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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논쟁은 계속되어야 한다
[인물과사상의 눈] 냉정과 열정의 꾸준한 글쓰기, 강준만의 지금 생각
 
지승호   기사입력  2015/01/12 [22:58]

월간 『인물과사상』 200호를 맞아 11월 1일 전북대학교에서 강준만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
했다. 창간을 주도한 매체에서 인터뷰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지 오랫동안 고사하던 강준
만 교수는 마감을 며칠 앞두고서야 인터뷰를 수락했다. 최근 『싸가지 없는 진보』를 출간
해 논란의 중심이 된 강준만 교수는 시종일관 '상대편을 존중하는 마음과 자세의 터전 위
에 서야 민심을 제대로 읽는 눈이 트여 집권이 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집권 후에도 성공할
수 있다', "진보의 '이성 중독증'이 문제다. 이성 중심의 정치관이 싸가지 문제를 사소
하게 보는 데에 일조했다"라고 강조했다.


『경향신문』은 2007년 4월 30일자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특집을 통해 1987년 민
주화 이후 20년 동안 한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지식인으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
수,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 최장집 고려대 교수가 꼽힌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72명의 지
식인이 응답한 이 설문에서 강준만 교수는 10표를 얻어 4위에 선정되었다. 1990년대 이후
등장했지만 원로 지식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지식인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담론 시장이 바뀌기 힘든 한국에서 『인물과사상』은 그만큼 큰 변화를 몰고 왔다. 당시 저
널룩 『인물과사상』과 월간 『인물과사상』을 통해 등장한 논객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
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노정태는 그의 저서 『논객시대』를 통해 "태초에 강준만이 있었다"라고 표현하며 이렇
게 기록하고 있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과 러셀의 관계에 대해 누군가 '비트겐슈타인이
아름다운 그림이라면, 러셀은 벽지와도 같다'고 비유했다. 강준만이 논객 시대의 시작과 형
성, 어쩌면 지금까지의 전개에 미치는 영향도 바로 이와 같을 것이다. 저작물의 질, 논리, 문
장력, 주제 선정, 정치적 지지, 문화적 취향 등에서 어떤 논객이 강준만보다 더 나은 무언가
를 보여줄 수는 있다. 하지만 강준만이라는 존재를 배제하면, '논객 시대'를 논의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심지어 우리가 살펴볼 또 한 사람의 강준만, 말하자면 '후기 강준만'
역시 '전기 강준만'이 대한민국 지성계에 터뜨린 폭탄과 후폭풍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이
해할 수 없다. 강준만은 글을 통해 세상을 바꾼 몇 안 되는 지식인이다"


안타깝게도 노정태의 지적대로 세상은 결코 강준만이 원하던 방향으로 가지 않았다. 하지만
강준만은 여전히 냉정과 열정을 함께 간직한 채 꾸준히 글쓰기를 하고 있다. 그는 아름다운
중독자였다.


'한국적 현실'의 논객을 말하다


지승호 월간 『인물과사상』 200호를 맞는 소회는 어떠신지요?


강준만 들으셨겠지만, 인터뷰를 안 하려고 했어요. "뭔가 할 말이 있어. 의미 있어", 이럴
때 해야 할 텐데요. 제가 처음에 큰소리쳤던, 원했던 만큼 되지 못한 것 같아서 부끄럽죠.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느끼는 정도일까요.


지승호 노정태의 『논객시대』에 나오는 것처럼 지금 활동하는 논객들이 만들어지는 토양
이 된 면이 분명히 있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처음에 원하던 것만큼 되지 못하기도 했고요.

강준만 기본적으로 종이 신문의 죽음, 죽기 일보 직전까지 몰아간 인터넷, SNS로 대변되
는 기술 변화 앞에서는 전 세계가 똑같은 것 같습니다. 두 번째 변화는, 진보라고 부르든 뭐
라고 부르든 과거에 친민주당 세력이 사분오열(四分五裂) 되었으니까요. 누가 막을 수 있었
던 것은 아니지만, 아쉽죠. 환경 변화야 어쩔 수가 없는 거지만, 생각이 완전히 달라져버린
데다가 아예 여와 야, 진보와 보수의 싸움 이상으로 내부 싸움이 격렬해져버렸으니까요.

 

지승호 한국에서 담론 시장이 바뀌는 것이 굉장히 어렵지 않습니까? 월간 『인물과사상』
창간 무렵부터 활동하던 진중권, 고종석, 유시민, 홍세화, 김규항 등의 논객이 여전히 활동하
고 있지만, 예전만큼 힘이 안 나오는 데다가 아랫세대도 올라오지 못하고 있는데요.


강준만 기술 변화가 결정적인 것 같아요. 과거에는 '국민 드라마'라는 게 있었잖습니까?
지금도 가끔 시청률 높게 나오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요. 다매체, 다채널 시대가 되니까 국민
드라마라고 하는 것은 어쩌다 한 번 나오는 것이 되었지요. 과거에는 '어저께 그거 보았
어?' 하면 대충 셋 중 하나는 보았는데, 지금은 아니죠. 정치 평론을 제대로 했던 분들은
종편에 나오는 분들을 질 떨어지는 평론가라는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종편에
출연하는 분들이 자기가 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겠어요? 질이 높든 낮든 정치 평론의 시대
도 종편을 이념적․당파적으로 어떻게 보든 새로운 채널들이 생기면서 춘추전국시대가 되어
버렸듯이, 논객이라고 해도 과거 종이 매체 시대에 리영희 선생 책을 안 읽으면 어디 가서
말도 할 수 없고, 필독서처럼 여겼던 시대는 지나가 버린 것이 아니냐는 거죠. 그런 근본적
인 환경 변화는 우리가 안고 들어가야지, 넘어설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논객이라고 하는 것
도 과거의 이미지대로 정의해버리면 논객 시대의 실종이고 종언이겠지만, 논객의 정의를 좀
신축성 있게 하면 수시로 생기고 이슈별로 떠서 이야기하다가 사라지는 존재가 된 것 같습
니다. 한 사람이 장기 집권, 독식하는 것은 어려운 시대가 된 거죠.


지승호 인터넷 자체가 과거의 논객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새롭게 나타나기 힘든 환경
이라는 건가요?


강준만 예전 의미의 논객은 나오기가 어렵죠. 나오기 어려운 대신, 근본적으로 논객의 성격
이 달라진 것이 아니냐는 거죠. 우리가 옛날의 정의에 집착하면 그 논객은 없는 거고요. 논
객은 아무래도 시사적인 문제라든가, 우리 사회의 공공적인 문제에 대해서 한마디 툭 던지
는 사람이거든요. 예전 관점에서 보면 저 같은 사람은 SNS 시대의 부적응자죠. 어떻게 저
렇게 순식간에, 몇 줄 가지고 재단을 해버리지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이번에도 『싸가지 없
는 진보』를 내고 놀란 것이, 사람들이 책을 안 읽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처음에는 기막혀 했
다가, '정말 뻔뻔해졌구나' 생각하다가, 나중에는 그게 새로운 모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속도가 생명인 시대이고, 즉흥적이고, 그때그때 느끼는 감을 토로하는 것이 하나
의 생활양식, 라이프스타일이 되어버린 상태에서 SNS 자체를 하지 않는 내가 이상한 것이
지, 책을 읽고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 구시대적인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웃음)
예전에는 동의하든 안하든 비판하면 거기서 얻는 게 있었잖아요. "어, 이건 미처 생각을 못
했고, 내가 쉽게 보았네" 하는 비판은 도움이 되었는데요. 뭔가 확 달라졌구나, 하는 생각
이 들었죠.


지승호 예전에 지면을 통해서 논쟁할 때는 매체에 글이 게재된 지 한두 달이 지나서 반론
을 하기도 했죠. 그만큼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는 건데요. 지금은 SNS 몇 자로 배설해버리
고, 언론이 인터넷을 통해서 속보 경쟁을 하다 보니 깊이 있는 기사가 안 나오죠. 진지한 언
론도, 토론도 없어진 것 같습니다.


강준만 아주 뚝심 있는,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 같으면 '세상이 이렇게 되었다'고 개탄
하고 살려야겠다고 하겠지만, 저는 '세상이 바뀌었나?' 생각하고 나면 바뀐 것에 적응이
빠른 편이예요. SNS가 사회적 담론의 주된 무대로 등장한 현실은 체념해서 받아들여야 된
다는 거죠. 부작용을 이야기할 수는 있겠죠. 그러나 동시에 그것이 가져다주는, 예전에는 느
낄 수 없었던 장점도 있을 거 아닙니까? 배설에 대해서도 그래요. 특히 댓글 문화가 그런데,
인간의 건강도 똥을 보면 확실하게 알 수가 있다네요. 그렇다면 설사 배설 수준의 댓글이라
도 똥으로 건강을 알 수 있듯이 거기서 포착할 수 있는 뭔가는 있다는 말이죠. 그걸 무시하
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근에 어떤 분이 쓴 칼럼에 나왔는데요. 우리나라는 악플 대
선플의 비율이 4대 1인데, 일본은 1대 4, 네덜란드는 1대 9래요. 그러니까 악플이 4고, 선플
이 1이라는 상황은 어찌되었든 바꿔나가려고 노력해야겠지만, 현재 우리의 현실이 아닐까
생각하는 거죠.


