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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 나아가길 제시한 소설 눈길
[책동네] 소설가 안형준 기자의 '딥뉴스'
 
김철관   기사입력  2018/06/25 [17:19]
▲ 표지     ©

재벌과 정치권력, 비정상적인 공영방송 사장에 맞서 성역 없는 탐사보도의 진가를 보여준 기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 눈길을 끈다. 그래서인지 현재 진행 중인 공영방송 이사 선임의 중요성과 언론자유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권해드리고 싶은 책이다. 특히 저자인 소설가가 미국 9.11테러와 이라크전쟁을 현지 취재한 언론인이라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현재 한국방송기자연합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안형준 기자의 장편소설 <딥뉴스(DEEP NEWS)>(2018년 3월, 새움)는 공영방송 언론장악에 맞선 기자들의 위험천만한 취재기가 생생하게 다뤄졌다. 지난 9년간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벌어진 공영방송 MBC의 숨겨진 뒷이야기를 토대로 쓴 소설이라서 더욱 흥미롭다. 사실을 근거로 한 소설이라는 게 재미를 더한다.

 

서울 여의도 ABC방송 시사프로그램 <딥뉴스> 기자들의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喜怒哀樂, 희로애락)을 표현했다고나 할까. 현장 취재를 하는 언론인으로서의 삶의 명암이 느껴지기도 한다. 잠입취재, 특종, 사츠마와리(경찰 수습기자), 사내연예, 오프더레코드(off the record), 비판적 보도, 사실뉴스, 손팻말 시위, 제작거부와 파업, 긴급체포, 언론인의 길, 해고통지서 등 소설에 등장한 단어들은 언론인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익숙한 단어이다. 그래서인지 단어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언론인들의 즐거움과 노여움의 삶이 고스란히 스며있다.

잠입취재에서 특종까지의 기쁨과 즐거움은 잠시, 새 공영방송 사장이 부임해 시사프로그램 폐지 등을 암시하면서 기자들은 당황한다.

 

"공영방송 사장의 임명권은 청와대와 집권 여당이 사실상 좌지우지할 수 있다. 그런 현실에서 인사권자(대통령)의 뜻을 거슬러 비판적인 보도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현실보다 진실을 택했다면, 정권의 성향에 따라서는 그에 상응 하는 희생을 감수야 한다(중략). 조경혜 의원의 조부인 친일행적을 보도하자, 방송을 지켜본 여당의 압박이 극에 달하자, 대통령 선거캠프출신인 새 사장은 서둘러 프로그램 폐지를 결정한다. 임명에 따라 감사의 뜻으로, 눈엣가시 같은 <딥뉴스>를 없애 '한 접시 갖다 바치자'고 입장을 정리한 것이다."- 본문 '딥뉴스' 중에서

 

또한 소설에 등장한 선후배기자들의 애환, 좋아하는 한 선후배 기자(세진과 다혜)의 애틋한 사랑과 갈등이 정점에 달하면서 순간의 재미를 더한다. 잦은 야근으로 인해 기절할 정도로 졸음이 몰려오지만 한 꼭지 인터뷰를 위해 노동착취를 당하면서 일해야 하는 방송기자의 숙명도 느껴진다.

 

특히 취재원과의 약속, 오프더레코드는 기록에 남기지 않는 비공식 발언이라는 뜻이다. 특정 시간까지 보도를 하지 않거나 비밀을 서로 지킨다는 의미의 취재원과의 신사협정을 지켜야한다는 것도 기자의 숙명인 듯하다.

 

잘나가는 1% 중년 남성들도 여간해서는 룸을 잡기 힘든 회원제로 운영하는 룸살롱 '파랑새' 에 위장 잠입취재를 한 한 여기자. 내로라하는 재벌 2세와 3세들은 물론 유명 앵커와 중견 정치인이 몰리면서 이곳은 권력의 상징이 된 곳이다. 그래서인지 한 여기자가 잠입해 재벌 2세와 권력들의 비리를 파헤친 장소이기도 하다.

 

파랑새 호스티스 상당수에게는 새도우 스폰서(Shadow Sponsor)가 있다. 한 마디로 재벌 2세나 권력자들이 그림자처럼 은근하게 용돈을 주고 성관계를 하지만, 파랑새 룸살롱에 출근을 유지하는 아가씨들이다. 한 여기자의 이곳 위장 잠입취재 보도로 전직 대통령 아들과 몰락한 재벌 2세의 숨겨둔 재산 수백억 원이 국고로 귀속된다. 탈세와 재산은닉, 성폭행 미수 등의 혐의였다.

 

이렇게 특종을 한 <딥뉴스> 여기자는 한국기자협회와 방송기자연합회 등 단체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는다.

 

"특종은 묘한 중독성이 있다. 적지 않는 기자들이 한동안 특종에 중독된다. 세상을 바꾸었다는,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느낀다. 그러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한다. 실제로 정책을 바꾸고 휴대폰 요금을 내린다. 친일인명사전이 탄생하고, 대통령의 가족을 구치소에 보낸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고, 감기몸살에 걸려도 행복감이 가시질 않는다. 물론 그 바닥에는 출세주의가 아닌 휴머니즘이 있어야 한다." -본문 '특종' 중에서

 

젊을 때 기자회와 노조 일을 열심히 하다가 직장을 퇴직하고, 나이가 들어 극보수로 변해 정치행보를 보인 직장 선배가 새 사장으로 부임한다. 아무리 주인 없는 공영방송 사장이라 할지라도 임명할 때는 최소한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기자들의 공감대가 형성된다. 시사프로그램 <딥뉴스>의 폐지를 결정한 사장에 대한 기자들의 분노가 폭발한다.

