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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의 위선, 우리는 일본과 얼마나 다른가?
[류상태의 문화산책] '위안부' 문제와 베트남 문제의 궁극적 해결을 위하여
 
류상태

한국과 일본 정부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말이다.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진정이 담긴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12월 28일 양국 정부의 합의로 이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이다. 더 이상 진전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위안부' 문제나 독도 문제만 나오면 일본인의 80~90%는 자국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한다. 혹 동의하지 않더라도 반대 의견을 내기는 쉽지 않다. 집단적으로 비난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이 일본 정부의 주장에 동의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일본인이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냉철히 이치를 따져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니라, 그저 팔이 안으로 굽는 본성이 작용한 때문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 한국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팔이 안으로 굽는 본성이 이성적 판단에 앞서는 현상은 민족성이나 지역성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의견을 내고 싶다. 다수의 의견이 늘 옳은 건 아니며, 때로는 소수의 의견이 문제를 푸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1. 합의문의 문제점, 교묘한 왜곡

 

그렇다면 당시의 합의문이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 합의문에서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군의 관여 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일본의 책임을 통감하고 위안부 피해자의 고통과 상처에 대해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했다.

 

이 문장은 애매한 표현으로 과거 일본제국이 저지른 역사적 범죄를 교묘히 왜곡하고 있다. ‘일본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고 ‘피해자의 고통과 상처에 대해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도 했지만, 일본 정부와 군대가 위안부를 동원한 ‘주체’라고 명확히 밝히지 않고 빠져나갔다는 점에서 여전히 역사를 왜곡하고 있고, 따라서 진정한 사과라고 볼 수 없다.

 

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진정한 사과를 한 적이 있기는 하다. 1993년 8월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장기간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위안소가 설치되고 수많은 위안부가 존재했다’는 점, ‘일본군이 직·간접적으로 위안소 설치·관리 및 이송에 가담했다’는 점, ‘위안소 생활은 강제적인 상태로 이뤄졌고 참혹했다’는 등의 사실을 인정하면서 "사과와 반성의 마음을 전달한다"고 밝혔다. 담화 발표 이후 대다수의 일본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기술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 일본 정부의 시각은 '일본군은 위안부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고 위안부는 민간업자가 끌고 갔다'는 1990년 6월의 담화문에 머물러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06년 9월 총리가 되자마자 '위안부에 대한 협의의 강제성'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없으므로 교과서에서 이 문제를 다루어서는 안 된다고 국회에서 주장했다. (‘다음 백과사전’에서)

 

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는 피해자를 위한 위로금으로 10억 엔을 우리 정부에 건넸는데, 배상금이 아니라 ‘인도적 지원금’이라고 했다. 자신의 조상들이 저지른 역사적 범죄를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이 여기서도 잘 나타난다.

 

합의문에는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는 내용과 함께 ‘국제사회에서 동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 비판을 자제한다’는 표현도 들어있다. 일본의 외교적 완승이라고 할 만하다.

 

2. 지난 정부가 맺은 국가 간 합의를 현 정부가 무시할 수 있는 것일까?

 

합의문에 서명하기 전에 박근혜 정부는 피해 당사자들과 충분히 상의하지 않았고 동의를 얻지도 않았다. 당시 정부의 졸속 처리로 수면 아래서 부글부글 끓던 문제를 문재인 정부가 다시 꺼내들었다. 하지만 중립적 시각을 가진 제삼자의 눈에 한국 정부의 처신이 정당하게 보일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역사적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의 역사적 범죄가 사실이듯이,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와 합의했다는 것 또한 역사적 사실이다. 지난 정부가 잘못 처신했다고 하여 국가 간에 맺은 합의를 파기해도 되는 것일까?

 

하여 이제 책임은 한국 정부가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와 국가는 다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러면 논리의 쳇바퀴에 갇히게 된다. 적어도 이 점에 대해서는 “지난 정부가 맺은 합의문을 현 정부가 부정하면 국가 간 신뢰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일본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하여 이제 (내가 생각하는)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정리해 보고 싶다.

 

우선 우리 정부는 과거 일본의 범죄와 지난 한국 정부의 잘못된 처신에 대해 명확히 구분하여 정리할 필요가 있다. 위안부를 동원한 과거 일본제국의 범죄는 역사적 사실이며, 이 문제를 성급하게 ‘합의문’으로 덮은 건 한국 정부의 잘못이라는 점을 정부 차원에서 명확히 밝히고 할머니들께 대신 사죄해야 한다. 또한 일본과의 정부 간 합의는 지키되, 할머니들에 대한 법적 배상 문제를 우리 정부가 대신 맡아 해결하여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드려야 할 것이다.

