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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 국기문란 범죄, 민주당호 침몰된 사연
[인물과사상의 눈] 안보에 무능했던 보수정권, 안보실패 야당에 전가한 것
 
김종대   기사입력  2013/08/23 [12:35]
 
12월 14일

겨울의 칼바람이 유난히 매섭던 2012년 12월 14일. 대통령선거가 불과 닷새 앞둔 이 날은 한국 정치와 안보에 있어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중요한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이날 언론은 제18대 대선 여론조사를 마지막으로 공표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여론조사는 국내 유력언론과 여론조사 기관 총 11군데서 시행하였는데, 이 중 한국일보ㆍ한국리서치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우세하게(문재인:박근혜=45.3:44.9) 나왔다. 대선 여론조사에서 최초로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보다 높게 나온 조사였다. 여타 여론조사 역시 두 후보가 우열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박빙의 접전을 벌이는 결과를 발표했다. 무난하게 이길 것 같았던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으로서는 비상사태였다.

14일 오전 9시, 비장한 결기가 서린 박근혜 후보는 새누리당 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으로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분노와 격정을 다 쏟아내는 회견이었다. 박 후보는 먼저 “도대체 선거가 무엇이고 권력이 무엇이길래, 터무니없는 허위 사실로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급기야는 한 여성을 집에 가둬놓고 부모님도 못 만나게 하고, 심지어 물도 밥도 끊어버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말 참담하기만 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11일에 벌어진 국정원 여직원 사건에 대한 언급이었다. 대선 이후 검찰 수사에서 밝혀진 바로는 국정원 심리정보단 소속인 이 요원은 국내 유명 인터넷 사이트에서 민주당과 노무현, 문재인 후보를 비방하는 상당수의 댓글을 달거나 글을 퍼 나르고, 찬성을 표시하는 방법으로 선거에 개입했다. 이 요원을 비롯해 4개 과에 70여 명이 소속된 심리정보단은 전라도 비하, 노무현 죽음 조롱, 문재인 비방 등 차마 그 내용이 치졸하기 이를 데 없는 댓글의 생산 공장이자 운반체였다. 그러나 이날 박 후보가 이 사건에서 민주당의 국정원 요원 숙소 급습과 의혹 제기에 대해 언급한 단어는 “집단테러”, “심각한 범죄행위”, “정치공작”, “성폭행범들이나 사용할 수법”, “폭력정치, 공포정치를 할 세력”, “흑색선전과의 전면전” 등이다. 

이어 대선의 최대 격전지인 부산으로 내려간 오후 3시경. 새누리당 부산 유세 현장에서 박 후보에 앞서 단상에 선 김무성 선대위 총괄본부장은 “대한민국의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일에게 ‘북핵 얘기가 나왔을 때 나는 북측의 대변인 변호인 노릇을 했다. 남측에서도 군부가 뭘 자꾸 안하려고 해서 이번에 군부가 개편돼 평화 협력에 대한 전향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NLL( 북방한계선) 문제는 국제법적인 증거도 없고, 논리적 근거도 분명치 않다. …… 헌법 문제가 절대로 아니다. 얼마든지 내가 맞서 나갈 수 있다. 제일 큰 문제는 미국이다. 나도 (미국이) 오늘날 패권적 야망을 드러내고 있다는 인식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며 이 같은 발언이 2007년 10월 3일에 평양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난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라고 주장했다.

궂은 날씨에 김 본부장은 거의 울부짖다시피 했다. “제가 말한 기가 막힌 내용을 대한민국의 대통령 노무현이가 북한의 김정일이한테 가서 한 말이다. 기가 막히지 않나. 너무나 북받쳐서 제대로 못 읽었다. 대한민국이 이래서 되겠나”라며 “이때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이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다. 문재인이가 노무현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서 되겠느냐”고 절규했다. 훗날 밝혀진 바와 같이 이날 김 본부장의 발언은 2007년 남북정상 간의 대화록 전문에서 나오는 표현과 토씨 하나까지 일치한다. 김 본부장은 이후로도 대화록 원문을 입수했다는 사실은 부인했지만 언론에 알려진 2013년 6월 26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의 발언 내용은 실제로 그가 대선 때 대화록을 입수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날 회의에서 그는 “지난 대선 때 이미 내가 그 대화록을 다 입수해서 읽어봤다”며 “그걸 몇 페이지 읽다가 손이 떨려서 다 못 읽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 원문을 보고 우리 내부에서도 회의를 해봤지만 우리가 먼저 까면 모양새도 안 좋고 해서 원세훈(전 국가정보원장)에게 대화록을 공개하라고 했는데 원세훈이 협조를 안 해줘가지고 결국 공개를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누리당에 국정원 출신 200여 명
 
