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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과 김정진, '부유세 파장' 주목한다
[구미에서] 민주당과 진보신당 새 지도부에 대한 '단상'
 
김수민   기사입력  2010/11/08 [08:29]
이인제가 생각나는 손학규

손학규, 정동영, 정세균의 3파전은 일단 손학규 대표의 승리로 끝났다. 손학규는 일종의 '내쉬 균형'(Nash equilibrium)이다. 여러 계파가 각자의 계산 끝에 내놓은 답이 이른 지점이 선거 결과다. 노무현 대통령이 예전 '보따리 장수'에 비유했던 이를 친노계 일각이 민 것은 의미심장하다.

손학규 대표를 보면, 총선에서 충청도 승리를 이끈 뒤 국민참여경선에 밀려 전사한 이인제 의원이 떠오른다. 3당 합당에 응했다는 점, 경선 불복이라는 비난을 안고 다니는 점, 소속 정당을 바꿔 대선주자 1위로 부상한 점 등 공통점도 많다. 그러나 민주당의 수준상 손학규를 띄워놓고서 '꿩잡는 매'를 등장시킬 수 있을지는 다소 의뭉스럽다.

2위를 한 정동영 후보는 놀라웠다. 과거 민주당 계열에서 가장 보수적인 포지션을 고수하던 그는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입시 폐지'를 내놓기도 했지만, 이번엔 더 나아가 '한미FTA 재협상', '부유세 신설'까지 제시했다. 최재성 후보가 '부자 증세를 하면 기업이 떠난다'고 지적하자 "나갈 테면 나가보라고 하십시오. 다른 나라 가면 세금 더 내야 합니다"라고 맞서는 정동영 의원이 결코 연기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작심하고 진보화, 좌클릭한 것 같았다.

여기에 원래 민주당 내 개혁세력인 천정배 후보, 소위 486세대로 그간 이라크 파병과 한미FTA에서 혁신적 노선을 고수했던 이인영 후보가 보태어졌다.

작심하고 좌클릭한 '정동영', 진보정치 시사점 크다
 
▲'부유세 원조' 김정진 진보신당 부대표(좌)와 최근 '부유세 전도사'가 된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이 지난 3일 한미FTA 전면재검토 촉구 비상시국회의에 함께 참여했다.     © 대자보 박진철

노선 진보화에 신중하거나 불응하는 이가 대표가 된 동시에, 그와 반대쪽을 지향하는 이들이 당 지도부로 진출했다. 민주당 경선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그렇다. 민주당은 노선 투쟁의 길에 접어들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에 있는 유권자들을 공략할 것인가, 아니면 진보색을 덧칠해 이른바 진보개혁 연합의 가능성을 높일 것인가. 총선과 대선까지 2년 동안 이 기로에서 당내 힘겨루기가 계속될 것이다.

지난 2, 3년간의 우경화 일방통행은 이제 막을 내렸다고 봐도 좋다. 남은 건 이념과 정책을 온몸으로 그리고 단박에 표현할 대선주자의 부상이다. 손학규와 정동영은 앞으로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것이다. 그러나 이로는 부족하다는 것도 대중적 여론이다.

나는 그에게 호감은 없지만 정동영을 주목한다. 민영화와 탈규제에 경도되었던 2002년 경선 무렵의 정동영을, 그가 2004년 총선이 끝나자마자 보수화의 외장재인 '실용주의'를 주창했던 사실을 기억하고 상기한다. 하지만 그마저 달라졌다는 것은 진보정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진보진영은 정동영을 어떻게 사고하고, 또 활용할 것인가?

