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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4년이 더 걱정이다
[김영호 칼럼] 헌법 위에 군림하면서 나를 따르라고 한다면 걱정이 크다
 
김영호   기사입력  2014/01/04 [23:17]

박근혜 정부의 집권 1년을 돌아보면 미래는 보이지 않고 과거만 보인다. 유신의 부활이라더니 데자뷰(deja vu-旣視感)랄까 강압통치와 관권경제가 되살아난 듯한 느낌이다. 무자격자-무능력자들을 가리지 않고 중용해 국민에게 절망을 안겨주고 있다. 반대자-비판자라면 종복으로 몰아 공안정국을 조성하더니 냉전시대의 대북관계를 연출하고 있다. 시대적 과제인 경제민주화는 실종하고 그 자리를 관권경제가 차지해 재벌중심의 성장주의를 이끄는 형국이다. 세계는 인터넷-SNS를 통해 소통하지만 청와대는 귀를 막고 불통시대를 열고 있다.

국회가 1년 넘게 국정원의 대선개입에 파묻혀 존재감마저 잃어버렸다. 초기단계에 책임자를 과단성 있게 처벌했더라면 사건이 종료되었을지도 모른다. 상황판단 능력이 부족한 탓인지 덮으려고만 하다가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꼴을 만들었다. 댓글공장이란 말이 나올 정도인데 시간만 끌면 흐지부지 되리라고 믿는 모양이다. 국가정보원과 군사이버사령부가 인터넷과 트위터를 통해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한 윤곽이 대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개인적 일탈이라는 말로 덮을 단계를 넘어섰다. 특별검사 도입을 결단하지 않으면 관권선거의 망령이 임기 내내 그림자처럼 쫓아다닐 형국이다.

정치적 위기마다 공안정국이란 낡은 수법이 등장한다. 진보=종북이란 등식화가 온 나라를 벌집 쑤시듯이 소란하게 만들곤 한다. 국정원이 북한의 3대세습에 따른 권력투쟁과 김정은의 동정을 국회 정보위원회를 통해 틈틈이 흘림으로써 존재이유를 부각시킨다. NLL(북방한계선)이 엄존한데 고인인 노무현을 끌어내서 연일 그의 발언을 놓고 진실공방을 벌였다. NLL 포기발언은 노무현이 아닌 김정일이라는 검찰발표를 여전히 못 믿겠다는 모습이다. 이석기를 내란음모혐의로 구속한 데 이어 서둘러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을 청구했다. 재판결과를 못 기다리겠다는 투이다.

전교조의 법외노조를 추진하고 공무원노조의 설립신고서를 반려하는 따위의 노조탄압으로 불필요한 마찰을 빚는다. 철도노조 지도부를 검거한다고 도심에서 경찰병력을 5,500명이나 동원해 테러진압을 방불케 하는 대규모 작전을 폈지만 허탕이었다. 하지만 공권력의 야만성-폭력성이 공안정국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공안정국이 맹위를 떨치더니 지난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사람이 118명으로 2003년 이후 가장 많았다. 역사도 바꾸려는지 일본의 식민지배와 독재자를 미화하는 교과서를 밀어붙여 많은 논란을 일으켰지만 채택한 학교는 9곳뿐이다.

정치적-사회적 현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갈등과 대립을 증폭시킨다. 정책결정 과정에서 공론화를 생략함으로써 반대의견을 예사로 묵살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수서발 KTX 자회자 설립이다. 이명박 정권이 철도민영화를 추진하다 반대에 부닥치자 꼼수로 자회사 들고 나왔다가 결국 포기했다. 그것을 다시 밀어붙이는데 누가 민영화가 아니라고 믿겠는가? 아니라면 막대한 중복비용이 발생하는데 흑자부문만 떼내 별도법인을 만들 이유가 없다. 밀양 송전탑 건설도 현지주민의 피해를 무시하고 강행해 갈등구조를 심화시킨다.

경제민주화는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이뤄진 국민적 합의이다. 경제민주화를 경제활성화의 걸림돌로 인식하는지 경제민주화 공약을 거의 다 파기해 버렸다. 이것은 경제민주화의 개념조차 모른다는 뜻이다. 1970년대 재벌중심의 수출주도형 성장전략은 한계에 달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내수기반을 확충하지 않으면 잠재성장력을 키울 수 없다. 내수시장을 진작하려면 경제민주화를 통해 대기업의 중소기업-자영업자 침탈을 막고 계층간의 소득격차를 줄여야 한다. 부자는 골프도 관광도 해외에서 즐긴다. 자동차, 옷도 외국유명상표를 사기 때문에 내수기반 확충에 도움이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철의 여인’이라는 영국의 전임 총리 마가렛 대처를 존경하는 모양이다. 그 까닭인지 그의 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강경대응을 대처의 탄광노조 파업에 대한 강경대응과 단순하게 비교하는 소리가 많은데 그것은 잘못이다. 영국의 탄광노조가 1984년 3월부터 1년 넘게 파업을 감행했으나 끝내 패배했다. 당시 세계적으로 주력연료가 석탄에서 석유로 대체되어 석탄산업은 사양산업이었다. 채산성 악화에 따라 과잉시설과 유휴인력에 대한 대대적인 감축이 시급했다. 노조의 파업이 국민적 지지를 얻을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또 조합원의 총의를 묻지 않고 지도부가 독단적으로 파업을 주도했고, 조합원의 투표에 의해 파업이 종료되었다.

남은 4년도 헌법 위에 군림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나를 따르라고 한다면 걱정이 크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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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1/04 [23:1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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