분명 14일 이전까지, 특히 11일 국정원 댓글녀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까지 새누리당은 대화록 논란을 확산시킨다거나 NLL에 모든 승부를 건다는 인식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근거는 12월 10일 녹취된 것으로 알려진 권영세 당시 새누리당 선대위 종합상황실장의 발언이다. 당시 권 실장은 “(NLL 대화록 공개는) 역풍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말 그대로 그거는 컨틴전시 플랜(비상 계획)이고. ‘도 아니면 모’ 할 때 아니면 못 까지…… 그래서 이거는 우리가 집권하게 되면 까고”라고 말했다. 대선 승리를 낙관하던 이 태도는 다음 날부터 다시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이 터진 것이다. 이 사건으로 대선 마지막 레이스는 안갯속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새누리당의 대화록 열람 및 공개 요구에도 응하지 않아 직권 남용 혐의로 서상기 의원으로부터 고소당한 원세훈 국정원장에게 새누리당 실세로부터 대화록을 제공하라는 갖은 압력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 국정원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인사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명 완수에 최선을 다”한다는 인사말처럼 국정원 여직원은 보이지 않는 호텔방 안에서 임무를 완수했다.     © 국가정보원 누리집
 
한편 대선 당시 새누리당에는 약 200여 명의 국정원 출신 인사들이 활동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중 한기범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NSC 정보관리실에서 근무하다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에는 국정원 8국장으로 대북 정보를 총괄하면서 김만복 원장과 함께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데 기여했고, 이후 이명박 정부 초기에 국정원 3차장을 마치고 퇴임한 상태였다. 국정원 근무 당시에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직접 관리한 곳이 바로 3차장실 산하에 특수정보실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한기범은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으로 대화록을 관리하고 있던 박원동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한기범은 정상회담 대화록에 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새누리당 대선 캠프의 유일한 인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여정부에서 정상회담 당시에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을 역임한 박선원은 필자에게 “한기범-박원동 라인이 새누리당 권력 실세에게 대화록을 제공한 핵심 라인”이라고 단언한다. 그에 따르면 국정원에서 특수기록물인 정상회담 대화록 관리는 이명박 정부 시절에 한기범이 맡고 있던 3차장실 소관이었는데, 한기범이 퇴임하면서 1차장실로 국익정보실로 그 소관이 바뀌었다. 한편 새누리당 대선 캠프로 진출한 한기범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자 남재준 원장과 함께 국정원 1차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예전의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바로 그가 2013년 6월에 정상회담 발췌록과 전문을 국회 정보위원장인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을 비롯한 여당 정보위원들에게 열람토록 한 장본인이다.

컨틴전시 플랜이 작동하였음에도 정작 대화록 전문은 실정법의 벽을 넘지 못하고 단지 야당을 압박하는 카드로만 활용되던 14일경에 대선 판도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웠다. 16일에는 대선후보 마지막 TV 토론이 열렸다. 이날 토론에서 박근혜 후보는 연실 말실수로 궁지에 몰리기 시작했다. 바로 이 무렵이었다. 훗날 민주당의 박범계 의원은 “지난해 12월 16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중심으로 권영세 당시 새누리당 선대위 종합상황실장과 박원동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이 여러 차례 통화한 제보가 들어왔다”고 밝혔다. 훗날 국정원 대선 개입 수사 축소․은폐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전 청장 역시 “16일 오후에 (전화가) 왔는데. 결과를 내놓고도 정치권 눈치 보느라고 발표를 안 하는 것이냐. 나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인 이런 얘기가 있다고 하더라”며 전화를 받은 사실을 시인했다.

박범계 의원은 “김용판 전 청장은 TK 출신이고 행시를 거쳐 요상하게 국정원에 들어가 근무하다 경찰에 투신했다”며 “권영세 전 의원도 검사 시절 국정원에 파견 나가 3년간 근무하고 국회 정보위원장을 지냈다”고 덧붙였다. 전현직 국정원 인맥으로 얽혀진 새누리당-국정원-서울경찰청의 이너서클은 16일 밤에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으로 하여금 “민주당의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제기는 사실무근”이라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게 한다. 대선의 마지막 3차 후보토론을 막 끝마친 시점에 수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거꾸로 의혹을 제기한 민주당이 궁지에 몰아넣는 궁여지책이었다. 

