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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대 패륜녀’, 패륜엔 패륜으로 대응하나?
[하재근 칼럼] 인터넷에서 누군가의 인권을 짓밟는 짓도 패륜이다
 
하재근   기사입력  2010/05/18 [11:13]
한국 네티즌이 아주 분노하는 소재가 또 떴다. 이른바 ‘패륜녀’ 사건이다. 어떤 젊은 여성이 얄밉게 행동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인터넷에선 난리가 난다. 네티즌 수사대가 출동하고 처벌이 이어진다. 이번에도 그렇다.

한 대학에서 여대생이 환경미화원 아주머니에게 폭언을 했다는 게시글이 인터넷에 뜬 것이 이번 사건의 시초였다. 수십 만 명이 읽고 일파만파로 일이 커졌다. 이 사건은 ‘00대 패륜녀’ 사건으로 알려졌다.

네티즌 수사대가 출동할 즈음 한 네티즌이 댓글로 패륜녀에 대한 단서를 흘렸다. 그러자 그 단서를 바탕으로 신원을 알아낸 네티즌이 그 여대생의 미니홈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애초에 단서를 흘린 사람이 장난으로 그랬음을 고백했다. 결국 엉뚱한 사람이 패륜녀로 지목된 것이다.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 미니홈피마저도 조작된 것이었단다. 한 네티즌이 그 여대생을 가장해 미니홈피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어처구니없게 흘러가자 진위 논란이 일어났는데, 학교 측이 그런 사건이 있었음을 인정하면서 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그러자 네티즌은 더욱 분노해서 ‘00대 패륜녀’ 색출작업에 들어갔다. 색출한 다음엔 어떻게 될까? ‘인생 THE END'다. 인터넷에서 패륜녀로 찍혀 방방곡곡에 전시된 사람에겐 ’사회적 매장‘이 있을 뿐인 것이다.

‘00대 패륜녀’에 대한 네티즌의 반응은 이런 댓글들로 짐작할 수 있다.

‘뉴스에 신상정보 다 공개하시고, 경희대 게시판에 사진이랑 정보 다 공개하시고, 나중에 취직할 때 징계 받은 거 다~~ 표시해놔야 어디 회사든 얠 못 먹고 살게 하죠~’
‘하여튼 저 입걸레는 매장을 시켜야 함.. ’
‘저사람 퇴학안시키나요?? 진짜 저 사람 신상공개했으면 좋겠네요’
‘총으로 쏴죽이고 싶다...저 어린년이...’
‘어디서 저런 개~년을,, 저런 거,,꼭 찾아내서 완전 매장 시켜야지...’
‘조만간 저년 얼굴 인터넷에 공개된다..그때 보자... ’


살벌하다. 정말 매장할 기세다. 그 패륜녀에게서 느껴지는 폭력성 못지않게 네티즌의 반응도 폭력적이다. 항상 이런 식이다. 누군가가 일상생활에서 얄미운 짓을 했다는 게 알려지면 네티즌은 ‘너 딱 걸렸다. 어디 한번 죽어봐라’는 식으로 대응한다.

그 사람에게도 보호받을 인권이 있다는 생각 따위는 전혀 하지 않는다. 그저 잘못했으니 죽어도 싸다는 식이다. 네티즌 수사대가 들쑤시고 다니면서 걸리는 사람은 즉각 조리돌림에 멍석말이 신세다. 그러다 엉뚱한 사람이 걸리기도 하고, 이번 사건에서처럼 장난치는 사람도 나타난다. 이번에 장난친 사람이 ‘00대’의 ‘00’으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진 이가 패륜녀라고 지목하는 바람에 비슷한 이름을 가진 여대생들은 간담이 서늘했을 것이다.

일상공간에서 남들에게 버릇없는 짓을 하는 것도 패륜이지만, 인터넷에서 누군가의 인권을 짓밟는 짓도 패륜이다. 하도 많이 지적해서 입이 아플 지경이지만 똑같은 사건이 계속 반복되어 같은 지적을 또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건 집단폭력이다. 

여대생의 신원을 알아내겠다고 출동한 네티즌수사대, 그 여대생의 개인정보를 공개하라고 성화를 하는 네티즌들이 모두 폭력에 가담하고 있는 셈이다.

공론장에서는 이 사건의 문제점을 논하고, 우리 사회의 타락을 이 기회에 반성하자는 정도의 논의에서 그쳐야 한다. 직접 그 사람을 찾아내 대중적으로 처벌하겠다고 나서는 순간부터 폭력이 된다.

말이 패륜이지 정말 중한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버릇없는 말을 좀 했을 뿐이다. 그것이 나쁜 짓인 건 맞지만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정도로 극단적인 처벌을 받는 것은 정도를 지나쳐도 한참 지나친 일이다.

누군가 조금만 잘못해도 ‘일단 잘못한 이상 죽어도 싸다’는 식으로 나오는 네티즌들, 그러면서 자신들이 정의를 실행하는 줄 아는 우리 네티즌들. 착각이다. 그건 정의가 아니라 또 다른 패륜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패륜에 패륜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

입시경쟁, 취업경쟁, 실업, 저소득, 미래불안 등으로 사회적 불만지수가 높아지면서 대중의 분노와 폭력성도 높아지고 있다. 때문에 어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대중적으로 이상 열기가 발생한다. 그럴수록 우리사회는 더욱 흉폭해질 것이다. 냉정해져야 한다.

지난번 루저녀 사건 때도 그렇고 자꾸 학교 이름을 붙이는 것도 문제다. 한국사회는 같은 학교의 구성원들을 한 덩어리로 인식한다. 그래서 학벌사회다. 이런 사회에서 ‘00대 패륜녀’, ‘00대 루저녀’ 같은 식으로 학교 이름이 붙으면 그 학교 구성원 전체가 피해를 입게 된다. 그러므로 학교 이름을 섣불리 붙이면 안 된다. 모든 언론이 일제히 ‘00대 패륜녀’라고 학교이름을 붙여서 보도한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
* 필자는 문화평론가이며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을 역임했습니다. 블로그는 http://ooljiana.tistory.com, 저서에 [서울대학교 학생선발지침 - 자유화 파탄, 대학 평준화로 뒤집기]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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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5/18 [11:1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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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ㅋㅋㅋ 2010/05/19 [08:54] 수정 | 삭제
  • 나이를 불문하고 조금만 잘못하면 얼마나 많은 입에 담지 못하는 욕을 해대는지 모두들 알겁니다.
    특히 여성들에 대해서는 아주 지독하게 하죠...(얼마전에 제 집사람도 들었습니다.)
    뭘 얼마나 죽을 죄이기에 이렇게들 난리인지...


    하재근씨 칼럼에도 그 여학생이 잘 한 것은 아니지만 한 사람을 생매장하듯 하는 것에 대한 또다른 가해란 것을 지적한 것을 이해못하는지.

    인터넷 댓글에는 녹취내용보다 더한 내용이 많은데 그럼 그들은 어떻게 할건지...
  • 기가막혀 2010/05/18 [19:14] 수정 | 삭제
  • "말이 패륜이지 정말 중한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버릇없는 말을 좀 했을 뿐이다. 그것이 나쁜 짓인 건 맞지만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정도로 극단적인 처벌을 받는 것은 정도를 지나쳐도 한참 지나친 일이다"?

    녹취내용 한번 봐라. 그게 가벼이 넘어갈 일이냐? 인권쟁이들, 니들이야말로 인권근본주의 극단적 태도부터 고쳐라. 한국은 뭐 하나에 필이 꽂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