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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머리땋기 하고 놀던 '산거울풀'은 어디로?
[한글사랑] 산거웃이 산거울, 일본말 번역한 ‘가는잎그늘사초’로 둔갑
 
이윤옥   기사입력  2015/04/12 [18:48]

어제 찾은 북한산 등산길에는 가는잎그늘사초(산거울)가 파릇파릇 싹을 틔우고 있었다. 지난 해 자란 길다란 풀은 겨울을 지나는 동안 끝자락이 말려 있어 꼭 할아버지 수염 모습을 하고 있는데 땅 밑에서는 파릇한 싹이 움트고 있어 생명의 신비를 느끼게 해준다.
 
“어릴 때 산에서 머리땋기도하고 하고 아이들 발에 걸려 넘어지라고 함정을 만들어 놀던 이 풀 이름이 ‘가는잎그늘사초(산거울)’래요. 머리 땋기하며 놀면 참 재미납니다.” 이는 인터넷에 올라 있는 글이다. 남자들은 모르겠지만 시골에 살던 여자애들은 이 ‘가는잎그늘사초(산거울풀)’로 머리땋기도 하고 남을 골탕 먹이기도 했던 추억을 하나 쯤 갖고 있을 것이다. 글쓴이 역시 그랬다.
 
그러나 그때는 이 풀이름을 잘 몰랐고 다만 그 모습이 할아버지 수염같이 생겼다고 해서 코흘리개 우리들은 그냥 ‘할배수염’이라 부르며 컸다. 커서 이 풀이름이 무엇인가 했더니 ‘가는잎그늘사초(산거울)’란다. 특히 산거울이라는 말은 아무래도 이 풀이름과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 할아버지 수염처럼 길게 늘어뜨린 산거울(가는잎그늘사초), <북한산에서 글쓴이 찍음>     © 이윤옥


 
할배수염처럼 생긴 이 풀이름을 왜 ‘가는잎그늘사초(산거울)’라고 하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풀이름은 일본말 호소바히카게스게(ホソバヒカゲスゲ, 細葉日陰菅)에서 나온 말이다.
 
호소바(細葉) 는 '가는 잎'이고, 히카게스게 는 '그늘사초'의 뜻이다. 여기서 사초(莎草)란 무덤에 떼를 입혀 잘 다듬는다는 뜻과 사초과의 식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골사초, 산거울, 산사초, 선사초, 화살사초 따위의 220여 종이 있다고 <표준국어대사전>은 풀이 하고 있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가는잎그늘사초’는 나오지 않고 ‘산거울’만 나온다. 그럼 '산거을'의 풀이를 보자.
 
“사초과의 여러해살이풀. 꽃줄기는 높이가 3~6cm이고 둔한 세모기둥 모양이며, 잎 틈에 끼어 잘 보이지 않고 그 끝에 약간의 수상화가 핀다. 그늘진 바위틈이나 건조한 숲 속에서 자란다.”
 

▲ 바위 틈에서 자라는 산거울, 옆에 진달래 한송이가 귀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산에서 글쓴이 찍음>     © 이윤옥


 
 그러나 ‘산거울’은 ‘산거웃’의 잘못된 표기이다.『훈몽자회, 상:14』에는 “髭 거웃  髥 거웃 ”이라고 했는데 수염의 옛말이 곧 ‘거웃’이기 때문이다. 예부터 우리는 할아버지 수염처럼 생긴 이 풀을 ‘산거웃’이라 했는데 이것이 와전되어 ‘산거울’이 된 것이고 이는 다시 일본말을 번역한 ‘가는잎그늘사초’라고 쓰고 있으니 그 어느 것도 이 풀이름으로는 마땅치 않다.
 
이제라도 ‘산거웃’으로 되돌리는 게 맞는 말이지만 기왕이면 산(山)이라는 한자말 대신 우리말 ‘뫼거웃’이라하면 더욱 좋을 것 같다. 묘하게도 식물도감이나 책을 볼라치면 잘못된 식물이름이라도 그대로 쓰는 버릇이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 짝이 없다. 쉽사리 바꾸기가 어렵다면 일본말을 그대로 번역한 ‘가는잎그늘사초’의 유래라도 알고 써야 할 것이다.
 

 

이윤옥 소장은 일본 속의 한국문화를 찾아 왜곡된 역사를 밝히는 작업을 통해 한국과 일본이 서로 제대로 된 모습을 보고 이를 토대로 미래의 발전적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밑거름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한국외대 박사수료,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어연수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을 지냈고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과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민족자존심 고취에 앞장서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말 속의 일본말 찌꺼기를 밝힌『사쿠라 훈민정음』인물과사상
*친일문학인 풍자시집 『사쿠라 불나방』도서출판 얼레빗
*항일여성독립운동가 20명을 그린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도서출판 얼레빗
*발로 뛴 일본 속의 한민족 역사 문화유적지를 파헤친 『신 일본 속의 한국문화 답사기』 바보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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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4/12 [18:4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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