'노선 논쟁' 없는 진보신당, 위기의 징후
 
진보신당의 당 대표 선출제도는 잘못되었다. 민주당, 민주노동당에 견주면 또렷이 드러난다. 대표 선거의 차점자가 부대표가 되는 게 아니라, 분리해서 선출하는 제도이다. 분리명부 선거는 '세팅 투표'를 뒷받침하여 특정 흐름의 최고 당직 독식을 불러일으킨다. 분당 이전 민주노동당의 당직선거가 그랬었다.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의 잘못을 극복하려고 만든 정당이지만, 당직 선거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이런 선거에서는 중량감 있는 인사들이 대표 선거 출마를 포기할 경우, 단독 출마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처음 단독대표제를 만들고 나서는 노회찬 전 의원이, 이번에는 조승수 의원이 단독 출마해 당선되었다.

이번 선거는 심상정 전 의원이 입후보를 하지 않음에 따라 본격적인 노선 논쟁이 이뤄지지 못했고, 조승수 의원의 당선 의미도 확실하지 않다. 불출마한 심상정 전 의원이 첫째로는 민주노동당, 둘째로는 국민참여당 (일부)과의 통합이나 강고한 결속을 염두에 두는 '통합파(연합파)'라면, 조승수 의원은 '독자파'로 일컬어진다. 사회당과의 합당에도 무게를 두고 있으며, 특히 국민참여당이나 민주당은 통합 대상에서 배제된다는 점이 다르다. 그러나 그는 최근 민주노동당과의 통합 여지를 크게 잡고 있다. 좁은 뜻(진보신당만의 독자적 강화든, 사회당과의 합당까지든)에서의 독자파는 아니라는 것이다. 

부대표 출마자들은 박용진 후보를 빼면 독자파로 꼽힌다. 그 중에서도 김정진 변호사가 그렇다. 그러나 부대표 정원과 출마자가 동일함에 따라 찬반 투표가 이뤄지면서 이 선거에서도 당내 노선 논쟁은 활발하지 못했다. 박용진 부대표의 찬성득표율이 가장 낮으나 어쨌든 8할이 넘는다. 결국 이번 진보신당 당직 선거는 민주당과는 달리 노선 논쟁을 비켜간 사례가 되었다. 나는 이것을 진보신당의 위기 징후로 읽는다.
 
그동안 계속 그랬듯 진보신당은 당세가 늘건 줄건 당내 토론은 활발하지 않았다. 심상정 전 의원이 투표일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사퇴하고, 다른 당과의 연합을 강조하게 될 거라고 예측한 당원은 별로 없었다. 진보신당의 당내 정치는 철저히 불확실성에 휩싸여 있었다. 앞으로의 야권 변동에 대비한 조기 산통이나 신속한 움직임은 더욱 기대하기 힘들게 되었다. 그럴수록 명망가의 움직임에 좌우될 것도 자명하다.

진보신당의 이번 선거 결과는 노선보다 인물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조승수 의원의 대표 선출은 정치사적인 의미가 있다. 노동운동, 진보정당운동, 환경운동 출신인 조승수 의원은 지방의원과 기초단체장, 국회의원을 모두 거치며 제도권 정당의 대표직에 닿았다. 이런 사례는 한국에서 전무했다. 울산 이외의 지역에서는 지명도가 높지 않은 그이지만, 예전의 이력만 부각되어도 노회찬, 심상정에 필적하는 스타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광주의 지방의원 출신으로 부대표에 재선된 윤난실, 잔뼈굵은 여성 노동운동가인 김은주도 다음 줄 어딘가에 있다.

'부유세 원조' 김정진과 '부유세 전도사' 정동영

당내 구도에서는 대척점에 서 있는 셈이지만, 박용진 부대표와 김정진 부대표는 둘 다 90년대에 대학에 입학했던 세대의 당직 진출이 본격화되었음을 알리는 신호다. 나는 그 중에서도 후자에 더 주목하고자 한다. 박용진 부대표는 민주노동당 시절 대변인을 거쳤고 두 차례 총선에 출마해 두자리수의 득표율을 올린 기린아였다.

