복지, 서울 집중 등.

 

자국민 일자리는 위협받고 외국인들과 자국민들을 경쟁시키고 있습니다. 서민의 일자리는 외국인 불법체류자가 잠식하였고, 일거리를 찾지 못한 대한민국의 가장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있습니다.” (421일 집회 발언)

 

불법체류자 33만 명이 세금조차 안내고 돈 벌고 살고 있어요.” (상동)

 

점점 이방인들의 문화로 인해 이 땅의 것이 사라져가는 것” (상동)

 

최소 15조씩 송금은 대체 어디서 나와서 자국으로 다 퍼갑니까.” (상동)

 

다문화라는 단어와 의미를 강조하고 반복할수록 국민들과 갈등만 유발할 것입니다” (상동)

 

우리는 헬조선이라 말하고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세계 2위에 소득 대비 빚 부담 사상 최대라는데 왜 가짜난민 불체자들은 코리안드림이라 하며 옵니까.” (상동)

 

국민이 목숨 바쳐 지켰고 국민이 온갖 의무를 다하며 이끌 나라 국민에게 온갖 책임은 다 지우고 복지 혜택, 지원은 가짜 난민 불법체류자와 그 자녀에게 쏟아 붓는 정책 좀 그만하십시오” (상동)

 

국민이 먼저다” (난민대책 국민행동 네이버카페 게시 화면)

 

불법체류자로 인해 신음하고 있는 국내 기업과,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는 자국민”(난민대책 국민행동 유투브 게시물 자막)

 

가짜 난민! 세금폭탄!” (421일 집회 후 배포된 유인물 내용)

 

정작 세금 내는 국민들은 받지 못하는 가짜 난민 귀족 혜택” (상동)

 

외국인에게 밀려나는 지방의 현실. 분노 폭발” (난민대책국민행동 유투브 게시 화면)

 

난민 반대에 찬성...세금 축내지 마라. 지금도 먹고살기 힘들다.” (오마이뉴스 기사 댓글)

 

대한민국의 국민들, 우리 순수한 시민들이 내는 세금으로 가짜난민과 이주민들이 온갖 지원과 혜택을 받고 있고” (‘민주노총 및 경남이주민센터의 고소 및 겁박에 대한 난민대책 국민행동의 입장’, 난민대책국민행동 네이버카페 게시글)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는 국민의 희생에 기대어 혜택을 누리는 가짜난민과 불법체류자, 다문화 이주민들은 과연 어떤 의무와 책임을 지고 있습니까.” (상동)

 

넷째, 난민은 한국 사회에 무임승차하여 경제적 이익을 가로채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 사회의 안전과 안보에 위협적인 존재임을 부각한다. 안전과 안보는 한국인들에게 매우 예민한 문제이고, 한 사회나 국가의 근간을 지탱한다는 측면에서 혐오주의자들이 난민 문제와 연결 짓는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유럽에 만연한 성범죄-불법 이주민(가짜 난민)을 많이 받은 나라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율이 급격히 높아진다.” (421일 집회 유인물 내용)

 

가짜 난민! 안전 위협!” (상동)

 

“<묻지 마>식 난민신청자의 증가로 위협받는 대한민국 안보” (상동)

 

불법 난민으로 망한 유럽, 왜 한국이 따라가는가?” (상동)

 

자국민 위협하는 외국인 퍼주기 정책 즉각 중단하라” (난민대책국민행동 네이버카페 화면에 띄운 글)

 

난민, 불법체류자, 국민이 아닌 사람으로 바꾸려는 시도 (...) 법치가 무너지려는 대한민국” (난민대책국민행동 네이버카페 게시글)

 

다섯째, 적반하장의 전략. 반사 전략 또는 미러링 전략이라고 한다. 차별주의자가 스스로 자신을 차별주의자라고 말하거나 차별주의자임을 수긍하는 법은 결코 없으며, 혐오주의자가 스스로 그것을 인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돈 남 말하기인 이 발화 방식은 자신에게 적용되는 규정을 자신을 공격하는 상대방에게 그대로 되돌려주는 수법이다. 자신을 혐오집단이라고 비난하는 주장에는 그렇게 말하는 상대를 혐오단체라고 내몰고,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주장에는 상대를 인종차별주의자로 비난하기. 그럼으로써 이들은 자신들이 받는 비난이 터무니없고 부당하고 악의적인 것이며 누명을 뒤집어썼다고 호소한다.

