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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Q.보다 더 중요한 인생의 성공계수에 대하여
[류상태의 문화산책] 신학기를 맞이한 '흙수저'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
 
류상태   기사입력  2016/03/06 [15:57]

I.Q.는 매우 중요하며 학업능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I.Q.가 높으면 공부를 잘할 뿐 아니라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갈 확률이 매우 높고, 반대로 I.Q.가 낮은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적인 삶을 살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그럴까?

 

I.Q.가 높을수록 학업성취도 또한 높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I.Q.가 우리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생각보다는 크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의 이론을 새 학기를 맞이한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에게 소개하고 싶다.

 

E. J. Daniel 박사는 자신의 저서 <진리를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에서 “I.Q.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결코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I.Q.는 검사 당일의 컨디션과 주변 환경에 큰 영향을 받기에 한두 번 검사한 결과로 자신의 지적 능력을 판단하는 건 매우 위험하다고 한다.

 

그는 또한 지적 계수, 즉 I.Q. 못지않게 인생의 성공을 좌우하는 계수가 여럿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지금까지 갖고 있던 I.Q.에 대한 허상을 과감히 깨뜨리고 지적 계수 이외의 다른 계수들에 대해서도 면밀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자, 그럼 우리 인생을 성공으로 인도하는 계수들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보기로 하자.

 

1> I.Q. (Intelligence Quotient) - 지적 계수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성공을 I.Q.에 비례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I.Q.는 인생의 성공을 위한 여러 가지 계수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I.Q.는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I.Q.도 개발할수록 높아지고 방치하면 낮아진다. 그러니까 I.Q.가 높다고 자만할 필요도 없고 낮다고 낙망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I.Q.는 원래 100을 기준 수치로 정한 것이다. 그래서 대체로 90~110 사이면 보통의 수치이고, 90 이하면 낮은 수치, 110 이상이면 높은 수치로 본다. 그런데 I.Q.검사는 대개 학창시절에 한 번이나 두 번 받는 게 전부다. 하지만 I.Q.검사는 환경과 검사자의 상태에 따라 +-15 정도의 오차가 생길 수 있기에 한두 번의 검사로 자신의 I.Q.를 단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예를 들어, A군의 정상 I.Q.가 110이고, B군의 정상 I.Q.는 90이라면 둘의 I.Q. 차이는 20으로 꽤 차이가 나지만 둘 다 ‘보통의 수치’ 안에 들어간다. 그런데 만일 A군이 최상의 컨디션, B군은 최하의 컨디션일 때 검사를 하면 A군의 I.Q.는 125, B군의 I.Q.는 75가 나올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둘의 I.Q. 차이는 무려 50으로 나타나 A군은 꽤 “머리가 좋은” 학생이 되고 B군은 제대로 학업을 따라 올 수 있을지 걱정할 정도가 된다.

 

하지만 A군이 최하의 컨디션, B군이 최상의 컨디션에서 검사를 한다면 A군의 I.Q.는 95, B군의 I.Q.는 105가 나올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꽤 머리가 “좋을” 것으로 예상했던 A군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두 자리 수” I.Q.가 되고, B군은 세 자리 수 I.Q.가 된다. 실상이 이렇다면 한두 번 검사한 I.Q.는 그저 참고만 하고 잊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2> W.Q. (Work Quotient) - 노동 계수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당연한 명제다. 차분히 생각해보면 노동계수가 지적계수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누구나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지적계수는 높지만(“머리가 좋은”이라는 말은 사실 적합한 표현이 아니다) 노동계수가 낮은(게으른) 사람과, 지적계수는 그다지 높지 않지만 근면한 사람 중에 누가 더 성공할 가능성이 높을까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에디슨도 “천재란 98%의 땀이다”라고 말했다. ‘머리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엉덩이의 역할’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데 동의하는 말이 되겠다.

