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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계의 역사, 생명에서 반생명으로
[정문순 칼럼] 계란이 싸다면 사랑방손님과 어머니의 로맨스 가능했을까?
 
정문순

삶은 달걀과 로맨스

주요섭의 유명한 단편소설 <사랑 손님과 어머니>에서 스물네 살 청상과부인 옥희 엄마와 죽은 남편 친구인 사랑 손님의 애틋한 감정을 이어주는 매개는 삶은 달걀이다. 엄마는 달걀 장수가 올 때마다 가득 사다가 사랑 손님의 밥상에 매번 올려 준다. 그 덕분에 자기 밥상에도 좋아하는 삶은 달걀이 놓이게 된 옥희는 물색도 모르고 신이 나지만, 깨어지기 쉬운 달걀은 여성의 재혼이 금기나 다름없었던 당시 그 금기에 직면하게 된 사람들의 아슬아슬하고 조심스러운 상황을 반영한다

▲ 소설 <사랑 손님과 어머니>를 영상에 옮긴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삶은 계란'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진 출처: <다음 무비>     © 정문순


엄마가 사랑 손님의 밥반찬으로 하필 달걀을 삶아준 행위도 날달걀처럼 위태로운 두 사람 사이가 삶은 달걀처럼 안정되기를 바라는 속마음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 손님 역시 그 마음을 읽었는지 반찬으로 나오는 삶은 달걀을 한 번에 다 먹지 않고 남겨 두었다가 옥희가 놀러올 때마다 주곤 한다. 사랑 손님에게 삶은 달걀은 구애 상대자의 딸에게 환심을 사는 물건이 되기도 한 것이다. 사랑 손님의 처지에서는 한부모가정 여성과 한 가족이 되는 일을 어쩌면 순탄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는 그 자식에게 호감을 사는 것은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있는 확률을 높이는 것이기도 했다. 옥희 엄마-사랑 손님-옥희 세 사람을 모두 하나의 끈으로 잇게 해줌으로써 두 사람의 로맨스에 현실적 가능성을 열어준 것은 삶은 달걀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엄마와 사랑 손님, 그리고 옥희의 공통된 바람은 익힌 달걀보다 더 단단한 세상의 벽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럼에도 삶은 달걀은 엄마가 사랑 손님에게 주는 이별의 선물로도 등장한다. 사랑 손님이 떠나는 날, 엄마가 집에 남은 달걀을 몽땅 삶아 건네주는 것은 달걀 양만큼이나 간절한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행동이다. 비록 인습에 가로막혀 마음을 돌려야 했지만 엄마는 자신의 절실한 속마음을 사랑 손님에게 마지막까지 표출한 것이다.
 
사랑방이 비어버린 이후 소설에서 달걀은 한 번 더 등장한다. 더 이상 엄마가 달걀 장수를 환대하지 않고 딸이 달걀을 좋아한다는 사실에는 아랑곳없이, “먹는 이가 없어요.”라고 기운 없이 읊조리는 마지막 대목은 슬픔을 물씬 자아낸다. 그러나 깨어지기 쉬운 달걀의 물성에서 안타까움을 절실히 느낄 줄 아는 이라면 깨진 달걀처럼 끝나버린 옥희 엄마의 아픔에 더욱 강하게 공명할 것이다.
 
깨진 달걀이 아주 아깝다고 느낄 수 있으려면 달걀이 값나가거나 최소한 값이 헐한 음식은 아닌 시대를 배경으로 해야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소설에서 옥희네는 세상 떠난 아버지가 물려준 재산이 있고 옥희는 소설의 배경으로 짐작되는 1930년대에 무려유치원을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먹고살 만한 집안이었음에도 달걀은 쉽게 살 수 있는 식품이 아니었다. 사랑방에 손님이 들기 전만 해도 옥희는 달걀 반찬을 실컷 먹을 수 없었다.
 
옥희 엄마가 산 달걀은 키우던 닭이 가끔 낳는 것을 모아왔을 달걀 장수 노파의 방문 판매를 통해서였다. 생산에서 공급까지 전 유통 과정이 까다롭기 그지없는 품목이었으니 값이 비싼 것은 당연했다. 달걀이 흔해빠진 시대였다면 작가가 살얼음 걷듯 조마조마한 옥희 엄마와 사랑 손님 사이를 상징하는 데 달걀을 내세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소나기>에 등장하는 달걀
 
비싼 몸값을 자랑하던 때의 달걀은 한국 문학사에서 여러 편의 명작을 낳았다. 1950년대에 나온 황순원의 <소나기>에서, 닭의 몸에서 미처 빠져나오지도 못한 알은 소설에서 직접 등장한 적은 없지만 윤초시네 증손녀 인 소녀에 대한 소년의 애틋한 마음을 나타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소년과 소녀가 산에 놀러갔다가 소나기를 맞고 돌아온 며칠 뒤, 소년의 아버지가 윤초시네 제사 때 가져가는 것은 며칠째 “‘걀걀’”하고 알 날 자리를 보던암탉이었다.
 
그러나 소년에게는 알 품은 닭조차 그렇게 귀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무안을 당하긴 했지만, 소년이 윤초시네에게 보내주기를 원한 것은 암탉보다 덩치가 더 실한 수탉이었다. 알 품은 암탉이든 우람한 수탉이든, 소년의 부모한테는 제사도 제대로 못 지낼 정도로 가세가 기운 이웃을 돕는 마음이 깃든 것이지만, 소년에게는 곧 이사 갈 소녀를 생각하는 마음이 담긴 선물이었다.
 