지승호 일베에 대해서도 글을 쓰셨는데요. 유럽 기준으로 볼 때는 인종차별에 해당하는 범
죄적 행위에 대해서는 제재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강준만 정말 우리나라 진보도 문제가 있는 것이, 단호히 응징해야 하는 증오 범죄도 표현
의 자유를 들어서 용인해야 한다는 사람이 많아요. 과거 독재 정권 시절에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었던 것에 대한 한(恨), 그거 아니고는 설명할 길이 없어요. 특정 지역을 비하하고 그
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어떻게 그냥 둡니까?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죠. 그것까지도 하위
문화로 존중해주자, 이건 아니죠. 일부 나오고 있지만, 다문화주의 상황에서 한국도 그런 문
제가 곧 닥친다는 거죠.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인종 간 증오를 부추기면 응징하는 것이 선진
적이라고 생각하고요. 표현의 자유라고 옹호할 수 없는 것으로 되어 있죠. 인터넷에서 표현
의 자유라고 하면 진보로 분류되는데, 그게 진보와 보수로 나누어야 할 문제일까요? 문제는
일베가 말은 그렇게 인간말종으로 하지만 다른 면에선 착한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이게 저
는 기막힌 현실이라고 보는 거죠. 일베는 사건 터져서 범죄자가 나타나면 그 사람 고향 따
져서 전라도 출신들만 열거해놓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렇게 해도 괜찮으니까 그런 거란 말
이죠. 크게 응징할 것도 없이 그런 종류의 카테고리를 정해서 경찰서에 몇 시간만 끌려갔다
와도 그렇게 못할 겁니다.


인물 중심적 참여에서 목적 지향적 참여로


지승호 지금 민주당의 비대위 활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상돈 교수 영입 시
도를 할 때 반발이 있었는데요.


강준만 전부는 할 수 없는 거지만, 중요한 내부 인사를 상대로 동의를 얻었던 건지, 어쨌던
건지, 진실 관계가 분명하지는 않으니까요. 파격이라고 간주되는 사안이라면 아무리 깊은 의
미가 있다고 해도, 조직을 이끌어가는 쪽에서는 사전 정지 작업을 해놓고 들어가야 하는 거
잖아요. 그게 전혀 없이 충격으로 다가갔다고 하면 얼마든지 반박할 수는 있죠. 그런 노력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고요. 다만 어떤 인물을 데려온다고 해서 단식으로 투쟁해야 할 사안
인지, 그건 좀 이상하지 않느냐는 거예요.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얼마든지 이야기해볼 수
있는 거잖아요. 제가 좀 놀란 게, 모 교수님께서 '미쳤다'고 욕을 하는 거예요. "아, 이렇
게 생각하는 유권자가 많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민주당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면 민주당 사람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만 가지고 뭐라고 하는데요. 그 사람들이 뿌
리 없이 그러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저는 동시에 유권자도 봐야 한다는 쪽이거든요. 그렇게
생각하는 유권자도 많겠구나, 생각하면서 대꾸를 안 해버렸죠.


지승호 그런 지지자들이 과잉 대표화되고, 주변에서 압력을 넣고 하니까 다른 사람 이야기
를 듣기보다는 우선은 피곤하니까 그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합
니다.


강준만 여야를 막론하고, 특히 야권은 답이 없는 것 같아요. 그걸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이
번에 한 이야기였는데요. 1퍼센트 법칙의 전형적인 지배를 받고 있는 것 같아요. 야권이 문
제가 있다거나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찌되었든 본선에 가려면 유권자의 대표성을 띤
사람들의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하는 말인데도 자신들을 비판하고, 욕하는 것으로 생각하
는 것 같아요. 최근에 어떤 분들에게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아파트 동 대표를 했으면 좋겠다
고 생각하는 분들은 전혀 안 하고, 안 했으면 좋을 것 같은 분들이 한다는 거예요. 정치도
정당이 어디로 가야 하고, 한국 정치가 어떻게 갔으면 좋겠다, 제발 거기 끼어들어서 참여하
고 목소리를 내주었으면 싶은 분들은 자꾸 뒤로 빠지고, 여야를 막론하고 강경파들만 적극
참여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강경파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대다수 사람들은 등 돌리고
욕하고, 악순환이죠. 저도 말할 자격이 없는 게 󰡐너는 한 번이라도 아파트 동 대표를 해보
았느냐󰡑 이거예요. 참여 안 하면서 개탄하면 뭐하느냐는 건데, 그 이야기를 들으니 󰡐나는
자격이 없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지승호 교수님께서 자주 하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아이들이 자기 과자에 침을 뱉어서
못 먹게 하는 것처럼 정치인들이 그런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정치 참여를 막는 거 아니냐는
건데요.


강준만 저는 이 사람들이 은근히 즐기는 것 같아요.(웃음)


지승호 일부러 진흙탕 싸움을 만든 후, "그것 봐라, 이거 피곤한 일이야. 하지 마"라고
하는 것 같은데요. 국민도 어떻게 보면 똑같이 욕만 하면서 정치가 바뀌지 않는 데 일조하
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강준만 공모하는 것 같아요. 아무나 들어갈 수 없고, 범접할 수 없게. 친구들끼리도 그러잖
아요. 누가 정치한다고 하면 "너, 미쳤느냐, 패가망신하려고 하느냐?"면서 자꾸 담을 쌓잖
아요. 그러니까 그 담을 뛰어넘어서 정치하는 사람들은 능력도 훌륭하고 좋은 점도 있겠지
만, 일단 담을 뛰어넘을 정도의 특별한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특별한 사람들이라는 것이 좋
다,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의 대표성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조직에서 승리하는 방법이
본선 게임에서 승리하는 방법과 다르다는 겁니다. 전혀 다른 게임이 벌어지는 거죠. 그런데
이분들이 메인 게임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고려하느냐, 저는 그랬으면 좋겠지만, 이 사람
들에게는 부차적인 거라고 보는 거예요. 중요하지 않다는 거죠. 대권 잡는다, 대통령이 되어
서 청와대 들어간다,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겠느냐는 거예요. 아니죠.


지승호 개인 차원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내가 국회의원 할 수 있으
면, 우리 당에서 대통령이 나오는 것보다요.


강준만 노무현 정부 때 솔직한 이야기로 운동권 체질들을 좀 비판하고 싶었는데 하기 힘들
었죠. 물론 많이 하긴 했지만, 속병 걸립니다. 그런 분들한테는 야당이 더 좋은 점이 많죠.
이분들은 정권 교체를 다시 해서 뭘 해보려는 집권의 뜻이 없는 거예요. 자신들은 있다고
하지만, 아니, 그걸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사실상 없는 거죠.
열성 지지자들도 똑같다고 보는 거고요.


지승호 민주당에 대해서 '민심 난독증'이라고 표현하셨는데요.


강준만 민심 난독증도 아주 정중하게, 대접해주는 표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민심을 읽는
것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일단 다 제쳐놓고요. 새누리당의 반 토막 지지율이 계속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에 충격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기는커녕 어차피 선거 때 되면 비슷해진
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민심이 늘 옳기만 한가? 우리가 진보적으로 국민을 위해서 옳은
길을 가는데, 민심이 이해를 못해서 그런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옳은 길을 가줘야지󰡑 이런
생각을 하는 거죠. 알고서도 의도적으로 그러는 거예요. 난독이라는 것은 읽으려고 하는 데
도 역량 부족으로 못 읽는 거지만, 이건 그게 아닌 겁니다. 이분들이 생각하는 것이요, 끼리
끼리 효과가 있어요. 완전히 집단 극화 식으로 열성적인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발언하지 않죠. 다른 길을 통해서 만난다고 하더라도 저 사
람 듣기 싫어하는 소리를 자기가 왜 하나요? 그러니까 그 안의 물 자체에 갇혀버리는 거죠.


지승호 "참여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자, 인물 중심형 참여에서 목적 지향형 참여로. 정치인
팬클럽은 연예인 팬클럽보다는 나아야 한다"라는 표현도 하셨잖아요. 예전에는 연예인 팬
클럽의 '우리 오빠' 열광이 지나쳐서 눈살을 찌푸린 적도 있었는데요. 요즘은 연예인 이
름으로 선행을 해서 이미지를 좋게 하려고 노력하는 걸 보면 좋은 의미로 훨씬 정치적이거
든요. 정치인 팬클럽은 매파들이 장악해서 후보자 욕 먹이는 자해 행위를 하는 경우가 많잖
아요. 저는 오히려 연예인 팬클럽이 진도가 더 나간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웃음)

강준만 진짜, 그 말씀은 제가 좀 써먹어야 되겠네요.(웃음) 정치성을 거기가 더 발휘하네요.
조공(팬들끼리 돈을 모아 연예인에게 선물하는 것)도 그런 거 아닌가요? "우리 오빠 잘해
주세요" 하고 연예인 평판을 더 높이기 위해 노력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 안 그러잖
아요.(웃음)


지승호 자기 오빠나 언니한테 잘못하는 스태프가 있어도 처음에는 회유하는 정치력을 발휘
하는 것 같아요. 여기는 무조건 욕을 하잖아요. '저 나쁜 새끼'.(웃음)


강준만 진짜 그쪽 정치력이 훨씬 뛰어나죠. 정치적 감각이며.(웃음) 지금 우리는 그것도 없
는 거예요.


유권자를 봐야 한다


지승호 누구나 민주당에서는 계파가 문제라고 하지만, 없다고 하는 분도 있고, 계파 문제에
대한 인식 차가 큽니다. 해법은 뭐가 있을까요?


