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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을 해외로 도피시키는 수법
[김영호 칼럼] 불법 음성세원 포착 차원에서도 해외 재산도피 차단해야
 
김영호   기사입력  2013/06/14 [18:57]

해외거래를 하다보면 드문 경우지만 거액의 구매문의를 받을 수 있다. 평소 거래가 없는 생소한 업체이지만 실무자들이 흥분할 정도로 거래단위가 크다. 거래조건은 판매가격에 구전(sales commission) 10%를 더 계상해서 F.O.B(본선인도) 가격으로 견적을 달라는 식이다. 경험이 풍부한 무역전문가라면 행선지(destination)가 없고 판매구전이 통상적인 수준에 비해 몇 배나 많다는 점에서 그 숨은 뜻을 읽을 수 있다.

이 경우 품목이 철강, 시멘트, 비료 따위라면 개발도상국의 정부구매일 가능성이 높다. 행선지가 드러나면 구매국이 밝혀지니 대체로 거래성사까지는 행선지를 감춘다. 수출업자의 입장에서 판매구전이 어디로 가든지 상관할 바 아니다. 신용장(L/C)을 받은 뒤 그 중 10%를 중개상이 지정하는 해외은행 계좌로 송금하면 그만이다. 그 10%는 정부의 외자구매 담당관리의 몫일 것이다.

정부관리만 이 같은 수법으로 외화를 해외로 도피시키는 것이 아니다. 민간기업의 기업주도 마찬가지다. 해외거래와 연결시키면 재산을 얼마든지 해외로 빼낼 수 있다. 공장을 신설 또는 증설한다면 기자재를 수입하면서 컨미션이라 명목으로 외화를 해외로 빼돌릴 수 있다. 중개상과 구전합의서를 작성하여 은행인증을 받으면 송금이 가능하다. 대리인을 중개상으로 내세울 수도 있고 꼭 외국인일 필요도 없다.

아예 수입가격을 몇십% 높게 과다계상(overvalue)하여 수입신용장을 개설하고 수출업자로 하여금 그 차액을 지정하는 해외은행에 입금하도록 요구하면 된다. 미국은 예금잔고가 1만달러를 넘으면 국세청에 신고하니 조세도피처에 은행계좌를 개설하거나 유령회사를 만든다. 또 수출가격을 실제거래가격 보다 낮게 과소계상(undervalue)해 구매자로 하여금 그 가격만큼만 신용장을 열도록 한다. 그 차액은 지정하는 해외은행계좌로 입금하도록 요구한다. 고가품을 저가품으로 위장하여 수출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수출규모가 크고 해외에 현지법인이 있는 업체라면 외화를 더 쉽고 더 크게 유출시킬 방법이 있다. 본지사간의 D/A 또는 D/P 방식에 의한 외상수출을 통하면 외화유출이 수월하다. 예를 들어 미국내 시장가격이 1,000달러인 상품을 수출한다고 치면 유출하고 싶은 액수만큼을 빼고 계약서를 작성하면 된다. 도착도가격(선임포함)을 750달러로 잡는다면 250달러는 유출이 가능하다. 1,000만달러 어치를 선적한다면 250만달러를 유출할 수 있는 것이다.

해운업체도 마음만 먹으면 외화유출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해운업계는 선임을 받고 그 중의 일정액을 하주(荷主)에게 환불(rebate)해 주는 관례가 있다. 외국에서 싣고 오는 화물(inbound cargo)의 경우 외국 화주에게 주는 리베이트를 높게 계상하는 방식으로 외화를 유출시킬 수 있다. 또 제3국간을 운항하면서 빈칸(dead space)을 활용하면 여기서 나오는 선임을 빼낼 수도 있다.

선박운항비는 연료비가 30% 가량 차지한다. 국내 유류값은 미국에 비해 많이 비싸다. 이를 잘 이용하면 운항비를 줄일 수 있지만 이를 악용하면 외화유출도 가능하다. 미국에서 기름을 넣고 한국에서 급유한 것처럼 꾸민다. 다시 말하면 유류대를 올려 계상하거나 급유량을 늘려서 그 차액을 빼돌리면 되는 것이다. 외국선박을 장기용선하거나 중고선박을 도입하면서도 브로커와 짜고 중개료를 올리고 그 차액을 빼돌릴 수 있다.

해외건설, 원양어선, 항공업 등 해외거래업무를 통해서도 외화를 유출시킬 수 있는 방법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실제 이뤄졌고 이뤄질 수도 있다. 해외에서 용역을 제공하거나 상품을 판매하고 생긴 수입을 해외은행에 입금하면 재산을 해외로 도피시키려는 사람에게 팔 수 있다. 미국에서 달러로 받고 서울에서 원화로 주는 이른바 ‘환치기’도 이런 수요에 따라 개발된 수법이다. 이 경우 거래환율은 공정환율보다 훨씬 높다. 재산도피의 규모가 기업화하고 있지만 고전적인 수법인 휴대반출은 여전히 애용되고 있을 것이다.

세계화 바람이 불면서 자본-용역-기술-인력의 이동이 수월해졌다. 특히 자본-금융시장의 개방에 따라 돈의 국경이 허물어져 돈세탁도 재산도피도 그만큼 용이해졌다. 20여년 전에만 해도 외화도피가 목적이었다. 이제는 재산을 조세도피처로 빼돌리면 세금 없는 증여-상속도 가능하다. 그 돈이 외국자본으로 둔갑해 다시 서울로 와서 자본시장을 넘나들면서 재산을 증식시킨다.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자사주를 사고팔며 주가조작을 통해 떼돈을 번다. 음성세원 포착 차원에서도 재산도피를 차단해야 한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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