바이러스와 숙주의 공생관계

그리고 사흘 후에 치러진 제18대 대통령선거는 박근혜 후보의 신승으로 끝났다.

그러나 정보기관의 정치 개입은 결국 그 실체를 드러냈다. 국정원 심리정보단에 의한 인터넷과 SNS를 활용한 선거 개입, 불법적으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과 그 발췌본을 여당에 제공한 기밀누설 행위는 대통령선거 이후에도 여야 간에 공방으로 이어지다가 급기야 2013년 6월에 그 전모를 거의 드러냈다. 국정원 정치 개입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주요 책임자에 대한 기소가 이루어지고 공소장이 공개됨으로써 국정원 선거 개입은 상당 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이에 야당이 주도하여 국정원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 요구가 제기될 무렵인 6월 24일에 남재준 국정원장은 전격적으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전문을 공개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NLL 양보 발언”에 대한 세간의 논란도 덩달아 증폭되었다. 대화록이 공개되자 이제껏 새누리당이 제기한 “NLL 양보” 의혹에 대한 국민적 논란이 폭발되어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 논란으로 비화되기에 이르렀다.

이 논란을 통해 중요한 의문이 제기된다.

첫째, 인터넷과 SNS에 저질스러운 댓글을 다는 행위가 지난 대선에서 왜 그처럼 중요한 문제였을까? 과반수가 넘는 51%로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을 겨우 댓글로 지원한다는 국정원의 행태는 일류 정보기관답지 않은 치졸한 행태이고 그 효과도 의문시된다. 그렇다면 70명이 넘는 정예요원을 동원하면서까지 왜 이런 방식의 수준 낮은 정치공작을 한 것인가?

둘째, 굳이 7년 전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과 그 발췌본을 만들면서까지 NLL 문제를 공론화 한 한국 정치의 행태를 보면 NLL의 본질이 무엇인지 혼란스럽다. 박범계 의원에 의하면 대선 기간 중 NLL에 관한 언론 기사가 9500건에 달한다. 그렇다면 과연 NLL이 남북 간에 양보할 수 없는 국가이익이 충돌하는 현실적 안보 문제인지, 아니면 단지 선거 기간에만 국면 전환용으로 활용되는 국내정치용 관념, 즉 학계에서 말하는 ‘구성된 산물’에 불과한 것인지, 명확한 구분이 어렵다는 점이다.

도대체 NLL이 우리에겐 어떤 의미인가?

앞의 두 가지 의문을 서로 연결시켜보자. 이번 국정원 댓글 정치 개입이 주는 충격은 단순히 선거에서 야당의 후보를 비판하고 여당의 후보를 옹호하는 논리적 접근과는 거리가 멀다는 데 있다. 문제는 그 표현이다. 차마 입에 담기조차 힘든 표현이나 비하를 온라인에 올리고, 이를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널리 확산시키는 데 심리전 활동이 집중되어 있었다. 이건 뭘 의미하나? 우리 사회에서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는 가장 편리한 방법으로 집단적 광기를 불러일으키는데 국정원의 활동 목적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이다.

“그까짓 댓글이 선거에 무슨 영향이 있었겠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2009년 5월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부터 지난 대선까지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유포된 국정원의 저질 댓글은 다름 아닌 특정 집단을 표적으로 한 증오를 네트워크상에서 확산시키는 기제로 작동했다. 바로 히틀러 치하에서 괴벨스가 유대인과 공산주의자들을 악마화하는 데 활용한 심리전 기법을 현대적으로 구사하는 매우 체계적이고 치밀한 수법이다. 적어도 이 점에서 ‘종북세력 척결’을 명분과 목적으로 한 국정원의 심리전 활동은 결코 아마추어가 아니었다. 이들은 1단계로 사람들이 몰리는 어떤 네트워크의 지점에서 전염성이 강한 기발한 용어를 발견하면 2단계로 이를 네트워크상의 허브로 전염시켜 더 신속하게 확산시키는 운반체 역할을 수행했다. 이 점에서 국정원의 심리전은 북한의 사이버부대의 공격 위협보다 더 하면 더했지 결코 그보다 못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네트워크상에서 북한 사이버부대와 국정원은 한국 사회를 분열시키는 동업자였다.
 
