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IT사회문화미디어국제·과학여성환경·교육
전체기사 공지사항 사회단체알림마당 기고및토론방 편집회의실
편집  2019.06.18 [04:03]
류상태의 참예수를 찾아
공지사항
사회단체알림마당
기고및토론방
편집회의실
개인정보취급방침
대자보소개
광고/제휴 안내
기사제보
HOME > 류상태의 참예수를 찾아 >
나는 예수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종교다원주의자
[류상태의 주일편지] 한국교회는 교리기독교 굴레에서 벗어나야
 
류상태
오늘은 교우님들께 저의 이력과 신앙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올해 첫 주부터 <한국 교회 교우님들께 드리는 류상태의 주일편지>를 매주 인터넷 매체에 올리고 있습니다. 그 글들을 보시면서 저의 정체에 대해 궁금하게 여기는 교우님들도 계셨고, 이단자의 글이기에 올리지 못하도록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으며, 기독교를 떠났으면서도 어떤 목적을 위해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위장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하여 지난 세월 제가 걸어온 삶과 신앙의 과정을 정직하게 밝혀 교우님들의 의문을 풀어드리고, 오해가 있으면 해소하고, 잘못이 있었다면 사과하는 것이 그동안 저의 편지를 읽으시면서 신뢰와 격려를 보내주신 교우님들 뿐 아니라 저의 정체에 대해 의심하고 계신 교우님들에게도 마땅한 도리이며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아래 내용은 지난주(3월 3일자)에 올린 저의 주일편지 <왜 하나님을 믿느냐고 물으신다면>에 대해 어느 교우님이 남기신 댓글에서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제가 과거에 쓴 글에서 인용한 것이기에 정확히 저의 글입니다.

“나는 지금, 기독교 신앙을 모두 잃었다. 그러므로 기독교를 떠난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나는 지금 분명 기독교인이 아니다. 나는 이제 비로소 기독교로부터 자유롭다. 기독교에는 아무런 미련도 애정도 희망도 남아있는 것이 없다. 하지만 기독교에 대한 절망과 분노는 남아 있다. 그리고 기독교로 인해 벌어지는 해악을 막기 위해 해야 할 일도 남아있다. 나는 그 일을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계속할 것이다.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것은 세상이 아름답게 되기를 바라는 우리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이 글은 제가 2007년 12월에 인터넷에 올린 글인데, 이 글을 인용하신 교우님은 기독교를 완전히 떠났다고 고백한 사람이 어째서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는 듯이 보이는 글을 쓰는지 의심하고 계셨습니다. 다음은 그분이 쓴 댓글의 일부입니다.

“님께서 언제 다시 기독교로 돌아오셨는지 아니면 전략적으로 바뀌셨는지 의심스럽습니다.”

1. 저는 교리기독교를 떠났고 돌아갈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한국의 주류 교회에서 이단으로 여기는 종교다원주의자입니다.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믿는 소위 보수정통 교리에 동의하지 않으며, 기독교가 다른 종교보다 객관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한국의 주류 교회들이 옳다고 가르치고 믿는 교리기독교, 소위 ‘보수정통 기독교’가 복음의 원형이라면 저는 지금도 기독교인이 아니며 앞으로도 기독교로 돌아갈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1985년에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대광중고등학교 교목실장으로 일하던 2004년에 발생한 학교 내 종교자유 사건, 이른바 ‘강의석 사건’으로 학교를 떠나면서 목사자격도 교단에 반납했습니다. 학교와 교단을 떠나면서 저는 평생에 걸쳐 기독교의식개혁운동을 하겠다고 사회와 약속했습니다. 제가 올해 주일편지를 매주 쓰는 건 그 약속에 대한 실천입니다.