강준만 과거에도 계파 문제가 있었지만, 그래도 봉합이 되고 타협이 되고 했는데요.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유권자가 계파별로 갈라졌기 때문이죠. 계파 간 싸우더라도 유권자 쪽
에서 보고, 어딘가 한쪽 손을 들어준다는 말이죠. 타협한다고 하면 계파별 지지자들이 뭐라
고 하잖아요. 자꾸 민주당 문제, 계파 문제, 의원 문제 그러는데요. 유권자를 봐야 합니다.
유권자도 완전히 분열되었어요. 똑같아져 버렸어요. 계파가 자꾸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둘 중 하나라고 보는데요. 우선 완전히 뻔뻔하게 사기를 치는 것. 다음은 선의로 해석하자면
이런 거예요. 계파 하면 공익을 저버린 집단 이익으로 보는 시각이 있으니까, 계파는 그게
아니다, 우리 나름으로 내건 원칙이 있는데, 그걸 계파라고 부르는 것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항변하는 것일 수도 있죠. 계파라는 것이 노선과 원리원칙에 따른 것이라면 좋죠. 노선 투쟁
을 누가 뭐라고 합니까? 우리가 계파라고 부를 때는 그런 식으로 안 돌아가니까 비판하는
거 아닙니까?


지승호 말씀하신 대로 유권자 문제일 수 있기 때문에 더 복잡하잖아요. 몇몇 의원의 문제
라면 멱살이라도 잡고, 가둬놓고 합의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유권자 문제까지 섞여 있으
니까 풀기가 어려운데요. 그래서 장하성 교수 같은 분들은 "진보 진영이 당분간 집권하기
어렵다"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내놓고 있는데요.


강준만 이렇게 가면 답이 없는 거죠. 유권자가 문제라는 게요. 제가 전주에서 온몸으로 느
끼는 거예요. 교수들이 정치 이야기 안 해요. 계파가 다 달라요. 계파가 아니면서도 특정 계
파를 옳다고 보는 생각이 다 달라요. 예전 계파에 비해서 지금 계파가 없거나 낫다고 주장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선의로 받아들이면 나아진 점은 있는 거죠. 그 안에 뭔가 확실한 콘
텐츠가 있는 거예요. 그게 유리할 때는 공개적으로 밝힐 수 있는 노선과 원리원칙을 이야기
하지만, 결정적일 때는, 권력 잡는 문제에서는 아무 관련 없이 가는 거 아닙니까? 주변에 있
는 사람들도 보면 완전히 달라요. 서로 소통이 안 돼요. 안되니까, 짜증나니까 이야기를 피
해버리죠. 그런 지 오래되었어요. 옛날에는 유권자들이 조정 역할을 해주었는데, 그게 안 되
는 겁니다. 참 어렵죠.


지승호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은 자기 혼자 당내에서 돌파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니까 김문수
전 지사를 보수혁신특별위원장으로 앉혀서 같이 돌파하려고 하는 건데요. 이쪽은 그런 모습
을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맨날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불리하다고 이야기하는데요. 그러면
선수를 더 많이 끌어들이고, 훈련도 많이 하고, 서로 협조해야 하는데요. 그러지 않으면서
관중이 수준 낮다고 욕하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저 나쁜 놈들을 응원하느냐󰡑고
요.


강준만 정치 발언하는 지식인들부터 문제입니다. 내부 계파 투쟁이 지식인계나 유권자까지
결합되니까 누가 나서서 해결해줄 사람이 없는 거죠. 우리한테 이게 도움이 되는 건가, 아닌
가 하는 생각조차 잊어버렸고요. 답답해서, "길이 보이는데 왜들 이러지" 하고 나름 분류
를 해보았어요. 우선 제일 악성인 뱀파이어족이 있어요. 피를 원하는 거예요. 수구 꼴통에
대한 증오 때문이에요. 두 번째는 꼴통이 있어요. 근본주의자들이죠. 세 번째가 성찰 박약자
인데, 생각을 잘 못해요.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의 다중지능이론 가운데 성찰 지능
이라는 게 있어요. 성찰력이 약하다는 것은 이런 거죠.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우리는 어떠
했는지 생각을 안 해요. 그때 보수 쪽 사람들이 느꼈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해요. 과거에 자
기들이 똑같이 했던 것을 뒤엎어버리고, 거기에 대해서 사람들이 등 돌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요. 네 번째로 기득권파가 있어요. 기득권 하면 우리는 자꾸 권력이라든가 금력 중심으
로만 생각하는데요. 정서적 기득권도 있죠.


지승호 문화 권력은 사실 좌파 쪽이 많이 잡고 있었죠.


강준만 원리는 비슷해요. 박정희 인기가 왜 그렇게 높겠습니까? 물론 박정희를 존경해서
그런 사람들도 있겠죠. 하지만 박정희 집권 18년을 포함해서 박정희 후예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도대체 몇 년을 한 거예요. 한 세대 이상을 박정희파가 집권해온 나라 아닙니까?
기득권층의 거의 대부분은 박정희의 수혜를 입었던 사람 아닙니까? 그러면 박정희 시절에
잘나갔던 사람들, 그 시절에 만족스럽게 살았던 사람들은 박정희 체제가 부정되고, 박정희에
대한 평가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거죠. 마찬가지로 과거 김대중․노무
현 시절의 기득권자들, 소위 야권에 있는 사람들도 기득권 정서가 있다니까요. 거기에 따라
서 움직이는 거예요. 그런데 정서를 이익이 아니라 정치적 소신이고 이념이고 원칙인 것처
럼 생각하죠. 그래서 해법은 세월밖에 없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승호 『싸가지 없는 진보』에 대해서도 반응이 극단적이긴 하지만, 상당히 많은 분이 필
요한 해법이고, 진보진영이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민
주당 지지자 중에서는 배신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은 것 같은데요. 제목 자체가 그렇다 보니
까 󰡐자신도 싸가지 없는 말투로 공격하는 것 아니냐?󰡑고 하기도 하고요.(웃음)


강준만 반반인 것 같은데요. 결국은 정치를 끌어가는 쪽이 반발하니까요. 반반이 아닌 거겠
죠. 힘의 균형이 저쪽으로 갔으니까요. 너무 독설해서 죄송하지만, 우리 유권자도 다 보고
있고, 머리도 좋고, 세상 돌아가는 것 다 알 텐데요. 결국은 옳든, 그르든, 높든, 낮든 이게
우리 국민의 수준이고, 대한민국 사회가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 거칠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 싶어요. 다만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말해야 할 의무를 개인적으로 느끼는 것이고요.
이게 뭐하고 비슷하냐 하면요. 해방 정국 때 보면 좌우가 극단으로 나뉘어서 싸우는데, 중간
파 지식인들의 존재가 없었던 것으로 보였지만 뒤늦게 중간파 지식인들의 글을 묶어서 낸
책이 나왔어요. 그때는 양쪽에서 두들겨 맞던 주장이죠. 이분들이 아무런 영향을 못 미쳤다
고 하더라도 그 이야기는 그때 했어야 했던 거죠. 이런 생각이 동시에 들었어요. 해방 정국
에서 좌우 극단의 대결 없이 그 사람들이 타협하고 화합할 수 있었을까, 정말 그게 가능했
을까. 지금 상황도 과거 민주화에 이르고, 10년을 집권했고, 정 이렇다고 하면 이것마저도
겪어야 할 과정이고 코스 아닌가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러니까 꼴통들이 밉지가
않아요. 이해도 되고 너그러워진다고 할까요?(웃음)


언론과 정치를 같은 무게로 바라보기


지승호 예전에 󰡒전 제 이름을 소중히 여깁니다. 먼 훗날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언론을 갖게 된다면 그때 가서 가장 큰 공로자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셨는데, 월
간 『인물과사상』을 만드신 것도 한국의 언론이 좀더 선진화되고, 개혁되기를 바라고 하신
걸 텐데요. 그렇지만 언론 환경은 더 악화된 상황입니다.


강준만 그거하고 우리 지역 언론 문제가 닮은꼴이라 깜짝깜짝 놀라요. 전국 이야기부터 하
면요. 적어도 저는 언론과 정치를 같은 무게로 보았으면 싶었는데, 정치가 언론을 먹어버리
고 언론을 정치도구로 써버린 겁니다. 저는 하이재킹(hijacking) 당했다고 해야 할까요? 언
론 문제를 정치화해서 정치도구로 만들어버리니까 변질되어서, 제가 원래 했던 주장이 엄청
나게 오염되었다고 보는 쪽이죠. 오염된 정도가 아니라 전복되어버렸어요. 나중에는 뭐든지
조중동 결정론으로 가버리고, 자기들에게 조금이라도 싫은 이야기를 하면 조중동 프레임에
휘말려 들었다고 하잖아요. 기가 막힌 이야기죠. 김규항의 말 가운데 가장 멋있게 본 게 요
즘은 안티 조중동으로 자기가 진보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거예요. 완전히 이용 당해버린 거
죠.

 

그리고 더 큰 문제가 뭐냐, 지난주인가 『한겨레』 기자가 쓴 칼럼이 있는데요. 세월호
관련해서 떠돌아다니는 유언비어를 검증한 기사를 몇 회 내보냈더니, 엄청난 악플이 달리면
서 욕먹은 것은 물론 신문 끊겠다는 협박도 당했습니다. 그러니까 안티 조중동을 하는 이유
가 뭐냐는 거예요. 완전히 자기들 극단적 대결 구도의 졸로 이용해 먹고, 마음에 안 들면
『한겨레』 거부 운동이나 하겠다고 하잖아요. 그러면서 진보 언론을 키우는 데 어떤 기여
를 하고 있느냐는 말이에요. 그렇게 조중동이 문제면, 진보 언론을 키워야 하잖아요. 왜 못
키워요. 힘을 보태주면 될 텐데, 안 하잖아요. 정치적으로 오염되어 있으니까 어느 순간 짜
증이 나고, 화가 치밀더라고요. 사람들이 왜 조중동의 지능을 과소평가하는 건지, 제가 볼때
는 조중동이 진보 쪽보다 머리가 좋아요.


