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순의 문학과 여성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진보교육감, '엉터리' 여론 조사에 속다
[정문순 칼럼] 여론조사, 1등을 3등으로 왜곡했다면 과학이 아닌 '사기'
 
정문순   기사입력  2014/06/08 [19:00]
교육감 선거 결과가 참으로 아리송하다. 내가 사는 광역자치단체는 ‘꼴보수’ 지역으로 호가 난 곳이다. 이런 곳에서 진보 교육감의 탄생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나온다고 봐야 할지, 감격스럽기보다는 당혹스러운 마음이 더 크다. 당선자는 지역의 98개 시민단체들이 한 목소리로 추천하고 지지한 사람이었다. 출마 요건은 다 갖추어졌지만 가장 큰 난관은 낮은 인지도였다. 선거사무실 개소식 날 당선자의 참모는, 지금은 지지율이 낮지만 곧 상승기류를 탈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선거 기간 내내 여론조사에서 당선자는 출마가 예정된 현직 교육감과 거북이·토끼 수준의 경주를 벌이고 있었다.

오히려 교육감 선거는, 선거 직전 지지자들에게 떠밀리다시피 나온 중도 후보와의 2파전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당선자는 지난 번 선거에서는 석패했지만, 이번에는 확실한 ‘넘버3’로 보였다. 이번처럼 3명이 접전했지만 당선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던 지난 번보다 상황은 오히려 더 나빠진 게 분명한 것 같았다.

이번 선거에서 내가 기대하는 것은 없었다. 도지사와 시장 선거 모두 중앙 정계 퇴물 출신들이 노후 보험용으로 출마한 후 여당의 낙점을 받으면서 일찌감치 승부를 정해 놓았다. 내가 사는 기초자치단체는 보수적 정서 속의 섬 같은 지역으로서, 영남권 진보벨트를 구성하는 지역답게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야권 후보들이 시·도의회에 대거 입성한 바 있다. 지난 해 도지사의 일방적인 도립 의료원 폐업에 맞서 옥쇄의 각오로 싸웠던 이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 나온 야권 후보들은 의료원 지키기보다 더 어려운 싸늘한 여론과 싸워야 했다. 재선에 도전하는 한 기초의원 후보자는 현수막에서 자기 당 이름과 색깔을 지우고 인물로만 판단해 달라고 호소하는 실정이었다. 야권 후보가 몇 명이나 살아남을지 회의적이었다.

나는 다른 선거는 일찌감치 기대를 접었기에 담담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교육감 선거만큼은 체념이나 달관을 택할 수가 없었다. 진주 지역의 한 고등학교에서 지난 3월 말 ~ 4월 초 불과 10여 일 사이에 학교폭력으로 학생 2명이 잇따라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이 학교의 재단이사장은 현직 교육감의 아내였다. 이 사건을 놓고 도교육청과 학교의 사후 수습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처음 학생이 사망했을 때 도교육청이 해당 학교를 감사하지 않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2차 사고를 막지 못한 데 대해 현직 교육감의 책임론이 대두되었다.

여론이 들끓자 교육부는 부랴부랴 차관을 단장으로 하여 해당 학교에 대해 특별감사를 벌였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그 즈음 출마를 선언할 예정이던 현직 교육감은 돌연 외부 활동을 중단했다. 시민단체와 학부모 단체들로부터 출마 포기 압박이 가해졌다. 그러나 그 즈음 터진 것이 세월호 사태이다.

미증유의 재난이 모든 이슈를 잡아먹으면서 학교폭력 사태는 그냥 묻혔다. 교활하게도, 한참 침묵을 지키던 교육감은 세월호 사태가 좀 가라앉자 사과와 함께 출마 선언을 한다. 그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는 학교폭력 사망 사건은 세월호 사태를 축소해 놓은 것과 똑같았다.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드러나지 않았으며,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은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선거 유세 도중 교육감은 누구처럼 눈물을 펑펑 흘리는 모습도 보였다. 교육감은 기회를 달라고 무릎을 꿇고 엉엉 울었다. 그러나 뒤에서는 적반하장의 일도 벌어졌다.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난 교육감의 아내는 자신의 처신을 비판한 시민단체들을 고소하였다. 그런데도 교육감의 지지율이 1등을 달리고 있으니 암담했다.