교우님들은 저의 글에서 ‘교리기독교’라는 용어가 자주 사용됨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이 용어는 기독교권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는 아닙니다. 배타적인 ‘교리의 기독교’를 그냥 ‘기독교’라고 칭하면서 발생하는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 몇 년 전(2008년 이후)부터 제가 구분하여 사용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1월 27일자 주일편지 <배타 교리 넘어서야 기독교 영성 회복할 수 있다>에서, 저는 기독교의 세 줄기, 즉 ‘교리의 기독교’와 ‘영성의 기독교’ 그리고 ‘운동의 기독교’가 있다고 교우님들께 소개해 드렸습니다. 한국의 교우님들은 교리기독교를 기독교의 전부로 또는 중심으로 알고 계시는 분이 많지만, 예수께서 삶과 말씀으로 가르쳐주신 복음의 원형은 기독교가 오랫동안 갖고 있던 배타적 교리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자세히 알고 싶은 교우님들은 저의 1월 27일자 주일편지 <배타 교리 넘어서야 기독교 영성 회복할 수 있다>와 2월 3일자 주일편지 <복음의 원형은 하늘의 뜻을 땅에 이루려는 예수운동이었다>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지금 제가 부정하고 극복하려는 기독교는 교리의 기독교이며, 영성의 기독교와 운동의 기독교야말로 진정 우리가 되찾아야 할 복음의 원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독교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던 2007년 전후에는 교리의 기독교 뿐 아니라 영성의 기독교와 운동의 기독교까지도 부정했고 기독교라는 종교 자체가 세상에서 소멸되기를 원했습니다.

기독교 전체를 부정한 이유는, 영성의 기독교와 운동의 기독교가 교리기독교의 숙주 역할에 머물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이 땅에 영성과 운동성이 살아있는 아름다운 교회들이 없다면 우리 사회가 교리기독교의 폐해를 좀 더 명확히 인식하고 극복할 수도 있었을 텐데, 역설적으로 소수의 아름답고 소중한 교회들이 존재함으로 인해 극복되어야 할 교리기독교가 면죄부를 받고 더욱 발흥한다고 생각했기에, 그러한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다음은 당시 기독교 전체에 대한 저의 분노가 어떠했는지를 잘 나타내는 글이기에 부끄럽지만 교우님들께 소개하고 싶습니다. 마음 속 분노를 제어하지 못했던, 또는 풀어놓았던 시기의 글이기에 거친 표현이 많은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그만 은퇴하십시오.
(그럴 수 없다면 차라리 죽어주십시오.)

예수님,
대단히 죄송하지만
이제 그만 은퇴해 주십시오.

무슨 말이냐구요?
벌써 은퇴를 하셨다구요?

아니,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신다고 하던데요?

보세요.
독실한 기독교인들이 부르는 노래를요.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 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게다가 주님은
언젠가
모든 인류를 심판하러
다시 오신다고
약속까지 하셨잖아요.

누가
그런 해괴망측한 말을 하느냐구요?

주님께서 하신 일과 말씀은
언제나 현재적인 것이었다구요?

천국도, 구원도,
모두 현재적인 것이었다구요?
미래로 도망간 적이 없다구요?

예수 믿으면 천국 가고
예수 안믿으면 지옥에 간다는
미래적 구원론은
예수님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거라구요?

천국도 지옥도
지금 여기에서
우리 각자가
선택하는 거라구요?
 
에이~!!
아무리 주님이시라지만
2천년 동안 고백되어온
정통 교리를
무시하시기는 힘들텐데요.

사도신경에도
분명히 나오잖아요.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느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에서(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

왜 말이 없으시죠?
부정을 못하시는군요.

그 고백이 맞다구요?

정말로 주님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구요?

그럼 죽었던 시체가
다시 일어난 건가요?

아니라구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듯이
주님의 삶과 가르침이
죽음을 넘어
제자들의 가슴에 살아
펄펄 끓는 생명수가 되어
세상을 뒤집은 것이라구요?

그 생명 사건을
못된 무리들이
박제된 교리로 만들었다구요?

그러니까 예수님,
그만 은퇴해 달라는 겁니다.

2천년 동안
이용만 당해오셨으니,
제발 이제는 더 이상
사람 헷갈리게 하지 마시고
은퇴해 주십시오.

할 수만 있다면
예수님도
은퇴하고 싶으시다구요?

그런데
그럴 수가 없다구요?
그럴 힘도 없다구요?

이미 체포되어 있다구요?
 
감옥에서
나오실 수가 없다구요?

아니, 어떤 못된 놈이
우리 주님을 가두었나요?
 
요상한 교리를 만든
바로 그 놈들이라구요?

주님 팔아 장사하는
그 놈들 말이로군요.

그럼 할 수 없네요.

죄송하지만
은퇴하실 수 없다면,
교리주의자들에게 체포되어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되었다면,
죽어주시는 길 밖에 없겠네요.

