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Why뉴스] 왜 '잊혀질 권리'인가?
 
홍제표   기사입력  2011/05/05 [12:53]
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시원히 짚어 준다. [편집자 주]

 
인터넷에 한 번 오른 글이나 사진 등은 완전히 지우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무한복제를 통한 ‘퍼나르기’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엉뚱한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본인이 직접 올린 것은 물론이고, 자신도 모르게 남들이 올린 인터넷 콘텐츠로 인해 여론의 돌팔매질을 당하는 일이 허다하다.

심지어 그게 허위사실일지라도 피해갈 수는 없다. 나중에 진실이 밝혀지더라도 당사자는 이미 사회적 매장을 당한 뒤인 경우가 종종 있다.

'냄비 근성'이라 자탄하는 우리만 그런 게 아닌 것 같다. 유럽국가들에선 인터넷에 오른 정보들로 인한 사생활 침해의 문제가 이미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라는 개념이다. 우리 정부도 IT 1등 국가치고는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최근 제도적 검토에 나섰다.

5일 Why뉴스는 '잊혀질 권리'를 집중 조명한다.

▶ 용어가 좀 생소하다.

= 말 그대로 남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잊혀지고 싶은 권리이다. 좋은 말도 한 두 번이라는 데 좋지도 않은 이유로 과도한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 우리가 맞게 된 인터넷 혁명은 누구나 손쉽게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편리함이 있지만 사생활 보호 측면에서는 심각한 병폐도 함께 안겨주고 있다.

최근 애플 아이폰의 위치추적 의혹이 대표적인 사례다. 사회적 공인으로 불리는 연예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개인의 사생활이 낱낱이 드러나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저항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자기와 관련된 정보를 사이버 세상에서 영구히 지워달라는 요구가 시작됐다.

▶ 그런 문제는 우리 사회가 좀 더 심각한 것 같은데?

= 인터넷 환경이 발달한데다, 개인보다는 집단을 중시해온 문화적 전통도 그 원인으로 보인다.

과거에 한 포털사이트에 병역면제 방법과 관련한 질문글을 올렸다는 의혹으로 여론의 난타를 당했던 가수 MC몽, 본인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올린 인터넷 카페의 글로 인해 서태지 씨와의 과거를 둘러싸고 고초를 겪은 배우 이지아 씨 등이 대표적 피해사례다.

법을 위반했거나 사회적 지탄을 받을 만한 도덕적 잘못을 범한 것은 사실이지만 ‘죄값’ 이상의 대가를 치르는 경우가 적지않다.

인기그룹 2PM의 멤버 박재범은 과거에 마이스페이스라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남긴 글 때문에 아예 한국을 떠나야 하는 ‘추방형’을 받기도 했다.

▶ 외국도 비슷한가?

= 서구 선진국들은 개인주의적 전통이 강하기 때문에 남의 사생활에 과도한 관심을 갖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는 불문률이 확립돼있다.

이는 정치인이건 인기 연예인이건 대상이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인터넷을 매개로 마녀사냥식 여론재판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다만 개인주의가 강한 만큼 자신의 권리 찾기에도 우리의 상상을 넘어설 만큼 적극적이다.

올해초 스페인에선 한 소송 당사자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쓰여진 뉴스기사의 기사링크를 삭제해줄 것을 구글에 요청했다.

독일에선 지난 2009년 일부 범죄자들이 위키피디아를 상대로 자신들의 이름을 삭제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프랑스는 아예 올해 G8 정상회의에서 ‘잊혀질 권리’를 주요 의제로 올릴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시사잡지 월간 아틀랜틱은 “폭로전문사이트 위키리크스가 표방하는 ‘비밀 없는 세상’과는 정반대의 권리를 향한 움직임이 유럽에서 일고있다”고 전했다.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 수정헌법의 정신과의 가치 충돌을 예고한 셈이다.

▶ 다소 철학적으로 들린다?

= 사실 인터넷 혁명은 새로운 고민을 던지고 있다.

인터넷 이전의 정보 유통은 오프라인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제한적, 한시적이었다. 책이나 신문은 발행 부수에 제한을 받았고 언젠가는 낡아 없어지게 된다. 특정 정보에 대해 아는 사람만 아는 시대였던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는 정보 유통이 무제한이며 영구적이다. 완전한 삭제는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특히 최근에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도 일부 포털의 검색결과에 포함돼 나오고 있다.

인터넷에선 사생활이 사라진 셈이다. 비록 SNS에 익명으로 올린 글이라 하더라도, 이런저런 사이트에 남겨놓은 흔적들을 추적해 누구의 것인지를 밝혀내고야 마는 것이다.

결국 사생활을 지키기 위해 인터넷이란 문명의 이기와 담을 쌓아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 딜레마가 있는 것 같다. 최소한 본인이 스스로 올린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하지 않나?

= 이것도 논란이 있다.

자발적으로 올렸으니 그대로 둬야 한다는 주장과, 처분권한도 올린 사람에게 있는 것 아니냐 하는 주장이 맞선다.

다만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에 한해서는 회원 탈퇴시 해당자의 게시물을 모두 파기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 정부의 대책은 무엇인가?

= 정부도 일단 SNS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SNS 이용자가 본인의 게시물이나 콘텐츠에 대해 원할 경우 파기 또는 삭제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2일 국가 정보화전략위원회에서 소셜플랫폼 기반의 소통,창의,신뢰 네트워크 사회 구현 전략의 일환으로 이런 방안을 보고했다.

SNS 사업자가 게시물이나 콘텐츠에 대해 보유기간 설정 및 외부 공개 차단 기능 등을 이용자에게 제공하고, 회원 탈퇴시에는 이를 지체없이 파기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방통위는 이용자들이 자신의 개인정보에 대한 자기통제권을 강화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유럽국가들은 SNS 뿐만 아니라 모든 웹상에서 자신과 관련된 정보를 원하면 삭제할 수 있도록 하는 보다 적극적이고 넓은 의미의 ‘권리’를 추진중이다.

예를 들어 범법행위로 재판을 받고 형을 마치거나 아예 무죄 판명이 난 경우, 공식 재판기록에 근거한 원래의 뉴스기사는 여전히 남아있을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조차 삭제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유럽국가 특유의 철학적 전통과 함께, 구글 등의 세계적 인터넷 기업이 대부분 미국 회사라는 점에서 산업적 측면에서도 논란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1/05/05 [12:53]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