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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리즘과 에드워드 사이드
[책동네] 20세기 서구 인문학의 지형 바꾸는 데 성공한 학자 제조명해
 
이인   기사입력  2011/02/12 [04:24]
에드워드 사이드 하면 곧바로 ‘오리엔탈리즘’이란 말이 떠오를 정도로, 사이드와 오리엔탈리즘은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그만큼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이란 책으로 서구백인들의 생각이 얼마나 외곬으로 치우치고 삐뚤어졌는지 수많은 문헌을 뒤져 밝혀냅니다. 서구백인들의 눈과 귀를 ‘오리엔탈리즘’이 얼마나 흐리고 일그러뜨렸는지 낱낱이 파헤칩니다.
 
1978년에 나온 이 책은 지구마을을 뒤흔들었고 오리엔탈리즘이란 말이 ‘상식’처럼 널리 퍼져나갔지요. 사람이 무언가를 바라보고 생각할 때 이미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불어오는 입김에 휘감기기 마련인데, 사이드는 그 가운데에 서구가 아랍과 무슬림에 대해 품고 있는 옴팡진 망상들을 드러내 보이죠.『오리엔탈리즘』은 서구의 뒤틀린 의식세계를 버르집으며 과연 사람의 생각과 감각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지금 자신은 어떠한지 저마다 되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 ↑책의 겉장에 쓰인 장-레옹 제롬(Jean-Lén Géôe, 1824~1904)의 뱀의 유혹자>(The Snake CHamer)는 서구가 동양을 어떻게 여기는지 일러준다     © 갈무리
따라서 에드워드 사이드는 훌륭해, 라고 손뼉치고 돌아서기보다 그의 날카로운 고민을 익혀야겠지요. 사이드 스스로도 자신을 우러르기만 하는 이들을 만드는 데 전혀 뜻이 없다고 딱 잘라 말합니다. 음악에도 깊이가 남달랐으며 꽤나 멋진 피아니스트였던 사이드는 함께 오케스트라를 만들려고 했던 동무, 다니엘 바렌보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선생으로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어떤 의미에서 나의 학생들이 나를 비판하게 하는 것입니다. 나를 공격하라는 것이 아니라, 사실 많은 학생들이 그렇게 하기는 합니다만, 나에게 독립을 선언하고 그들 자신의 길을 가라는 의미의 비판 말입니다.『평행과 역설』[생각의 나무. 2003]136~137쪽
 
사이드의 말마따나, 사이드를 떠받들지 말고 사이드의 연구를 두엄삼아 새로운 희망과 아늑한 평화를 피워내야 하겠죠.『오리엔탈리즘과 에드워드 사이드』[갈무리. 2011] 는 사이드를 내 안에 ‘들여와’ ‘사이드처럼’ 생각할 수 있게끔 잘 다져진 입문서입니다. 사이드의 수많은 연구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내리친 뒤 맛깔난 요리로 빚어낸 책이죠.
 
문학과 문화 비평가 그리고 사회 평론가로 알려진 에드워드 사이드는 세계 지성계에서 매우 중요하고 논쟁적인 인물이다. 그의 저작은 그 폭과 깊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고 논쟁적인 인물이다. 그의 저작은 그 폭과 깊이에 있어서 가히 놀라울 수준일 뿐만 아니라, 현대 문화 이론과 탈식민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오리엔탈리즘과 그와 관련된 분야에 대한 사이드의 저술을 수많은 연구자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었으며, 후속 연구자들은 다시 사이드의 사상적 진화에 도움을 줌으로써 사이드는 마침내 20세기 서구 인문학의 지형을 완전히 바꾸는 데 성공했다. 35쪽

▲ 오리엔탈리즘을 재분석, 재정립한 에드워드 사이드     © 갈무리
글쓴이 발레리 케네디의 말처럼, 에드워드 사이드만큼 지구마을의 판을 통째로 갈아엎으며 어마어마한 물결을 일으킨 학자도 드뭅니다. 탈식민주의 담론이 지성계에 물보라를 일으키며 서구를 잣대삼아 자신들을 재고 낮잡던 의식을 깨부쉈지요. 비록 그는 떠났지만, 그의 발자취를 밟으며 새로운 길을 내는 이들이 불거집니다.
 