지금 저들 가운데 부활한 예수는,
2천 년 전 생명의 말씀을 전해주신
또한 몸소 생명의 길을 보여주신
내 주님이 아니라,
사람 사이에 갈등을 심고
기독교 조직을 위해
사람을 가두고 죽이는
괴물로 부활한 예수이니
주님께서 죽는 길 밖에 없네요.

주님께서 죽지 않으면
교리로 부활한
허깨비 예수도 죽지 않으니
주님,
죄송하지만
죽어주십시오.

온갖 갈등의 씨앗을 뿌리는
그 무자비한 괴물과 함께
차라리 죽어주십시오.

오로지
기독교 조직을 위해서만 봉사하는 예수,
먹사들의 생계를 위해 존재하는 예수,
수많은 인생을 속이고 세뇌시켜
교회조직 안에 종속시키는 예수,
인류의 자유를 빼앗아가는 허깨비 예수,
그 괴물과 함께,
나의 주님,
애석하고 슬프지만,
당신도 죽어주십시오.

참으로 마음이 아프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는
저 허깨비가,
저 괴물이 죽지 않을 터이니
주님, 죄송하지만
죽어주십시오.

제가 이 글을 인터넷에 올린 건 2006년 12월이었습니다. 지금도 검색을 통하여 인터넷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제가 지은 책 <당신들의 예수>(2007년 7월 7일, 도서출판 삼인 출간)에도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거칠고 공격적인 글로 인해 아픔을 느끼셨을 교우님들께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교우님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거친 표현에 대해 드리는 사과이며, 내용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2. 교리기독교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한 이후, 교회에 대한 그리움이 찾아왔습니다.

위의 글을 쓸 당시, 저는 한국에서 교리적으로 가장 열려있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여전히 아름답고 모범적인 교회라고 생각하는 한 교회기관의 신학연구원 겸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몇 달 후 저는 이 교회마저 떠나고 말았습니다. 한국 교회에 대한 절망과 분노가 극에 달해 교회생활을 계속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2007년을 전후한 그 시기는, 저로서는 한국 교회와 교리기독교는 물론이고, 기독교 전체에 대한 실망감으로 견디기 어려운 마음의 병을 앓았던 시기였습니다. 당시의 저에게 기독교는 예수의 종교가 아니라 예수를 배반한 종교였으며, 인류의 행복을 위협하는 흉측한 괴물일 뿐이었습니다.

그때 그렇게 저는 교회를 떠났고, 기독교에 관한 진실을 알리는 데 매진하기로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삶과 말씀으로 전해주신 복음의 원형은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교리가 아니라 인류애에 기초한 따뜻한 포용정신이었으며, 약하고 소외된 이웃을 끌어안는 생동적인 운동이었음을 세상에 증언하고 싶었습니다.

하여 교회를 떠나 시간의 여유와 생각의 자유를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된 저는 그해 봄부터 다음 해 봄까지 약 1년 동안, 언젠가 꼭 해야 할 숙제로 여겼던 <소설 콘스탄티누스> 집필을 위해 자료 수집과 독서에 몰두했습니다. 기독교의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교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정치적 책략에 의해 선택된 것임을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2007년 12월에는 <내가 기독교 신앙을 가질 때부터 기독교를 떠나기까지>라는 칼럼을 인터넷에 발표했습니다. 바로 서두에서 문제를 제기한 교우님이 인용한 칼럼이며, 지금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전문을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그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당시 저는 교리기독교 뿐 아니라 기독교 전체와 인연을 끊었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으며, 기독교가 세상에서 소멸되기를 진정으로 바랬습니다.

▲ 1700년 기독교 역사와 정통 교리의 뿌리를 파헤친 류상태 목사의 소설 콘스탄티누스     ©인물과사상
2008년 봄과 여름, <소설 콘스탄티누스>를 집필하면서 저는 많이 울었습니다. 분노하며 울었고 그리움에 울었습니다. 기독교를 혹독하게 비판하면서도 결국은 변호하고 마는 저 자신을 고통 속에 확인해야 했습니다. 마침내 탈고를 하고 후기를 쓰면서 저는 다음과 같이 한국 교회에 화해를 요청하는 글을 썼습니다. 이 글은 <소설 콘스탄티누스>(2008년 10월 10일, 인물과 사상사 발간) 후기에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저는 이른바 ‘강의석 사건’이 발생했던 2004년까지 제가 근무했던 대광고등학교와 관련된 꿈을 자주 꾸었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과 어울리는 꿈, 선생님들과 함께 지냈던 다정다감한 추억들로 빠져드는 꿈, 그런 꿈들이 자주 제 잠자리를 방해했습니다.