이처럼 교육감 선거 결과는 귀를 막고 싶었는데, 뜻밖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투표를 며칠 앞두고 나온 여론조사에서 1위와 오차범위 내 접전으로 나오긴 했지만, 당선자가 판을 완전히 뒤집어엎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당일 출구조사에 이르러서야 당선자에게 경사가 일어날 조짐이 처음으로 드러났는데 그때도 근소한 우세로 나타났다. 그러나 당선자는 2등과 9%의 격차를 벌렸다. 어느 한 지역에서 몰표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선거구에서 1등을 차지했다. 현직 교육감은 꼴찌로 밀려났다. 여론조사에서 1-2-3등의 순위가 하루아침에 3-2-1등으로 뒤집힌 것은 그 어디에서도 비슷한 예를 찾기 힘든 경우다. 여론조사 연구자들이 들러붙어 연구해 볼 만한 사례이기도 할 것이다.

내 지역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서울도 진보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내내 밀렸지만 뚜껑을 열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서울의 경우 막판에 순위가 요동칠 만한 사건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사는 곳은 그런 일마저 없었다. 학생 사망 사건은 선거 전에 일어난 일이며, 보수적인 지역 언론은 현 교육감과 결부하여 사건을 다루지도 않았다. 선거 막판에 교육공무원이 현직 교육감을 지지해 달라는 문자 메시지를 방송한 일도 있었고, 여론조사의 1등과 2등 후보가 난타전을 벌이며 지지를 깎아먹는 일도 했지만, 그것이 꼴찌 후보를 1등으로 밀어 올리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는 힘들다.

내 지역에서 진보 교육감이 배출된 것은 이번에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전국 진보 교육감 후보들과 함께 바람을 탔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런 기류가 투표 직전에 갑자기 한꺼번에 형성되기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전국 단위의 바람이 형성되고 그것에 영향을 입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며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될 일이 아니다. 지역 언론들은 당선자가 막판 대역전극을 펼쳤다고 편하게 해석하지만, 당선자의 고전을 점쳤던 여론조사 자체를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봐야 옳을 것이다.

엉터리 여론조사는 비단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번 지방선거 때도 여론조사는 된통 혼이 났다. 경남도지사 선거에서 김두관 후보는 상대 후보를 너끈히 이겼지만, 여론조사는 오차범위 내 상대 후보 우세로 나왔다. 여론조사가 정확했다면 개표할 때 마음을 졸일 이유도 없었다. 현재의 여론조사를 믿을 수 없는 이유는 대부분 10% 대의 턱없이 낮은 응답률과, 집 전화 위주의 조사 방식에 있다. 이는 여론의 대표성과 정확성이 원천적으로 왜곡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여론조사에서는 연령별, 지역별 할당치가 있으니, 조건을 충족할 때까지 조사원이 조사에 응해 줄 가능성이 별로 없는 전화를 계속 돌려야 한다. 그러나 시간과 비용 때문에 그렇게 하는 업체는 거의 없으며 분야별 가중치를 두어 계산하는데, 이 방식이 여론을 제대로 반영한다고 볼 근거도 없다. 가중치를 높게 잡을 경우 여론이 왜곡되기 쉬우며, 가중치의 근거가 되는 집 전화 여론조사 응답도 믿을 만한지 알 수 없다. 같은 연령대라도 집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전업주부와, 집 전화를 받기 힘든 직장 여성의 정치 의식은 차이가 날 가능성이 다분하다.

