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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유품 수습했던 이병희 항일독립지사 숨지다
[추모] 50여 년 동안 독립운동 사실을 숨겨왔던 지난한 세월 끝내
 
김영조
 



      
▲ 빈소 모습, 영정 속에서는 이병희 애국지사가 밝게 웃고 있다     © 김영조
    

또 하나의 별이 졌다. 애국지사 이병희(李丙禧, 1918.1.14~2012.8.2) 여사가 94살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났다. 2012년 8월 2일 고통을 받아왓던 병마 탓으로 세상을 뜬 이병희 여사의 빈소는 서울 중앙보훈병원 영안실 11호실에 차려졌는데 8월 3일 오전 기자가 찾아간 영안실에는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이 가족들만 조용히 고인의 넋을 기리고 있었다. 

“지금은 공부보다 나라 위해 일을 하라
아버지 말씀 따라 일본인 방적공장 들어가서
오백 명 종업원 일깨운 항일투쟁의 길
감옥을 안방처럼 드나들 때
고춧가루 코에 넣고
전기로 지져대어 살 태우던 천형(天刑)의 세월

잡혀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너만 죽어라
동지를 팔아먹지 마라 결코 팔아먹지 마라
혼절 속에 들려오던 아버님 말씀 새기던 나날 

먼데 불빛처럼 들려오는 첫 닭 우는 소리를
어찌 육사 혼자 들었으랴.“
-이윤옥 시 “이육사 시신을 거두며 맹세한 독립의 불꽃 이병희” 가운데- 
 
기자가 이병희 여사를 처음 뵌 것은 1년 전인 2011년 7월 초순의 일로 부평의 한 요양원에서였다. 노환으로 몸은 많이 수척했지만 눈빛이 매우 맑았으며 목소리 또한 또랑또랑했다. 여사님은 기자가 내민 명함을 받아들고는 깨알 같은 글씨를 돋보기 없이 읽어 내려갈 정도로 의식이 분명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이 1918년생이라는 것과 칠십여 년 전 했던 항일독립운동 이야기를 바로 어제 일처럼 기억해 내는 모습이 예사로운 분이 아님을 느끼게 했다.

  
▲ 빈소에는 생전의 이병희 여사를 추억할 수 있는 사진들이 있었다.     © 김영조
   
이병희 여사의 할아버지 이원식 독립지사는 동창학교를 설립해 민족교육을 이끈 독립운동 1세대이며 아버지 이경식 애국지사는 1925년 9월 대구에서 조직된 비밀결사 암살단 단원으로 활약했던 분이다. 이병희 여사의 항일정신은 동덕여자보통학교를 졸업하던 열여섯 살 때 1933년 5월 경성에 있는 ‘종연방적(鍾淵紡績)’에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당시 공장에는 500여 명의 근로자가 있었는데 이들을 대상으로 항일운동을 주도하다 잡혀 4년 반 동안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면서 다져진다.
 
감옥에서 나온 뒤 1940년 북경으로 건너가 의열단에 가입하게 되는데 이때 동지 인 박시목ㆍ박봉필 등에게 문서를 전달하는 연락책을 맡아 활동하던 중 1943년 국내에서 북경으로 건너온 이육사와 독립운동을 협의하다 그해 9월 일경에 잡혀 북경감옥에 구금되었다. 뒤이어 잠시 국내로 잠입하였던 이육사도 잡혀 함께 옥살이를 하게 되는데 이병희 여사가 1944년 1월 11일 석방된 뒤 닷새만인 1월 16일 이육사는 옥중 순국을 하게 되고 그 유품과 주검 수습을 이병희 여사가 맡았다.

“그날 저녁 5시쯤 형무소 간수로부터 육사가 죽었다고 연락이 왔어. 곧바로 달려갔더니 코에서 거품과 피가 나오는 거야. 아무래도 고문으로 죽은 것 같아”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출옥할 때만 해도 멀쩡하던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이병희 여사는 눈시울을 붉히며 육사를 떠올리는 듯 시선을 먼 허공에 두었다.

이육사는 이병희 여사의 사촌 오라버니였다. 당시에는 왜경들의 시체 훼손이 많던 때라 육사의 주검을 화장한 뒤 해방 후 귀국할 때까지 이병희 여사는 유골 단지를 품에 안고 다녔다. 혹시 모를 훼손을 우려하여 심지어는 맞선을 보러 가는 날도 육사의 유골을 품에 안고 나갔다고 했다.

‘광야’ ‘청포도’ 같은 육사의 주옥같은 시는 그의 유품을 수습했던 이병희 여사가 없었더라면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병희 여사는 광복 이후 정착한 고국에서 자신의 독립운동을 숨기고 살아야 했다. 50여 년 동안 말이다. 이른바 ‘사회주의계열’ 여성 독립운동가로 낙인 찍혀 조국 광복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도 그늘진 곳에서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것이다. 

정부는 1996년에 가서야 겨우 독립운동자로 인정하여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기에 이르는데, 이러한 삶으로 고통받은 애국지사로는 이효정 여사도 있는데 그는 이병희 여사의 친정 조카이다.

빈소를 지키던 상주는 어머니를 회상하면서 “독립정신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라. 나라가 망했을 때는 모두 달려들어 독립운동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을 뿐 내가 한 일이 특이한 일은 아니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고 했다. 
 
이날 이병희 여사의 별세 소식을 듣고 빈소로 달려온 민족시인 이윤옥 씨는 “1년 전 찾아 뵈었을 때 예쁜 꽃을 그린 그림을 보여주시면서 해맑게 웃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여사님께 드리는 헌시를 지어 가지고 가서 낭송해 드릴 때 매우 기뻐하셨던 기억이 새롭다. 여사님은 젊은이들이 독립운동정신을 잊지 않고 훌륭한 나라를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고 목에 힘줄이 서도록 힘주어 말씀하셨다.”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 이병희 애국지사가 그린 고운 꽃그림(왼쪽), 여사님께 드리는 시를 지를 지어 읽드리는 이윤옥 시인     © 김영조

또 함께한 민족문제연구소 서초강남 손영주 전 지부장 역시 “일신의 안위를 버리고 조국광복에 헌신한 여사님의 삶이야말로 독립정신이 희박해져 가는 오늘의 우리가 되새겨야 할 덕목이다.”라면서 여사님의 명복을 빌었다.

조문을 마치고 나온 거리는 찜통더위 탓인지 거리는 한산한 모습이었다. 지금은 삼복더위지만 버스를 기다리는 나무그늘에는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머지않아 입추가 찾아오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리라! 일본의 강제점령기에 태어나 땀범벅, 눈물범벅으로 살아낸 이생의 고단한 여정을 마치신 여사님! 부디 하늘나라 이육사 선생 곁에서 편히 쉬소서!


장례식장 : 서울 둔촌동 중앙보훈병원 장례식장 11호
발 인 : 4일 오전
장 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기사입력: 2012/08/04 [08:50]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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