지승호 좋게 말하면 정교하고, 나쁘게 말하면 교활하죠.


강준만 조중동을 아주 아메바 취급해요. 이게 명쾌한 게 아니냐는 거예요. 진보 언론하고
보수 언론 사이에서 박근혜 정부의 문제를 누가 잘 지적하느냐, 당파적인 편파성은 있을망
정 진보 언론이 훨씬 더 잘 지적하죠. 마찬가지로 진보라든가,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제라든
가, 이걸 누가 잘 지적하느냐는 거예요. 보수 언론이 더 잘 지적하죠. 『한겨레』라든지
『경향신문』은 못 건드리는 것이 많아요. 계파 투쟁에 휘말릴까봐 그렇죠. 그런데 조중동에
나오는 것은 무조건 음해고, 악의적인 기사냐는 말이에요.


지승호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고 할 때는 저쪽 힘을 굉장히 과대
평가하고요. 어떨 때는 수구꼴통, 아메바, 무식한 놈들이라고 하는 이중적인 태도가 있죠.


강준만 노무현이 당선되었을 때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가 한 말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때 뭐라고 했습니까? 조중동의 시대는 완전히 끝났다고 했잖아요. 그때 많은 사람이 동의
했잖아요. 그때로 돌아가야죠. 왜 그렇게 조중동 탓만 해요. 이제는 종편 탓을 하죠.


지승호 당시 노무현 정부에 있던 많은 분이 한나라당이 불임 정당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는데요. 실제 결과는 달랐죠.


강준만 그러니까 자기들이 상승세를 타면 저것들은 한 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폄하했다
가 자기들이 불리해지면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뻥튀기하고. 면책 심리 아닙니까? 운동
장이 기울어져 있으니 어쩔 수가 없다고, 우리 탓을 하지 말라는 거죠.


지승호 2001년 무크지 『인물과사상』 19권에 "나의 구상과 무관하게 최근 활발하게 이루
어지고 있는 안티조선운동은 내가 의도했던 바를 넘어선 운동이다"라고 하셨는데요.


강준만 후회되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거예요. 공적인 자격도 없는데 나서는 게 건방 떠는
건 아닌가 하는 마음 때문에 못했는데요. 그게 후회됩니다. 그런 생각 하지 말고 조금 더 나
갔어야 하는데요.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노무현을 찍은 유권자도 일상으로 돌아가면 옛날
신문 시장 기준으로 70퍼센트를 먹고 있다는 조중동을 보고 있었죠. 죽어라고. 그러면 그 이
유가 뭐냐. 조중동은 계속 김대중과 노무현을 때리는 명백한 당파성과 편파성을 가지고 있
는 언론인데, 왜 김대중․노무현 지지자들마저도 조중동을 보는가. 정말로 당신들이 그렇게
뜨거운 정치적 열정이 있고, 이른바 진보 정권이 계속되고, 보수보다 진보가 커야겠다고 생
각한다면 그 신문을 좀 끊고, 진보 쪽 신문을 보면 여론 형성에 기본적인 힘의 균형이 이루
어질 것 아니냐. 안티조선운동의 취지가 그거였단 말이에요. 그전까지는 진보적 지식인도 보
수 신문에 글을 쓰고, 친하게 지내고, 이용당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니 한 번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했죠. 그런데도 결국은 독자가 진보 언론을 선택하지 않았단 말이에요.

 

선택 안 한 이유를 보았더니 자신이 정치적으로는 김대중과 노무현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였을망정 내 개인과 가족의 삶을 살아가는 데는 조중동을 보는 게 유리하단 말이에요. 두껍고, 광고 전단 지도 많이 들어 있고, 그쪽이 또 주류 시각이잖아요. 그러니까 신문 구독에서는 전혀 다른
행태를 보인다는 말이죠. 어떤 분들은 그러겠죠. 더 치열했으면, 더 나갔더라면 바꿀 수 있
었다, 저는 그렇게 안 봐요. 성공할 만큼 했다고 봐요. 독자의 선택에 의해서 사실상 결정된
거죠. 끝끝내 가져가겠다 고집하는 걸로요. 호남에서는 『조선일보』가 좀 타격을 받았죠.
가장 많이 나갔는데, 순위가 좀 떨어졌어요. 하지만 여전히 조중동에 대한 지역 독자의 선호
도와 큰 흐름은 안 바뀌었다는 말이죠. 지금이야 신문 자체가 죽어가는 상황이니까 의미가
없게 된 점이 있지만요. 어찌되었든 우리나라 독자의 선택이 그렇다고 하니, 제가 원래 부르
짖었던 안티조선운동의 의미는 일단락된 거죠.


지승호 진보 진영의 언론을 키울 필요가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한겨레』나 『경향
신문』이 버티고 있는 부분은 있지만, 조중동에 비해서 힘이 작은 데다가 종편까지 생겼는
데요.


강준만 지금같이 왜곡된 상황에서는 안티 조중동이 오히려 포지티브(posi-tive)한 쪽을 제
로섬게임식으로 막아버리는 거죠. 적하고 똑같다니까요. 왜 야당을 뭐라고 하느냐는 거예요.
새누리당이 더 나쁘고, 보수 수구 꼴통이 더 나쁜데, 왜 우리 쪽을 건드리느냐는 거예요. 그
렇게 보수 언론이 강해서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우리 쪽 언론을 키워주면 될 텐데, 그걸 안
하잖아요. 저쪽에 대고 욕해서 효과가 있다면 모르겠다는 거예요. 없다는 게 충분히 입증되
었잖아요. 똑같은 논리 구조거든요. 지지율이 경쟁 정당의 반 토막이면 󰡐아, 이쪽에 문제가
있구나󰡑 해서 문제의 원인을 찾고 들어가야 될 텐데, 그럴 시간과 힘이 있으면 저쪽을 공
격해라? 그건 계속 해온 모델 아닙니까? 그런데 이게 전형적인 시각이라니까요. 지금까지
민주당이 제대로 싸움을 안 해서 망했다고 생각하는 건데요. 투쟁을 안 하고 싸움을 안 해
서 문제라면 앉아서만 글을 쓰지 말고, 현장에 가서 투쟁을 하라는 말이에요. 정말로 투쟁이
답이라고 하면 투쟁에 앞장서라는 말이죠. 투쟁을 안 해서 민주당이 그 모양, 그 꼴이라니.
진단과 처방이 정반대인 거예요.


이념과 노선으로 사기 치는 지식인들


지승호 지난번에 『한겨레』에 쓰신 세월호 정국에 관련된 칼럼도 비판을 많이 받으셨죠?
강준만 손석희 앵커가 댓글 50개라고 얼마 안 된다고 했는데, 댓글 수가 문제예요? 한두
개 빼놓고는 전부 다 욕이더라고요. 세월호 문제도요. 아니, 7시간을 물고 들어가는 게 옳은
방법인가요?


지승호 "비판해야 할 것을 못하게 막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


강준만 다들 미쳐 돌아가는 것 같아요. 누가 진짜 세월호 유족을 위하느냐는 거예요. 나는
7시간 이야기하고, 악플 달고 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유족을 이용한다고 보는 쪽이에요. 정말
유족을 위하면 진실 규명을 해야 하는데, 7시간만 계속 물고 늘어지면서 엄청난 비밀이 있
다고 생각하죠. 『한겨레』에서 잘 쓴 것 아닙니까? 경기 들린 듯이 놀란다고 할 정도로, 박
근혜 7시간만 나오면 그렇다는데, 그러면 저쪽 정당이 죽어도 안 받겠구나 하는 것을 뻔히
아는 거 아닙니까? 죽어도 안 받고, 다수당인데 이 문제를 질질 끌고 가면 누가 죽어나느냐
이 말이에요. 그렇게 되면 완전히 정략적이고, 당파적인 이슈로 완전히 둔갑해버리는 거죠.
지승호 󰡐이념 싸움이 결국은 돈 싸움󰡑이라는 말씀도 하셨는데요. 지금의 물적 토대로 볼
때는 진보가 이념 싸움으로는 이기기 어려우니까, 다른 방법을 취해야 할 것 같은데요.


강준만 자꾸 이념이고, 노선이고 그러는데 그게 다 뻥이라는 거예요. 가짜라고 주장하는 겁
니다. 사기 치지 말자는 거예요. 책상머리에 앉아서 이념이 어떻고, 노선이 어떻고 하는 것
은 지식인들의 탁상공론에 불과합니다. 가만히 보십시오. 지난번 대선 때도 박근혜가 좋은
것은 다 뽑아먹었죠. 어차피 나중에 다 사기 치더라도요. 뭐가 그렇게 다릅니까? 리처드 세
넷(Richard Sennett)이 쓴 것처럼 플랫폼 정치를 하고 있다는 거죠. 갈수록 이슈가 같아져
요. 여야, 진보, 보수의 어젠다가 비슷해집니다. 차별성이 없어요. 이게 사소한 차이에 대한
집착을 낳습니다. 사소한 차이에 의한 나르시스트이기 때문에 작은 것을 물고 늘어지면서
큰 것인 양 뻥을 쳐야 합니다. 저쪽하고 각을 세우고 싸워야 하니까, 이미 커다란 덩어리들
은 별 차별성이 없어져버렸는데요. 그러니까 가짜 이념 논쟁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는 꼭 귀납법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연역식으로 중앙에서 큰 노선과 어젠다를
정해놓고, 그 밑으로 내려가는 방식은 너무 오래 써왔기 때문에 그러지 말고 민생 현장에서
출발해보라는 거예요.


지승호 명암주의자로서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다고 하셨는데요. <나는 꼼수다>(이하 <나
꼼수>)의 명암은 어떻게 보시나요?


