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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지사를 찾아뵙는 따뜻한 마음의 신독립군들
[현장] 한가위를 애국지사와 함께한 민문연 경기남부지부 회원들
 
김영조   기사입력  2011/09/14 [19:46]
일제강점기 우리 겨레는 수많은 독립지사가 일제에 맞서 목숨 건 투쟁을 했었다. 그와는 달리 자신의 안위를 위해 겨레를 배반하고 일제에 빌붙었던 친일파들이 있었다. 하지만, 친일파 후손들은 여전히 떵떵거리며 살고, 독립지사와 그 후손들은 아직도 대다수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나라에서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는 독립지사와 후손들을 명절이나마 외롭지 않게 보내시도록 찾아뵙는 이들이 있다. 

▲ 오희옥 애국지사(모자 쓴 분)의 보훈복지타운아파트 현관에서 경기남부회원들     © 김영조
바로 민족문제연구소 경기남부지부 회원들이 그들인데 지난 한가위를 앞둔 9월 10일 토요일 오전 11시 30분 수원시 조원동 보훈복지타운아파트에 사시는 올해 86살의 오희옥 애국지사를 방문한다고 해서 동행 취재를 했다. 

오희옥 애국지사는 경기도 용인 출신 독립운동가 오광선(吳光鮮)의 둘째딸로 1939년 4월 열네 살 나이로 중국 유주(柳州)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韓國光復陣線靑年工作隊)에 입대하여 일본군의 정보수집, 일본군 중 한국인 사병에 대한 초모와 연극·무용 등을 통한 대원의 위안사업에 종사하면서 1941년 1월 1일 광복군 제5지대(第5支隊)로 편입되었고 1944년까지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활동하였다. 

오희옥 애국지사는 할아버지 오인수 의병장,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별동대장과 경비대장으로 활동한 아버지 오광선 장군, 그리고 한국혁명여성동맹을 결성하여 맹활동을 한 어머니 정현숙(다른 이름, 정정산)은 물론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광복군 참령(參領)으로 복무한 형부 신송식과 언니 오희영 역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한국광복군 제3지대 대원 등으로 활동한 쟁쟁한 집안의 딸이다. 정부에서는 오희옥 여사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 방이 좁아 찾아간 회원들이 모두 사진에 나오지 못했다. 의자에 앉은 분이 오희옥 여사     ©김영조
 
▲ 근처 식당에서 회원들과 맛있는 오리백숙을 드시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김영조

이날 민족문제연구소 경기남부지부 회원 십여 명과 함께 찾은 오희옥 애국지사의 열세 평 아파트는 방이 좁아 찾아간 회원들이 함께 앉을 수가 없어 일부는 밖에서 기다려야 했는데 방에 들어간 회원들은 모두 오희옥 애국지사께 먼저 큰절을 올렸다.

“아이구, 절은 무슨…. 아이고 미안해서…. 고맙고….” 오희옥 애국지사님은 수줍은 새악시 모양 자꾸 부끄러워했다. 이날 회원들이 오희옥 애국지사를 알게 된 것은 시집 ≪서간도에 들꽃 피다(시로 읽는 여성독립운동가 20인, 이윤옥, 도서출판 얼레빗)≫을 통해서였는데 이 시집에서 오희옥 애국지사가 수원에 사시는 것을 알고 회원들이 한가위 명절을 맞아 선물을 사들고 찾은 것이다. 

방안에서 오희옥 애국지사와 회원들은 독립운동 시절의 험난했던 얘기부터 시작하여 여러 가지 담소를 나눴다. 그리곤 이날 오희옥 애국지사님을 모시고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했는데 그 자리에서 오 애국지사님은 ‘목포의 눈물’을 불렀다. 혼자 사시면서 노래는커녕 말동무도 없다가 찾아간 회원들이 아들딸이라도 되는 양 흥에 겨워하자 회원들도 모두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전 지부장인 한선희 씨는 맏며느리처럼 식당 문을 나서면서 열무김치를 맛있게 드시던 오희옥 애국지사님을 위해 주인에게 김치를 따로 싸달라고 해서 손에 들려드리는 자상한 모습을 보였다. 풍요로운 한가위라고는 하지만 주변에는 홀로 쓸쓸히 명절을 맞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이번 민족문제연구소 경기남부지부(지부장 정명재)의 애국지사 방문은 더없이 뜻 깊게 느껴졌다. 

▲ 지금은 돌아가신 조문기(앞쪽 소파에 앉은 분) 애국지사 댁을 방문한 회원들     ©김찬수
  
▲ 자주 조문기 애국지사와 회원들은 모임을 가졌다.     ©김찬수
경기남부지부 회원들의 숨은 봉사는 이날에 그치지 않는다. 지금은 돌아가신 애국지사 조문기 선생을 종종 찾아가 인사를 드렸고 선생님 사후에는 병중의 사모님을 돌보고 명절 때마다 제사용품까지 마련하여 찾아다니는 일을 꾸준히 해온 것이다. 