  

3> S.Q. (Stick-to-it-iveness Quotient) - 인내 계수

 

직역하면 ‘끈질기게 매어달리는 계수’라고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한두 번의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다시 매달리고 또 연구하며 끈질기게 도전하는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이솝우화 중에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가 있다. 굳이 설명할 필요 없이 모두 잘 아는 이야기다. 토끼가 낮잠을 잤다는 변수가 있었지만 뻔해 보이는 경주를 포기하지 않은 거북이의 뚝심 또한 반전을 이룬 중요한 요인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잘 모를 수 있겠지만 50대 이상이라면 권투선수 홍수환씨를 모르는 분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여 내가 설명하는 것보다 젊은 그대의 부모님에게 물어보거나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 ‘홍수환의 4전5기’가 무엇인지. 중요한 것은 이런 일이 지금도 현실세계에서 가끔 일어난다는 점이다.

  

4> D.Q. (Discipline Quotient) - 훈련 계수

 

시간이나 돈, 공부, 기타 모든 생활을 잘 사용하기 위해 부단히 훈련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요즘 이른바 ‘숟갈론’이 세간의 유행어가 되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구는 은수저, 누구는 흙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공평하지 않은 세상을 질타하는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누구에게나 인생이 단 한번 주어졌다는 것과, 떠날 때는 빈손으로 가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평하다. 그래서 세상이 공정한 것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나뿐인 인생을 잘 설계하고 부단히 훈련하며 성실히 살아내야 할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본 영화 중에 ‘빠삐용’이라는 명화가 있었다. 주인공 빠삐용은 사람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강제노역소에 유배된다. 억울해서 잠을 이루지 못하던 빠삐용이 겨우 잠을 청하다 꿈을 꾸게 되었다. 넓은 사막을 한없이 걷는데, 건너편에서 판사가 다가와 말한다. “빠삐용, 너는 사람을 죽였지? 그러므로 유죄다.” “아니요, 나는 무죄요. 결코 사람을 죽인 적이 없소.”

 

판사가 다시 말한다. “그래, 니가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 치자. 그래도 너는 유죄다. 왜냐 하면, 너는 인생을 낭비한 죄가 있기 때문에...” 그 말을 듣고 빠삐용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독백하며 돌아선다. “나는 유죄요, 나는 유죄요...”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 죄라는 말이 되겠다. 하늘이 내려준 소중한 인생,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한 인생을 낭비했으니 죄라는 것이다.

 

5> M.Q. (Moralis Quotient) - 도덕 계수

 

도덕적인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 되겠다. 이 말에는 반론을 펼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이 많을 것 같다. “바르게 살고자 애쓰는 사람이 더 못사는 경우가 많더라”라고. 좀 슬프지만 나 역시 그런 마음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인생의 성공여부를 경제적 풍요에만 두지 않고 정신적 영역도 함께 생각한다면 이 명제 역시 새겨들을 가치가 있다.

 

6> P.Q. (Partnership Quotient) - 동반자 계수

 

어떤 사람을 만나고 인생의 동반자로 삼느냐에 따라 성공의 가능성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문제는 누구나 쉽게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폭력조직에 가입한 젊은이가 성공적인 인생을 살 가능성은 별로 없다. 친구들과 어울려 마약이나 노름에 손을 댄 젊은이들 역시 그렇다. 물론 잠시의 방황 후에 곧바로 벗어난 친구들은 예외다.

 

그렇다고 사람 사귀는 일을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가능하면 친구를 넓게 사귀라고 젊은 그대들에게 권하고 싶다. 외향적인 성격의 젊은이들은 대체로 친구를 넓게 사귀는 경향이, 내성적인 성격의 젊은이는 깊게 사귀는 경향이 있다. 양쪽이 조화를 이루면 좋지 않을까. 모든 친구들을 모두 깊게 사귈 수는 없겠지만, 폭넓게 사귀는 가운데 마음과 뜻이 통하는 친구들과는 오래도록 인생의 동반자로 지내면 좋지 않을까.

 

류상태 선생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이후 20여 년을 목회자, 종교교사로 사역했지만, 2004년 ‘대광고 강의석군 사건’ 이후 교단에 목사직을 반납하였고, 현재는 종교작가로 활동하면서 ‘기독교의식개혁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교양으로 읽는 세계종교] [소설 콘스탄티누스] [신의 눈물]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 [당신들의 예수]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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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3/06 [15:5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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