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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통사는 누가 쓸 수 있을 것인가?
[비나리의 초록공명]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한일간의 격차
 
우석훈   기사입력  2010/04/01 [16:35]
▲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움직이는 건 그들의 욕망이 아닐까? 세계사를 움직인 인과관계를 규명한 사이토 다카시의 역서.     © 뜨인돌출판사, 2009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가지 힘>이 책은 내가 해제를 쓴 책인데, 해제와 추천사 그리고 내 책을 다 포함해서 가장 잘 팔린 책이 되었다. 

처음에 이 원고를 받았을 때 과연 팔릴까 싶었는데 다행이다. 처음 부탁을 받았을 때, 역사책에 대한 해제를 쓰는 날이 나에게 올까 싶었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가장 못한 과목이 세계사였고, 국사도 완전 잼병이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는 역사는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고, 사회에 대해서도 잘은 몰랐다. 내가 읽었던 책은 소설과 시, 딱 두 가지 밖에 없었다. 물론 소설은 엄청 많이 읽었지만, 흔히 사회과학이라고 부르는 그런 책은 대학 들어가기 전에 읽은 것이 없다. 

세계사는, 당시 대입 시험에 열 문제가 나왔는데, 모의고사에서 세 개 맞은 적도 있었다. 세계사 선생이 나한테 난리를 치고, 엄청 맞기도 했지만.

나는 질병이라고 할 정도로 암기력이 나쁘다. 특히 단순암기는, 좀 병적으로 못한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아마 나는 경제학과에 진학하지 않았다면 대학을 졸업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간호학 개론을 조금 공부하면서 간호학과 시험문제를 본 적이 있었는데, 살벌한 암기들, 정말 각주에 나온 코너 솔류션들이 시험 문제로 나왔다. 생물학과에도 질린 게, 엄청나게 외워대야 하는데, 그들은 자신들을 '인간 제록스'라 불렀다. 

나는 지금도 집 전화번호와 아버님댁 전화번호 이런 것을 못 외운다. 집 우편번호 외우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럽다. 한 번도 집 우편번호를 외우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사학이 암기과목이 아니라는 것은 대학에 들어가서 알게 되었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에, 당시는 원주캠퍼스 교수였던 홍성찬 선생이라는 분이 계시다. 요즘은 모르겠는데, 그 시절에 사상사가 2학기짜리 과목이 있었고, 경제사가 역시 2학기 과목이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신고전학파 경제학으로 도배를 해놓은 학교에서 그런 과목이 있어서 좀 숨을 쉴 수가 있었다. 

나중에 김용섭 선생의 조선사 수업들까지 쫓아다니면서 경제사 공부를 했는데, 경제사에는 외우는 게 거의 없다. 그렇게 해서 역사 공부를 시작한 셈이다. 

물론 나는 경제사라는 창으로 들어간 셈이라서, 일반적인 역사학자들과는 역사를 보는 눈이 조금 다르기는 하다.

박사과정에 있을 때에는 경제인류학 공부를 좀 했다. 인류학이라는 게, 세상을 보는 눈을 아주 많이 바꾸게 해주었다.. 

지금도 선생 중에서 가장 반갑게 만나는 분이 홍성찬 선생이다. 유학 가기 전에는, 차세대 경제사 주자로 내가 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는데...가치론 전공한다고 유학을 시작해서, 결국 사상사 분과에서 생태경제학 가지고 박사 논문을 쓰면서, 사상사나 경제사나, 한 때 전공으로 생각했던 과목이 되어버렸다. 

꼭 그런 인연은 아니지만, 서울대로 간 주경철 선배와 같이 공부를 했었고, 그 양반 논문 한참 쓸 때 나는 코스웍과 논문준비를 했었다. 

삶도 인연이라는 게 있는지, 처형도 역사 전공이다. 자연스럽게 내 주변에는 역사역사 전공하는 사람들이 좀 많게 되었다. 

내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은, 경제학과에서 더 이상 경제사 전공들이 등장하지 않는 사소한 문제에서, 우리나라 전체로 사학 전공하는 사람들이 더는 등장하지 않게 된 것이다. 

외사촌 중에 서울대에서 국사를 전공하고 대학원까지 나온 동생이 있다. 집안이 넉넉하지 않았는데, 다시 인천교대에 들어가서 교사가 되었다. 집안이 넉넉하면, 그냥 공부를 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우리 집안은, 그렇게 넉넉한 편은 아니다. 그 안타까움이, 요즘 문사철이라는 단어 속에서 나한테도 느껴진다. 

