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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학생다움을 머리 길이로 판단하려 하나"
[논단] 서울시교육청 학생 두발자유화 선언, 또다시 고개 드는 편견 히스테리
 
이영일   기사입력  2018/09/27 [20:01]

편견(prejudice)은 기본적으로 부정적 정서를 포함한다. 특정집단에 대한 부정적 정서는 대개 객관적인 정보나 검증되지 않은 주관적 감성만으로 해당 집단을 평가하려 드는 경향이 강하고 이는 차별과 피해를 양산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편견은 단순히 특정집단에 대한 판단 기준을 넘어 사회 여론을 왜곡시키기도 하고 집단 구성원의 삶의 행복추구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한 관점에서 편견과 고정관념이 뒤섞여 기성세대의 관점에서 억압적이자 일방적이며 지속적으로 내려오는 차별이 하나 있다. 바로 학생 두발 문제다.

 

서울시교육청이 27, 기자회견을 열어 중·고교생 두발규제를 폐지하는 '두발 자유화'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하자 이 두발 문제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붙는 양상이다. 이를 우려하는 측의 요지는 <외모에 신경쓰게 되면 성적이 떨어진다>, <학생답지 않다>.

 

▲ 서울시교육청이 27일, 기자회견을 열어 중·고교생 두발규제를 폐지하는 '두발 자유화'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 연합뉴스

 

 

학생다운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학생다움은 누가 정의하고 지정하는 걸까. 예전처럼 남학생들은 머리를 삭발시키고 여학생들의 머리 모양을 똑같이 해야 학생다워지는 걸까. 그렇다면 거꾸로 어른다움이란 뭘까. 어른다움이란 자신들이 겪은 통제와 억압의 경험들을 후계세대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는 것이 어른다움일까?

 

머리가 길면 성적이 떨어진다는 검증되지 않고 과학적이지도 않은 거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가지고 벌써 수십년동안 청소년의 인권은 너덜거리듯 춤춰왔다. 이번 서울시교육청의 두발 자유화 선언의 핵심은 서울특별시학생인권조례상 학생들의 자기결정권을 기본적 권리로 보장하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게다가 무조건적 자유화가 아니라 학교구성원들의 공론과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도록 했음에도 그 본질은 사라지고 막연하게 머리가 길면 불량 청소년이라는 동조(Conformity)적 폭력이 다시 고개를 든다.

 

두발 자유화를 반대하며 인터넷에 이를 적대적으로 표출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아이들이 머리에 신경쓰느라 공부에 전념하지 못해 좋은 대학 못 갈까봐 걱정된다는 사랑의 발로인지, 그런 꼴을 보기 싫은 막연한 아니꼬움의 발현인지 필자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남의 머리를 얼마큼 잘라라 마라 하는 것, 너는 학생이니까 감수하라는 말은 그야말로 노예를 통제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성폭력 여성 피해자들을 상대로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던가 장애인은 가까이 하기에는 꺼림직한 존재라 인식한다던가 화장시설이나 소각시설은 혐오시설이라던가 하는 것들이 대표적 편견에 속한다. 언어적 편견의 사례도 벙어리장갑, 절름발이식 행정, 눈뜬 장님등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편견도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그런데도 유독 이 청소년의 두발 문제만 나오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안된다는 집단 히스테리의 심리적 배경은 과연 무엇일까. 아이들의 머리 길이보다 어른들의 편견의 길이부터 잘라야 하는 것이 아닐까.

경희대NGO대학원에서 NGO정책관리학을 전공했다. 대학 재학 시절 총학생회장과 문화일보 대학생기자, 동아일보e포터 활동을 했고, 시민의신문에서 기자 교육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중앙일보 사이버칼럼니스트, 한국일보 디지털특파원, 보도통신사 뉴스와이어의 전문칼럼위원등으로 필력을 펼쳤다. 참여정부 시절 서울북부지방법원 국선변호감독위원, 대통령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국무총리실 삼청교육피해자보상심의위원등 다양한 민간위원을 역임했다. 2015년 3월, 사회비평칼럼집 "NGO시선"을 출간했고 각종 온오프라인 언론매체에서 NGO와 청소년분야 평론가로 글을 써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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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9/27 [20:0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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