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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은 대박이 아니다
[김영호 칼럼] 통일이란 목표보다 통일 이후 대비하는 과정이 더 중요
 
김영호   기사입력  2014/01/18 [22:53]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일 신년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다”라고 말해 화제다. 노름판에서나 쓰는 말을 통일문제에 인용해 즉흥적이란 느낌이 들었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튼 날 새누리당 의원-당원협의회 조직위원장을 초청한 청와대 만찬회에서 친박수장인 서청원이 건배사로 ‘통일’를 선창하고 참석자들은 ‘대박’을 화답했다고 한다. 국가정보원장 남재준이 지난해 12월 21일 송년회에서 “2015년에는 자유 대한민국 체제로 조국이 통일되어 있을 것이다”말하고 통일을 위해 다 같이 죽자며 결기마저 보였다는 것이다.

만찬회가 있은 그 날 워싱턴에서는 외교부 장관 윤병세가 한-미 외교장관회담을 마친 다음 한국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새로운 북한상황에 비춰 미국과 북한정세를 시급하게 논의하는 고위급 협의를 늘리자는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급변사태 대비계획(contingency plan)을 포함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것을 배제할 필요는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했다는 것이다. 장성택 처형 이후 일련의 정황을 종합하면 박근혜 정권이 돌발사태에 의한 북한 붕괴론을 확신하는 모습이다.

통일은 불가측의 문제이다. 역사의 앞날은 아무도 알 수 없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을 깨는 망치 소리가 들리는가 했더니 하루 아침에 독일이 통일됐다. 통독이 일순에 왔듯이 한반도의 통일도 어느 날 갑자기 현실로 다가올 수도 있다. 아니면 또 다른 불행한 사태가 벌어져 분단의 시간이 지난 세월보다 더 길지도 모를 일이다. 역사에서는 세계를 지배하던 강대국도 병탄, 분단, 소멸되거나 약소국으로 전락한 기록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이명박 정권은 북한이 경제난-식량난으로 인해 붕괴되리라고 믿었던 것 같다. 3대세습에 따른 권력투쟁이 겹치자 박근혜 정권은 북한붕괴에 의한 흡수통일을 더욱 확신하는 듯하다. 국가해체란 그렇게 쉽지 이뤄지지 않는다. 미국이 라틴 아메리카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카스트로의 쿠바를 붕괴시키려고 부단하게 시도했다. 마이아미에 거점을 둔 쿠바출신 반카스트로 세력이 가담했지만 허사였다. 1980년 미국을 향한 12만5,000명의 인간의 물결이 바다를 덮었을 때도, 1994년 또 다시 뗏목에 목숨을 건 죽음의 항해가 일어났을 때도 쿠바가 곧 무너질 듯했다. 그 쿠바는 여전히 건재하다.

박근혜 대통령 임기 중에 통일이란 대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다. 발전동력이 결여된 북한경제, 3대세습 체제에 따른 정치불안, 개방시대의 국제적 고립 등의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 불가측의 문제만이 아닐 수도 있다. 지금처럼 무대비상태에서 급작스런 통일이 온다면 한반도에 대혼란이 일어나고 그것이 중국, 일본으로 파급되어 동북아가 요동칠 것이다. 따라서 국토의 통일을 민족의 통일로 승화시킬 통찰력, 결단력, 추진력과 함께 위기관리 능력이 요청되는 중대한 시기이다. 무엇보다도 혼돈(chaos)을 질서(cosmos)로 다스릴 탁월한 지혜가 절실하다.

2015년이면 분단 70년을 맞는다. 분단의 긴 세월은 언어, 행동, 사고에서만 이질성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체구까지 바뀌어 놓았다. 소년병의 모습을 한 북한 병사가 그것을 말한다. 거대한 마스게임, 열병식이 개인주의를 함몰시킨 획일주의-전체주의를 말해준다. 유형무형의 이질성이 동족을 지구의 반대편에 사는 사람들처럼 멀리 느끼게 한다. 민족의 동질성이 회복되지 못하고 북한경제가 호전되지 못한 상황에서 통일의 그 날이 오면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참화가 예견된다.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에 몰려드는 피난인파를 상정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에 따른 마찰현상은 새로운 남북의 갈등을 야기하여 극적인 통일의 감정을 상반된 감정으로 반전시키는 불행한 사태를 낳을 수도 있다. 남쪽은 지금도 복지지출 증가에 대한 저항감이 만만찮다. 소비사회의 단맛을 희생하면서까지 북한동포의 생계를 선뜻 떠맡으려 들지 의문이다. 지금도 종북타령으로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이들의 포용력도 의심스럽다. 남한사회에 동화하지 못해 차라리 돌아가고 싶다는 탈북자의 말 속에서도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독일도 통일 이후 Wessie(서쪽놈), Ossie(동쪽놈)이라고 경멸적으로 부를 만큼 감정대립이 심각하다.

남북한의 발전격차가 크다는 점에서 통일비용이 독일보다 훨씬 클 수도 있다. 남북한의 경제협력을 통해 발전격차를 좁힐수록 그 비용은 줄어든다. 이 점에서 먼저 남북한의 관계개선을 통해 북한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과제가 시급하다. 돌발적인 통일은 군사적 분계선은 철폐하지만 정치적-경제적 분계선을 가슴마다 각인시킬지도 모른다. 통일은 이제 감성의 문제가 아니라 이성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통일이란 목표보다 통일 이후를 대비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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