 

국민을 역차별하고, 나쁜 한국인 만들기나 다름없는 한국인 혐오주장을 당장 멈추시기 바랍니다.” (421일 집회 발언)

 

왜 우리를 잠재적 인종차별자로 매도하면서 차별금지법까지 만듭니까.” (상동)

 

아픈 데를 깊이 찔렸나 봅니다. 구구절절 맞는 말, 할 말이 없으니 인종차별주의자 혐오주의자 프레임 씌우기 덧붙여서 차별금지법까지 밀어붙이기” (난민대책국민행동 네이버카페 게시글)

 

여섯째, 이슬람포비아. 난민 혐오발언자들은 이슬람 혐오에 사로잡힌 경우가 많다. 이들의 눈에 난민 = 이슬람이다. 난민과 무슬림을 동일시하는 사람들은 난민이 왜 나쁜 사람들인지 입이 아프게 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 사회 일각의 이슬람 혐오 정서에 슬쩍 편승하는 것만으로 도 충분하다. 기존에 형성된 혐오 정서에 기대어 새로운 혐오를 재생산하는 경우는 우리 사회에서 진보적 민주주의자들이 용공’, ‘빨갱이’, ‘전라도 사람으로 공격당하는 것에서 보듯 익숙한 수법이다. ‘이슬람은 악이다’, ‘난민은 이슬람이다’, ‘그러므로 난민은 악이다라는 삼단논법이 가능하거나 먹혀든다면 우리 사회에 뿌리 내린 이슬람 혐오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알려주거니와, 난민 혐오가 스며들 수 있는 기반이 이미 탄탄하게 구축되어 있음을 말한다.

 

난민 인정된 사람이 () 거의 대부분이 이슬람들이라는 것” (421일 집회 발언)

 

무서운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이 나라에 들어오고 있다는 거죠. (...) 이슬람이 평화의 종교인가요? 그리고 지금 무슬림들이 많이 들어오는데 이 학생[모국 이란의 종교 탄압을 이유로 난민 인정 받은 중학생-편집자 주]은 그건 괜찮나 봅니다.” (상동)

 

일곱째, 난민을 혐오하는 사람들은 그것에 그치지 않고 난민을 지원하는 내국인에 대해서도 똑같이 혐오를 표출한다. 난민을 혐오하고 배제하는 사람들이 기대고 있는 정서나 인식은 단일민족 순혈주의이다. 그들의 눈에, 한국인이면서 난민을 좋아하는사람은 민족의 순수성이나 순혈을 더럽히는 무리이거나 적을 이롭게 하는 배신자이므로 영역 바깥으로 솎아내야 한다.

 

민족의 하나 됨을 부르짖는 자들이 자신과 같은 민족구성원을 생각이 다르다는 구실로 배제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자가당착이다. 그러나 자기동일성에 집착하는 이들일수록 자기 내부의 이질적인 존재를 솎아내어 추방하려는 데는 예외가 없다. 무엇보다 이주민 지원 단체를 공격해야 그들에게 조종되는 이주민이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한국인답지 않은 한국인은 한국인의 범주 바깥으로 내몰아야 마땅한 존재들이다.