▲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노무현이 ‘NLL 포기’ 발언을 했다는, 국정원이 흘린 왜곡된 정보를 접하고 노무현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적어도 네트워크상에서 북한 사이버부대와 국정원은 한국 사회를 분열시키는 동업자였다.     © 민중의소리 제공
 
뜻밖의 결과, “사건 없는 북풍”

특히 선거 기간 중에는 야당을 악마화하면서 증오심을 일정 정도로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보수 세력을 일거에 동원할 수 있는 휘발성 높은 의제가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NLL이다. 대선 초기부터 NLL 대화록 논란이 점화됨으로써 이미 동원된 증오심들이 지속적으로 확장될 수 있는 여건이 성공적으로 조성되었다. 이 점에서 NLL은 동원된 증오심들이 서식할 수 있는 토양이자 숙주였다.

이 점을 과거 선거와 비교하여 보면 우리 사회가 새로운 의제 형성의 네트워크 작동 방식에 이미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은 과거 선거와 달리 아무런 “사건 없이” 북한이 선거 변수로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과거 선거에서 북풍은 항상 사건을 수반했다. 1987년 KAL기 폭파, 1992년 이선실 간첩 사건, 1996년 판문점 북한군 난입 사건, 1997년 황장엽 망명과 오익제 편지 조작 사건 등 국민에게 충격과 공포를 주는 대형 사건들을 통해 비로소 그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반면 2010년 3월의 천안함 사건은 대형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의제를 전혀 주도하지 못한 채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의 의혹 제기에 밀려 그해 6월의 지방선거에서 효과를 보지 못한 특이한 경우다. 이 점에서 보면 사건 없이 2012년 대선에서 50대가 82%, 60대가 80.9%로 박근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 NLL 논란은 그 효과 면에서 새누리당조차 놀란 결과였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는가 하는 질문과 관련하여, 앞서 말한 충격적 방식의 NLL 대화록 논란 제기와 이를 확대시키는 국정원의 여론 조작은 ‘의제 등록하기’에 인터넷과 SNS라는 새로운 사회 자원이 동원되는 현상으로 이해될 만하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연구가 있다. 연세대학교 허재영, 김용호 두 연구자가 「행위자-네트워크 이론 적용: 주요 선거에서 북한 변수」(『한국과 국제정치』 2012년 겨울호)라는 논문에서 제기한 바에 의하면 북풍은 크게 4단계로 전개된다. 이 연구를 필자가 이번 선거에 적용해보면, 1단계는 문제제기(problematization)로 문재인 후보의 “김장수 경직성” 발언(10월 4일)과 정문헌 의원의 “정상회담 비밀대화록” 발언(10월 9일)이 이에 해당된다.
 
