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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사는 것이 부끄럽다
[정문순 칼럼] 낙후한 지역 경제가 반민주주의 세력 선택해
 
정문순
당선자 득표율 70%. 2년 전 내가 사는 곳과 하루아침에 행정구역이 통합된 구 마산 지역의 대선 결과이다. 득표율이 경북을 이어 2등인 경남 평균보다 7%나 높다. 말이 좋아 70%이지 이 정도면 그냥 ‘묻지 마’ 몰표다. 안 찍으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 받기 딱 좋은 수치이다. 그나마 야당 후보를 찍은 30%는 머리 검은 20~30대에 몰려 있을 것이다. 밥상머리 교육을 거부할 줄 아는 20대 대학생이거나 주변으로부터 별종 취급 받는 사람들을 빼놓고 마산은 일치단결의 표심을 발휘했다. 

하늘 무서운 줄 몰랐던 이승만·박정희의 철권 통치를 차례로 끝장냈던 이 도시의 저력은 어디로 다 증발되고 말았을까. 박정희까지 갈 것 없이 전두환 정권과 노태우 정권 중반기까지만 해도 마산은 다른 경남 지역이나 인근한 부산과 더불어 야당 세가 강했다. 그러던 것이 3당 합당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 세월이 20년. 이명박 정권에서 경남이 대구·경북에 철저히 소외된 이후 보수대연합 세력의 결속력이 약화되어 떨어져 나가려나 싶었더니 이번에 보니 도루묵이다.

한 세대와 두 세대 이전에 피를 흘려 민주주의를 쟁취해 낸 마산은 왜 민주주의를 도적질해 간 세력의 장기 집권을 쉽게 허락하고 마는 것일까. 그들이 행사한 한 표의 권리를 위해 마산의 역사가 피를 흘렸다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국민이 투표할 권리조차 박탈한 독재자를 흠모해 마지않는 그의 자식에게 표를 던지는 이 기묘한 조합을 한탄하는 것은 3당 합당으로 등장한 보수연합정치 시대 이후에는 부질없는 시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미 흔적도 찾을 길 없는 옛 일을 붙들고 있는 건 떠난 애인의 자취를 찾아 우는 것만큼이나 미련한 일일 수도 있다.
 
옛 마산은 수 십 년 전에 멈추어 버린 도시다.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밖으로 빠져 나갔고, 자식들이 외지에서 성공하기를 바라며 늙어가는 사람들만 남은 도시는 활기를 잃었다. 사람의 왕래도 드물고 도시라고 말하기에도 무색할 정도로 퇴락했다. 70~80년대 저임금 노동력에 의지하던 수출자유공단은 한때 산업역군의 칭송이 무색해진지 오래다. 지금은 흔적도 찾을 수 없지만 60~70년대까지만 해도 옛 마산은 전국 7대 도시 중 하나로 꼽혔다. 그때는 사람도 물자도 북적였다. 돈이 돌아가니 외부 유입 인구도 많았다.

1960년 봄날, 한국에 민주주의의 봄날을 선물로 주고 간 마산의 김주열 학생은 경상도 사투리 쓰는 토박이가 아니었다. 부정선거 저지른 이승만 물러가라는 시위하러 나간 뒤 행방불명됐다가 마산 앞바다에서 주검으로 인양된 김주열은, 전북 남원에서 마산상고로 유학을 와 설레는 마음으로 입학을 기다리던 예비 고등학생이었다. 김주열의 넋을 기리는 마산의 시민단체는 그의 출생지에 의미를 두어 영·호남 화합의 상징으로 그를 삼고자 하지만, 박정희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정치색을 가르는 지역 갈등은 있지도 않았으며, 마산은 지리산 너머에도 개방된 도시였다. 40년 전에는 어린 학생들도 타지에서 유학을 온 도시 마산은 지금은 들어오는 사람보다 나가는 사람이 더 많아졌고 토박이 인구가 거의 전부이다.