강준만 그게 제가 사회현상을 보는 하나의 원칙인데요.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대해 진보적인 분들이 엄청 욕을 해요. 사회구조를 바꾸고 개혁을 해야 할 판에 젊은 사람
들에게 힐링이나 해주고 있다고. 제가 볼 때 그 책이 3만 부 나갔으면 괜찮을 책입니다. 의
미가 있다고 봐요. 300만 부가 나간 게 문제예요. 그 자체로서는 무슨 잘못이 있어요. 좋은
책이던데, <나꼼수>도 저널리즘의 한 장을 차지할 정도로 훌륭한 작업이었죠. 그런데 그걸
로 끝난 것이 아니라 야권에서 하나의 주류 문화가 되었잖아요. 그건 <나꼼수>에 책임을
물을 수가 없죠. 김난도한테 책임을 물을 수가 있나요? 받아들인 사람이 문제인 거죠.


지승호 <나꼼수>도 그렇고, 김어준이 <파파이스>를 하고 있는데, 거기서 여러 가지 이의
제기를 하고, 특종이라고 할 만한 보도도 했는데요.


강준만 <나꼼수> 자체는 높게 평가하죠. 다른 것은 떠나서요. 검증하긴 어렵긴 하지만, 국
민 수명을 연장해주었어요. 속 시원하게 만들어주었고요. 주변 사람, 교수 중에도 팬이 많았
어요. 시원해하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이 양반 수명 좀 늘어나겠네, 생각했는데요.(웃
음) 전체를 합산해보십시오. 엄청난 기여를 했죠. 새로운 미디어로 과거에 우리가 말했던 대
안 언론으로서의 기능. 하지만 그것이 100퍼센트 아름답기만 하느냐, 저는 진보 성향의 유권
자들이 일종의 편한 길로 도피를 한 것 같아요. 주류 진보 언론을 키울 생각은 않고, 상종을
안해 버려요. 진보라고 하면서 신문 끊고 안 보는 사람이 많아요. 때가 어느 때인데 종이 신
문을 보느냐고요. 종이 신문을 꼭 보라는 것이 아니라 진보 언론의 중심점인데, 일단 키워줘
야 당신들이 그렇게 싫어한다는 조중동을 견제할 수 있다는 거죠. 제 주변에 있어요. 『한겨
레』 안 보면서 팟캐스트만 찾아듣는 사람들. 이게 과연 바람직하기만 한 건가, 이 부분에
공격을 해야겠어요. 밤낮 조중동 밉다고 하면서 『한겨레』 안 보는 인간들은 진보에 역행
하는 반개혁주의자라고요. 진보를 죽인다고 하면 너무 과격한 것 같은데요. 차라리 언론에
문제가 없다고 하던가요. 조중동하고 종편 때문에 이 나라 민주주의가 안 되고, 선거도 안
되고, 여론 조작을 한다고 하면서 『한겨레』, 『경향신문』 아무것도 안 봐요. 얼마든지 키
울 수 있어요. 그 정도의 열정이 있다면요.


지승호 세월호 정국에서 가장 신뢰감 있는 언론이 손석희의 <JTBC 뉴스룸>인데요.


강준만 저도 내내 그것만 보았어요.


지승호 처음 손석희가 JTBC 갈 때 우려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어떤 의도가 있어서 가셨
을 것이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이 생겼습니다.


강준만 가장 일관되게 비판했던 분이 『시사IN』의 고재열 기자였잖아요.(웃음) 고재열 기
자의 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손석희가 간 것은 쉽게 이야기해서 진보 언론을 사
랑하던, 어찌되었든 이용하는 분들, 사회적 운동가들이라든가, 지식인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
들이 그 정도의 손해도 감수하지 못하겠느냐. 그렇게 김대중과 노무현을 찍었다면 제발 균
형 좀 맞춰달라고 했는데, 안 맞춰주었다는 말이에요. 욕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어찌되었든
존중하겠다는 말이에요. 마찬가지로 손석희도 JTBC가 큰 테두리는 보수 쪽인데, 거기 가서
왜 걔네들을 키워주느냐, 그 말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우리 독자나 시청자가 먼저 해주었어
야 하잖아요. 그렇다면 손석희가 󰡐나는 거기 가서 제대로 해보겠다󰡑는 말을 반박할 것이
없단 말입니다. 잘못된 우리의 현실은 외면하고 손석희한테만 뭐라고 할 수 있느냐는 거예
요.


타협과 양보를 선택하라


지승호 『김대중 죽이기』, 『노무현과 국민 사기극』 두 권으로 킹메이커라는 말씀도 들
으셨고, 최소한 집권 이데올로기를 제공했다는 평을 받으셨는데요. 2007년에는 정치적 발언
을 안 하셨고, 2012년에는 다시 『안철수의 힘』을 내셨는데요.


강준만 정동영 때는 될 수가 없다고 보았고요.(웃음) 안철수 건은 제가 재미있는 현상을 느
낀 게요. 안철수 의원이 민주당 내부에서 내리막길로 가고 나서, 저하고 가깝고 우호적인 분
들이 웃으면서 "아직도 안철수에 대한 생각이 변함이 없으세요?"라고 물어본다는 말이에
요. 안철수․문재인 대결 구도 때 문재인 지지했던 사람들입니다. 어이없는 표정으로 "문재
인 지지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으세요?"라고 제가 물어봐야 옳은 거죠. 문재인은 졌는데,
나는 문재인으로 안 된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안철수․문재인 대결 구도 때 유권자 여론조
사에서 안철수에게 힘을 실어주었다면 달라질 수 있었는데, 당신은 문재인 편을 들었던 것
아니냐, 그러면 누가 물어봐야 하느냐, 내가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냐, 물어보는 저의가 뭐
냐, 어떻게 그렇게 뒤바뀔 수 있느냐는 거죠.(웃음) 그때 당시에 문재인과 안철수 사이에서
문재인은 어렵다고 생각해서 안철수를 택한 사람이 많았을 거라는 말이죠. 어찌되었든 졌죠.
그러면 궁금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문재인을 택했던 분들이 문재인으로 이길 수 있었다고
생각했느냐고 하니까 답은 그렇대요. 이긴 선거래요, 부정선거 때문에 졌고, 여론 조작 이야
기도 하죠. 인정하지 않아요. 성찰도 없고요.


지승호 책에서도 화합을 위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하셨잖습니까?


강준만 취지 자체가 타협과 화합으로 가자, 계파 간 갈등도 해결하자는 것이었는데요. 사실
은 많이 고쳤고, 실명 비판을 안 하려고 무지하게 애를 썼죠. 너는 이렇게 싸가지 없는 짓을
했고, 너는 이렇게 싸가지 없는 짓을 했고, 이것을 열거해버리면, "아니, 너는 싸가지 있게
굴자고 하는 놈"이라고 하시겠죠. 물론 그 책 정도도 싸가지 없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지만,
훨씬 더 싸가지 없게 쓸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되니까, 하고 싶은 말이야 엄청
많지만 어떻게 다 합니까? 저는 친노, 비노, 반노 할 것 없이 껴안고 같이 가자고 주장하는
건데요. 가끔은 그런 생각은 들죠. 정말 희망이 전무하구나, 그렇다면 내 수명 연장을 위해
서라도 속 시원하게 싸가지 없는 행태를 실명을 열거해가면서 해볼까. 그러나 일단 이번에
낸 책은 그런 취지가 아니니까요. 저는 정말 타협했으면 좋겠어요. 나이브(naive)한 생각이
든, 이상적인 생각이든,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것을 누구든지 인정한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조금씩 양보해가면서 타협하는 쪽으로 가야죠. 김대중 시절까지만 해도 정치적 생각이 100
퍼센트 같았던 사람인데, 정치적 이야기를 서로 금기시할 정도로 제가 살고 있는 전주에서
도 온몸으로 느끼니까요. 저들도 저를 비난할 테니까. 비난하고 미워해서는 될 문제가 아니
라고 하면 화합으로 가야 하지만,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화합이 안 된다고 하면 결국 힘은
누가 세겠어요. 전부가 실패하는 길로 가더라도 내부 경쟁에서는 누가 세겠느냐는 겁니다.


그쪽이 가서 실패하더라도 이것이 우리가 겪어야 할, 걸어야 할 길이겠구나, 그러면 조금 속
이 편하죠. 그렇게 생각하는 유권자도 많지 않을까 싶어요. 그거야말로 일종의 사이클이죠.
김대중, 노무현 10년의 승리에 대한 저주가 되는 거죠. 생각이 갈라지는 지점이 그것 같아
요. 저는 10년간 빚어졌던 문제에 대해서 우리도 성찰하고, 달라져야 할 분기점이라고 보는
거고요. 반대로 생각하는 분들은 10년 동안 성공할 수 있었고, 더 잘할 수도 있었는데, 저
수구 기득권 꼴통들 때문에 안 되었다고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데요. 정반대 길이 우리 안에
서도 갈라진 것 아니냐는 겁니다. 그게 토론한다고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요. 서로
미워하고 싸워서 될 문제도 아닌 것 같고요. 앞으로 좀 달라지기를 기도하는 심정이지만, 안
된다고 하면 속 끓을 것 없이 역사의 불가피한 하나의 흐름으로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
어요.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정리하고 있죠.


지승호 친노 진영은 과거 자신들의 행태에 대해서 반성하지 않는 부분이 문제가 되는 것
같고요. 비노는 친노를 너무 두려워해서 뭔가 경쟁을 할 생각도 안 하고, 같이하게 되면 말
려들 거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강준만 그렇죠. 비노 진영은 미리 겁먹고 안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죠. 친노는 자기
들의 방식으로만 가려고 하는 거고요.