역사책은 언제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아주 좁게 학술적인 논의를 할 것인가, 아니면 아주 넓게 통사에 관한 대중적 서술을 할 것인가. 

어떤 의미에서는 통사는 매 시대에 필요하고, 그 시대에 맞게 통사를 재해석하는 작업이 계속해서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우리 시대의 통사는 과연 누가 쓸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질문들을 가끔 해본다. 좁은 분야에서의 기술적 해석에 관한 논의들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학에 아직은 남아있는 셈이다. 

그러나 진짜로 통사를 쓸 수 있는 사람은?

강준만 선생이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나라에서 통사를 쓰는 마지막 학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역사에 대한 강준만의 서술 방식에 약간 불만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가 마지막 학자일 가능성이 높다. 

사학과에서도 그리고 사학과가 아닌 곳에서도, 통사를 쓸 수 있는 사람을 우리 시대가 배출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다. 

90년대 중후반에 통사의 성격을 가진 역사 입문서들이 한참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의 책에서도 아주 불만이 없지는 않지만, 이제는 그 정도의 얕은 지식으로라도 전체를 꿰뚫는 책을 한국에서 다시 보기가 어려울 것 같다. 

그러던 차에 일본에서 나온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중고등학생들이 세계사 공부를 삼아서 보아도 좋고, 역사라는 것을 진지하게 접해보지 못한 일반 대중들에게도 꽤 도움이 될 책이다. 

언제 조선 사람이 쓴 책으로 이런 세계사 버전 혹은 특수사 같은 것들을 볼 수 있을까, 그런 회한이 해제를 쓰면서 들었다. 

기 소르망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우파 학자이다. 프랑스에 신자유주의 붐을 만든 것이 바로 기 소르망이고, 그 때 그가 썼던 구호가구호가 retour de l'individu, 개인의 복귀라는 용어였다. 프랑스에서는 신자유주의를 경제적인 의미로만 해석한 것은 아니고, 국가의 전성 시대를 거쳐 다시 개인이라는 범주가 돌아오는 것으로 이해를 시켰다. 물론 나는 기 소르망을 좋아하지는 않는다만...

그는 독서를 엄청 많이 하고, 취재에도 성실한 편이다. 그가 중국에 대해서 쓴 책을 읽었는데, 조선일보가 아주 좋아할 그런 내용들을 가득 담고 있었다. 그는 범죄자 수용소 같은 곳에 트럭 뒤에 장막을 덮고, 그렇게 숨어들어가서 현장을 보면서 그 책을 썼다. 정말 할 말 없게 만들었다.

그 정도 위치의 세계적 석학, 그런 사람이 중국 공안을 피해서 몰래 트럭을 타고 현장에 잠입하는 그런 노력을 하는데, 그게 "날탕이다" 혹은 "쌩뻥이다" 하기는 어렵다. l'anne de cocq, 닭의 해인가, 아마 그런 제목의 책이었던 것 같다. 

한기호의 컨셉력에 관한 책에도 해제를 단 적이 있다. 그 책을 읽으면서 과연 21세기의 지식이라는 게 어떤 형태일 것인가, 그런 질문을 좀 가져본 적이 있다. 한기호는 그걸 컨셉력이라고 불렀는데, 그냥 편한 이름으로 하면 기획능력 정도가 될 것 같다. 

문화기획자라는 이름을 좀 띄워보려고 연대에서 강의하던 시절에 좀 고민을 해본 적이 있다. culturalcultural animator를 조한혜정 선생이 그런 이름으로 번역해서 사용하는데, 좋은 번역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이 책에 대한 해제를 달면서, '백과사전적 지식'이라는 말을 생각했다. 창의성이라는 고민과 이 개념을 연결시키는 작업을 요즘 해보는 중이다. 

독자들에게는 어떻게 이 책이 다가올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해제를 쓰면서도 많이 배웠고, 또 한동안 고민하게 될 질문거리들을 찾아내게 되었다. 

한국인이라면, 이 정도 책은 한 권씩 갖고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물론 얕다. 그러나 그 정도의 얕음도 우리는 가보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과의 격차는, 더더욱 벌어지는 것 같다. 이걸 어떻게 줄일 수 있나?. 그런 고민들이 남는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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