사이드는 수많은 사람들 가슴에 불을 지폈는데, 그 까닭은 그저 글을 잘 쓰거나 똑똑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삶과 생각이 뜨거웠기 때문입니다. 사이드는 ‘고향을 잃어버린 소수자’로써 끝없이 세상을 낯설게 바라보고, 거리두기를 하면서 지식인의 호젓함을 지켜내었죠. 어느 누구보다 공부를 많이 한 먹물이지만 먹통이 되지 않고자 ‘세속’에 뛰어들어 목소리를 내고 사회변화를 이끌어내고자 애쓴 실천지식인이었습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평생 어떠한 하나의 이론이나 담론에 치우치거나 특정한 문화나 정치적인 행위에 빠져드는 것을 경계해 왔다. 그는 또한 인종이나 종교, 심지어 비평의 세계에서조차 ‘순수성’을 주장하는 것을 대단히 위험하고 파괴적인 것으로 간주하였다. 사이드는 인간을 획일화하고 억압하려는 그 어떠한 총체적 시스템과도 맞서 싸우려 했으며, 세속주의와 지리적 ‧ 사회적 ‧ 문화적 통섭을 대안으로 주장해 온 이 시대의 진정한 지성이었다. 298쪽
 
하지만 그가 쌓은 업적이 높고 커다란 만큼 그늘도 있을 수밖에 없고 그의 논리에도 구멍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이 책의 지은이는 사이드만큼 매서우면서도 꼼꼼히 요모조모 짚어냅니다. 뒤쪽에선 사이드를 가야트리 스피박이나 호미 바바 같은 탈식민주의 이론가들과도 견주는데, 무척 솔깃하네요.

▲ ↑2000년, 레바논 남부 지역을 폭력으로 지배하는 이스라일 군에게 돌을 던지는 사이드     © 갈무리
세계화란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미국화란 욕망의 소용돌이가 지구동네에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사이드 다시 읽기’가 이뤄지는 까닭은 별 생각 없이 멍하니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노란 미국인’이 되어버리기 때문이지요. 사이드의 글을 다시 보고 새롭게 읽어내면서 삶을 가다듬고 팔 걷어붙이며 사회에 뛰어들어야겠지요.
 
그의 글들을 읽기가 좀 망설여지거나 만만치 않다면,『다시 에드워드 사이드를 위하여』[앨피. 2005]란 괜찮은 입문서가 있었는데, 거기에『오리엔탈리즘과 에드워드 사이드』를 더할 수 있겠네요. 사이드를 만나면, 강자들의 욕망을 욕망하라는 부채질에서 벗어나 약자에 대한 상냥한 마음가짐을 배우며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바람이 자기 안에서 일어납니다.
 
평생 휴머니즘을 옹호한 시대의 지성으로, 불의한 권력과 맞서 싸워 온 실천적 지식인으로, 문학적 근원과 고향을 떠나 망명적인 삶을 살아온 고독한 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는 팔레스타인이라는 변방에서 태어나 세상의 중심을 변화시킨 사유의 혁명가였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의 부재를 아쉬워하기보다 우리가 아직 살아 있을 때 지식인으로서 그와 같은 삶을 살도록 애쓰는 일이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의 의식의 세계로 그의 정신을 다시 살려 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죽은 자를 위한 진정한 애도는, 그를 오랫동안 기억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25쪽
 
* 글쓴이는 꺄르르라는 이름으로 공부하는 젊은이입니다. 누리집 주소  http://blog.ohmynews.com/specia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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