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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의 '옥의 티'
[정문순 칼럼] 상업영화 <변호인>의 명과 암, 야성의 도시 보수의 텃밭
 
정문순
1. <변호인>의 매력

모두들 영화 <변호인>의 감동을 말하고 있다. <변호인>은 돈벌이에 전념한 변호사에서 인권변호사로 거듭나는 한 사람의 성장기를 다루고 있다. 살벌한 군사독재 치하의 법정에서 판사에게 대한민국 헌법 조문을 읊어주고, 빨갱이로 몰린 대학생의 무죄를 외치는 인권변호사 역할은 특별하고 대단한 경지에 오른 사람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영화는 말한다. 남들이 하기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이 반드시 비범한 것은 아님을 알려준다는 점에 영화의 미덕이 있다.

체면치레를 중시하지 않고 돈 버는 데 열심이었던 변호사 송우석이 시국 사건의 피해자들을 변호하는 인권 지킴이로 탈바꿈하는 과정은 자연스럽다. 그 탈바꿈이 어떤 우연이나 깨달음의 산물이 아니라는 점에서 별로 억지스럽지 않다. 이는 지속적인 학습 능력의 결과도 물론 아니다. 따지고 보면, 송우석의 삶에서 시국 사건 변론을 맡기 이전과 이후가 매우 다른 것 같지만 그의 변모에는 우직함과 단순함이라는 일관된 성정이 작동하고 있다. 데모하는 학생에 대한 인식 빼고는 그가 세상을 보는 눈은 사실 달라진 것이 없다.

국가가 곧 국민이라는 송우석의 일갈은 민주주의의 기초 중 기초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상식과 기초를 말하는 그의 우직함은 시국 사건을 떠맡기 이전에도 드러났다. 변호사가 된 후 국밥집 주인을 찾아와 수 년 전에 치르지 않은 밥값을 갚으려는 태도와 차이가 없다. 송우석의 변모가 억지스럽지 않고 일관된 흐름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이 영화의 최대 매력이다.

2. 상업영화의 모범 답안

모두들 영화 <변호인>의 감동을 말하는 가운데 상업영화에 주목하는 글이 드물게 보인다. 과연 영화 <변호인>은 상업영화 코드와 공식에 충실한 교과서적인 영화다. 영화는, 어떻게 하면 관객의 시선을 상영 시간 내내 끌 수 있는지 가르쳐 줄 수 있는 모범 답안을 갖추고 있다. 공감, 감동, 연민, 유머, 눈물, 분노, 공포, 좌절 등이 모두 다 들어있다. 영화는 관객들이 이 모든 감정을 최소한 한 번 씩은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영화는 관객이 지루하지 않도록 적당히 죄었다가 풀어주고, 이완과 긴장을 반복한다. 여느 영화처럼 원래 촬영한 것은 훨씬 더 많았겠지만 편집 과정에서 자르기 아깝다고 생각하면서도 독자의 반응을 생각하여 눈물을 머금고 쳐낸 대목이 많을 것이다. 이건 좀 지루해, 이건 느슨해. 관객의 감동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송우석과 국밥집 여주인과의 재회 장면을 길게 잡았고, 관객의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해 고문 장면에 많은 시간을 분배했다. 

특히 물고문 당하는 피해자의 고통을 강조하는 장면은, 영화가 관객들에게 자신이 고문 피해자가 되었다고 상상해 보라고 유도하기 위해 설정한 것이다. 감동 씬을 길게 끌고 고문 씬을 많이 잡은 것은 관객 동원 면에서는 성공한 것 같다. 그것이 한국영화의 기록을 갈아치우는 데까지 기여한지는 모르지만.

막판에, 영화는 관객들을 감동과 통쾌함에서 낙담과 분노로 급전직하하는 감정의 롤러코스터에 태우기 위해 송우석이 고문 사실을 입증하는 증인을 법정에 기습적으로 내세우는 반전을 시도하다 어이없이 또다시 반전하는 대목을 넣는다. 송우석이 현역 군의관을 증인으로 내세우는 회심의 카드를 내밀었지만 곧바로 증인의 탈영 사실이 드러나 재판 도중에 헌병들에게 잡혀가는 대목은 관객의 감정에 영합하기 위해 법리적 상식에 눈 감은 설정이다. 아무리 군사정권 치하의 사법부가 사법부 같지 않았다 하더라도 헌병대가 재판을 침탈하고 판사가 수용할 수 있다는 상상력은 만화적이지 않은가.

그것도 모자라, 영화는 송우석을 제외한 변호인단이 검사와 피고인의 형량을 논의하여 형이 깎였다는 재판 결과를 설정한다. 영화의 모델이 된 사건의 실제 재판 결과대로 유죄가 나오도록 설정한다면 터질 듯이 팽팽해진 관객의 흥분을 이완시킬 길이 없다. 그렇다고 무죄로 만들어 송우석을 영웅으로 만드는 것도 너무 나갔다. 영화는, 증인이 재판 도중 헌병대에 끌려가는 대목에서 머리끝까지 흥분한 관객들을 달래기에는 형량 깎기만으로도 충분한 묘안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시국 사건 재판에서 무죄를 주장하던 변호인단이 피고인의 유죄를 전제로 형량에 합의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고문에 굴복하여 없는 죄를 인정하는 경우는 많아도, 처벌을 적게 받기 위해 없는 죄를 인정하는 시국 사범이 있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그러나 영화는 상식에 부합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관심이 없다. 몰상식이라도 관객의 흥분을 달래주는 긴장 이완제 역할을 해내는 설정이면 그뿐이다.