 

 

▲ 난민 혐오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만 보일 뿐     © 구글 이미지

 

국민보다 외국인을 우선하는, 국민이 아닌 외국인을 위한 협력자들은 외국으로 가서 하는 게 어떻습니까.” (421일 집회 발언)

 

인권팔이 놈들은 서민의 적이자 국가반역자야. 피해자보다 범죄자 편을 들고 한국인보다 외국인을 위해서 일하는 인간말종들이다.” (2018.8.2. 다음미디어뉴스, SBS “‘불법 체류잡는다며 무차별 집단 폭행...‘적법’ vs ‘과도기사에 달린 댓글)

  

허울 좋은 이주민센터. 너네도 결국 월급 받아 처먹자고 있는 거 아니야? 지네 밥그릇 유지해야 하니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일에 일조하고 있는 거지.” (2019.4.22. 오마이뉴스 홈페이지 게시글)

 

이주민 지원 단체? 쓰레기소굴 풋” (2019.4.23. 오마이뉴스 홈페이지에 게시된 글)

 

너거들이 하는 짓이 일제 때 매국노들과 뭐가 다르냐! 너거들은 욕 들어도 싸다! (2019.3.18. 다음미디어뉴스 “‘세금 빼앗아가는 난민혐오집회에 모욕죄 고소할 것기사에 달린 댓글)

 

인권팔이들은 돈에 눈이 멀어 나라를 통째로 팔아먹고 있다” (상동)

 

여덟째, 그리하여 난민이나 이주민들은 한국 사회가 당면한 모든 사회악의 근원으로 등극하는 지경에 이른다. 2018년 기준, 난민 인정자 900여 명, 인도적 체류자를 난민 인정자에 포함할 경우 3,000여 명, 국적 취득 이주민과 미취득 이주민을 포함한 200만 이주민은 극히 약소한 숫자만으로도 한국 사회의 뿌리를 뒤흔드는 만악의 주범이 될 만큼 막강한 세력이다.

 

우리 민족은 저출산 실종되고 살해당하고 자살당하고 학대당하고 고령화가 되어 이 땅에서 사라져가고 있으니 그 대책으로 다문화를 지향하지요.” (421일 집회 발언)

 

현재 세계의 다문화정책(난민 수용 정책의 변화)-다문화를 추진하던 영국,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선진국에서 폭동, 방황, 문화갈등, 종교갈등 등으로 다문화를 폐지하는 정책 실시” (421일 집회 유인물 내용)

 

우리 아이들 미래가 난민들과 이주민들 땜에 얼마나 더 들어야 정신 차릴래? 지금도 자국민이 피땀 흘려 내는 세금을 이주민들과 난민들을 위해 펑펑 쓰고 대한민국 자국민들을 역차별하는 정책 때문에 진짜 불쌍하고 가난해서 밥도 못 먹는 자국민들이 자살하거나 굶어죽거나 병들어도 병원 못가고 죽어간다.” (2019.3.18. 다음미디어뉴스 “‘세금 빼앗아가는 난민혐오집회에 모욕죄 고소할 것기사에 달린 댓글)

 

성범죄나 실업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들은 그 자신이 성범죄나 실업에 취약한 계층이기 때문일까. 그런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평소 사회취약계층에게 일말의 관심도 없다가 난민 이야기만 접하면 한국인 취약계층의 안전과 일자리를 자동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드러내는 자기모순의 심리는 과장, 허위의식, 엄살 부리기와 만난다.

 

자신의 두려움과 위기를 남에게 드러내는 사람은 실제로 두렵거나 위기의식을 느끼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자신의 과장된 공포를 드러내기 좋아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 사람에게 두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아직 닥치지 않은 먼 미래의 불확실함이 자신의 삶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데서 오는 두려움일 뿐이다. 난민이나 이주민이 점점 숫자가 많아져서 자신의 이익이 조금이라도 덜어지는 일이 없도록 미리 그 가능성을 자르자는 태도임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가능성을 조기 차단함으로써 그 자신은 지금 느끼는 안전과 평온을 털끝만큼의 영향도 없이 지속하겠다는 것이며, 난민 때문에 나라가 망할 것 같이 떠드는 혐오주의자들의 속내는 실제로는 자신의 지위가 매우 안정적이고 배타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불안은 불안의 과시를 통해 스스로 안정한 상태임을 확인하고 다지는 행위일 뿐이다.

