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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시민들의 메르스 대응 방식
[정문순 칼럼] 안전 위기에 대처하는 시민들의 현명함, '세월호' 왜 침묵했나
 
정문순

내가 사는 지역에도 드디어 메르스 방역의 구멍이 뚫렸다. 환자 유형도 특이하다. 메르스 환자가 대거 발생한 삼성서울병원 내 응급실 밖에서 감염된 것으로 확인된 첫 환자이다. 5월부터 아팠다는 이 환자의 확진 판정이 늦어진 것이 알려지자 우리 지역에는 비상이 걸렸다. 환자의 손자손녀들이 다니는 근처 학교와 유치원이 임시 휴교나 휴원에 들어가고, 환자가 다녀간 병원 두 곳은 폐쇄되고, 격리 대상자만 5백 명이 넘었다. 내가 사는 지역은 환자가 거주하는 곳으로부터 걸어서 20~30분 거리다. 확진 환자가 생겼다는 정부 발표가 나온 날, 여느 때 같으면 사람들이 쏟아져 나올 여름밤 9시 거리는 자정을 넘은 것처럼 사람들이 드문드문했다. 내가 가끔 가는 찻집에는 그날 저녁 손님이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움직임은 소리 없이 기민했고 부산했다. 확진환자가 나왔다는 당국의 발표가 있자마자, 사람들은 어떻게 알아냈는지 환자 정보를 공유하기 바빴다. 어린 자식을 둔 여자들이 특히 예민했다. 환자가 사는 곳은 우리 지역에서 사람 구경을 가장 많이 할 수 있는 곳이다. 사람들은 하필 인구 밀집도가 가장 높은 곳에서 환자가 나왔다고 불만스러워했다.
 
환자가 경유한 곳은 뉴스로 나오자마자 빛의 속도로 전파되었다. 가족의 신상도 털렸다. 환자가 사는 아파트 동호수, 그 집 아들의 이름, 직업, 근무처, 심지어 사위가 사는 곳까지 카톡에서 돌아다녔다. 사실인지 알 수 없으나, 사람들은 환자가 삼성서울병원의 외래 환자였다는 사실을 숨기고 이 지역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는 말을 하나같이 입에 담았다.
 
바이러스는 무섭다. 바이러스 자체는 복제나 세포 활동을 하지 않아 생물로 분류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생물보다 생물적 활동을 활발히 한다. 환경 적응력이 탁월하여 처음에는 동물 사이에서만 증식하다 인간의 영역으로 침투했고 상황에 맞추어 스스로의 성질을 변모시키는 변종 바이러스로도 변신했다. 밀집형 도시 생활은 바이러스가 활약할 수 있는 최적의 기반이기도 하다. 바이러스에 대한 대응력을 갖추기도 전에 변이형 바이러스가 나타나는 예측불가능성 때문에 바이러스가 무서운 건 당연하다. 더욱이 메르스는 치료약도 없고 어떤 바이러스인지 정보도 빈약하다. 그러나 그것을 한사코 인정하지 않으려고 드는 이들이 있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바이러스를 무서워하지 말라고 누누이 강조한다.
 
자주 가는 집 근처 도서관에는 보건복지부 지침을 참조해서 만들었음 직한 메르스 대처 공고문이 붙어 있다. 메르스는 독감처럼 잘 퍼지지 않는다, 호흡곤란 같은 질환이 생기면 병원을 병문하라 등이 요지였다. 어떻게든 국민들이 메르스를 만만하고 하찮은 것으로 보게 하고 싶은 권력의 안간힘이 느껴졌다. 호흡곤란이 생기면 병원을 가라니? 실소가 나온다. 우리 지역의 메르스 환자가 증상에 대처한 방식이 의료진을 부른 것이 아닌 병원 방문이었다.
 
메르스 환자와 밀접 접촉하지 않았는데도 감염된 사람이 나오는 한, 메르스가 독감보다 전염성이 낫다는 주장 또한 가능성이나 추측일 뿐이지 입증된 사실이라고 할 수 없다. 설령 독감보다 전파력이 낫다는 것이 맞다고 해도 안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독감보다 전염력이 떨어진다고 해서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걱정하지 말고 일상생활을 그대로 하라는 말인가. 
 