2단계는 관심 끌기(interessement)로 2007년 8월 청와대 정상회담 대책회의 문건, 노무현 재임 시 발언(민주평통에서 ‘땅따먹기 발언’) 등 NLL을 헌납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새로운 소재의 등장이다. 3단계는 등록하기(enrollment)로 “대화록 존재 시인”으로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의 여당 지원이 이루어지고, 정부 기관에 의한 고의적인 문건의 언론 누출과 쟁점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4단계는 동원하기(mobilization)로 보수-진보 논객 인터넷 논쟁, 대선후보 토론, SNS 확산으로 장노년층에게 “이래도 야당을 찍을 거냐”는 협박과 투표 촉구라는 현상이 전 사회적 차원에 이루어지는 단계를 말한다. 이처럼 4단계가 순차적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네트워크 이론에서는 ‘번역(translation)’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번역 과정이 성공하도록 보수 세력은 2010년 지방선거 참패 직후부터 범진영 차원에서 준비해왔다. 지방선거 직후 정부 차원의 SNS 교육 및 열풍이 불어 고위공직자에 대한 SNS 활용도 평가하여 인사점수에 반영한다든지, 국가정보원에 의한 사이버 심리전 활성화 조치(국정원 심리정보단 창설), 정부․여당에 의한 민간 NGO 지원(알바 댓글부대), 언론환경 악화(종편 출범)가 복합된 결과 의제가 등록되는 방식이 다변화, 신속화된 새로운 사회적 동원, 즉 네트워크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정작 안보에 무능했던 보수정권이 안보 실패의 책임을 야당에게 전가하는 데 거의 완벽에 가까운 효과가 나타났다. 새누리당 조차 놀란 결과였다. 여기에는 충분히 차단이 가능했던 색깔공세를 적시에 차단하지 못한 민주당의 안보 문제에 대한 오래 된 취약성도 한몫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민주당의 대처 양상을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나타난다. 우선 2007년 남북정상회담과 그다음에 열린 남북국방장관회담에 대한 정확한 사실 확인과 체계적 정보 관리가 대선 기간 중에도 거의 실종되어 있었다. 정상회담 당시에 배석했던 이재정 전 통일부장관이나 대화록을 정리한 김만복 전 국정원장, 정상회담 준비 실무를 총괄했던 위치에 있었던 백종천 당시 안보실장 3명의 정상회담 당시에 대한 부정확한 기억력과 북한 정권에 대한 ‘희망적 사고’는 문재인 후보의 말실수를 조장하거나 방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우선 대화록과 녹취 파일이 존재하는지 여부에 대한 사실 혼란(‘있다 없다’를 수시로 번복), 북한이 우리의 공동어로구역 설정 제안을 수용했으리라는 잘못된 기대(우리 측 NLL 등면적 공동어로구역을 북한이 수용하려 했으나 김장수 전 장관의 경직성 때문에 합의 결렬되었다는 주장), 심지어 정상회담 당시에 NLL은 의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언급조차 없다는 잘못된 부인 등등, 막상 6월 24일 공개된 대화록을 확인해보면 민주당의 주장도 대부분 부실했음이 드러난다. 결국 지난 대통령선거가 정상회담에 대한 최고급 기밀에 접근할 수 있었던 극소수 인사의 잘못된 기억력과 세심하게 관리되지 않은 말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민주당의 위기관리가 진행되면서 세간의 의혹이 더욱 증폭된 측면이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새누리당 일부에서 관리하던 ‘컨틴전시 플랜’이 실제로 실행되도록 촉구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민주당이 무엇이 문제인지 아직도 모른 채 국가기록원의 방대한 기록물을 전부 열람 및 공개하자고 말하는 데 있다.

민주당이 자초한 측면

외교안보문제에 대한 민주당의 취약성은 이뿐만이 아니다. 2002년 6월에 발생한 제2연평해전(서해교전)에 대한 잘못된 사실에 기초한 정치 공세가 지난 10년 동안 지속되는 동안 김대중 정부의 청와대에서 이 문제를 관리했던 당시 비서실장(박지원 민주당 전 원내대표)과 국정상황실장(전병헌 현 민주당 원내대표)이 한 번도 잘못된 공세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았다는 점이 드러난다. 당시 교전이 발생하자 청와대 국정상황실은 합참과 한미연합사, 해군 전대의 모든 진술을 청취하고 “전투대형을 유지하지 않은 해군 함정의 잘못된 기동”이 있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보고서로 작성한 바 있다. 따라서 지금껏 제2연평해전 참여자들을 실제보다 과장되게 영웅시하면서 김대중 정부 말기의 햇볕정책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군사지도자들의 기회주의적 행태를 얼마든지 질타할 수 있었다.
 
당시 문제의 보고서는 박지원 비서실장에게도 제출된 바 있다. 설령 보고서에 대한 존재가 기억에 사라졌다고 할지라도 옛 부하들에게 알아보면 얼마든지 알 수 있는 일이다. 반면 당시 “해군이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청와대 조사에서 진술한 남재준 당시 한미연합사부사령관은 지금 국정원장으로, 이상희 당시 합참 작전본부장은 이명박 정부 초대 국방장관으로 부임하여 햇볕정책을 공격하는 인물들로 돌변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민주당은 제2연평해전에 대한 잘못된 정치공세에 단 한 번도 제대로 대응한 적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대선에서 안보 공세는 그 아마추어적인 부실함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취약성에 편승하여 사회적 의제로 확산되는 결과를 빚었다. 그리고 2013년에 그 구조가 또 다시 강화되는 중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남북관계만 개선되면 안보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민주당이 외교 안보에서 얼마나 준비가 부족하고, 위기관리능력이 취약한지 다시 한 번 입증되었다. 이러한 무능은 정보기관과 권력 국기문란 범죄의 심각성보다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지 않는다.

*글쓴이는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입니다.
* 본문은 본지와 기사제휴협약을 맺은 월간 <인물과 사상> 2013년 8월 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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