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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훈, 한평생 시민사회 위해 헌신한 별이 지다"
[동정] 적십자사 총재, 흥사단 이사장 역임한 서영훈 총재 별세
 
이영일   기사입력  2017/02/04 [16:41]
▲ 고 서영훈 총재. 그의 삶은 나라를 위한 사랑의 한길이었다.     © 이영일

우리 사회 대표적 시민사회 원로이자 흥사단 이사장, KBS사장, 정의사회구현협의회 상임공동대표, 시민의신문 대표이사,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 등을 역임한 서영훈 전 적십자사 총재가 4일 오전 9, 숙환으로 대한적십자사병원에서 별세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죽음이 아닐 수 없다
 
향년 94세의 고인은 별세하기 전까지 20여개의 크고 작은 시민사회단체를 대표해 왔다. 노태우 정부 당시 KBS 사장을, DJ 정부 때 새천년민주당 대표를 지내기도 했으나 그는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사만사회운동가라는 타이틀이 더 어울리는 삶이었다.
 
1923년 평안남도 덕천에서 출생한 고 서영훈 총재는 31세에 청소년적십자 국장을 시작으로 사무총장을 거쳐 총재까지 지냈으며 흥사단 이사장, 도산 안창호 기념사업회장,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장 등 많은 사회단체 대표를 거치며 명실상부한 시민사회의 산 증인으로 활동해 왔다. 특히 80년대 독재정권시절 흥사단 이사장으로 재임하며 각종 시국회의와 민주인사들의 강연 기회를 제공하는 등 민주화에 기여하고 흥사단아카데미를 민주화운동 전선에 서게 한 계기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안창호, 김구, 함석헌, 장준하 선생의 영향을 받은 서 총재는 해방이후 38선을 걸어서 월남, 민족청년단 청년간부 훈련에 참가했다. 6.25이후에는 장준하 선생과 함께 사상계 전신인 사상지를 펴내기도 했다.
 
그의 죽음은 어지러운 시국과 대비되며 국가와 민족을 위한 삶이 어떠했는지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발인은 7일 오전 9, 장지는 국립현충원이며 빈소는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3호이다. 그를 따르는 흥사단원들은 5일 오후 5, 합동조문도 계획하고 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경희대NGO대학원에서 NGO정책관리학을 전공했다. 대학 재학 시절 총학생회장과 문화일보 대학생기자, 동아일보e포터 활동을 했고, 시민의신문에서 기자 교육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중앙일보 사이버칼럼니스트, 한국일보 디지털특파원, 보도통신사 뉴스와이어의 전문칼럼위원등으로 필력을 펼쳤다. 참여정부 시절 서울북부지방법원 국선변호감독위원, 대통령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국무총리실 삼청교육피해자보상심의위원등 다양한 민간위원을 역임했다. 2015년 3월, 사회비평칼럼집 "NGO시선"을 출간했고 각종 온오프라인 언론매체에서 NGO와 청소년분야 평론가로 글을 써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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