한국형 정당의 모델을 찾아서


지승호 친노와 비노의 선의의 경쟁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강준만 요새 네트워크 정당론이 나오는데 재밌더라고요. 논객 중에서는 후마니타스 출판사
박상훈 대표하고,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이철희 소장이 오픈프라이머리에 대해서 비판적이고
요. 저는 오픈프라이머리 포함해서 네트워크 정당론 자체와 찬반은 의미가 없다고 봐요. 전
제 조건이 중요하다고 보는 거죠. 제가 자꾸 박성민의 교회 모델을 이야기하는데, 하방(下
方)해서 달라지겠다는 운동이 제대로 일어날 때는 오픈프라이머리가 가능하고, 좋을 수도
있지요. 그런데 그것 없이 오픈프라이머리, 그거 없이 네트워크 정당론, 이건 아니죠. 전제
조건이 이행되거나 동시에 가는 것을 전제로 좋을 수도 있고, 안 좋을 수도 있는 것이지, 아
무 변화 없이 그것만 가지고 하겠다? 그러면 저는 오픈프라이머리가 위험하다고 보는 두 분
말씀에 동의합니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겁니다.


지승호 한국형 교회에서 한국형 정당의 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의 주
장에 동의하시는 거죠?


강준만 취지가 이런 거예요. 지금 우리 정당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를 보면요. 2007년에 서
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조사 결과를 보면 2.9퍼센트인가, 5퍼센트 이하예요. 입법, 사법,
행정은 다 지지도가 한 자리수입니다. 기본적으로 한 자리수 지지도를 가지고는 정치가 안
되는 겁니다. 그러면 뭐가 제일 급한 거냐, 여태까지 굴러왔던 방식으로 보면 하방해서 유권
자를 접촉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이 유권자에게서
혐오나 저주를 받을 만큼 형편없는 인간들이냐, 저는 그렇게 안 본다는 거예요. 누구를 그
자리에 놓아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욕먹게 되어 있습니다. 스킨십이 없고, 소통이 없고,
딴 나라 사람들 같거든요. 그러지 말고 한번 접촉을 해보자, 선거 때만 절하고 이러는 것을
강도를 좀 낮춰서 평상시대로 가면서 문화, 법률 자문, 인문학 강연을 하자고 했는데요. 그
랬더니 인상적인 댓글을 보았어요. "정당이 무슨 봉사 단체냐?" 제 말은 정당이 증오 단
체는 아니지 않느냐는 겁니다. 이건 비상한 상황에서 접촉 모델인 거죠. 그렇게까지 욕먹을
사람들이 아니구나, 나름의 진정성이 있고, 해보려고 하는구나. 왜 정치가 욕먹고, 어려운지
맨투맨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성공할지 안 할지는 몰라도 그런 정도
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 기본 인프라가 없는 상태에서 뭐가 되겠느냐는 거예요. 어떻게 5퍼
센트 미만의 신뢰를 받고 있는 집단에서 무슨 일을 해나갈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 모델이 좋다고 보는 거죠. 박권일이 SNS에서 코멘트한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강준만의 치명적인 문제는 유권자들을 정치의 주체로 보지 않고 소비자로 보고 있다".
그분 나름 말은 정중하게 한 것 같지만, 엄청난 비난이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진보의 진짜
문제가 그 비판 속에 들어 있다고 봐요. 아니, 세상에 어떤 수구꼴통이라도 그렇지 유권자,
국민이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이 누가 있어요.


지승호 현실적인 방안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말이죠.


강준만 제가 즐겨 인용하는 솔 알린스키(Saul Alinsky)의 말처럼 있는 그대로의 세상과 우
리가 원하는 세상을 놓고 볼 때 유권자가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세상인 거죠. 그렇게 되어야죠. 그런데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는 유권자가 소비자만 되어도
괜찮은데 소비자도 안 되고 있다는 거잖아요. 지금 현재 수준이. 소비자는 대형 마트에서든,
재래시장에서든 조그만 불이익을 당해도 가만 안 있습니다. 소비자만 되어도 엄청난 진보인
거죠. 그런데 소비자로 보고 있다는 것을 욕이라고 하고 있으니, 이렇게 현실성 없는 이야기
를 할 수가 있나요. 제발 소비자 수준만 되어줘도 엄청난 진보라는 거죠. 그러고 나서 주체
로 진입해보자는 겁니다. 어떻게 갑자기 주체로, 곧장 점프할 수 있겠느냐는 거예요. 기업들
이 소비자를 꼬시기 위해서, 유혹하기 위해서 온갖 상술과 전략을 쓰듯이 정당이 왜 그렇게
못합니까? 비리를 저지르면서 하는 것도 아니고, 저희가 이렇게 인문학 강좌를 할 테니까
와보십시오, 하면서 간단하게 정치 전반에 대해서, 당파적으로 너무 가지는 말고, 전국적으
로 소소하게 해보라는 거죠.

 

자기들 바쁘면 변호사들 가운데 정치해보고 싶은 사람 얼마나 많아요. 변호사들 법률 자문도 하게 하고, 특강도 하게 하고, 돈이 안 들게끔 자기 식구들 꾸려서 유권자와 접촉을 얼마든지 할 수 있죠. 정치에 대한 인식도 바꿀 수 있고요. 정당이 유권자에게 선거 때만 아첨하지 말고요. 선거 끝나고 나면 무시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지 말고 유권자들에게도 요구를 해야죠. 당신들이 이렇게 미친 척 하고서 정당을 저주하듯이 거리를 두면 민주주의가 될 수가 없다, 우리만 욕해서 될 문제냐,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 잖아요.


지승호 주변에서 정치한다고 하면 도시락 싸들고 말리는 분위기잖아요.


강준만 우리나라 정치인들 똑똑해요.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상처받지 않는 심성, 무쇠 같
은 심장이죠. 뻔뻔해야 합니다. 예전에 박원순 시장 되고 나서 󰡐뻔뻔󰡑이라고 표현했더니
난리가 났어요. 저는 칭찬한 거예요. 박원순 시장은 대권 갈 자격을 가졌어요. 왜? 뻔뻔하거
든요. DJ도 뻔뻔했죠. 정계 은퇴한다고 해놓고 다시 나왔잖아요.(웃음) 보통 사람 심정으로
는 안 돼요. 큰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일수록 그래야죠. 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정치인
과 정말로 국민 가까이 간 정치인은 다르죠. 바람직한 이상적인 모델이 달라지는 거예요. 이
분들이 원하지 않거나 싫어할 수 있죠. 그런데 진심으로 자기 직업이 대접받기를 원하는 사
람도 몇몇은 있을 거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그 역량을 상대 정당에 대한 증오심을 발
휘하는 데 쏟아붓고 있잖아요. 정말 해야 할 일은 그런 일이 아닌데요. 비례대표라고 뽑아놓
은 분들 중에서 그런 분은 한 분도 안 계시고, 독설의 대가들만 모여 있다는 거죠. 답답해
요. 근본을 좀 바꿔야 하는데요.


지승호 아까 <나꼼수> 이야기하면서 수명 연장 이야기도 하셨는데요. 『김대중 죽이기』
를 펴내고 DJ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딱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호남 사람들 수명이
늘어났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것 아닌가"라고 하셨는데, 객관적인 자료가 있나요?(웃음)

강준만 어느 집 애가 집이 찢어지게 가난했는데, 삼수 사수 하다가 사법고시 합격하면 그
집안사람들 수명 늘어나요.(웃음) 객관이고 뭐고 쌓였던 응어리와 한이 풀어지는데, 육체는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엄청 기여했죠. 하지만 현재는 스트레스가 높아지니까 반
대 현상이 일어나게 생겼죠.


지승호 역으로 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지지하는 노인분들이 수명 연장되지
않았을까요?(웃음)


강준만 그렇게 되나요?(웃음) 정치에 관해서 이러쿵저러쿵 글 쓰는 글쟁이들도 마찬가지예
요. 멘탈이 강한 사람만 자꾸 살아남아요. 그런 게 개인적으로는 미덕이겠지만, 집단적으로
멘탈 강한 사람만 글 쓰고 참여하다 보니까 부작용이 있어요. 고종석은 상처받지 않는 사람
들만 살아남는다는 멋진 표현을 썼는데요. 그 집단적인 효과가 뭐겠느냐는 거예요. 거리를
두고 한국 정치를 보면 거시, 미시, 중시적 시각이 다 필요하겠다 싶은 것이, 깔끔하게 한국
의 현재 정치가 이해됩니다. 40대 사망률과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죠, 출산율은 바닥 수
준이죠. 대학 입시 전쟁, 취업 전쟁, 자영업이 3년 동안 생존하는 확률도 20퍼센트 이하로
굉장히 낮습니다.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김대호가 "결혼은 왜 진보의 의제가 되지 않는
가"라고 했는데요. 보십시오. 경쟁 살인적이지, 비정규직, 정규직 문제 있지, 이런 나라에서
정치가 하나의 배설의 출구로 기능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정치에 대한 관심은 배설
의 관심이고, 배설을 깔끔하게 잘하는 사람이 인기 있는 논객이 되는 것이고, 여기에 정치의
순기능이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어떤 경우에는 답답하다고 분통을 터뜨
리다가도 󰡐아, 그게 아니지󰡑 하고 깔끔하게 제 안에서 정리가 되어버리더라고요. 이해할
수 있겠다, 맞아, 스트레스 쌓이고 하는데, 정치를 통해서나마 반대파를 공격하고 어중간하
게 타협과 화합을 부르짖는 사람들도 일베충이라고 욕하고 친일파라고 욕하는 순간,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요? 다르게 이야기하면 한국 사회가 정치가 어차피 개판으로 돌아간다고 하
더라도 굴러갈 수 있는 수준까지는 온 것 같고요. 그러면 정치가 영원한 부담으로 존재하더
라도 우리 국민이 그 정도는 감내할 수 있겠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굴러가는 것은 아닌가
싶은 거죠. 그렇게 멀리 떨어져서 보면 악플 쓰는 사람도 사랑스럽고요.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 얼마나 고생이 많겠는가 하고 너그럽게 봐줄 수도 있고요.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서 보
면 답답한 마음이 늘 오락가락하죠.