정부가 열심히 가르치지 않아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생활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정부가 원하는 대로 메르스를 쉽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다. 얼굴 없이 돌아다니는 바이러스가 무섭긴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이다. 메르스에 걸릴지 모른다는 두려움보다는 일상 활동이 중단된 생활을 감당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이다. 병에 걸리는 것은 그저 운에 맡기고 나한테는 비극이 닥쳐오지 않기만을 바라는 시민들의 심리를 정부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권력이 바이러스나 세균성 질환에 대처하는 방식에는 고정된 유형이 있다. 그들이 두려운 건 병이 퍼지는 것이 아니라 병을 잡지 못해서 시민들의 불신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질병의 위험성을 깎아내리려고 애쓴다. 대통령과 여당 정치인이 환자가 있는 병원을 찾아가는 쇼를 보여주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메르스 대응 능력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다. 권력의 속성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 공간을 뒤져 사람들의 입을 단속하겠다는 따위 유치한 대응에서 다른 나라보다 심할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현명하다. 속이 뻔히 보이는 정치권력의 노림수에 넘어가지 않는다. 메르스 바이러스 확산에 사람들이 얼마나 민첩하게 움직이는지 며칠 동안 나는 충분히 목격했다. 안전의 위기 앞에서 이보다 더 지혜롭게 움직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사생활 침해에도 아랑곳없이 환자나 그 가족의 신상을 공유하고 퍼뜨리는 것은 자신과 가족만큼은 어떻게든 질병에 걸리지 않아야 한다는 똑똑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메르스의 공포로부터 벗어난 이후 환자나 그 가족이 지역사회에 어떻게 복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사치스러운 것이 돼버렸다. 
 
메르스 확산 사태를 보면서 세월호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안일함, 무능, 뻔뻔함, 거짓말 등 정부의 대처방식이 세월호 사태 당시와 너무나 닮았다는 것이다. 질병 앞에서는 기를 못 쓰는 권력이 유언비어 유포자를 색출하겠다고 공권력을 동원하는 버릇도 똑같다. 달라진 것은 시민들이다. 치료약이 없는 바이러스의 확산에는 자신이 병이라도 걸릴 것처럼 민첩하게 움직였던 사람들이, 300명이 수장된 사건은 자신에게 물 한 방울로 튀지 않은 일로 치부하는 경우가 왜 적지 않았을까.
 
세월호 사건이 보여준 건 대한민국 자체가 하나의 세월호이고 이 나라가 위험사회의 한복판에 침몰되었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배를 타고 있는 한, 세월호에 희생되지 않은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며 세월호 사태를 그냥 넘기는 한, 남의 일로 생각한 불운은 언제든 자신의 일이 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는 것이었다. 잡지 못한 바이러스만 돌고 돌지는 않는다. 질병이 돌아다니는 사태에서는 참으로 똑똑한 사람들이 국가권력이 국민의 목숨을 지켜주지 못하는 바이러스에 걸린 사실에는 지나치게 관대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든다. 시민사회가 와해되고 각자도생이 진리라고 믿는 사회의 모습이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종편에서는 메르스 환자들이 확진판정을 받기 이전에 마음대로 돌아다녔다며 시민정신을 회복해야 한다고 훈계하는 데 여념이 없다. 정부가 국민들에게 정보를 꽁꽁 숨기거나 호흡 곤란이 오면 병원에 가보라고 하며 환자들을 방치한 사실을 그들은 잊었다. 내가 회복을 염원하는 시민정신은 종편이 염려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이웃의 불행이 곧 나의 불행임을 인지하는 능력이 한쪽으로만 또는 일부분만 작동하는 사회야말로 시민의식이 죽어버린 곳일 뿐이다.
 
바이러스에 대한 사람들의 대처 방식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런 현명함을 다른 데서는 발휘할 수 없을 때, 특정한 상황에서만 작동하는 현명함은 이기심일 뿐임을 확인하게 된다.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운명 공동체인 밀집 도시에 살면서도 정작 나와 내 가족의 안위밖에는 안중에도 없는 시민들의 ‘똑똑함’이 나는 무섭다. 그런 얼치기 똑똑함이야말로 권력의 모략이 잘 먹히는 바이러스 배양처가 될지도 모른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로 [한국문학의 거짓말-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에 대한 집중 조명](작가와 비평, 2011)의 저자입니다.
 
기사입력: 2015/06/14 [17:36]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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