조문기(趙文紀, 1927.5.19~2008.2.5) 선생은 항일독립운동가로 광복 직전인 1945년 7월 24일 친일어용대회가 열린 부민관에 폭탄을 투척하는 의거를 결행한 분이다. 그리고 죽기 직전까지 친일 청산에 앞장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을 지냈다. 그런 분을 잘 모셔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모두 지워지는 책임이 아니던가? 그 맨 앞에 민족문제연구소 경기남부지부가 있었고, 그 중심에는 정명재 현 지부장을 비롯하여 신용승 고문, 한선희 전 지부장, 김찬수 사무국장을 비롯한 든든한 회원들이 받쳐주어 가능했다. 

그런데 이런 선행은 경기남부지부만이 아니다. 전북지부(지부장 김재호) 회원들도 “호남의병장 전해산 선생 순국 100주년 추모식”을 열고 의병장 후손들과의 교류는 물론 의병장 후손들 돌보는 일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또 민족문제연구소 본부는 2008년부터 해마다 “나눔의 김장 품앗이” 행사를 벌여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독립운동가, 강제연행 일본군위안부 할머니, 징용징병 피해자들에게 나눠 드리고 있다. 
 
▲ 민족문제연구소는 해마다 김장을 해서 독립운동가 등 여러분께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 방학진

▲ 전북지부에서는 의병장 후손들을 꾸준히 돌보고 있으며 추모행사도 열고 있다.     © 최재흔

민족문제연구소 본부 방학진 사무국장은 “흔히 민족문제연구소 하면 친일문제에 집착하여 무조건 강한 사람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제 우리 회원들은 마음이 참 따뜻한 사람들이다. 명절 때 주위의 애국지사를 찾아보는 경기남부지부 회원들은 물론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지부마다 사람 냄새 나는 활동을 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방학진 사무국장 말처럼 선행과 미담은 경기남부지부, 전북지부에 국한된 일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국광복을 위해 온몸을 불살랐던 분들의 삶을 누구보다도 잘 헤아리고 이들을 보살피는 사람들이 바로 민족문제연구소 회원들이다. 이번에 한가위를 앞두고 오희옥 애국지사를 찾아 따스한 정을 나눈 경기남부지부 김찬수 사무국장과 일문일답을 나눠 보았다.
 
부모님을 찾아뵙고 인사드리는 것이 특별난 것은 아니지 않나?
[대담] 민족문제연구소 경기남부지부 김찬수 사무국장

▲ 민족문제연구소 경기남부지부 김찬수 사무국장     © 김영조
- 어떻게 독립지사를 방문하게 되었나?  

“1999년 지부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조문기 의사(義士)님의 가르침을 받았다. 특히 2대 서계갑 지부장님(2002-2004년) 때부터 항상 조문기 의사님(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을 모시고 행사를 진행했다. 이때 초청강연회, 친일파 알리기 패널전시회, 삼일절 기념행사 참가 등을 했는데 그때마다 조문기 이사장님의 격려와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러다 보니 명절 때면 댁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곤 했는데 이후 조문기 의사님이 몸이 불편하시게 되면서는 5대 한선희 지부장님 때부터 여성 회원들이 명절 때 음식을 준비하거나 제사용품을 사서 찾아뵙게 되었다. 그리고 조문기 의사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몸이 불편하신 장영심 여사님(조문기 의사님의 사모님)의 말벗 되어드리기가 가장 뜻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이윤옥 교수님의 시집을 통해 오희옥 여사님도 알게 되어 독립운동가를 찾아뵙는 전통을 이어가게 되었다.” 

- 방문했을 때 독립지사의 반응은 어땠나?  

“너무너무 반기시며 좋아하셨다. 마음으로부터 좋아하시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사실, 이호헌 4대 지부장님도 독립운동가 후손이시고, 임경화 여사님은 임종국 선생(친일연구의 창시자)의 누이 동생이시니까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마치 한 식구 같았다. 그런 모습들을 보니 같이 참석했던 회원들은 가슴이 뿌듯해질 수밖에 없었다. 회원들은 한결같이 부모님 찾아뵙는 것과 같다면서 손만 잡고도 반가움과 고마움에 눈시울이 뜨겁다고들 말했다.” 
 
- 경기남부지부는 다른 지부와 견주어 훨씬 모범적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특별나게 모범적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할 일을 한 것일 뿐 다른 지부에서도 다 하고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다만, 수원에는 독립운동가, 애국지사님들이 있으시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부모님을 찾아뵙고 인사드리는 것이 특별난 것은 아니지 않나?” 
 
▲ 조문기 애국지사님과 역사기행을 하는 경기남부지부 회원들     ©김찬수

- 경기남부지부가 지금 하는 일과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조문기 의사(義士)님께 한 것처럼 오희옥 애국지사님께도 앞으로 찾아뵙기를 계속할 것이다. 특히 나는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학생들과 함께 독립운동가 찾아뵙기를 할 예정이다. 또 오희옥 애국지사님의 말씀도 잘 기록해서 수원지역에 널리 알리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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