3. 부산 지역말의 중요성을 잊다

<변호인>을 흔히 배우 송강호의 영화라고 한다. 송강호는 송우석의 모델인 노무현을 연기한 것이 아니라 그냥 송우석을 연기했다고 한다. 영화가 뜬 것은 노무현 못지않게 송강호 덕이라고 한다. 배우가 배역의 모델에 빚지지 않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가. 송강호의 연기 역량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화 <밀양>에서도 칸 영화제 수상이 주어진 여자 연기자보다 그의 연기가 오히려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변호인>에서 송강호의 연기를 보석으로 만드는 데는 교정이 전혀 필요 없는 그의 능숙한 부산말도 기여했다.

이 영화에서 지역말은 중요하다. 부산말의 우직함과 송우석의 성격은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 거친 파도와도 같은 부산 사내의 투박함과 우직함을 부산말은 담아내고 있으며 송우석이 왜 그렇게 직선적이고 과감한지도 설명해 낸다. 그러나 송우석을 연기한 송강호 혼자 부산말 억양에 능숙한 것으로는 부족하다. 높낮이가 가파르고 억양이 억센 부산말이 넘치는 환경이야말로 송우석의 부산 사나이 기질을 낳았다. 영화가 실수한 것은, 송우석의 환경이 된 주변 인물들을 연기한 배우들의 부산말 억양이 어색한 것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정 지역말의 역할이 지대한 영화에서 감독은 수도권 태생 배우들의 발성을 제대로 교정하지 않고 대본을 서울말 억양으로 읽게 놔두는 게으름을 부렸다.

3. 해피엔딩을 믿는 영화

송우석은 약자의 변호인이었다가 수많은 이들로부터 변호를 받는다. 그것도 전문 지식으로 무장한 변호사들로부터 변호를 받는 변호사가 된다. 인과응보, 사필귀정의 전형적인 구성이다. 송우석과 함께 분노했고, 흥분했고, 의분에 떨었던 관객들은 비로소 활짝 긴장이 풀린 웃음을 짓고 영화관을 나선다. 그러나 그 이후 송우석이 모델로 삼았던 그이의 삶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그는 고생을 좀 더 하다가 비교적 이른 나이에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올랐다. 거기서 끝났으면 그것도 인과응보일 수도 있지만 끝내 와석종신하지 않은 그의 마지막도 우리는 알고 있다. 그의 삶 전체를 들여다보면 인과응보는 들어맞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영화가 감당해 낼 수 없는 삶의 묵직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역설적으로, <변호인>은 사람 사는 세상이 영화가 그려내는 것처럼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는 상업영화들이 벗어날 수 없는 규칙이기도 하다. 영화의 모델이 된 실제 사건에서 고문 경찰들이 나중에 처벌 받았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다. 그들은 빨갱이 세력을 일망타진했다고 승진했을 것이고 민주화가 된 이후에도 전혀 다치지 않고 잘 살았을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검사, 판사도 비슷하게 잘 먹고 잘 살았을 것이다. 실제로 검사의 모델이 된 이는 검찰 요직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당시 수사를 지휘한 검사 최병국은 새누리당 국회의원을 지냈다. 영화는 악당이 벌을 받지 않는 현실을 설명해내지 못한다. <변호인>은 너무 착하고 모범생 같은 영화다. 

4. <변호인>이 일깨운 30년 전 부산의 야성

인권변호사 시절 노무현의 존재를 알린 것 못지않게 영화 때문에 조명된 것은 1981년의 부림사건이다. 그러나 이 둘 못지않게 30여 년 전 부산의 존재도 기억해야 한다. 

같은 해 서울에서 일어난 학림 사건에 견주어 공안 당국이 부산 학림으로 이름을 붙인 것에서 유래한 부림 사건은, 신군부 집권기 최대의 용공조작 사건 중 하나였다. 신군부가 하필이면 부산에서 사건을 일으킨 것은 박정희 정권을 끝장 낸 부마항쟁의 도시였고, 난데없이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 정권 반대 열기가 팽배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부림 사건은 부산미문화원 방화 사건과 더불어 1980년대 부산 운동권의 지형을 만들어준 사건이었다. 정권은 부산 지역 운동권 세력을 일망타진하려고 없는 사건을 만들어냈지만, 이 사건은 오히려 부산의 재야 운동 판을 키워준 셈이 되었다. 사건의 피해자들은 석방된 이후 부산의 재야를 이끌었다. 박종철이 부산 출신인 이유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1987년 6월 항쟁이 가장 활발했던 곳도 부산이었다.

이처럼 3당 합당 이전 부산은 야성의 도시였다. 1990년 이후 부산과 경남이 경북에 버금가는 보수의 텃밭으로 변모하는 데 기여한 것은 정치적으로는 보수대연합 구도와 경제적으로는 수도권 집중의 심화다. 그러나 한 세대 이전의 부산은 야성이 충만했던 도시임을 영화는 일깨워준다. <변호인>은 전두환 정권에 저항한 도시의 과거 위상을 조명해 내는 데 기여한 것이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로 [한국문학의 거짓말-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에 대한 집중 조명](작가와 비평, 2011)의 저자입니다.
 
기사입력: 2014/01/08 [15:30]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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