그에 반해 김정진 부대표는 '언소주' 운동을 법률적으로 지원한 것 외에 대중적으로 노출된 적이 별로 없다. 그러나 진보진영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그의 진면목을 잘 알고 있다. 그는 민주노동당의 변호사로 있으며 그 유명한 '부유세'를 탄생시켰다. 부유세를 수용한 이가 민주당의 최고위원이 된 직후, 그 원작자가 진보신당의 부대표가 된 것이다. 그는 정치논객으로서도 보무당당한 직설화법을 작렬시키며 진보진영이 갈 길을 가리켜 왔다. 그의 당직 진출은 조승수 의원의 대표 당선보다 어쩌면 더 큰 파장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물렁하고 심심했던 당직 선거보다 사무총장과 정책위의장을 맡을 이가 누군지가 더 관심사다. 현재로서는 한석호 문화다양성포럼 사무총장과 이재영 <레디앙> 기획위원이 유력하단다. '독자파'로 분류되며 거리낌없이 민주노동당 분당을 추동했던 인물들이다. 인선이 어떻게 매듭지어질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하마평에 오르는 것은 일단은 '독자파'의 승리인 셈이다.

김정진, 한석호, 이재영은 한때 교분을 나누었던 인물들이다. 조승수 대표도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몇차례 만난 적이 있다. 내가 진보신당을 항의겸 경고겸 탈당한 후에는 연락한 적 없지만, 그들이 잘되길 빈다. 그래야 나도 정당정치의 유보상태를 끝낼 수 있다.
* 글쓴이는 경북 구미시 시의회 의원(무소속)입니다.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영남지역 최연소(27세) 기초의원에 당선돼 현재 시의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2002년 <대자보> 필진으로 참여한 이래 다년간 정치칼럼 등을 연재해 왔으며,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대자보> 독자들과 만납니다.
기초의원으로서 풀뿌리 정치 현장에서의 경험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블로그 : http://kimsoomi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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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11/08 [08:2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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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나난 2011/01/11 [20:19] 수정 | 삭제
  • 정치이력도 비교하면서 한나라당에서의 개혁세력과 그들의 실패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아쉽다. 왜 민주당에서 대표로 뽑을 수 밖에 없는 조건이 되는지에 대한 설명력도 부족하고 아쉬울 뿐이다.
  • 진보통일 2010/11/14 [00:27] 수정 | 삭제

  • 정확한 지적과 함께 숨겨져 있는 일인치를 확실하게 지적한 글에 강추하고 싶다

    어찌보면 국부가 중산층과 서민의 삶으로 이어지는 것이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제대로 된 정당과 그 인물이 역사의 앞길을 헤쳐나가게
    될 것이다.
  • 다물인 2010/11/09 [01:43] 수정 | 삭제
  • 부유하고 가난한 차이가 이렇군요..직접세와 간접세의 차이라니..굉장히 간단하네 그려 헐..수많은 논객들이 설을 풀어 쓸 이야기고 주제지만, 소득이 없는 자가 소비를 못하는데..직접이든 간접이든 뭘 더 걷겠다는 건지.
  • 다물인 2010/11/08 [10:57] 수정 | 삭제
  • 그래서 한국의 정당정치는 반동과 빨갱이가 판치는 구조주의적 모순을 가지고 있다. 훗 구조주의적 모순이 뭘까? 아뭏튼 정치학에서 이야기하는 합리적 지향점이 그런 극한 이념의 대결로 망가진다는데 있다. 그 심리는 아마도 역사적으로 내려오는 지식인들의 종주국따르기 정도..사대주의를 말함이다. 우파든 좌파든..그 사대주의적 사상의 흐름..그래서 자신의 정통성을 이야기하려는 한국의 사상가들..그들의 그런 베끼기 짓거리로는 한국의 정당정치를 풀어갈 수 없다..물론 사상가들이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지만..결국 현실은 자본가와 노동자를 대변하는 무리들의 전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