그러나 소년이 몰랐던 사실은, 윤초시네가 이웃의 귀한 지원까지 받으며 집안의 중요한 행사를 치르느라 정작 아픈 소녀를 돌볼 금전적 여력이 없었으며 이것이 집안의 유일한 자손인 소녀의 죽음을 재촉했다는 것이다. 선대를 기리는 제사가 후손의 목숨을 지키지 못하는 결과를 빚는 것하며, 귀한 닭이 선물이 되기는커녕 되레 소녀의 비극을 암시하는 데 쓰이는 것도 순진한 소년으로서는 알 수 없는 현실의 모순적인 실상이다.
 
<소나기>는 소년의 시점에서는 매우 낭만적인 동화이지만, 소년이 어른 세계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섬뜩한 삶의 비극을 깨달아야 함을 암시하고 있다. 아이 눈에는 풍요롭고 귀하기 그지없는 알 품은 닭은 아이가 아직 모르는 세상의 어둠을 머금고 있는 것이다.
 
<사랑 손님과 어머니><소나기>는 달걀이 귀하고 비쌌던 시대가 낳은 명작이다. 사랑 손님 밥상에 오른 계란은 마당을 노니던 닭이 생산한 것이었지만, 식민지 자본주의가 성장하던 당시에 계란은 한편으로는 산업화의 길을 걷고 있었다. 일제강점기는 닭의 품종 개량과 단일화를 거치며 양계장 산업이 성장한 시기였다. <사랑손님과 어머니>가 세상에 나오던 무렵 근대 한국소설을 개척한 소설가 현진건은 양계장 사업에 손을 대다 실패하여 인생 말년에 큰 낙담에 빠졌다고 한다. 그만큼 양계장 운영은 큰 자본이 투입되는 일이었으며, 당시는 지금과 같은 규모의 공장식 축산과는 차이가 있었을지라도 계란이 산업화에 접어든 시대였음은 분명하다. 달걀의 산업화는 곧 값싼 계란의 길을 터 주었을 것이다
 
소설을 보면 달걀의 흥망성쇠도 보인다.
 
닭의 거처가 마당에서 축사로 바뀌면서 계란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짐에 따라 문학에서 계란의 위상도 달라졌다. 한국전쟁 직후를 배경으로 한 황순원의 장편소설 <나무들 비탈에 서다>는 참전 군인 출신으로 전후 피폐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춘들이 등장한다. 살인 범죄자로 오인 받아 무기징역형에 처해지거나 더 나쁘게는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에까지 이르는 친구들 틈에서 유일하게 실속을 챙기며 사는 소시민인 윤구의 생업은 양계장 운영이다. 양계장 사업은 친구들의 불운에 아무런 공감도 하지 못하고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윤구의 속물성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윤구가 온종일 닭의 밑구녕만 들여다 봐야 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은 당시 양계장 운영이 사회적으로 평가받거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은 아니었음을 드러낸다. 양계산업이 닭을 알 낳는 기계인 양 다루는 것이라면, 생명을 생명으로 취급하지 않는 윤구의 태도는 이해타산에 능한 자신의 기질을 잘 나타내는 것이었다.
 
어쨌든 계란의 신분 이동에 따라 문학에서 계란의 역할이나 그것이 상징하는 것도 달라졌다. 귀하던 시대에는 낭만과 어울렸고, 흔한 시대에는 비루하거나 속물적인 삶의 상징이 되었다. 계란이 손님 밥상에나 오르는 귀한 식재료가 아니라 닭의 배설기관에서 빠져나오는 하찮은 것으로 전락한 이후 계란은 비속하고 누추한 현실과 맞물렸다.
 
<나무들 비탈에 서다>와 비슷한 시기에 나온 <오발탄>에서 주인공 송철호는 양공주로 일하는 누이동생 명숙이 난산 중이던 아내를 위해 병원비를 내놓자 명숙의 나일론 양말이 계란만치 구멍이 뚫렸음을 발견한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람으로 단정 짓고 외면해 온 동생에게서 철호가 비로소 느낀 건 처절한 빈곤을 무릅쓴 악착같은 삶이었다. 달걀을 귀하게 여기는 시대라면 양말 구멍을 계란에 빗대는 표현은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달걀은 궁핍과 빈곤의 비유로까지 전락했다.
 
공장식 밀집 축산도, 배터리 케이지도 없던 시대에 손님 밥상에나 오르던 귀하신 몸이었다가 오늘날 값싸고 만만한 국민 반찬이 된 계란에게서 더 이상 젊은 과수댁과 사랑 손님 또는 성장기 아이들의 풋풋한 로맨스 같은 낭만을 기대할 수는 없다. 아니, 계란이 살충제 검출 같은 무서운 소식의 진원지로 전락한 오늘날은 계란의 문학적 위상이 지금보다 더 떨어지는 등 다시 변화가 일어나야 할지 모른다.
 
문학에서 계란이 애틋한 사랑에 기여하기를 바랄려면 양계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할 경우 우스꽝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잊고 사는 것은 엄연한 생명이거나 생명이 낳은 존재에 관해서다. 문학에서 달걀이 낭만이나 생산적 의미를 잃고 부정적인 의미를 띠게 되는 과정은 반생명적이고 잔인한 양계방식이 확산하는 것과 일치했다.
 
목숨과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에게서 생명성을 거세하고 한낱 하찮은 물건으로만 치부하는 것만큼은 자연에 빚진 존재로서 우리의 책임을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목숨 달린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워야 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생각이 외면당하지 않는 세상이라면, ‘살충제 계란사태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에 말이다.
 
* iCOOP소비자활동연합회 시민기자단 블로그에 게재된 글입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로 [한국문학의 거짓말-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에 대한 집중 조명](작가와 비평, 2011)의 저자입니다.
 
기사입력: 2017/09/19 [16:23]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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