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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인, 왜 윤동주에 푹 빠졌나?
[책동네] 우에노 미야코, 윤동주 전작시 일본어 완역《空と風と星と詩》 펴내
 
이윤옥   기사입력  2015/07/01 [13:35]

 

▲ 우에노미야코, 윤동주 시 일본어 완역집 《空と風と星と詩(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vywl     ©
콜삭스사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서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별 헤는 밤, 가운데서-
 
僕はなぜだか切なくて
このたくさんの星の光が降りそそぐ丘のうえに
自分の名前を書いてみて
土で覆ってしまいました - 星を数える夜 -
 
윤동주 시인의 시를 사랑하고 윤동주 시인의 삶과 사상을 흠모하는 일본의 중견시인 우에노 미야코(上野都, 68살) 씨가 이번에 윤동주 전작시를 일본어로 번역하여 《空と風と星と詩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일본 콜삭사(コ-ルサック社)에서 펴냈다. 그간 윤동주 시인의 단편적인 작품 번역과 논문이나 연구서 등은 일본에서 많이 나왔지만 문학성이 뛰어난 중견시인으로 완역집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처음이라고 한 것은 ‘윤동주 시의 원작을 가장 잘 살린 번역’ 이라는 뜻이다.
 
25년 전 윤동주 완역본이 이부키 고우(伊吹鄕) 씨에 의해 나온 적이 있다. 그러나 이부키 씨의 번역은 그간 의역이 많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그 한 예로, 윤동주의 ‘서시’ 가운데,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부분에 대한 문제가 크게 불거진 적이 있다.
 
문제의 부분을 보면 이부키 고우 씨의 번역은 “生きとし生けるものをいとおしまねば(모든 살아있는 것을 가엾게 여기지 않으면)” 으로 되어 있고, 또 다른 번역으로 아이자와 카쿠 씨의 “すべての死にゆくものを愛さねば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하지 않으면)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중견시인 우에노 미야코 씨의 번역본에서는 그 보다 더 깊은 내용이 함축된 (すべて滅びゆくものを慈しまねば(모든 죽어가는(단순한 죽음이 아닌 소멸해가는 것을 포함) 사랑해야지(같은 사랑이라도 자비심을 포함한 사랑) 번역으로 되어 있다.
 
시의 번역은 원작을 누가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일본어 전공자인 나의 생각으로는 우에노 미야코 씨의 번역이 ‘윤동주가 추구하는 시세계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번역’ 이라는 생각이다. 같은 죽어 가는 것이라 해도 그것이 단순한 ‘껍데기의 소멸’인지 아니면 껍데기가 담고 있는 ‘본질’까지를 포함하는 것인지는 매우 심오한 철학적인 문제 인지라 낱말 선택도 그 만큼 신중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시누(死ぬ, 죽다)라는 말을 쓸 것인지 호로비루(滅びる, 죽음을 포함한 멸하다)를 쓸 것인지는 윤동주의 시 세계를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번역을 아무나 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이런 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우에노 미야코 시인의 이번 윤동주 시집 완역이 갖는 의의가 큰 것이며 비로소 윤동주의 완벽한 완역이 나왔다고 일본 문학계가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커서 어른이 되면 한국어를 공부하여 윤동주시인의 번역 시집을 낼 것이라고 중학생 시절부터 별러왔다. 그때 나는 이미 시를 쓰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는 중학생 때의 꿈을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룬 우에노 미야코 시인의 감격어린 일성이다.
 
