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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원전사고, 안전신화의 붕괴
[창비주간논평] 과학기술력 맹신, 위험한 '핵발전' 위주 정책 경계해야
 
윤기돈   기사입력  2011/03/16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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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 방호(防護) 원칙 중에 ALARA(As Low As Reasonably Achievable, 합리적 피폭 최소화)라는 개념이 있다. 사용할 수 있는 재화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가능한 선에서 피폭을 최소화하라는 개념이다. 더 많은 돈을 들이면 그만큼 더 피폭량을 감소시킬 수 있지만, 그로 인해 다른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한계를 둘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일본 원전이 7.5~8.0 규모의 지진에도 안전하도록 설계되었다거나, 우리나라 원전의 내진 설계가 6.5 규모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게 돼 있다는 것도 비슷한 논리다. 즉 그 정도 규모로 설계된 것이 합리적이라는 이야기다. 평상시에 이러한 원칙은 매우 타당한 듯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예측하지 못한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이는 참담한 재앙으로 이어진다. 이웃 일본의 사례가 이러한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참담한 핵재앙, 어디서 왔을까

대지진으로 인해 후꾸시마(福島) 원전 1, 2, 3, 4호기 모두 폭발했다. 그 안에서 새어나온 방사성 물질로 원전 주변의 방사선 수치는 일반인 1년 선량한도(線量限度, 인체에 해가 없다고 생각되는 방사선의 양적 한계)보다 무려 400배나 넘게 측정됐다. 자칫 최악의 핵발전소 사고인 체르노빌의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간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우선 설계기준을 훨씬 뛰어넘는 리히터 규모 9.0의 강진이 직접적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은 것은 핵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일본정부조차 과학기술력을 맹신했고, 핵발전이 갖는 위험을 소홀히했으며, 핵발전 위주의 정책을 펼친 탓일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정부는 후꾸시마 원전사고를 접하면서도 편서풍이 불기에 한국으로 방사성물질이 날아올 가능성은 낮다, 우리나라 핵발전소는 6.5의 내진 설계로 건설되었는데 한반도에서 이 정도의 강진이 일어날 확률은 거의 없다는 등의 논리를 내세우며 핵발전이 위험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일본처럼 내진 설계 범위를 넘는 강진이 올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일본 핵발전소가 폭발하고 냉각수가 공급되지 않아 핵연료가 녹아내리리라는 상상을 그 어느 일본국민이 해보았겠는가? 우리나라에 리히터 7의 강진이 발생한다면, 우리도 똑같은 참사를 겪을 소지는 다분하다. 기술에 대한 맹신은 우리도 마찬가지로 갖고 있다.   

예상치 못한 위험에 노출된 원전 운영

사고가 난 후꾸시마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토오꾜오전력(東京電力)은 핵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한 검사를 조작한 바 있다. 2002년 토오꾜오전력 스캔들이라고 불린 핵발전 운영안전성 조작사건의 핵심은 핵발전소 원자로압력용기 등 각 부위의 안전성 검사과정에서 29건의 크고작은 문제를 발견했으나 이를 조작하여 안전성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허위 보고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토오꾜오전력은 1년간 원전가동 정지처분을 받았다. 만약 좀더 철저한 관리가 있었다면 지금 같은 사고가 발생했을지 부질없는 가정을 해본다.

한국도 1999년 원자력안전기술원 책임연구원의 울진 1호기 불법 용접 증언이 있었다. 당시 핵발전소 가동을 멈추고 전면 재조사해야 한다는 반핵운동단체의 주장은 무시됐고, 쌤플링 조사를 통해 다른 곳은 불법 용접이 없다며 무마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미 1993년과 1994년에 걸쳐 영광 핵발전소의 3, 4호기에서도 불법 용접 배관이 확인되어 건설기간 중 교체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뿐만 아니라 2002년 울진 4호기에서 발생한 세관(細管) 파단사고는 증기발생기의 재질인 인코넬(Inconel)-600의 결함 때문이라는 것이 당시 반핵운동의 주장이었으나 단순 고장으로 무마됐다. 평상시에는 사소한 차이가 안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만약 일본처럼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엄청난 재앙이 올 수 있음을 깨닫고 우리도 이에 대한 꼼꼼한 점검이 필요할 것이다. 

이번 사태로 인해 우리는 애써 외면해왔던 핵공포에 다시 직면하게 됐다. 이제야말로 위험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때다. 울리히 벡이 지적했듯 현대사회는 '위험사회'다. 현대의학은 암에 걸린 사람에게 암과 함께 살아가라고 권고한다. 암은 제거하기 힘들고 제거하더라도 언제든 다시 발병할 수 있기에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제로위험'의 사회로 곧장 나아갈 수는 없다. 위험과 공존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은 위험을 묵과하거나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것과는 다르다. 암에 걸린 사람이 담배를 피우거나 과음을 하면 우리는 죽기로 작정한 사람이라며 그를 비난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위험사회라 해서 마구잡이로 위험물질을 생산하고 확산하는 것은 지구와 인류를 멸망에 이르게 하는 지름길이다.

핵공포를 후대에까지 물려주려는가

그러나 현대사회는 경제적 관점으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며 공멸의 길로 걸어가는 듯 보인다. 이는 과학에 대한 맹신이 가져온 한계이기도 하며, 위험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지 못한 우리 인간의 한계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가 처한 위험에 대한 논의에서 명백히 드러나는 것은 과학적 합리성과 사회적 합리성 사이에 괴리가 커진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과학적 논쟁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나타나며, 과학적 합리성이 사회적 기대 및 가치평가에 부합해야 한다는 사실은 간과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위험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가치관에 따라 위험의 수용 범위를 정할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그로부터 소비지향주의가 불러오는 위험이 현대사회를 어떤 공포로 몰아가고 있으며, 그에 따라 인간의 삶은 어떻게 제한되고 있는지 돌아볼 시기다. 이번  핵사고가 이웃 일본과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인에게 위험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래서 핵에 대한 공포를 미래세대에 전가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한다. 

이런 마음으로 지금 일본에 계신 분들은 어떨까 생각한다. 생지옥이 따로 없을 것 같은 그곳에서 일본인들이 보여주는 침착함은 민족성이라고만 하기엔 놀라울 정도다. 항상 대지진의 위험과 더불어 살아오면서 조상으로부터 받은 공존의 삶의 방식이 뼛속 깊이 스며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웃과 함께해야 한다는 경험 속 전통이 무지막지한 아비규환의 상황 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힘이 아닐까 한다. 이번 재앙으로 숨져간 모든 이들의 명복을 빌며, 그리고 일본인들이 하루빨리 평안을 되찾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 글쓴이는 녹색연합 사무처장입니다.
* 본문은 디지털 창비(http://weekly.changbi.com) 2011년 3월 16일자 주간 논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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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3/16 [15:3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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