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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성장도 분배도 서해에 있다
[공희준의 직격탄] 남북평화야말로 성장과 발전의 전제조건 된 시대
 
공희준

나는 오래전부터 반노로 분류되어온 사람이다. 참여정부를 실패한 정권으로 규정해놓은 것이 그 주된 이유다. 어떠한 아름다운 미학적 수사와 고상한 논리를 가져다붙여도 참여정부가 지금은 새누리당으로 개명한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허락했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변할 수 없을 터라 현재의 내 정치적 입장이 달라질 가능성은 거의 0퍼센트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참여정부의 수장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6․25 전쟁 이래로, 좀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미국의 제안으로 위도 38도선을 기준삼아 미군과 소련군이 각각 남한과 북한을 군사적으로 점령한 이후로 대결과 고통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해온 황해, 곧 서해를 평화와 번영의 터전으로 바꾸려고 노력한 점은 한없이 고무찬양하고 싶어진다. 더 큰 성장을 추구하는 세력이든, 더 나은 분배를 지향하는 진영이든 서해의 절반이 금단의 영역으로 막혀 있는 상태로는 나무에서 물고기를 찾는 짓과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까닭에서다.
 
세계사를 잠시 돌이켜보자. 아테네와 로마가 차례로 거머쥔 서구 문명의 주도권이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거쳐 종국에는 영국과 미국으로 넘어간 데에는 지중해가 열린 바다에서 닫힌 바다로 돼버린 것이 유일한 원인은 아니었을지언정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알 수가 있다. 한때 찬란한 영화를 누렸던 시칠리아가 현대에 이르러서는 악명 높은 마피아의 소굴로 전락한 것도 따지고 보면 지중해가 유럽과 아프리카를 이어주는 교량에서 양 대륙을 갈라놓는 단층선으로 뒤바뀐 결과로 분석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국민들은 물론이고 정치인이나 관료들, 심지어 기업인들의 대부분이 우리민족에게 서해의 절반이 오랫동안 봉쇄돼온 사실에 대해, 한강을 거쳐 넓은 바다로 나아갈 수 없는 현실에 대해서 별다른 불편함이나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고 있는 분위기이다. 비정상도 장기간 방치해두면 정상으로 인식되고 마는 탓이리라. 이와 같은 상황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는 몇 가지 사례만 들어도 쉽게 감지되기 마련이다.
 
단적인 예로 라인강의 기적은 있어도 한강의 기적은 없었다. 엄밀하게 표현하자면 한강의 기적이 아닌 낙동강의 기적일 따름이었다. 독일의 루르공업지대에서 생산된 상품들이 라인강 하구의 주요 항구들을 발판으로 해외 각지로 수출된 덕분에 독일이 패전의 잿더미로부터 벗어나 단시일 내에 전 세계적 경제대국으로 재도약할 수 있었듯이, 낙동강 유역의 대규모 공단들에서 제조된 공산품들이 남해를 거쳐 활발히 팔려나감으로써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이 가능했었기 때문이다. 한강은 수도 서울을 관통해 흐른다는 상징적 구실을 제외한다면 고도경제의 신화 창조에 특별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경제적 부를 일군 도시나 나라들 가운데 바다나 강을 통한 인간의 통행과 물자의 통상이 자유롭고 활발하게 이뤄지지 못하는 지역에 위치한 곳들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테임즈강의 하구가 한국의 한강과 임진강처럼 철조망으로 꽁꽁 감싸여 있었다면 영국의 산업혁명은 불가능했을 게 분명하다.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 각국의 만들어온 선진적 자본주의 경제체제 또한 북해가 열린 바다였던 것에 크게 힘입고 있다. 세계의 경제수도로 일컬어지는 뉴욕의 흥륭과 번성 역시 허드슨강과 대서양 모두가 시원하게 뚫린 덕택이었다. 따라서 한강의 기적이 굳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한강 때문에 이뤄진 기적이 아니라 출로가 차단돼 있는 한강에도 불구하고 이뤄진 기적이라고 정의해야만 올바른 시각이자 합리적 평가이리라.
 
21세기의 세계 경제패권 경쟁의 진정한 승자가 유럽이 될지, 미국이 될지, 아니면 동아시아가 될지는 섣불리 예상하기가 힘들다. 다만 확실한 것은 유럽과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지중해와, 남북한과 중국에 더하여 인근의 러시아와 일본까지도 자국의 사활적인 경제적 이해관계를 걸고 있는 서해가 앞으로도 계속 문명 사이의 단층선이나 긴장과 갈등의 수역으로 남아있다면 태평양과 대서양 전부를 이른바 ‘우리의 바다(Mare Nostrum)’처럼 마음껏 신속하게 변함없이 활용해갈 미국의 우세한 위상이 웬만해서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낙동강의 기적’의 시효가 진즉에 만료되었음에도 새로운 성장동력의 발굴에 목말라하는 한국경제의 미래도 결코 밝지 않을 테고.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민주정부의 10년 치세는 우리 나름대로 서해를 닫힌 바다에서 열린 바다로 만들어가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던 시대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등장을 계기로 서해는 다시금 차가운 냉전의 바다로 쉬지 않고 역류하는 중이다. 그러므로 서해를 거치는 거침없고 활기찬 통행과 통상이 보장되지 않는 불안정한 국제질서 아래서 추진된 이명박 정부의 내륙운하 건설사업은 보약과 발암물질을 곁들여 먹는 일종의 정신분열적 행동에 지나지 않았다.


며칠 전 거행된 인천 아시안게임의 폐막식에 북한의 권력실세 3인방이 전격적으로 참석했다. 이는 북한의 핵능력을 약화시키기는커녕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의 마지막 희망의 숨통을 되레 조이는 역효과만 발휘해온 5.24 조치를 과감하게 해제하고, 서해를 고대의 지중해처럼 번영과 평화의 물길로 되돌려놓을 역사적 대장정의 닻을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이러한 천재일우의 호기는 일부 불순한 탈북자들이 일으킨 대북전단 소동으로 말미암아 순식간에 유실되고 말았다. 우리에게 들려오는 소식이라고는 북방한계선 NLL을 둘러싼 남북한 해군 간의 또 다른 교전사태 당시 국지전으로 비화될지도 모를 미사일까지 발사될 뻔했다는 우울하고 험악한 후일담밖에 없다.


오염으로 죽어간 강과 바다는 생태공학 기술의 힘만으로도 되살릴 수 있겠지만, 전쟁과 대결로 죽어가는 바다와 강을 소생시킬 원동력은 평화를 향한 수많은 사람들의 일치된 의지와 실천뿐이다. 21세기는 평화야말로 성장과 발전의 전제조건이 된 시대임을 잊지 말자. 서해가 열리면 번영으로 가는 큰길도 자동으로 열리게 돼 있으니.


* 본문은 21세기경제학연구소(www.taeri.org) 10월호 소식지에 올린 글입니다.


글쓴이는 시사평론가, <이수만 평전>의 저자입니다.
 
기사입력: 2014/10/16 [00:59]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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