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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눈엣가시', 투쟁의 상징 서민호는 누구?
송영길 의원, 전남 고흥 출신 월파 서민호 선생 추모사업회 구성 밝혀
 
김철관   기사입력  2019/02/25 [10:16]

 

▲ 송영길 의원     ©


인천출신 죽산 조봉암 선생의 행적을 조명해왔던 민주당 송영길 의원이 월파 서민호 선생의 행적을 찾아 나섰다
.

 

전남 고흥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송영길(4선 인천 계양의원은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한 식당에서 열린 고흥향우회·고흥언론인회’ 합동 모임에 참석해 월파 서민호 추모사업회 발족의 정당성을 말했다.

 

이 자리에서 인사말을 한 송영길 의원은 월파 서민호 선생 추모사업회에 많은 관심을 가져 달라고 강조했다.

 

먼저 송 의원은 제가 인천이 지역구인데인천시장을 할 때 죽산 조봉암 선생의 복권을 위해 노력해 그가 무죄를 받았고 죽산평전도 나왔다며 현재 죽산에 대한 책들이 많이 활성화돼 있고시장 재직시절 동상을 만들려고 시민모금 운동을 전개해 현재 10억을 모았다올해 죽산동상 제막식을 한다고 말했다죽산 조봉암 선생은 지난 1959년 7월 31일 이승만 정권에 의해 사법살인이 됐고올해가 69년이 된 해이기도 하다.

 

이날 송 의원은 우리 고흥 출신 중에서도 그에 못지않은 정치인이 월파 서민호 선생이라며 박정희 정권에서 김대중 선생이 있었다면이승만 정권에서 월파 서민호 선생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송 의원은 지금까지 제대로 월파 선생에 대해 정리된 것이 하나도 없다책도 제대로 된 것이 없다후배들로서 월파에 대한 책이라도 모아 만들어 보자는 뜻에서 월파 서민호 선생 추모사업회를 만들어 보았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그분의 삶의 행적을 보면 대단하다남북통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열심히 했고돌아가시기 직전 죽어서도 통일을 보고 싶다통일로 옆에 자신을 묻어달라고 해 거기다 무덤을 썼다며 제가 어렸을 때부터 우리 부친께서 월파 얘기를 자주했고그래서 제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던 사람이 월파 서민호 선생과 현재 지역구인 인천의 선배인 죽산 조봉암 선생후광 김대중 선생고 노무현 대통령문재인 대통령으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월파 선생의 딸이 생존해 있다며 고흥출신 사람들이 월파 자료를 찾아 정리해 최소한 월파에 대한 책이라도 제대로 출판했으면 한다며 이런 의미에서 추모사업회를 구성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송 의원은 기금을 만들어 제대로 된 월파 선생의 모든 자료를 집대성해야 한다제대로 된 책이라도 발간해 고흥 후손들이 월파 선생을 찾아보게 해야 한다며 우리 아이들이 어떤 훌륭한 선생에 대한 모델이 있어야 자기의 원대한 꿈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죽산 조봉암 선생과 관련해서도 송 의원은 당시 인천시장으로 있을 때 인천시민들에게 자부심을 갖기 위해죽산 선생 제대로 알기 운동을 펼쳤다죽산 조봉암은 국회부의장을 지냈고두 번이나 대통령 선거에 도전했다진보당을 출범시켜 이승만 독재정권과 맞서 싸웠다며 현재도 죽산 선생 바로 알기 운동을 인천 전 지역에서 하고 있다내일(23대학생들과 함께 죽산 생가부터 역사 순례를 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날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과 박홍근 의원바른미래당 이동섭 의원 등 현직의원을 비롯해 신광식 전의원김승남 전의원신장용 전의원유송화 청와대 춘추관장남연희 성동구의회 의원이복희 시흥시의원양평호 강동구의원신언근 전 서울시의원송공석 한국욕실자재산업협동조합 이사장류해필 ()한국창업멘토협회 회장송주현 유미 특허법인 대표변리사와 고흥언론인회 회장인 김순환 <문화일보경제산업부 부장송영언 <동아일보스포츠동아 고문김철관 한국인터넷기자협회장유상욱 JTBC 보도국 차장 등 고흥출신자 20여명이 월파 서민호 선생 추모사업회 위원으로 참여했다.

 

월파 서민호 선생 추모사업회 회장에는 송영길 의원이사무총장에는 이동섭 의원이 맡았다이날 당초 참석키로 했던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과 더불어민주당 송갑석 의원은 개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 월파 서민호 선생     ©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사람인 월파 서민호 선생은 누구일까.

 
전남 고흥 동강면 출신으로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월스리언대학, 일본 와세다대학, 미국 콜롬비아대학 등에서 수학했다. 건준위에서 활동을 했고, 일제 강점기 때 우리말과 글의 중요성을 강조하다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돼 함흥형무소에 투옥됐다.
 
미군정 아래에서는 광주시장을 지냈다. 전남도지사를 하면서 도립대학인 조선대학교를 만드는 데 기여했고, 거창 양민학살사건진상 국회조사단장으로 조사하던 중 이승만 정권에 의해 복역했다. 박정희 정권 때 한일기본조약 반대와 월남파병 반대를 하다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됐다. 지난 61년 UN총회 한국대표로 참석했고, 그해 남북교류를 주장하다 입건돼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7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국회 민의원 의장과 한 때 대통령 후보로 입후보 했으나 야당 후보 단일화를 위해 사퇴했다. 항일독립운동과 이승만 정권에 맞선 반독재 투쟁을 했다. 그는 71년 정계를 떠났고 73세에 영면했다.

통일로 주변 신세계공원묘지에 안장됐다가 지난 2004년 10월 13일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지에 이장했다. 저서로 <이래서야 되겠는가>, <나의 옥중수기> 등이 있다. 지난 1월 24일은 월파 선생이 사망한 지 45년 되던 날이다. 그가 출생한 전남 고흥군 동강면에 있는 제각에는 그를 추모하는 참배객들이 가끔 오고 있다고.
 
그가 사망한 지 45년이 된 지난 1월 24일 국회출입기자클럽(제30회 정기세미나) 주최로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월파 서민호 학술대회'가 처음으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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