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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높은 대학진학률이 사회적 비극 가져오는가?
[강준만 이론으로 보는 세상] 젊은이들이 교육거품으로 고통당하는 나라
 
강준만   기사입력  2015/11/28 [01:52]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2005년 82.1퍼센트로 최고 기록을 세웠지만, 2010년에 80퍼센트 벽이 무너지며 79퍼센트, 그 후 계속 하락해 2013년에는 70.7퍼센트까지 내려왔다.61 하지만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의 대학 진학률은 1940년 13퍼센트에서, 1970년 43퍼센트, 오늘날엔 70퍼센트 수준(2009년 70.1퍼센트)에 이르고 있다.62


대학 진학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과 미국은 이른바 ‘고등교육 버블(higher education bubble)’이 심각한 나라다. 미국 보스턴대학 경제학 교수 로런스 코틀리코프(Laurence J. Kotlikoff)는 『세대 충돌(The Clash of Generations: Saving Ourselves, Our Kids, and Our Economy)』(2012)에서 “젊은이들이 교육 거품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우려하는 전문가들의 숫자가 늘고 있다. 인터넷 버블이 있고 주택 버블이 있는 것과 똑같이, 사람들이 교육 버블에 깊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한때 높은 학력과 동의어가 되다시피 했던 고소득과 안전이 더이상 보장되지 않는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너무 많은 돈을 빌리고 있다. 교육 버블과 인터넷 및 주택 버블 사이에 유일한 차이가 있다면 교육 버블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사실뿐이다. 교육 버블이 꺼질 때, 우리는 새로운 종류의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대학 학위를 어떻게 차압할 것인가?”63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 지는 빚이 너무 많다는 점에서 고등교육 버블은 사실상 ‘학생 대출 버블(student loan bubble)’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이는 대학 등록금이 치솟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미국에서는 2011년 최초로 주립대학들이 학생들에게서 받는 등록금이 주 정부의 지원금을 초과했는데, 이처럼 날이 갈수록 주 정부와 연방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줄고 있는 게 등록금 고공 행진의 주요 이유로 지목되고 있다.64


한국도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2013년 10월 취업포털사이트 인크루트가 대학교를 졸업하거나 재학 중인 20대 79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조사대상의 74.8퍼센트가 4년제 대학교 입학을 후회해본 적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교 진학을 후회하는 이유로는 ‘4년 동안 공부했지만, 원하는 직업을 찾지 못해서’가 46.7퍼센트로 1위를 차지했다. ‘취업이 어려워서(28.8퍼센트)’, ‘등록금 때문에(9.4퍼센트)’ 라는 응답이 그 뒤를 이었다.65


특히 2000년대 말 연간 1,000만 원을 돌파한 대학 등록금은 대학생들에게 고통과 절망의 근원이 되고 있다. 2015년 1월 취업포털사이트 ‘사람인’이 신입 구직자 89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6.8퍼센트(417명)가 빚이 있으며 1인당 평균 부채는 2,769만 원으로 집계되었다. ‘정상적인 경제생활이 어렵다’는 구직자도 29퍼센트였다. 이들은 현재 지고 있는 빚을 전부 상환하기까지 평균 5년 6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66 이와 관련, 손 모(60대)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2010년 아들이 대학에 합격했어요. 그 전까지는 어렵지만 빚 없이 살았는데,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 광고에 눈을 돌렸어요. 연이자 48%에 선이자 36만원을 제하고 564만 원을 주더군요. 원금 10만 원에 이자 30만 원을 합쳐 한 달에 40만 원씩 갚는데 2년 넘게 갚아도 이자는 줄어들지 않고, 삶은 피폐해졌어요. 아들놈 등록금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곤 하지만, 이건 말이 좋아 대출이지 내 발로 살인행위나 다름없는 짓을 해대는 소굴로 들어갔음을 직접 당하고서야 알았습니다.”67


지방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이와 관련, 김성탁은 이렇게 말한다. “웬만한 가정에선 자녀의 서울살이 생활비밖에 감당할 수 없어 대학 등록금은 학자금 대출로 해결한다. 사회에 첫발을 딛기 전부터 빚을 지는 것이다. 다행히 수도권에서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월급 받아 원룸비·교통비 등 생활비에 학자금 대출까지 갚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집 장만은 고사하고 수천만 원씩 뛰는 전세자금 마련도 먼 나라 얘기이니 부모의 지원 없인 결혼이 쉽지 않다. 지방의 부모와 서울의 자녀 모두 빈곤의 악순환에 빠질 위험이 상존한다. 고구마 줄기처럼 연결된 ‘지방의 비애’ 뒤엔 ‘인(in) 서울’ 대학 쏠림현상이 자리 잡고 있다.”68

미국의 벤처 자본가 피터 티엘(Peter Thiel)은 2010년 9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테크크런치 디스럽트(TechCrunch Disrupt)’ 회의에서 고등학교 졸업자 중에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사업을 시작하기로 한 20명에게 2년 동안 최고 10만 달러까지 제공하는 ‘Stop Out of School’이라는 프로그램을 선언했다.69


교육 버블을 바로잡아보겠다는 취지에서 시도한 일이다. 그게 그런 식으로 해서 바로잡힐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낫다. 한국에서도 그런 운동이 일어나면 좋겠다. 그런데 한국에선 벤처 자본가와 같은 강자가 아니라 아직 대학 또는 사회에 진입하지 않은 약자들 사이에서 교육 버블에 도전하는 작은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른바 ‘투명가방끈 운동’이다.


