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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푸르지 않았다
[정문순 칼럼] 노동과 가정, 처음 어린이날이 5월 1일인 이유
 
정문순   기사입력  2016/05/09 [02:59]

어린 자식과 부양할 부모가 있는 젊은 부모들에게 5월은 열두 달 가운데 가장 바쁜 달이다. 평소에는 휴일을 갈구하는 사람들도 5월만큼은 노는 날이 너무 많다고 투덜거린다. 5월의 화창한 휴일은 젊은이들을 위해 쓰이지 않는다. 오로지 어린 자식과 늙은 부모에게 바쳐진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몰려있고 휴일도 많은 5월은 공식적으로 ‘가정의 달’이지만, 5월이 처음부터 가정의 달이었던 것은 아니다. 애초에는 ‘노동자의 달’이었다. 어린이날이 5월에 있는 것은 동요에서 노래 부르는 것처럼 5월이 푸르기 때문인가? 전혀 아니다. 5월은 결코 푸르지 않았다. 푸르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보일 뿐이다. 저 옛날에 5월은 정반대로 붉었다. 5월에 피는 장미꽃, 붉음, 피, 희생이 메이데이에 오롯이 바쳐지듯 어린이날도 처음에는 그랬다.
 
김기전, 방정환 등 식민지 시대 어린이운동의 선각자들이 어린이날을 5월에 잡은 것은 메이데이(세계노동절)의 의미와 결합하기 위해서였다. 첫 어린이날은 5월 1일. 메이데이와 하루도 틈이 나지 않았다. 아녀자, 아해(아이) 등 비칭만 있었을 뿐 어린이를 존중하며 가리키는 지칭도 없었던 당시, 방정환 등은 늙은이, 젊은이 등의 낱말을 참조하여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었다. 지금 어린이의 대체말로 쓰이는 ‘소년’, ‘아동’은 근대 이후 일본에서 건너온 한자말이다. ‘어리다’가 ‘어리석다’에서 나온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어린이는 사람 중에서 어리석고 모자라는 존재였고 사람이 덜 된 존재였다.
 
그들이 세계 최초로 어린이날을 선포하면서 뿌린 선언문은 지금 읽어도 감동적이다.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들에 대한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게 하라. 어린이를 재래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만14세 이하의 그들에 대한 무상 또는 유상 노동을 폐하게 하라. 어린이 그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에 족한 각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허하게 하라.”
 
선언문의 첫머리에 놓인 이 글은 윤리적 압박, 경제적 압박, 문화적 압박 등 어른이 될 때까지 전방위적인 핍박을 받고 있는 어린이들을 놓아주자고 호소한다. 이 짧은 대목에서 당대 식민지 조선의 어린이들이 어떤 처지에 있었는지 손에 잡힐 듯이 생생히 드러난다. 어린이들은 윤리적으로 미완성된 존재로 취급받았으며, 어리다는 이유로 무상 노동을 하기도 했으며, 집 밖에는 뛰어놀 놀이터도, 집안에는 자기 방도 거의 없었다.
 
이 선언문은 구절구절이 혁신적이지만 만14세 이하 어린이에게 유상 노동도 시키지 말 것을 강조한 것은 지금 우리 시대의 아동에 대한 대우보다 떨어지지 않는다. 마치 유엔세계아동권리협약이나 현대 아동의 법적 권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아니 어떤 점에서는 지금의 아동에 대한 것보다 훨씬 더 나은 대우를 요구하고 있는 것도 있다. 바로 어린이를 어른과 동등하게 대우할 것을 강조한 부분이다.
 
이 선언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어린이에 대한 “완전한 인격적 대우”를 강조한 부분이거니와(강준만, 한국 근대사 산책 6 : 사진신부에서 민족개조론까지), 이 대목은 지금 시대에도 어른이 어린이를 조금 대우해 주고 봐주는 경우는 있어도 어른 자신과 차별 없이 대하는 경우가 매우 드묾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 사회구조에서 어린이는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어른의 돌봄과 보살핌을 받아야 할 대상임을 감안하면 당시 이 구절이 얼마나 혁신적이고 시대를 성큼성큼 앞서갔는지 알 수 있다. 

 
위의 선언문 구절에 어린이를 지우고 노동자를 대신 앉히면 그것은 그대로 노동자의 인간 해방 선언이 될 것이다. 즉 이 선언문은 피압박 계급으로서 노동자와 어린이를 동렬로 본 것이다. 세계 최초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 지 5년, 당대 식민지 조선에서 활발했던 사회주의 운동의 기운이 마지막 남은 피압박 계급인 어린이에게도 미쳤던 것이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과 해방, 분단을 거치며 어린이날은 본래의 혁명적인 의미는 날아가 버리고 어른의 구미와 욕심에 맞춘 이상한 날로 변질되어 버렸다. 제3차교육과정(1974~1983년) 당시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 3학년 1학기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어린이날을 맞아 선호라는 남자 아이는 아버지에게 착한 어린이가 될 것을 결심하고 착한 일을 할 때마다 뒤뜰에 돌탑을 쌓기로 하자 아버지도 이에 동참한다. 그러나 누가 더 착한 일을 많이 하나 하는 겨루기가 되자, 선호는 거짓으로 돌을 놓는 속임수까지 저지르면서 착한 일 하기는 정반대로 의미가 왜곡된다.

 

▲ 70년대 초등학교 교과서에 묘사된 어린이상     © 교육부

 
다음 날 아버지의 정직한 모습을 본 선호가 돌을 내려놓으며 자신을 뉘우친다는 것인데, 그 시대 국정교과서의 어린이날은 권리도 없는 어린이에게 착함, 정직, 자기반성을 요구하는 날이었다. 인권, 인격적 대우, 인간 해방 등 어린이날의 원래 의미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일찍이 선각자들이 어린이날 선언문에서 규탄한, 어린이에 대한 “재래의 윤리적 압박”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어린이는 윤리적으로 모자라는 덜 된 사람이니만큼 어른의 가르침을 받아 공부하여 완전한 인격적 존재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 국정교과서가 요구하는 어린이였다.
 
지금도 어린이날은 원래 의미인 ‘노동’과의 결합을 되찾지 못하고 ‘가정’에 묶여 있음으로써 어린이의 인격적 주체성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를 주지 않고 있다. 부모들이 어린이날을 자식에게 한 턱 쏘고 실컷 놀게 해주는 날로만 생각하는 한, 어린이에 대한 “완전한 인격적 대우”를 주창한 어린이날의 본래 의미를 회복하는 길은 요원하다. 어린이와 가정의 결합은, 어린이를 어른의 보호와 돌봄,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어린이가 어른들이 구획해 놓은 틀 속에서 사회화하는 존재가 되는 것을 넘어서지 못하게 한다. 그런 어른들에게 5월 하늘이 붉은 적이 있었다는 사실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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