  

혐오의 심리는 소수집단이 목소리를 내거나 권리가 나아지기 이전의 상태를 정상적이고 평온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좋았던 옛날로 되돌리고자 하는 바람이다. 외국인혐오의 심리는 한국인 일자리를 빼앗거나 한국을 접수하려고 덤비는 이주민이 없는 시대, 이주민이 한국인의 필요에 따라 최소한만 존재하고 무권리 상태인 시대를 열망한다. “혐오는 여성은 집으로, 외국인은 자기 나라로, 장애인은 시설로, 성소수자는 밀실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를 전한다.”(한국사회 혐오표현 진단과 대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

  

혐오스피치가 거칠고, 저급하고, 듣기 거북할 정도로 불쾌하고, 발화자에 대한 혐오를 낳게 할 만한 발언임은 틀림없다. 혐오주의자들은 대한민국이 난민 때문에 망하기 직전의 나라임을 설득시킬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무리한 수단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혐오는 폭언과 욕설, 상스러운 말만 동원하지는 않는다. 착한 얼굴을 한 혐오에 대해서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난민 배척에 기름을 부은 제주 예맨 난민 유입

 

제주도에 예멘 난민이 상륙한 2018년은 차별혐오가 사회적으로 기승을 부리던 시기로 평가된다. 인권단체가 2011년부터 진행했지만 진척이 없었던 차별금지법을 다시 추진한 해가 촛불로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린 직후인 2017년이다. 그러나 다음해인 2018년은 역설적이게도 차별과 혐오가 두드러진 한 해로 평가되었다. 미투운동과 제주 예멘 난민 입국을 둘러싸고 여성과 난민에 대한 혐오선동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고 공고화했기 때문이다. 제주의 예멘 난민은 난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나 정책의 개선을 이끈 것이 아니라 거꾸로 난민 배척의 화롯불에 기름을 들이붓는 결과로 이어졌다.

  

앞에서 난민 혐오세력의 입을 따라가 보았지만, 혐오표현이 빈발할 수 있는 것은 난민반대 세력만의 책임은 아니다. 예멘 난민들의 제주도 입국 직후 국민청원게시판에는 난민법 폐지를 주장하는 글이 70만여 건의 찬성을 받았다. 여기에 대해 정부는 어떤 태도를 취했나. 법무부는 답변에서 난민 신청자의 SNS 계정 제출을 의무화하는 등 신원검증을 강화하고 있고, 마약검사, 전염병, 강력범죄 여부 등 엄정한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으며, 예멘 난민의 출도를 금지했고, 당년 61일부터 예멘을 무비자 예외국가로 지정하여 더는 예멘에서 난민이 들어올 수 없도록 막았다. 참으로 신속한 대응이다. 정부 대책에서 난민신청자의 신원검증 강화는 가짜 난민을 가리겠다는 취지지만, 개인의 SNS 계정까지 들여다보겠다는 것은 개인정보를 침해할 우려가 높고 그 자체로 인종차별적인 행위라는 점은 고려 대상도 되지 않았다. 마약검사, 전염병, 강력범죄 운운하는 정부의 태도에서도 난민 혐오에 동조하거나 편승하는 듯한 인식이 드러난다.

 

주목할 점은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진원지에는 유투브나 1인 미디어 등 공신력 없는매체, 혐오를 내세운 민간단체의 활동뿐 아니라 가짜뉴스를 퍼뜨리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지는 기성 미디어들도 가세하고 있다는 것이며, 실상 이들의 영향력은 막중하다. “예멘난민과 관련한 혐오표현의 사회적 논란에서 보듯이 SNS를 통한 집단 갈등을 부추기는 차별 선동적 행위들이 증가하고, 이것이 오프라인으로 확장되는 상황에서, 몇몇 언론들이 왜곡된 정보를 제공하거나 재생산하여 유포함으로써 사회적 갈등을 더욱 조장하기에 이르렀다.”(2018인종차별 보고대회)

 