안철수의 더 큰 싸가지


지승호 안철수의 새 정치 실험이 실패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강준만 새 정치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을 보여주었어야죠. 오히려 새 정치가 뭐냐고 사람들
이 놀릴 때가 절호의 기회거든요. 그렇게 관심이 높은데. 뭐야, 뭐야 하고 계보까지 만들어
지는 상황에서 새 정치를 제시해놓으면 누구도 새롭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 없어요. 무게와
상황이 다른데, 이것을 꼭 목표로 내세워서 내가 이렇게 해보겠습니다, 왜 그걸 제시 안하느
냐는 거예요. 그런 게 좀 답답하고요. 어찌되었든 저는 이 양반이 갈 때까지 갔어야 한다고
보는 쪽인데요. 야권의 구원투수로 자신이 원해서 올라왔을까요? 저는 유권자가 불렀다고
보는데요. 그런데 불러놓고 보니 마무리를 안 해준 거죠. 야구가 멘탈 게임이라는 식으로 멘
탈에서 눌려버린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안타깝죠.


지승호 선거 때 문재인 캠프 쪽에서 지나치게 압박을 가해서 상처를 받았을 거라는 추정도
있었고요. 어쨌든 양보했으면 최선을 다하는 게 좋았을 텐데, 선거일 오전에 미국으로 출국
을 해버리니까 사람들이 볼 때는 문재인에 대한 지지가 적극적이지는 않은 거 아니냐는 메
시지를 주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문재인 지지자로서는 화끈하게 도와주지 않았다는 빌미
가 되었던 것 같은데요.


강준만 그러니까요. 문재인 지지자로서는 그렇게 말할 수 있겠죠. 그런데 역지사지를 또 한
번 해봐야죠. 입장을 바꿔서 안철수가 그런 감정을 가지고 충격 받고 했는데도 마음이 동하
지 않는데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프로 정치인답지 않은, 전혀 정치인답지 않은
것으로 인기를 끌었던 사람인데요. 그런 역량은 애초에 없는 거죠. 그걸 요구할 수 있느냐는
거예요. 그러면 안철수가 흔쾌히 하게끔 정치 경험이 훨씬 많고, 그런 면에서 뛰어난 사람들
이 안철수 하나 컨트롤하지 못했던 것을 탓해야지, 왜 안철수한테 뭐라고 할까요. 안철수 쪽
은 그렇게 생각 안하겠느냐는 거예요. 좋다 이거예요. 그때까지는 그렇다 하더라도 선거 결
과에 대해서 성찰을 해야 하는데, 계속 그 핑계를 대고 면책을 누리겠다는 것은 말이 되는
건지, 그래서 원 모어 타임을 하겠다는 건지, 전략을 똑같이 가지고 가서 될 것인지, 여러
가지로 생각해봐야겠죠.


지승호 안철수 의원이 민주당에 들어간 것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강준만 왜 들어갔나 싶어요. 아니, 들어가도 어떻게 이겨요?


지승호 밖에서 새 정치라는 것을 보여주고, 어느 정도 정치적 근육을 더 키웠어야 한다는
건가요?


강준만 그런 것도 필요하지만요. 들어가서 이길 수가 없어요. 안철수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심리 중에 제가 하나 공감하는 것이 있어요. 아무리 한국 정치가 개판이라도 정치 쪽에 전
혀 몸담지 않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콘서트 좀 하고 돌아다니고, 교과서에 실릴 정도
로 모든 사람에게 좋은 말을 듣고, 존경을 누리던 평판 자산 하나만 가지고 어떻게 순식간
에 대통령 후보급으로 들어갈 수 있느냐, 이건 반정치다, 그러니까 아무리 정치가 썩었더라
도 정치의 정석과 과정을 소중히 하는 사람들은 그것만으로도 분노하는 거예요. 저는 그분
들은 한국 정치의 현실에 대해서 낙관주의자라고 봐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싫어하는 건 이
해가 되는데요. 안철수라는 사람이 자기가 그렇게까지 부상할 수 있었던 과정은 아까 말했
던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 한국 정치가 바람에 의해서 움직이는 과정이죠. 멋있게 포장하
면 시대정신, 시대정신 그러는데요. 일순간의 바람과 쏠림에 의해서 정치가 이렇게도 가고
저렇게도 간단 말이에요. 문재인 카드로 힘들다고 보는 사람들은 안철수의 저 바람으로 한
번 이긴다면 어떨까 기대했죠. 그리고 박근혜에 대해서 엄청난 반감을 가지고, 역사의 퇴보
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문재인 지지자 쪽에 더 있었던 것 아닌가요? 그렇다면 바람과 분위
기에 의해서 정권을 이쪽이 잡는 게 비교적 차선일 수 있다고 보는 것 아니었느냐는 말이에
요. 그 가치였죠. 그런데 그 사람이 조직 내부에, 산전수전을 겪은 베테랑들이 다 모여 있는
데 들어가서 무슨 방식으로 싸워서 이기느냐는 말이에요. 무기 자체가 없는데, 바깥에 있을
때의 힘뿐인데, 들어가는 순간 그 힘은 사라지는 건데,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계산하느냐는
거죠. 우리나라 계파 정치를 모르는 건가요?


지승호 안철수 현상이 계속 유효한 점이 있다고 보십니까? "앞으로 큰 싸가지를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한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강준만 박원순한테 시장 양보했을 때로 돌아가라는 거죠. 안철수에게 중요한 것이 새 정치
를 한번 해서 정치가 부담이 아니라 생산성을 제공해주는 근원이 되는 것을 원했던 걸까요,
대통령이 되는 것을 원했던 걸까요. 둘 다 원했겠죠. 그러나 굳이 양자택일을 하라면 어떤
게 컸느냐는 거죠. 저는 전자가 컸을 거라고 보는 거죠. 우리나라 국민이 묘해요. 예전에 안
철수는 여아를 막론하고 좋아해주었잖아요. 그런데 대통령이 되려고 하네, 경쟁자로 인식하
는 쪽에서 공격을 퍼붓기 시작한 것 아닙니까? 엄청난 증오였죠. 정말 새 정치로 바꾸려면
대통령이 되어서 하는 것이 권력이 있으니까 유리하겠죠. 그런데 굳이 또 다른 대안을 모색
하기 위해서 보자면요. 대통령이 말 한마디 잘못하면 부당한 개입이 되니까 정치에 대해서
말을 할 수가 없잖아요.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았겠지만, 대통령을 목표로 두지 않는다고 하
면 자기의 뜻을 진정성 있게 밝히면서 새 정치를 위해서 초심을 잃지 않고, 기여해보겠다고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저는 그게 더 큰 싸가지라는 거죠. 그 싸가지를 보
여줄 수 있지 않느냐는 거예요. 도대체 뭘 어떻게 실현하겠다는 어젠다를 확실하게 굳혀놓
고 가야죠.


지승호 콘텐츠가 약하지 않나 하는 평들이 있었고요. 주변에 똑똑한 사람이 많았지만, 캠프
에 참여해서 뭔가 보여준 사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강준만 언론을 통해서만 보니까 그 점은 잘 모르겠어요. 저도 가장 우려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가까웠던 중요한 분들이 다 떠난다는 말이에요. 그 이유가 뭐냐, 그건 안철수 자신이
이야기해야 한다고 봐요. 정말 개인의 큰 결함 때문인 건지, 자기가 총결산해서 중간 점검하
고 내놓아야 하지 않겠어요. 자신에게도 자기 성찰이 필요한 거죠. 정말 심각한 문제가 있다
고 하면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되고 도지사가 되고, 무슨 장이
된다고 하는 것은 핵심이 사람 장사잖아요. 새 정치 실현을 과거에 어떤 정치인이 집권을
목표로 안 하고 할 수 있었겠어요? 그것마저도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라는 겁니다.
"이러이러한 것은 나한테 한계가 있는 것 같더라, 그런데 내가 원했던 꿈은 바뀌지 않았
다"라고 해야죠. "나라고 하는 사람을 통해서 표출되었던 우리 국민의 '정치는 이대로
안 된다'고 하는 강한 열망을 풀어주고 싶다"라고 하기에는 더 좋을 수 있다는 거죠. 대
통령 꿈을 딱 포기하고, 그것만을 위해서 갈 수 있다는 겁니다. 바깥에서 얼마든지 압박해서
들어갈 수 있고, 바꿔줄 수 있다는 거죠. 결국 법의 문제잖아요. 제가 볼 때는 네다섯 가지
로 압축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데, 왜 그 이야기를 안 하느냐는 거예요. 정말 정치를 바꿔보
자, 바깥에서 누군가가 압박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런 이야기를요. 어떤 다른 사
람이 나서서 󰡐제가 깃발을 들 테니까 오십시오󰡑 하면 안 된다는 말이에요. 안철수는 아무
리 과거에 잘나간 때에서 조금 떨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구심점이 될 수 있는 네임 밸류
가 있어요. 그렇게 자기를 까발리면서 애초에 초심이 뭐였던가로 돌아간다면 얼마든지 더
큰 족적을 남길 수 있다고 봅니다.