사람이 붐비고 도시에 윤기가 흐르고 외부와의 드나듦이 활발한 것은 지역민들의 정치 의식을 높이게 하고 세상 보는 눈을 뜨게 한다. 옛 마산이 한국 현대사에서 두 번씩이나 독재정권에게 죽음을 선고했던 주역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당시만 해도 남 부러울 것 없이 잘 나가는 도시였기 때문이었다. 어린 학생들도 정치가 얄궂게 돌아간다는 것을 알았다. 민주당 유세에 구경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일요일 등교를 지시했던 이승만 정권에 대해 마산의 중학생들도 분노하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유신의 심장부를 쓰러뜨린 해에는 부산에서 항쟁이 처음 시작한지 이틀 후에 이곳 대학생들이 들고 일어났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으로 연결되는 항구의 발달이 가져온 마산의 흥성은 일본과 수교가 없던 이승만 정권 치하 때에도 여운이 이어졌다. 6.25전쟁으로 임시수도가 인근 부산이 되면서 물자와 사람이 남동쪽에 몰린 덕도 있었다. 박정희 정권 때는 대일 수출의 관문으로서 관세를 없애주고 수출자유무역지대를 만들어 어린 여성들의 노동력을 싼값에 활용했다. 모두 바다를 낀 천혜의 자연 조건을 수출 관문으로 활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저임금 노동력에 의존한 경제구조도 저물어버린 지금, 돈이 돌지 않아 낙후해진 곳에 사는 유권자들에게 민주주의의 견인차였던 지역의 역사를 생각하고 독재에 분노하며 표심을 발휘하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인지 모른다.

투표용지 한 장에 국민이 권력을 뽑을 권리를 얻기 위해 피를 흘린 역사가 고스란히 배어 있음을 깨닫기에는, 자신들이 피 흘려 얻은 민주화의 열매를 민주화의 적에게 고스란히 갖다 바치는 모순을 인식하기에는 낙후된 지역의 삶은 힘겹고 정보력은 형편없는지 모른다. 경제 위기를 온몸으로 겪고 있고 정보에 둔감한 지역과 계급일수록 보수정치의 선동이 잘 먹힌다는 것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상식이다.

김주열을 절명에 이르게 한 직격탄은 민주주의의 봄을 불러왔지만 경제파탄의 직격탄을 맞은 중소도시와 농어촌은 이것 저것 따지고 살피는 ‘피곤한’ 민주적 리더쉽보다는 힘 있는 권력자의 한 방에 더 큰 매력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당선자는 민주주의를 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느낌이 그대로 묻어나는 그녀. 마산 지역민의 뇌리에 남아있는 60-70년 대 경제성장기의 기억은 독재자의 딸에게 고스란히 투영되었다.

민주화의 열매를 민주화의 적이 날름 챙긴다는 속설은 이번에도 맞아떨어졌다. 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흘린 사람들은 따로 있지만, 피로써 얻은 절차적 민주주의는 독점 정치의 방패막이로 전락했다. 무임승차 인생을 일관되게 살아온 것을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독재자의 자식이 그 열매를 고스란히 챙겼다는 사실이 못내 분하다.

대구·경북+부산·경남+충청을 기반으로 삼은 보수대연합 정치세력이 태동한지도 20년이 넘었다. 충청은 DJP 연합으로 진작에 떨어져 나간 후 지역 발전을 내세워 여야를 왔다 갔다 하고 있지만, 경남은 63%의 지지율로 아직도 굳건히 버티고 있다. 지역경제가 소생하지 않거나 불균등 발전이 해소되지 않는 한 호남을 제외한 지방에서 야당이 승기를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서울과 지방 간 불균등의 해소도 결국은 정치 민주화가 선행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경남은 이번에도 민주주의가 아닌 권력자의 선의에 기대는 데 기울어지고 말았다. 

지역경제를 살리려면 약속을 지킬지 의심스러운 현란한 개발 공약을 나열하는 세력 말고 정의와 공정을 말하는 쪽을 밀었어야 한다. 잘못된 선택 때문에 앞으로는 5년은 계속 추울 것이다. 지역 경제의 훈풍이 돌려면 투표를 잘 하는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경남이 나쁜 선택을 할 것인지 안타깝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기사입력: 2012/12/31 [00:42]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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