2011년에 결성된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은 2015년 3월 1일에 발표한 선언문에서 “우리는 지금 한국 사회와 한국의 교육이 사람들을 불안하고 불행한 삶으로 내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학입시와 취업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경쟁적인 학교교육, 서열화되고 상품화되어 차별을 조장하고 정당화하는 대학-학교들, 성적과 학력 그리고 학벌주의 등 ‘가방끈’으로 사람을 가치를 재고 차등하는 사회, 부당한 사회구조의 문제는 외면한 채 생존을 개개인의 탓으로 돌리며 비인간적인 노동과 굴종을 강요하는 세상, 이런 것들을 바꾸자는 것이 우리의 문제의식입니다.”70


투명가방끈의 회원인 박유리는 대학을 ‘차별과 계층을 만들어내는 생산 기지’로 규정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한국 사회의 대학은 더이상 학문을 위한 기관이 아니다. 학력이라는 상품을 팔아 부를 축적하는 기업이 되었다.……대학 서열이 중심인 학벌 사회에서 초·중등교육은 대학입시를 위한 과정으로 왜곡되어버렸다.”71

사실 한국의 학벌주의 문제는 ‘버블’ 이상의 것이다. 민중을 위해 희생하는 진보가 되고 싶어도 일단 학벌이 좋아야만 지도자급 반열에 들 수 있다. 이는 학생운동이나 민주화 투사 출신으로 금배지를 단 사람들의 출신 학교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건 바뀔 수 없는 철칙처럼 여겨지고 있다. 학벌 없이 진보의 리더십을 행사하는 게 매우 어려운 현실이 시사하는 게 과연 무엇일까?


일단 기존 게임의 룰에 순응하고 나서 그 룰을 강요하는 체제를 바꾸겠다는 뜻을 탓할 수는 없다. 다만 문제는 이 세상일의 대부분은 학벌주의라고 하는 게임의 룰에 순응하는 것에 의해 결정되며 이후 그 어떤 변화의 시도도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데에 있다. 달리 말하자면, 학벌의 값을 떨어뜨리려는 노력이 우선되지 않는다면, 대중의 일상적 삶은 좋은 학벌을 쟁취하기 위한 입시 전쟁에 포획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변화의 동력 자체를 제거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의 제1차 이데올로기 전선은 좌우(左右)나 진보-보수가 아니라 학벌인 셈이다.


62) Daniel Akst, 「A Craving for Acceptance」, 『The Wall Street Journal(Internet)』, March 5, 2011.
63) 로런스 코틀리코프(Laurence J. Kotlikoff)·스콧 번스(Scott Burns), 정명진 옮김, 『세대 충돌』(부글북스, 2012), 163쪽.
64) 「HIgher education bubble」, 『Wikipedia』.
65) 이슬기, 「“대학 괜히 갔다” 20대 10명 중 7명 대학 진학 후회」, 『헤럴드경제』, 2013년 10월 21일.
66) 김정필, 「취직도 전에 ‘빚이 2,800만 원’」, 『한겨레』, 2015년 2월 10일.
67) 최규민 외, 「[금융文盲 대한민국] [3] “빚 무서운 줄 알았어야 했는데…信不者 되니 사람 취급 않더라”」, 『조선일보』, 2015년 3월 14일.
68) 김성탁, 「서울로 대학 보낸 지방 학부모의 하소연」, 『중앙일보』, 2015년 3월 13일.
69) 로런스 코틀리코프(Laurence J. Kotlikoff)·스콧 번스(Scott Burns), 정명진 옮김, 『세대 충돌』(부글북스, 2012), 164쪽.
70) 투명가방끈, 『우리는 대학을 거부한다: 잘못된 교육과 사회에 대한 불복종선언』(오월의봄, 2015), 299쪽.
71) 투명가방끈, 『우리는 대학을 거부한다: 잘못된 교육과 사회에 대한 불복종선언』(오월의봄, 2015), 264~265쪽.

 

* 본문은 월간 <인물과사상>에서 제공했습니다.

글쓴이 강준만은 언론과 대중문화를 포함하여 문화사 전반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조지아대에서 신문방송학 석사, 위스컨신대에서 신문방송학 박사학위를 받고 1989년부터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현대사 산책(전 23권)](2002~2011), [한국대중매체사](2007), [미국사 산책(전17권)](2010), [세계문화의 겉과 속](20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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