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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반성도 없이 '정동영 부유세' 흉내?
[기자수첩] 1년 전 '세금폭탄 악몽' 비난‥이제는 '시대적 소명' 찬양
 
박진철   기사입력  2012/10/12 [17:30]
 

 박근혜 대선캠프 사령탑 첫 일성‥2년 전 '정동영표 부유세'
 
'친박 좌장' 김무성 전 원내대표가 박근혜 캠프 복귀 첫 일성으로 '부유세 신설'을 주장해 파란이 일고 있다.
 
김 전 원내대표는 11일 박근혜 대선후보의 선거 사령탑인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본부장으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김 본부장은 첫 행보로 이날 오후 서울 당산동 그랜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선대위 중앙위 워크숍 및 임명장 수여식에서 '2012 대선의 시대적 소명'이란 주제로 특강을 했다. 그리고 '부유세 신설'을 주창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감세 정책을 비판하는 파격적인 발언을 했다.
 
부유세는 현재 여야 정치권에서 정동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정도만 주장하고 있을 정도로 강력한 부자증세 정책이다.  

그런데 박근혜 선대위 사령탑인 김 본부장이 취임 첫 일성으로 느닷없이 '정동영표 부유세'를 들고나와 여야를 어리둥절케 하고 있다. 문재인 캠프 경제좌장인 이정우 교수는 12일 "깜짝 놀랐다. 정말 뜻밖"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유세는 이론적으로 썩 좋은 세금이 못 된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혀, 마치 여야가 뒤바뀐 느낌마저 주고 있다.
 
부자증세 미적거리는 야권에 '호통'까지
 
김 본부장은 이날 '2012 대선의 시대적 소명'이란 특강에서 "재정건정성 유지와 복지 재원 확충을 위해 증세를 해야 한다"며 "부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부유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증세에 미온적인 야권을 향해서 오히려 호통을 쳤다. "야권은 증세를 하지 않고 현재 예산을 절약해서 복지를 한다고 국민을 속이고 있다"며 "세금을 늘리지 않는 복지 확대는 우리나라 재정 여건에서 절대 불가능하다"고 맹비난했다.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에 대해서도 "이명박 정부 들어 감세정책을 썼는데 과연 옳았는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됐는가에는 부정적인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증세를 통한 고통분담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또 "역대 선거를 보면 이기는 선거 전략은 시대정신에 따라 국민 눈높이에 맞춰 끊임없이 변화 쇄신해 나가는 것이었다"며 "경제민주화나 정치쇄신과 같이 시대흐름에 맞는 정책을 박근혜 후보가 주도적으로 선도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앞서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에 대한 전폭적 지지 입장을 밝힌 바 있으며, 김 위원장에게 딴지를 걸어온 이한구 원내대표는 선대위 인선에서 배제됐다.
 
김무성 부유세 VS 정동영 부유세
 
이날 김무성 본부장의 부유세 신설 논리들은 2년 전 정동영 상임고문이 선도적으로 주창했던 논리 그대로였다. 사실상 판박이였다.
 
그러나 김 본부장이 주장한 부유세는 증세를 통한 재정건정성 확보가 주목적이고 복지 확대에는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는 점에서 복지 확대에 방점을 두고 조세정의와 재정건전성을 모두 고려한 '정동영표 부유세'와는 궤를 달리한다.
 
김 본부장은 이날 특강에서 "국가의 재정건전성을 생각하지 않는 과잉 복지 포퓰리즘의 정치세력에 절대 정권을 넘겨서는 안된다"며 선별적 복지를 강조했다. 그는 또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이 '과잉 복지'로 재정위기를 겪고 있다며, 해당 국가를 "국가 지도자를 잘못 만나 거지 국가로 전락했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정동영 복지 철학'과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증세라면 '세금폭탄 망령'이라며 학을 떼던 새누리당에서 강력한 부자증세 정책인 부유세를 '시대정신'이라며 들고나온 점은 주목할 만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부유세 말바꾸기·진정성 논란
 
김무성 본부장의 부유세 주장으로 '말 바꾸기'와 '진정성 부족' 논란도 일고 있다.
 
특히 1년 전까지만 해도 정동영 상임고문이 부유세 주장을 펼칠 때,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세금폭탄' 운운하며 증세에 강한 거부감을 보인 바 있다. 박근혜 후보를 비롯한 새누리당과 보수언론도 당시 정동영을 비난하거나 비아냥거리기 일쑤였다.
 
김무성 본부장은 2011년 1월 1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의 무상복지는 전 정권의 세금폭탄 악몽으로 되돌아가자는 주장"이라며 맹비난했다. 박근혜 후보도 1월 23일 "복지를 왜 돈으로만 보고 생각하는지 안타깝다"며 "따뜻한 사회적 관심이 중요하다"고 비판했다. 한 보수언론은 <스웨덴도 포기한 ‘부유세’ 정동영은 왜>라는 칼럼에서 "시대정신 운운하며 부유세를 들먹이는 건 한마디로 언어도단"이라고 쏘아붙였다.
 
그런데 불과 1년 반 만에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선거 사령탑이 '정동영 부유세'를 토씨 하나도 안 틀리고 그래도 들고나온 것이다.
 
통합진보당은 12일 논평을 통해 "새누리당에서 뒤늦게나마 부유세를 거론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부유세 언급의 취지와 목적에 대해서는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김무성표 부유세는 증세를 통한 재정건정성 확보가 목적으로, 이를 복지예산으로 투입하는 데에는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김무성 본부장은 부유세의 목적을 보다 분명히 해야 한다"며 "복지예산 확대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한낱 말잔치에 불과할 뿐"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서민에 복지 혜택이 돌아가지 않고 단순히 증세분을 구멍난 데로 돌릴 생각이라면 '부자에게 세금을, 부자에게 복지를'로 변질될 우려가 높다"며 "김무성 본부장의 계산도 혹시 부유세를 통한 '변종 부자감세'라면 깜짝 진보 코스프레는 이쯤에서 포기하라"고 일침을 가했다.
 
통합진보당은 "박근혜 후보의 대선정책과 정반대라 실현되기도 어렵겠지만, 어차피 새누리당에는 어울리지 않는 옷 아니냐"며 부유세 도입 진정성에 강한 의문을 표시했다.
 
MB 감세정책·양극화로 고통받은 국민에게 반성과 사과는?
 
시대정신에 맞고 좋은 정책이라면, 누가 주창자였든 원조 저작권이 누구에게 있든 국민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 여야를 막론하고 서로 빌려 쓰는 게 옳은 일이다. 1년 전에는 잘 몰랐지만, 야당 정치인의 주장이 선견지명이었고 시대정신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동영 상임고문이 부유세를 주장할 때, 거의 정신 나간 사람 취급하며 비난하고 비아냥거렸던 것에 대해 최소한 미안한 마음의 표시는 하는 게 인지상정 아닐까.
 
또한 자신들의 정책이 잘못됐다는 걸 뒤늦게 깨달아 이제부터 부자증세 정책으로 전환하겠다면, 그동안 이명박 정부의 감세와 친재벌 정책으로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고 그 때문에 고통을 받아온 서민들에게 반성과 사과부터 먼저 하는 게 순서 아닐까. 

자신들의 과오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빠진 채 정책의 '깜짝 전환'은 선거에서 표를 의식한 말 바꾸기와 진정성 부족으로 이해되기 쉽다. 박근혜 후보가 그토록 강조해 왔던 '국민의 신뢰'를 더 잃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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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10/12 [17:3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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