몇몇 언론중에는 영향력이 막강한 보수언론이 포함되어 있다. 당시 중앙일보는 예멘 난민 신청자들의 SNS 계정을 조사하여 난민 신청자 중에서 본국에 있을 때 자신의 페이스북에 총 들고 찍은 사진을 올렸거나 무장 세력을 지지하는 게시물을 내건 사람들이 있다고 단독기사로 보도한 바 있다.(2018.7.15. [단독] 제주 '예멘 난민' 페북엔 총 든 사진도 있다) 그러나 전쟁터가 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본국에서 총을 들었다는 것을 이유로 그들을 무장 세력이나 위험인물인 양 취급하는 것이 얼마나 경솔하고 위험한 논리인지, 난민들은 무장 세력이나 징집을 피해서 온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조선일보의 경우, ‘난민쇼크라는 제목의 연재 기획기사에서 난민을 성범죄와 연결 짓는 일부 여성들의 두려움에 대해 이슬람의 여성차별적 문화와 미투 이후 높아진 한국의 페미니즘 의식을 갖다 붙이는 전문가의 의견을 싣기도 했다.(2018.7.3. [난민쇼크]성범죄 위험 높다? 여성들 더 민감한 '난민 루머') 혐오주의자 중 힘을 갖지 못한 이는 자신의 인격을 스스로 실추시킴을 무릅쓰고 막말을 쓰는 것에 반해, 기성언론은 점잖고 진지한 언어를 쓰거나 SNS 조사나 전문가 취재 등 그럴싸한 근거나 출처를 내세우면서 혐오를 조장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리하여 제주 예맨 난민 신청자 급증에 대해 정부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하는 사이 난민들을 향한 혐오의 말들이 그 자리를 지배했다.”(2018인종차별 보고대회, 2018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례집재인용) 난민과 외국인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와 편견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는 흐름 속에서 그나마 국가인권위원회가 정부에 국제인권과 난민 기준에 부합하는 확고한 입장과 대책을 주문한 것이 정부 기관으로선 유일하게 나온 인권친화적인 태도였다.

  

혐오표현이 몰지각한 일부 시민, SNS, 개인 유투브나 규모가 작은 신생 인터넷매체 등을 통해서만 퍼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문제를 매우 단순하게 보는 태도임을 강조하고 싶다. 궁극적인 책임은 위험한 보도를 일삼는 기성언론의 조장과, 여론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정부의 방조가 합작한 데서 나온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득표 계산에 여념이 없는 보수 정치인까지 가세하면서 혐오는 큰 폭발력을 갖는다. 2017년 외국인에게 기본권을 확대하는 개헌안이 논의되던 당시 원혜훈 의원은 4대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비국민인 외국인에게 거주 이전의 자유를 줄 경우 휴대전화나 밥솥을 이용하는 생활형 테러가 발생할 수 있다는 망언을 하기도 했다.

  

난민을 포함하여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조장을 극복하는 일은, 궁극적으로 정부, 기성언론, 정치인 등 우리 사회에서 공신력을 인정받거나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는 세력과 싸우는 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혐오표현에 대해 이 말 저 말 쓰다 보니, 혐오표현을 쓰지 않으면서도 혐오를 조장하는 현상이 혐오표현을 쓰는 것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점잖은 목소리를 띠는 혐오, 기성 미디어와 난민혐오단체의 합작이나 역할분담이 낳은 혐오 문제는 차후에 논의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참고문헌]

 

UN인종차별철폐협약 한국심의대응 시민사회공동사무국·서울지방변호사회, 2018 인종차별보고대회 자료집, 2018.7.20.

 

2018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례집(11)

 

Gagliardone, I.,Gal, D.,Alves, T. & Martinez, G.(2015). Countering online hate speech. Paris:UNESCO.

 

이승현, 혐오표현, 법적으로 규제해야 할까, 인권 20193월호, 국가인권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부산대학교 인권센터, 한국사회 혐오표현 진단과 대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 2019.5.24.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2018-2019 시민사회연보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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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2/23 [15:2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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