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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과 문익환 목사 같은 고향 '절친'
[연변기행2] 조선민족학교 - 룡정의 대성중학교, 민족혼 일깨운 곳  
 
김철관
▲ 대성중     © 김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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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연길 만원춘식당에서 점심을 마친후, 버스를 타고 30분정도 가니 룡정시에 있는 대성중학교(大成中學校) 옛터에 도착했다. 폐교될 때까지 70년 전통의 대성중학교 건물이 지금도 그대로 존재했다. 과거 일제 강점기 중국에서 우리민족만이 다닐 수 있는 민족학교라고 잘 알려져 있다. 대성중학교는 당시 룡정의 6개 중학교(대성중, 광명중, 은진중, 동흥중, 영신중, 광명여중, 명신여중) 가운데 유일하게 우리말을 썼던 민족학교였다. 이후 6개 중학교는 길림성립룡정중학교로 합병됐다.
 
학교 교실로 향한 벽면에 룡정시 청소년 애국주의 교육의 기지, 사립 대성중학교라고 쓴 글귀가 이목을 집중시켰다. 바로 옆에 룡정시 관광지점 대성중학교 옛터라는 팻말이 있었고, 옆에 윤동주 시인의 하얀 석상이 존재했다. 석상에는 별의 시인 윤동주(星的詩人 尹東柱, The Poet of Star Yoon Dong Zhu)라고 기록돼 있었고, 이곳 윤동주 시비에는 19411120일 지은 대표시 서시가 새겨져 있었다.

 

▲ 윤동주 시인 석상     © 김철관


죽은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친운다 
   
윤동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 시인, 작가이다. 중국 만주 기린성(길림성) 연변 용정시 명동촌에서 태어나 명동학교를 수학했고,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숭실학교를 다닐 때 첫 시를 발표했다. 1933년 연희전문 2학년 때 소년지에 시를 발표해 정식 문단에 데뷔했다고 역사를 통해 알려졌다. 
   
대성중학 실내 복도로 들어서자 룡정중학력사전시관(대성중학이 합병돼 전시관 이름이 룡정중학력사전시관이 됨)이 나왔고 대기하고 있던 40대 여성 안내원이 전시장을 소개했다. 전시장에서 가장 인상 깊은 사진이 이목을 집중시켰다. 192024일 세운 룡정 은진중학교 재학시절 윤동주 시인이 친구들과 교복을 입고 촬영한 단체사진이었다. 그 가운데 고 문익환 목사도 학우들과 함께 서 있었다. 바로 이들이 룡정 은진중학교를 졸업한 인물들이었다. 고 윤동주 시인과 고 문익환 목사는 명동촌에서 태어났고 은진중학교를 다니면서 함께 공부한 절친한 친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 윤동주(우)와 문익환(중)     © 김철관



룡정 6개 중학교 중 동흥중학은 1921101일 천도교에서 세웠고 북한의 저명인사 이종옥, 김책 등이 졸업한 곳이었다. 황해도 해주출신의 교육학자이며 민족영웅인 안중근 의사는 1904년에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중국으로 건너와 룡정 선바위에서 훈련을 시작했다. 190910월에 우덕순, 조덕순 등과 함께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 민족영웅으로서 재판과정에서 당당한 태도를 유지했으며 1910326일 뤼순감옥에서 순국한 기록도 있었다.
 
중국에서 투철한 항일민족 의식을 고취시킨 조선족은 19193.13운동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항일무장투쟁을 전개됐다. 19256월 홍범도 총사령관이 인솔한 봉오동 전투와 그해 1021일부터 26일까지 김좌진 총사령관이 인솔한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찔렀다. 1940825일 항일련군 제1로군 제2방면군 사령관 김일성 지휘 하에 매복을 시켜 많은 일본군을 사살한 해룡시 전투 유적지 등의 사진도 전시했다.
 
역사의 변천과 함께 1946616일에 룡정에 있던 6개 중학교를 합병해 길림성립룡정중학교가 됐다. 동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룡정중학교는 현재 현대과학기술실현학교로 지정됐고, 인민조선족자치주시범중학교의 영예를 안고 민족영재 양성에 진력하고 있다.
 
특히 앞서 밝힌 대로 윤동주 시인은 룡정에서 태어나 룡정중학교(은진중학교)가 키운 한민족으로서 저명한 분이다. 19171230일 룡정시 명동촌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 도시샤 대학 재학 중 항일운동 혐의로 일본경찰에 체포돼 19451월에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체실험대상으로 이름 모를 주사를 맞고 27살의 나이로 비참하게 옥사했다.
 
전시장은 윤동주 시인의 생가와 윤동주 시인과 문익환 목사가 학창시절에 학우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전시했다. 당시 일본에서 윤동주 시인의 유골함을 가져와 생가 룡정 명동촌 고향집 앞마당에서 문익환 목사의 부친인 문재린 목사가 추도식을 집전했다.
 