우에노 시인의 이번 작업은 시인 자신이 윤동주 시에 매료 되어 한 땀 한 땀 자수를 놓듯 시심(詩心)을 꿰뚫은 번역으로 일본 문학계는 그 수준 높은 번역에 놀라움을 표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한국어에 조예가 깊기 때문에만 가능 한 일이 아니다. 그 자신이 이미 50여 년간 시를 써온 경험과 동시에 일제침략의 역사를 그 누구보다도 통렬히 가슴 아파하는 역사 인식의 바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번에 윤동주 시인의 한글 시 117편을 완역한 우에노 시인은 “나에게 있어 한국어라는 외국어의 벽은 매우 높다. 그러나 사전을 곁에 놓고 씨름하면서 낱말 하나하나에 걸맞은 일본어를 찾아나가는 고행 끝에 어느 날 문득 눈앞의 안개가 걷히고 푸른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러한 우에노 시인의 ‘문통(文通)’은 단순한 번역의 차원을 벗어나 시인 윤동주와의 깊은 사상적 교감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일반 연구자가 아닌 시인의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다본 윤동주의 시는 그래서 한 작품, 한 작품 원작이 갖고 있는 작품성을 낱말 하나에 이르기 까지 잘 살려내고 있으며 “이렇게 일본어로 번역된 시들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윤동주 시인의 섬세한 마음과 영혼까지 느끼게 해주는 뛰어난 번역”이라고 일본의 대표시인인 이시카와 이츠코 (石川逸子, 83)씨는 서슴지 않고 이번 우에노 시인의 완역을 높이 사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 16일, 윤동주시인이 다니던 교토 동지사대학에서는 그를 추모하는 시인들이 모여 윤동주 사후 70주기 추모회를 가졌다. 나는 그 자리에서 ‘서시’를 낭송했다. 마침 그때는 겨울 끝자락이라 쌀쌀한 날씨였지만 교정에는 홍매화가 활짝 폈고 하늘도 푸르고 높았다. 마치 윤동주 시인이 그리던 푸른 하늘을 보는 듯 해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하는 우에노 시인의 한평생은 윤동주 시인이 노래하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와의 조우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윤동주 시인이 마지막 거닐었던 교토의 하늘 아래서, 교토의 시인 우에노 미야코가 번역한 윤동주의 시들이 앞으로 한일, 일한의 국경을 뛰어 넘는 또 하나의 우정의 시작이자, 서로의 역사와 마음을 이어주는 소통의 다리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본 콜삭스사 펴냄. 1500엔
 


 
일본인들에게 윤동주 시인 후쿠오카형무소에서의 죽음을 알리겠다
[대담] 우에노 미야코 시인 
 
▲ 우에노 미야코 시인     ©이윤옥

- 언제부터 시를 쓰게 됐고, 어떻게 시작 공부를 했나?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중학생 때이며 본격적인 시 공부는 고등학교 문예부에 들어가면서였다. 당시 24살로 요절한 다치하라 미치조우(立原道造, 1914 - 1939)의 시와 더불어 "사계파"로 불리는 작가들의 시와 소설 등을 읽으며 문학수업을 쌓아갔다. 지금도 시 창작 시절의 마음 그대로를 간직하며 시 작업에 임하고 있다.”
 
- 윤동주를 어떻게 만났고, 윤동주 시의 어떤 점에 매료되었나?
 
“23년 전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윤동주를 알게 되었다. 좋아하는 윤동주 시를 말하라면 ‘전부’라고 말 할 수 있다. 초기에는 윤동주의 기독교신앙과 굴절된 심상풍경(心象風景)을 잘 이해 못했다. 아마도 그의 서정적인 언어의 아름다움과 그 함축성에 이끌렸던 것 같다.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는 것은 윤동주의 젊고 순수한 언어 속에 담긴 뚜렷한 자아성향과 특히 산문시 5편에서 볼 수 있는 이지적인 유머, 해학성은 언제 읽어도 매력적이다.
 
- 시 몇 편도 번역하기가 쉽지 않은 일인데 어떻게 완역을 결심하게 되었나?
 
“117편을 번역하면서 내 스스로 한국어 공부에 큰 자극을 받았으며 번역을 계속하면 계속할수록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다만 번역 자체는 여러 면에서 어려운 난관이 컸다. 그래도 끝까지 완역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윤동주를 존경하는 마음에서였으며 ‘한국어를 공부하는 시인’으로서 자연스런 도전이었다.”
 
