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IT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인사유감-우호의 표시인가 사회적 복종의 표시인가
[논단] 현실권력의 외피를 쓴 자, 전파하는 언론들을 우리 스스로 치워야
 
오용석   기사입력  2011/10/11 [10:56]
(1) 악수란 우호의 표시로 서로 손을 내밀어 잡는 행위이다. 오늘날 동서양을 막론하고 국제적으로 보편화된 '수평적' 인사법이다. 그 유래는 중세 유럽에서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마주쳤을 때 상대방과 싸울 의사가 없음(I don't want to fight you!)을 신호하는 보디랭귀지라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우리 인류의 아득한 수렵채취 시대부터 시작된 거라고도 한다. 숲속 깊이 들어간 사냥꾼이 생면부지의 다른 부족 사람을 만났을 때, 자신의 오른손에 들고 있던 무기를 버리고 대신 손을 내민 데서 유래한다는 것이다.

남귤북지(南橘北枳)인가? 우리나라에서는 연장자나 상사 등을 맞아 공손히 두 손으로 잡거나 자신의 왼 손으로 오른 손을 바치면서 악수하는 방식으로 부분 변형되기도 한다. 눈을 자연스럽게 마주치며 한마디 인사말을 건네는 게 아니라 심지어 고개를 거북스러울 정도로 숙이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하기야 우리끼리면 뭐 존경의 표시가 심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면 그만이다. 그러나 해외에 나가 이런 자세를 취한다면 다른 문화권 사람들에게 자칫, 비굴한 인간으로 아니면 어딘지 좀 모자란 비정상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2) 최소한 외견상으로 절은 악수와 전혀 달리, 존경과 복종 사이의 ‘어디쯤’ 상징으로, 먼저 눈을 내리깔고 이어서 고개를 숙이고 몸도 굽히는 전형적인‘위계적‘ 인사법이다. OECD 최고의 자살국가답게 근래 들어 ”고개 숙인 남자“라는 표현이 대유행이다. 하여간 지금도 동양에서는 가장 유효한 인사법이지만, 서양에서는 이를 전혀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지 않고 국제적 보편화에 이르지 못한 경우다.

겉으로건 맘속으로건 공경 및 복종의 정도에 따라, 그리고 상대방의 지위나 상황 등에 따라 고개를 굽히는 각도가 신속다양하게 달라진다. 배우기가 결코 쉽지 않다. 가벼운 목례 상황이라 해도, 상대방의 눈을 빤히 바라보면서 동서양 혼합의 절을 한다는 건, 그 유래에 비추어서는 물론이고 순전히 신체 동작의 원리상으로 봐도 부적절하다.

사실 생물학적 견지에서 살펴보면,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절이 악수보다 뿌리 깊은 인사법임에 틀림없다.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호칭이나 인사법에 유난히 민감한 집단이나 군상들은 과거에도 존재했고 지금에도 그 수는 줄었지만 엄연히 존재한다.

그런 위계적 지배성향을 지닌 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냥 눈을 똑바로 바라보기만 해도 이를 참지 못 해 격분하곤 한다. 우리나라 군대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는 "눈 굴러가는 소리 들린다!" 제대하고 나면 ‘복지부동’의 자세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서양의 예를 들자면,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의 행차 때에도 신하가 앞서가며 외치길, "눈을 내리깔아라! 전하께서 지나가신다."

오늘날에도 서양 기독교의 기도 방식은 여전히 머리를 숙이고 손을 모으며 눈을 감는 자세를 취한다. 실은 우리 인간을 포함한 동물계에서 자기네 ‘으뜸 수컷’(alpha male = 흔히들 god으로 칭해)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과 정확히 똑같은 복종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다. 고대인들의 신화 및 사고방식을 모아놓은, 소위 성서에는 하느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걸 금기로 여기고 이것을 어기는 자는 곧바로 죽는다고 가르친다.

하기야 이슬람교나 우리의 제사의식은 머리를 바닥에 대고 엉덩이를 하늘을 향해 높이 치켜드는 ‘고난도’ 자세를 보여주기까지 한다. (어렸을 때 제사 때면 뒤에서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그게 그리 속으로 우스웠다! 내가 제사를 모시는 지금에 와서도, 이해는 되지만 매번 생각만으로도 우습다.)

(3) 요컨대, 악수건 절이건 인사란 무릇, 함께 사는 세상에서 서로 웃으며 즐겁게 지내자는 의례적 신호여야 한다. 때론 우호의 자세, 때론 복종의 자세가 사회적으로 그리고 문화에 따라 좀 더 요구될 뿐이다. 바로 그래서다. 유난히 호칭이나 인사법에 민감한 ‘꼰대’ 형 인간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일찍 알아보고 미리 경계할 수 있다면, 피차 좋을 것이다.

내친김에 첨언 하나. 흔히들 꼰대를 나잇살 든 어른 정도로 알고 있지만, 사회적 견지에서 최고의 ‘위장’ 꼰대는 지난 군사독재 시절에는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자들, 그리고 오늘의 재벌독재 시대에선 당연히 이건희 같은 반사회적, 반윤리적 인간들이다, 알프스 스키장을 혼자 빌려 탄다는 게 어디 정신병자 아니고서 제 정신 가진 인간이 할 법한 일인가. 저들은 단지 현실 권력의 외피를 쓰고서 자신들이 무슨 인문적 지혜를 가진 양 예나 지금이나 헛소리를 해댄다. 그리고 언론은 이를 열심히 전파한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아니다. 정답은 치우는 거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럴 엄두를 못 낼 때 그렇게 말하곤 한다. 지난날도 그리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러함에도 누군가 어디에서 그런 일을 묵묵히 수행하기에 세상이 점점 나아지는 것이리라. 예나 지금이나.
* 글쓴이는 현재 개방과 통합 (연) 소장으로 경제민주화와 양극화 해소에 관심이 많습니다. 서울법대 졸업 후 미국 오리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한은, 금감원 등에서 근무하였습니다. https://www.facebook.com/fssoh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1/10/11 [10:56]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