선거가 끝나자 언론들은 진보 교육감 후보들의 압승 이유를 추론하기에 바쁘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앵그리 맘’들의 분노를 끌어들이는 것이 정석으로 굳어지고 있지만, 나는 이런 식의 사후 분석에 염증이 난다. 이런 분석을 내놓으려면 '앵그리 맘'들의 투표 행위가 왜 교육감 선거에만 작동할 뿐 교육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는 다른 선거에는 앵그리를 발휘하지 않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로 가장 큰 슬픔을 느꼈을 경기와 인천의 단체장 선거는 왜 그 모양이었는지도 풀이가 필요하다. 지난 대선 때는 언론들이 선거가 끝나자 난데없이 세대론을 들먹이며 보수의 집권 연장을 한국의 고령화 사회에 원인을 돌리는 진단이 쏟아졌다.

진보 교육감 후보들의 약진이 세월호 비극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이나 좀 더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본다. 유권자들이 교육감 선거에서는 어른들 말을 고분고분 들은 아이들이 참변을 당한 일에 주목하여 현행 주입식 교육의 한계를 절실히 깨닫고 진보 교육감을 선택한 반면 교육감을 제외한 선거에서는 새누리당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유권자들은 정부와 여당이 바라는 대로 세월호 사태에 대한 정부와 대통령의 책임론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 된다. 교육 문제야 누대로 쌓인 '적폐'이니만큼 특별히 박근혜 정부에게만 책임을 물을 일이 아니다. 이런 분석이 맞다면 이번 선거는 세월호 사태에서 탈출하려고 안간힘을 썼고 ‘대통령의 눈물’ 운운하며 오히려 세월호를 슬쩍 선거 마케팅으로 활용했던 박근혜 정권의 의도대로 흘러간 것이 아닐지.

진보 교육감 후보들의 약진을 현직 진보 교육감들이 추진해 온 혁신학교 정책, 무상급식 확대 등에 대한 높은 평판에서 원인을 찾는 것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혁신학교를 해도 아이들이 대학에 잘 가고, 주변 집값도 오르더라는 평이 학부모들 사이에 나돈 것도 진보 교육감 후보에 대한 몰표와 연관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언론에서는 선거 기간 동안 학부모 유권자들의 이런 정서를 눈여겨보았어야 했다. 그러나 선거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선거가 끝나니 결과에 맞추어 이런저런 원인을 찾는 사후 꿰맞추기식 진단은 언론이 자신의 무능을 덮으려고 애쓰는 데 급급한 것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투표 민심을 진작에 간파하여 선거 의제로 만들어내는 것도 언론의 역할이다.

여론조사는 여론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새로운 여론을 낳는 데 작용한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여권 지지층은 힘을 결집하기도 하고, 야권 지지층은 투표권 행사를 포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엉터리 여론조사 결과는 오도된 여론을 낳는다. 여론조사 결과가 정확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 선거가 많았을 것이다. 이대로 둘 것인가?

응답률이 30% 이하인 여론조사의 경우는 공표를 금지하고, 조사 방식도 휴대전화 위주로 하도록 선거법을 손보는 일, 무성의한 조사 방식으로 응답률을 떨어뜨리는 ARS 설문 조사의 공표를 막는 것, 이런 일들이 그렇게 어려울까. 소수점 단위까지 맞추는 외국의 여론조사에 비하면 출구조사마저 틀리는 한국의 여론조사는 창피한 수준이다.

투표 직전 여론조사 결과의 공표를 금지한 규정도 없앨 필요가 있다. 직전 여론조사 결과는 선거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클 수밖에 없다. 그것을 법이 나서서 제재를 가한다면 주제넘은 짓이다. 물이 도도히 흘러가든 유유히 흘러가든 그것은 물의 마음인데야 그 흐름을 인위적으로 조절하겠다고 끼어드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현행 선거법은 나서야 할 때 나서지 않고, 나서지 않아도 될 때 나서는 모습이 다분하다. 선거가 떠들썩하지 않고 조용히 치러지기를 노골적으로 바라는 선거법이, 여론을 왜곡하여 선거 흐름을 바꾸는 데 개입할 여지가 큰 엉터리 여론조사를 그대로 두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4/06/08 [19:00]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