- 번역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내 자신이 기독교인도 아니고 시대나, 민족, 환경도 크게 다른 내가 어떻게 윤동주 시인의 가슴 깊숙이에 숨어있는 신앙이나 가족에 대한 사랑 따위를 일본어로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끝까지 따라 붙어 나를 괴롭혔다. 이의 극복은 윤동주 시인에의 공감과 존경심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으며 섣불리 "껍데기만 일본어로 된 시"의 형태로 번역해서는 안 된다는 자각을 시종일관 유지하면서 번역작업에 임했다.”
 
- 윤동주 시 가운데 가장 가슴에 담아두고 싶은 시는? 그리고 그 까닭은?
 
‘하나’ 만 예로 들기는 어렵지만 가장 좋아하는 시는 "별 헤는 밤"이다. 한국어로 읽으나 일본어로 읽으나 가슴이 찡하면서 윤동주 시인에 대한 공감대를 느낄 수 있는 명시라고 생각한다. 특히 시 속에 나오는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등은 내 젊은 날의 애독시이기도 해서 더욱 공감이 간다. 마지막 연의 "자랑처럼 푸른 풀(이 무성할 거외다)"을 바라보는 심정은 지구촌에 살아가는 인간의 보편적인 생각을 승화시킨 것으로 생각한다. 요절한 윤동주 시인의 위대함에 그저 가슴이 떨릴 뿐이다.“
 
- 《空と風と星と詩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일본어판 윤동주 완역 시집을 내면서 일본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이 번역 시집을 낸 뒤 많은 일본인들로부터 윤동주라는 이름과 ‘서시’, ‘쉽게 쓰인 시’ 등을 읽은 일이 있다던가, 시집을 본 적이 있다는 반응이 있었다. 그들로부터 한결같은 이야기는 ‘윤동주 시인이 이렇게 많은 시를 썼으며 그에게 이런 천재성이 있었느냐? 처음 알았다.’는 반응이다.
 
번역시집 "후기"에도 썼지만 이 번역 시집을 통해 일본인들이 조선의 청년 윤동주 시인이 왜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어가야 했는가? 그리고 패전 뒤 70년 동안 일본은 무엇을 배웠는가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 지금 한일관계에 대해 일본은 상대를 매도할 뿐인 폭력적인 언어를 쓰고 있는데 그런 것 보다는 윤동주 시인의 "시혼(詩魂)"을 통해 그가 호소하는 강렬한 언어의 힘이 한일 양국 사이에 존재하고 있음을 인식시키고 싶다.”
 
-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아직 별다른 계획은 없다. 시집을 읽은 사람들로 부터 ‘수고했다. 좋은 일을 했다.’라는 인사를 받고 있는데 이참에 지친 심신을 쉬고 싶은 생각이다. 다만 윤동주를 추모하는 모임 등에는 꼭 참석하여 윤동주 시집의 완역자로서의 긍지와 감사의 뜻을 전하고 윤동주 시인의 시세계를 전하고 싶다.”
 
 
<우에노미야코 시인 약력>
 
1947 일본 도쿄 출생
1970년 후쿠오카현립 기타큐슈대학 영미(英美)학과 졸업
1973년 후쿠오카 시잡지 ‘아루메’ 동인
1992~ 94 오사카시 히라가타시교육위원회 조선어교실에서 한국어 수학
1998년 재일한국문인협회 외국인 정회원 1호
1999년 재일한국문인협회 상임간사
2015 일본현대시인협회 회원 
 
 
 
이윤옥 소장은 일본 속의 한국문화를 찾아 왜곡된 역사를 밝히는 작업을 통해 한국과 일본이 서로 제대로 된 모습을 보고 이를 토대로 미래의 발전적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밑거름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한국외대 박사수료,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어연수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을 지냈고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과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민족자존심 고취에 앞장서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말 속의 일본말 찌꺼기를 밝힌『사쿠라 훈민정음』인물과사상
*친일문학인 풍자시집 『사쿠라 불나방』도서출판 얼레빗
*항일여성독립운동가 20명을 그린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도서출판 얼레빗
*발로 뛴 일본 속의 한민족 역사 문화유적지를 파헤친 『신 일본 속의 한국문화 답사기』 바보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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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7/01 [13:3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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