지승호 예전처럼 '청춘 콘서트' 비슷한 행보가 필요하다는 건가요?


강준만 네. 그런데 밑도 끝도 없이 하면 대선 후보로 수명 연장한다고 볼 수 있으니까, 과
감하게 그간의 결산 보고서를 내는 거예요. 자기를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자기를 믿고 지지
해주었던 사람들에게 정치 입문에서 오늘까지를 스스로 자평해보마, 이걸 왜 못합니까? 과
감하게 해야죠. 저는 그런 식으로 가면 더 멋있을 것 같은데요. 애초 이 사람의 초심을 저는
믿거든요. 정치가 이래서는 안 된다고 하는 강한 문제의식, 그것만 가지고 가라는 거죠. 그
것을 대통령이 되어서 실현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드러났던 문제들, 오히려 남
들이 조심스러워서 독하게 말하지 못했던 것도 스스로 말해야 합니다.


'용미주의'의 주체는 우리다
 
지승호 『미국사 산책』을 17권이나 되는 분량으로 쓰셨는데요.


강준만 있는 그대로의 세상과 우리가 원하는 세상 이야기예요. 진보적인 분들은 우리가 너
무 미국에 경도되어 있고, 미국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불만이 많죠. 동의합니다. 하
지만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 언론이든 뭐든 돌아가는 모든 것을 보세요. 엄청나게 미국적
인, 미국 중심 사회로 돌아가요. 게다가 미국이 실리콘밸리를 밀어붙이면서 IT 강국으로 가
는 과정에서 미국의 영향이 훨씬 더 강해진 거 아닙니까? 국내에 미국사 관련된 책이 엄청
많아요. 그런데 저는 늘 이해가 안 갔던 것이 어떻게 한 권을 가지고, 그야말로 다이제스트
잖아요. 물론 대한민국 국사도 한 권 딱 보지만요. 그거하고 똑같다니까요. 해방 이후의 근
대사, 1960년대, 1970년대를 어떻게 책의 한두 장으로 끝내느냐는 말이에요. 그래서 해놓고
보았더니 제 방식이 좋다고 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웃음) 『한국 현대사 산책』의 연장선
에서 미국사도 한 권으로 끝낼 게 아니라고 생각한 거죠. 독자의 열띤 호응은 없었지만, 다
시 한 번 손을 봐서 잘했으면 싶을 정도로 작업할 때 재밌었어요. 공부한 것도 많았고요.


지승호 한국과 미국의 관계에 대해서도 새롭게 생각하셨을 것 같은데요.


강준만 그 이야기는 영어에 대한 이야기로 빗대서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제가 『한국인과
영어』라는 책을 냈는데요. 한국 사회에 부는 영어 열풍과 광풍을 식민 사대주의로 보는 시
각이 진보적 지식인들의 주류 의견이라고 봐요. 진보 입장에서는 보수가 친미로 경도되어
있으니까 그것을 비난하는 의미에서 친미를 비난하고, 영어 열풍도 그렇게 해석한다는 말이
죠. 저는 조금 생각을 달리하는 것이 제 책의 마지막 결론이 영어 광풍에 너그러워지자는
거예요. 무슨 뜻이냐, 그게 사대주의가 아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영어를 잘하는 것이 무
얼 의미하는지 보라, 본질은 우리 내부의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한 생존 경쟁이나 투쟁 수단
이라는 거죠. 그렇지 않습니까?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유치원 때부터 초, 중, 고등학
교까지 영어 점수를 높이고요. 취업할 때도 따지죠. 한국 사회의 해외 의존도가 세계에서 가
장 높다 보니까, 국민 의식 속에서도 기름 한 방울 안 나고, 바깥 세계와 교류하지 않으면
한국은 생존할 수가 없다는 건데요. 그때 영어 말고 뭐가 있느냐는 거예요. 내부 변별력 확
보에 경쟁 수단으로 영어가 채택되다 보니까,

 

사실 우리가 영어 못하는 이유도 그거죠. 내부 경쟁용이니까, 영어를 잘하는 것이 목적이라기보다는 내가 남보다 점수로 환산한 영어를 잘 해야 한다는 거잖아요. 미국이라는 나라가 현재 강대국이고, 우리 국가 안보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여러 가지로 앞서가는 면도 있고, 그래서 이민도 많이 가서 살고요. 지극히 현실적인 한국인들의 판단이라는 거죠. 만약에 세계 패권이 미국에서 다른 나라로 넘어갔다고 합시다. 바뀝니다, 한국은. 금방 바뀌어요. 근현대사 보면 바로 나와요. 개화기 때도 러시아 세력이 강해지면 러시아말 배우죠. 개화기 유명 인사의 에피소드인데요. 자식이 서넛 되는데, 너는 영어 배워라, 너는 중국어 해라 등등 자식들에게 하나씩 하라고 하는 거예요. 어떤 나라가 힘이 강해질지 모르니까 위험 분산을 하는 거죠.


지승호 포트폴리오를 분산하는 거네요.(웃음)


강준만 한미 관계나 영어도 그런 거죠.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생존하는 기법을 우리
국민이 온몸에 갖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만 그러는 건가요?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세
계 공용어로서의 가치가 지금까지 계속 증대되어온 것 아닙니까? 미국이라는 나라도 어쩐다
저쩐다 말이 나오지만, 동구권 붕괴 이후로 미국 일국주의로 간 것이 역사 아닙니까? 그렇
다면 미국을 대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각은 실리 중심인 거죠. 심리적 사대주의 하는 것
은 제가 볼 때는 곁가지고, 약간의 부산물 정도라는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왜 반미주의의
대표적인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 중 상당수가 자식을 미국에서 교육시킬까요. 보수는 그걸
보고 앞뒤가 안 맞는다고 위선이라고 욕하지만, 저는 욕할 것 없다고 봐요. 그럴 수 있는 거
죠. 그러니까 미국을 보는 시각도 실용적인 관점에서 봐야 하는 거죠. 말장난 같지만, 용미
주의(用美主義)가 맞단 말이죠. 우리 내부의 생존 경쟁을 위해서 미국과 영어가 선택된 거
지, 주체는 오히려 우리라고 봐요. 주체라는 것이 내가 주인인 거지, 간 쓸개 다 빼주는 게
아니잖아요. 진보 쪽은 굉장히 경직되어 있어요. 미국을 보는 시각, 영어를 보는 시각이요.
그런데, 진보적 지식인들도 자기가 영어를 잘했기 때문에 그 자리에 간 거예요. 영어 못해서
서울대 갈 수 있었겠어요. 유학 갔다 온 사람들도 그렇고, 이분들 영어 잘해요. 자기는 영어
잘해 가지고 그 자리에 올라가놓고, 영어 광풍이라고 개탄하는 것을 보면 앞뒤가 좀 안 맞
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영어 광풍에 너그러워지자, 한국 내부의 생존 경쟁의 수단으로
영어가 채택되어 있는 것이지, 우리가 사대주의에 찌들고, 승리주의에 빠진 것은 아니라고
한 겁니다.


지승호 한국인들의 특성 자체가 실용주의적인 코드가 강한 것 같은데요.


강준만 제가 진보 쪽의 싸가지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도 이런 거예요. 그 말이 아무리 옳더
라도요. 내가 살아온 세월이고, 내가 살아온 국가고, 내가 살아온 체제 아닙니까? 과거를 너
무 죽여버리면 내 자존감과 정체성이 흔들려버려요. 그런데 진보 쪽은, 대한민국의 탄생 자
체를 분단의 역사 속에서 부정적으로 보죠. 이승만과 박정희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다 보
니까, 한국 현대사가 깡그리 부정의 대상이 되어버려요. 말 하나하나는 진보적 관점에서 옳
을지라도 그 세월을 통해서 성장해왔고, 내 자식 키우고 했던 사람들은 불편해한다니까요.
자긍심과 자존감의 문제인데, 그걸 염두에 두고 이야기해야죠. 시대주의라는 것도 사실 김대
중 대통령이 먼저 사대주의 옹호론이라고 할까, 사대주의를 위한 변명을 했기 때문에 인용
하기가 좋았어요. 보수적인 학자의 말을 인용하면 보수 꼴통들이나 하는 이야기라고 할 거
아닙니까? 김대중 말이 그거 아닙니까? 사대주의를 하지 않았던 다른 나라들은 흔적도 없
이 사라졌다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외세의 침략을 받고, 굴종했을 때 목숨 걸고 싸워서
국민 한 명 한 명 최후의 순간까지 항쟁하다 죽어야 옳았던 건가요? 슬기롭게 우리 문화를
남기고, 아슬아슬한 외교였든 조공이었든 줄타기하면서 버텨온 것 아닙니까? 역사적으로 그
랬다고 하면,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비하할 것까지는 없다는 거죠. 자존감이 타고
날 정도로 강한 분들은 우리 근현대사 중에 명성황후를 지나치게 띄운다거나, 고종은 위대
한 군주였다고 하죠. 그렇게 역사 왜곡과 미화를 통해서 자존심을 세우는 것은 동의하지 않
고요. 다만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는 것을 한쪽 면만 봐가지고 우리 자신
을 초라하게 만들 필요가 있는 건지 생각해보자는 거죠.

 

1부 끝

 

* 본문은 월간 <인물과사상> 제200호 특집기사입니다.

글쓴이 강준만은 언론과 대중문화를 포함하여 문화사 전반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조지아대에서 신문방송학 석사, 위스컨신대에서 신문방송학 박사학위를 받고 1989년부터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현대사 산책(전 23권)](2002~2011), [한국대중매체사](2007), [미국사 산책(전17권)](2010), [세계문화의 겉과 속](20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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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1/12 [22:5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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