1943년 윤동주와 함께 일본으로 유학을 가 재경도조선인학생민족주의집단사건의 주모자로 체포돼 1945418일 옥중에서 순국한 항일 독립운동가 송몽규, 1947년 한국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1954년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신학석사를 받고 한국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통일운동가 문익환 목사와 이곳 은진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민족교육을 담당한 동생 문동환, 19021017일 조선 함북 회령시에 출생해 영화 <아리랑>을 비롯해 자항의식과 사회비판의식이 투철한 다수의 작품을 제작했고, 룡정에서 활동을 한 한국 최초의 영화감독이자 배우인 나운규, 191892일 룡정에서 태어나 4112월 위만주국 신경법정대를 졸업하고 이후 연변대 총장까지 역임한 박규찬 등 룡정은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했다.
 

▲ 좌로부터 독립운동가 김일성, 최현, 안길이다.     © 김철관


전시장은 항일 투사들의 사진들도 많이 등장했다. 그중 항일련군 제1로군 제2방면군 사령관 김일성, 3방면군 제13련대장 최현, 14련대장 정치위원 안길의 사진도 나온다.
 
헤이그로 향하던 광무황제(고종) 밀사인 리위종, 리상설, 리준 등의 이동경로도 엿보였다. 헤이그 밀사(특사) 3인 중 리준은 1907420일 광무황제(고종)에게 특사 신임장과 밀서를 받았고, 그해 422일 서울에서 출발해 423일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에서 배로 블라디보스토크 향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리상설을 만나 함께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해 리위종을 만났다. 이들 셋은 이곳에서 다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19076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 도착했다.
 
특히 1907420일 광무황제가 리준에게 준 특사 신임장 원본도 전시돼 있었고, 을사늑약 직후 광무황제와 히토 히로부미와의 관계를 풍자한 네덜란드 신문 삽화도 선보였다.
 
삽화는 고종을 새에 비유했고 새 장속에 갇힌 새(고종)를 조롱하고 있는 히토 히로부미의 행동을 풍자했다. 전시장에는 우리 역사에서 배우지 않았던 룡정 출신 여러 반일 애국지사들의 사진과 약력이 전시 돼 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다양한 항일 독립운동에 대한 자료도 전시해 놓았다. 이곳 전시장의 모금함에 성의를 표시하고 바로 옆에 있는 윤동주 시인 교실로 향했다.
 

▲ 윤동주 교실     © 김철관



전시장 바로 옆 항일 시인 윤동주 교실에는 윤 시인에 대한 자료를 전시했다. 윤동주 시인의 흉상과 책상, 칠판, 사진, 풍금, , 룡정중학교 교가 등이 전시돼 있었다. 특히 당시 학생들이 교사의 강의를 듣고 있는 사진, 학교 창립기념 사진과 교실 장작 난로 옆에서 사은회를 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도 보였다. 이날 교실 책상 위에 있는 윤동주 시인 흉상 옆 의자에 앉아 기념사진을 찍은 관광객도 엿보였다. 대성중학교 옛터 바로 옆에 룡정중학교가 있었고, 대성중학교 옛터는 1988527일 연변조선족자치주 인민정부에서 연변조선자치주 중점 문화재보호단위로 됐고, 20141025일 룡정시 인민정부에서 비석을 세워 관리하고 있다.
 
전시장과 윤동주 교실을 둘러보고 바로 윤동주 시인의 생가로 향했다. 현재 연변주의 행정도시가 연길이지만, 과거 한때 룡정이 연변주의 행정도시이기도 했다. 룡정은 현재 낙후된 도시이지만 과거 한 때 잘나가던 지역이었다. 버스로 윤동주 시인의 생가로 향하면서 가이드가 가리킨 곳이 있었다. 일송정과 해란강이었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을 두고 흐린다. 지난 날 강에서 말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우리 민족의 익숙한 노래인 선구자이다. 원제목은 룡정의 노래였다. 일송정도 룡정시에 위치해 있다. 독립군들이 일송정에 모여 조국의 해방을 위해 항일운동을 했던 곳이었다. 독립운동을 방해하기 위해 1938년 일본군이 이곳에 와 소나무에 이상한 약을 투입해 병들게 했다. 이후 정자 일송정이 세워졌고, 정자 옆에 소나무 한 그루가 아직도 살아 있다.
 
왠지 윤해영이 작사하고 조두남이 작곡한 일송정과 해란강에 얽힌 선구자라는 노래가 갑자기 부르고 싶어졌다.
 
1930년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독립운동가들도 시련에 빠졌다. 일본의 중국 침탈이 본격화되면서 관동군이 설치됐다. 이 때 말을 달리고 활을 쏘고, 조국을 찾겠다고 한 선구자를 기린 노래였다. 버스를 타고 룡정시를 가로지른 해란강도 멀리서 나마 볼 수 있었다.

 

▲ 윤동주 교실     © 김철관




 
 
 


기사입력: 2017/07/27 [10:41]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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