 

"권력 감시는 언론의 역할이다. 딥뉴스는 방송하는 아이템마다 기자협회나 방송기자연합회 상을 휩쓸고 있다. 전문가들로부터 탐사보도 능력을 인정받았다. 시청률과 시청자의 반응도 좋다." -본문 '딥뉴스' 중에서

 

여당이 재집권을 위해 조경혜 의원 조부의 친일행각 특종보도가 폐지 결정의 이유였다. 사장이 임원회의 안건으로 상정하자. 로비에 모인 기자와 PD, 노조원들의 반발이 이어진다. 로비를 지나가는 안형배 사장에게 "딥뉴스 폐지, 결사반대, 딥뉴스를 살려내라" 등의 구호를 외친다.

 

한 기자가 "사장님, 도대체 딥뉴스를 왜 폐지하려는 겁니까?" 질문을 던진다. 곧바로 사장의 말이 이어진다.

 

"종편 채널도 생겨나고 프로그램 경쟁력이 중요해졌습니다. 시청률이 낮다는 것은 시청자들이 외면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또 다른 기자가 말을 한다. "딥뉴스 평균 시청률은 다른 경쟁사 시사프로그램보다 2배 가까이 높습니다. 시청률도 두 자릿수였습니다"라고 밝히자, 사장은 말을 바꾼다. "선배 앞에서 눈을 치켜뜨고 말대답이야."

 

이후 항의의 뜻으로 기자들과 PD들이 제작거부를 진행했고, 이에 대해 ABC경영진의 고소로 현직기자들에 대한 긴급체포와 구속영장 청구, 구속 등이 이어진다. 이에 맞서 노조는 총파업을 단행한다.

 

시사교양국과 아나운서, 드라마국과 예능국, 기술국과 경영국에 속한 대부분의 직원들이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게다가 인기스타가 진행한 시사토크쇼<x>가 폐지됐다. PD들의 자존심인 <피디노트>와 동영상 뉴스인 <돌발현장>의 담당자들도 대거 교체돼 유명무실해 졌다. 여기에 진보적 발언을 즐겨하던 개그맨 출신 라디오 DJ가 석연치 않는 이유로 하차하면서 새 사장에 대한 분노가 커졌다.

 

"신자유주의가 대세인데 요즘 세상에서, 무슨 파업이고 공정방송타령이야, 검사는 물론이고 일부 판사들도 눈치가 빨라졌어요. 해고 밀어 붙입시다. 빨리 제2노조 만들어서 세를 불러가야지. 빨갱이 놈들은 제2노조를 어용노조라고 부르지만, 이것은 신자유주의 트렌드에 올라탄 새로운 노동조합입니다. 경력기자, 경력 PD 새로 뽑아 제2노조 가입의사가 있는 지원자 중심으로 선발해야 합니다." -본문 '해고통지서' 중에서

 

술자리를 마련한 한 경영진이 "잘나가는 공중파 기자와 PD가 파업한다고 해서 저는 별로 관심이 없었거든요. 다섯 달 월급을 포기하면서 정말...덕분에 공정방송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라고 말을 하자, 술을 함께 한 한 기자가 생생한 발음으로 말을 잇는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는 비판적인 언론인과 작가들을 엉뚱한 죄를 뒤집어씌워서 가두곤 했죠. 바른 말 하는 문화계 인사들과 시민단체 사람들도 그렇게 잡아갔구요. 요즘은 감금보다 해직이나 블랙리스트가 유행인 셈이구요." -본문 '화이트해커' 중에서

 

드디어 해고와 부당징계의 칼춤을 추던 안형배 사장이 해임됐다. 기나긴 파업이 승리로 끝났다. 새 사장이 부임했지만 해직자들에 대한 조건 없는 복직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심 판결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었다. 해직자들도 장기파업으로 무노동무임금 파업을 계속할 수 없다는 판단을 했다. 몇 달 후면 해고 무효 판결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제도권 언론은 물론 SNS에서도 ABC파업승리와 해직자 복직 지연 소식이 비중 있게 다뤄졌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공영방송 이사선임 문제가 왜 중요한지를 알게 했다. 낙하산이 아니라, 여야 나눠 먹기식이 아니라 시민들의 검증으로 이사와 사장을 선정해 최종 방송통신위원회 위원들이 임명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했다. 이 소설은 핵심 키워드는 시청자를 위한 공정방송이 공영방송이라는 사실이다.

 

저자인 소설가 안형준 한국방송기자연합회장은 YTN, MBC에서 기자로 20년 동안 일했다. 검찰을 오래 출입했고, 경제부와 정치부 <뉴스후> 등을 거쳤으면, 9.11테러와 이라크전쟁을 현지 취재했다. 지난 1999년과 2003년 이달의 기자상, 2003년에 올해의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남은 목표는 70세까지 축구, 77세까지 지리산 종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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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6/25 [17:1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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