잠자리에서의 꿈은 어느덧 저에게 현실의 꿈이 되었습니다. 저는 언젠가 대광고등학교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제 나이 만으로 쉰하나, 학교 교직원의 정년퇴임은 62세, 아직 11년이란 세월이 남았습니다.
 
앞으로 개신교는 급격히 허물을 벗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대광고등학교에서, 강의석 사건은 객관적 범죄가 아니라 서로 다른 견해로 인해서 발생한 것이기에 학교로 돌아와도 좋다는 편지를 저에게 보내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정년을 일 년 앞둔 시점이든, 한 달 앞둔 시점이든, 기꺼이 대광고로 돌아가 대광학원의 교목으로, 또는 종교 교사로 은퇴하고 싶습니다.

저는 또 하나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23년 전인 1985년에, 저를 목사로 안수해 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이하 예장통합) 교단에서, 종교다원주의도 하나의 사상으로 존중하며 목사자격증을 반납한 것도 객관적 범죄가 아닌 종교사상문제로 발생한 것이기에 반려하기로 했다는 편지를 저에게 보내오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정년을 일 년 앞둔 시점이든, 한 달 앞둔 시점이든, 기꺼이 교단으로 돌아가 예장통합 목사로 은퇴하고 싶습니다. 예장통합 교단에서 정한 목사의 정년은 만 70세, 19년이나 남았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제가 계속 황당한 꿈을 꾸다가 정신이 좀 이상해졌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결코 불가능한 꿈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제 꿈의 실현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이러한 노력의 첫걸음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모두 졸업했겠지만 제가 가르쳤던 대광고 학생들이 보고 싶습니다. 함께 어울려 한솥밥을 나누며 서로 격려하고 의지했던 동료 교사들이 보고 싶습니다. 젊은 시절,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겠다며 꿈과 사명을 함께 다졌던 저의 사랑스런 동기 목사들과 동료 교목들이 보고 싶습니다.

한국 교회라는, 제가 살던 고향으로, 저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아니, 제 마음은 이미 고향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제가 “돌아왔다”는 표현을 썼다고 해서, 교리기독교와 화해하거나 타협하고 싶다는 뜻을 피력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지금도 여전히 교리기독교를 극복의 대상으로 보고 있으며, 이 생각은 대광고에 재직할 때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글의 행간을 정확히 읽으신 교우님은 느끼셨겠지만,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 교회가 진정으로 주님께로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으며, 그걸 전제로 저 역시 한국 교회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밝힌 것입니다. 아, 저의 꿈이 이루어져 한국 교회와 하해하고 여생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3. 올 한 해 동안 주일편지를 쓰기로 한 이유에 대하여

 앞서 밝힌 바와 같이, 강의석 사건이 터졌을 때 저는 저의 하나님과 우리 사회에 한 가지 중요한 약속을 했습니다. 제 평생에 걸쳐 기독교의식개혁운동을 하겠다고 서약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9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 힘들 때도 많았고,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였으며, 좌절하여 주저앉을 때도 있었지만, 한 시도 그 약속을 잊은 적은 없었습니다.

하여 기독교에 관한 진실을 알리는 글을 꾸준히 썼고, 인터넷에 발표했으며, 5권의 단행본을 출간했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삶의 분량을 다 채우고 다시 하나님 품으로 돌아갈 때까지 글을 통한 기독교의식개혁운동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이 일이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마지막 사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제가 쓴 글 중에는 한국 교회와 목회자를 비판하는 거칠고 분노에 찬 글도 많았고, 교회 개혁을 위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한 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 교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하여 이제는 교회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거칠고 도전적인 글보다, 한국 교회의 교우님들과 진정 어린 마음으로 대화하고 소통하고 싶습니다. 제가 주일편지를 매주 쓰기로 한 이유입니다.
 
