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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이 수구꼴통? 사투리는 살아있다
[정문순 칼럼] 영화 <변호인>이 입증한 경상도 말의 반골 기질
 
정문순   기사입력  2014/01/20 [20:44]
한때 지역말의 위기를 논하는 여론이 뜬 적이 있다. MBC경남은 <사투리의 눈물>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여 울림을 낳기도 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해당 지역민조차 자기 지역말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구체적인 실험을 통해 입증한다. 

가령 한 노인이 음식을 먹다가 “개미가 있다.”라고 한 말을 젊은이는 알아듣지 못한다. 개미가 음식의 감칠맛을 뜻하는 것임을 모르는 젊은 세대가 지역말을 기성세대만큼 구사하지 못한다는 점은 사실일 것이다. 제주도의 경우 한때 서울말 배우기를 대대적으로 벌이다가 살아있는 화석과도 같은 자기네 지역말의 가치를 뒤늦게 알고 부랴부랴 보존 대책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어휘만 가지고 지역말의 위기를 따지는 것은 반쪽 논의에 불과하다. 어휘로만 지역말의 입지 축소를 증명하는 시도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다. 경상도 말이 경상도 말일 수 있는 것은 다른 지역 사람이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그 특이한 억양에 있다. 

한글 창제 당시에도 있던 말의 높낮이인 성조가 면면히 살아있는 지역의 위엄이 서울말의 공세 앞에 쉽게 죽을 리 없다. 경상도 출신이 서울말을 수십 년 배워도 안 되더라는 말이 있는 한, 경상도 말의 위세가 이전만큼은 못하더라도 위기를 논하는 것은 부질없는 기우라고 본다. 어휘는 달라지더라도 입에 밴 억양은 평생을 가는 법이다. 심지어 경상도 말의 위력은 이 지역 사람들의 성정을 좌우하는 데까지 미치기도 한다. 나는 영화 <변호인>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영화는, 보수의 본향으로 떨어지기 이전 1980년대 경상도(대구·경북은 제외)의 기질과 정서를 느끼게 해 준다. 부산에서 개업한 평범한 소시민 송우석 변호사는 단골 국밥집 아들이 시국 사건으로 영장도 없이 불법 구금되자 덥석 변호인을 맡는다. 국밥집 아들에게 공부하기 싫어 데모하는 놈이라며 싸움 걸고 추태를 보이기도 했던 속물 변호사가, 법정에서 그를 옹호하며 사자후를 토하는 인권 변호사로 변모하는 것은 한 순간이다. 그러나 이런 극적 전환은 송우석의 순수하고 솔직한 본래 기질이 만들어낸 것이므로 변모라고 할 것도 없었다.

송우석의 저돌적이고 불같은 성격을 뒷받침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그의 경상도 말이었다. 경상도 말과 송우석은 한 몸이 되어, 불의와 왜곡 앞에서 앞뒤 재지 않고 분노할 줄 아는 송우석의 원동력이 경상도 말 쓰는 환경임을 알려준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 국밥집 아들의 변호를 맡으며 “이른 게 어딨으요. 이르믄 안되는 그잖아요. 하께요. 제가 벤호인 하겠습니다.”라고 한 송우석의 일갈은, 논리와 이성을 거치지 않고 가슴의 열기를 그대로 내뿜는 포효이며, 다른 지역 사람에게는 싸움하는 것처럼 들리는 경상도 말의 뚝뚝하고 거친 억양과 혼연일체를 이룬다. 또한 그와 맞붙은 법정에서, 미끈하고 건조하고 아무 감동도 느낄 수 없는 서울말로 용공 운운으로 일관한 검사와도 좋은 대비를 낳았다. 경상도 말의 승리다.

영화의 배경은 80년대 부산 바닷가이지만, 마산 부둣가로 옮겨놓아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신군부가 총칼로 집권한 시대까지만 해도 경남과 부산은 저항의 지역이었다. 유신 정권이 야당 당수에게 가한 핍박에 분노했고, 끝내는 죽기 전에는 권좌에서 내려올 것 같지 않던 철권 통치자를 무덤으로 보냈다. 유신을 끝장낸 저력은 80년대에도 그대로 이어져 노동자 밀집 지역인 경남은 거제, 울산(당시는 경남), 마산·창원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가장 두드러진 노동 항쟁을 벌임으로써 반골의 전통을 계승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보수대연합 체제가 나오기 전까지 경남은 야성이 충만한 고장이었다.

<변호인>에서, 송우석을 연기한 송강호 배우 빼고는 경상도 말을 제대로 구사하는 이가 드물다. 경상도 말을 흉내 내기는 그만큼 어렵다. 마찬가지로, 한 번 경상도 사람은 영원한 경상도임을 믿어도 좋을 것이다. 

나는 사투리의 눈물을 믿지 않는다. 사투리로 부단히 폄하당하는 지역말의 저력을 믿는다. 경남이 수구꼴통 지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지도 20년이 훌쩍 넘었다. 그러나 거센 경상도 말의 억양이 살아있는 한 송우석은 다시 나올 것이다.

* 본문은 1월 20일 경남도민일보 칼럼을 손본 글입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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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1/20 [20:4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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