 

3. 우리 정부도 베트남 정부와 민간인 피해자에게 진정이 담긴 사과와 배상을 해야 한다

 

역사적 과오에 대해 한국은 일본과는 다르게 처신해야 한다. 1960년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부는 베트남에 군대를 파병했다. 일본제국이 위안부를 동원하고 온갖 만행을 저질렀듯이 한국군도 베트남에서 못지않은 만행을 저질렀다.

 

1999년에 <한겨레21> 베트남 통신원으로 활동한 구수정 박사(현재 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에 따르면, 한국군이 저지른 베트남 민간인 학살은 80여건에 달하며 꽝남성에서만 4천여명, 총 5개성에서 9천여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한겨레신문, 2018-01-19, 홍세화 칼럼)

 

역사가 증명하듯 전쟁은 사람을 짐승으로 만든다. 바로 옆에서 전우가 죽어가는 걸 목격한 피 끓는 젊은이들이 전장에서 합리적으로 대처하기를 바란다면 그것 자체가 비합리적인 생각이다. 하여 만행에 대한 책임은 전쟁을 일으키거나 군대를 동원한 지도자와 현장을 통제하지 못한 지휘관이 더 크게 져야 한다. 박정희의 책임이 가장 클 수밖에 없다.

 

베트남 파병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옹호하는 사람들도 많다. 박정희의 경제에 대한 업적은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나도 일부 동조하는 측면이 있다. 그가 아니라면 어느 누구도 이만큼 경제적으로 급성장하도록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아니라면 어느 누가 그토록 신속하고 과감하게 전투부대를 베트남에 파병하여 젊은이들의 피를 돈과 맞바꿀 수 있었을까? 그가 아니라면 어느 누가 미국을 감쪽같이 속여 가며 온갖 첨단 무기를 빼돌리고 군현대화를 이룰 수 있었을까? 또한 그가 아니라면 어느 누가,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를 외치면서 인권이건 문화파괴건 가리지 않고 그렇게 불도저처럼 밀어붙일 수 있었을까?

 

베트남에 파견된 군인들은 피해자일 수 있다. 가장 큰 책임은 파병을 결정한 박정희에게 있지만, 전장에서 가혹한 짓을 저지르도록 명령하거나 허용한 지휘관들도 책임을 지고 진실을 증언하며 사죄에 동참해야 한다. 그렇다고 민간인을 학살한 군인들이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여 대한민국 정부는 과거 박정희 정권 때 베트남에 저지른 역사적 범죄에 대하여 베트남에 정식으로 사과하고 최선을 다하여 배상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한국 정부는 일본의 사과를 요구할 자격이 없다.

 

그런데, 우리 정부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진정성 있는 사과를 아직까지 하지 않고 있다. 2001년 김대중 대통령이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인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정도가 고작이다. 국내 여론을 신경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잘못을 떳떳이 인정하는 게 그리 힘든 것일까. 작년 9월, 1300회 수요집회에서 김복동, 길원옥 두 할머니는 “한국 군인들에게 우리와 같은 피해를 당한 베트남 여성들에게 한국 국민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정부가 못하니 할머니들이 나선 것이다.

 

일본에 책임을 물으려면 우리도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박항서 신드롬이 부는 요즘이야말로 베트남 문제 풀 절호의 기회일 것이다. 꼼수 부리지 말고, 깨끗하게 사과하고 배상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몫이다. 가능하면 올 8.15 이전에 정부 차원에서 꼭 해결하기를 바란다.

 

4. 우리는 일본과 얼마나 다른가?

 

과거를 정리하는 방법이 한 가지만 있는 건 아니다.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가 책임을 완강히 회피하는 상황에서 계속 가해자의 회심에 집착하는 건 현실적이지도 못하고 현명하지도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여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일본 정부에 매달리지 말고, 한국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라고 제안하고 싶다. 객관적 자료를 통해 역사적 사실을 명확히 제시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문제도 정부가 대신 나서서 해결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민간 차원에서 해야 할 일은 계속해야 한다. 일본의 시민단체들이 일본의 역사 왜곡을 규탄하며 진실을 바로 잡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도 정부가 하지 못한 일을 시민들이 나서서 바로 잡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또한 한국이 베트남에 저지른 과오에 대해 증언하며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시민단체의 활동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분들에게 연대의 마음과 찬사를 보내고 싶다.

 


류상태 선생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이후 20여 년을 목회자, 종교교사로 사역했지만, 2004년 ‘대광고 강의석군 사건’ 이후 교단에 목사직을 반납하였고, 현재는 종교작가로 활동하면서 ‘기독교의식개혁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교양으로 읽는 세계종교] [소설 콘스탄티누스] [신의 눈물]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 [당신들의 예수] 등이 있습니다."
 
기사입력: 2019/02/15 [10:47]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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