돌발적인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저는 적어도 올 한 해 동안은 주일편지를 계속 쓸 생각입니다. 새로 쓰는 글도 있고, 과거에 썼던 칼럼들을 다듬어 다시 나누는 경우도 있을 것이며, 제가 대광중고등학교와 기타 교회에서 했던 설교를 지금의 상황에 맞게 다듬어 교우님들과 나누는 글도 있을 것입니다.

▲ 한국교회의 문제점과 그 대안을 구준히 모색하는 류상태 목사     ©대자보
저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한국 교회의 여느 교우님들처럼 예수님을 제 인생의 구세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지금도 믿고 있으며 언제 어디서나 떳떳이 저의 신앙으로 고백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 없는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으며, 여전히 제 신앙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의 고백은 교리기독교가 말하는 십자가와 부활신앙과는 매우 다릅니다.

이 편지의 제목이 <나는 예수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종교다원주의자>인데, 제 글에 동의하는 분이건 동의하지 않는 분이건, 종교다원주의자인 제가 정직하게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 뿐 아니라 종교다원주의자들이 예수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좀 더 자세히 설명드릴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하여 다음 주일(3월 17일) 편지에서 이 주제와 관련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교우님들과 가정에, 또한 하시는 일과 삶 가운데 늘 함께 하시기를 바라오며...
 
류상태 두손 모음.


류상태 선생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이후 20여 년을 목회자, 종교교사로 사역했지만, 2004년 ‘대광고 강의석군 사건’ 이후 교단에 목사직을 반납하였고, 현재는 종교작가로 활동하면서 ‘기독교의식개혁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교양으로 읽는 세계종교] [소설 콘스탄티누스] [신의 눈물]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 [당신들의 예수] 등이 있습니다."
 
기사입력: 2013/03/09 [09:09]  최종편집: ⓒ 대자보
 
관련기사목록
[종교] 황교안은 예수의 사람이 아니다 류상태 2019/05/23/
[종교] 수락산 내원암, 부처님오신날 김철관 2019/05/13/
[종교] 소설가 이외수, 불교 선지식 50번째 강연 김철관 2019/05/05/
[종교] 탐한 욕심이 나거든 사자같이 무서워하라 김철관 2018/11/09/
[종교] 기독교발 가짜뉴스, 주범은 우파운동권 김철관 2018/09/14/
[종교] 명진 스님 '행복하게 사는 법' 북 콘서트 김철관 2018/06/30/
[종교] 금강산 맑은 물 마시고 세상을 쳐다 보니... 김철관 2018/06/15/
[종교] "판문점선언, 새역사의 출발을 선포한 신호탄" 김철관 2018/05/22/
[종교] 삼보사찰, 적멸보궁, 무슨 뜻인지 아시나요? 김철관 2018/05/09/
[종교] 불교 신성수 108에 맞춘 108편의 스님시 눈길 김철관 2018/05/12/
[종교] "재일교포들의 상처 치유하고 위로하는 절 만들겠다" 김철관 2018/04/20/
[종교] 진실을 왜곡한 자는 반드시 그 책임져야 류상태 2018/01/17/
[종교] ‘종교의 자유’는 ‘왜곡의 자유’가 아니다 류상태 2018/01/11/
[종교] 대형교회 압력에 굴복한 대한민국 정부 류상태 2017/12/24/
[종교] 임진왜란시 승려의 힘, 호국불교 조명했다 김철관 2017/11/26/
[종교] 이단 논쟁 휘말린 박보검을 변호하며 류상태 2017/10/03/
[종교] 배우 박보검 이단종교 행사 홍보 논란 박성석 2017/09/28/
[종교] 기독교와 이슬람교, 어느 쪽이 더 호전적인가? 류상태 2017/09/22/
[종교] "이명박근혜 권력유착, 자승 총무원장 퇴진해야" 김철관 2017/09/05/
[종교] "돈, 폭력 등 조계종단 적폐 청산해야" 김철관 2017/09/04/
최근 인기기사
  개인정보취급방침대자보소개광고/제휴 안내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우) 120-093 서울시 영등포구 버드나루로 80 제일빌딩 별관 4층 TEL: 070-4411-5452ㅣFAX: 02-6280-5462 (web@jabo.co.kr / c.p: 010-2249-9446)
대자보ⓒ1998-2017 ㅣ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아00133 2005.11.11ㅣ 발행인 겸 편집인 : 이창은,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경주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대자보' 가 생산한 저작물은 정보공유라이센스 2.0 : 영리금지 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